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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멸망을 굳이 막아야 하나요 (77)화 (77/90)

<제77화>

국적과 닉네임만 알면 검색해서 톡을 보낼 수 있으나 그런 걸 싫어하는 각성자도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레바브가 뒤늦게 추가한 게 ‘비공개’ 기능이었다.

비공개, 다른 말로 자물쇠를 걸어두면 남들이 함부로 연락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물론 따로 설정하여 연락할 수 있게끔 예외를 만들 수 있었지만…….

욜로인생이 시몬의 예외에 속할 리 만무했다.

한 줄 요약으로 시몬이 비공개라 톡할 수 없다, 이 말이었다.

최가영이 한숨을 쉬었다.

“이거 잘하면 나라 간에 트러블 생기겠는데.”

“일단 시몬 헌터와 함께 식당에 온 사람들은 잘 말해서 돌려보냈습니다.”

“바우한테 시몬 신상 줘서 추적해 보라고 해봐.”

“안 그래도 시몬 헌터 신상을 뽑으려고 했습니다만…….”

말끝을 흐리는 욜로인생에 최가영이 미간을 좁혔다.

“뭐.”

“알려진 게 거의 없습니다. 본명조차 알려지지 않았어요.”

“뭐? 시몬 아냐?”

“아닙니다. 예명이라고 합니다.”

“재앙 전부터 유명했던 모델이라며. 신상이 안 알려졌다는 게 말이 돼?”

“그래서 많이 이상합니다.”

결론을 내린 욜로인생이 끝내 고개를 젓는다.

“아니, 수상합니다. 이거 마치…….”

누가 일부러 ‘은닉’한 듯한.

욜로인생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뱉은 그때.

사무실 문이 부서져라 열렸다.

여태껏 방독면을 벗지 않은 보우, 이활이었다.

“야! 이하늘 집 안 보낼 거야?”

씩씩거리는 이활을 보던 최가영은 또 골치가 아파 이를 악물었다. 턱에 핏줄이 솟았다가 가라앉는다.

“좀 기다려.”

“시간이 지금 몇 신줄 알아? 내가 데려다줄 수도 없는데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 건데?”

“가족 불러.”

예를 들어 누나를 극도로 아끼는 네놈 쌍둥이.

“걱정 끼친다고 안 부르겠다잖아!”

이하늘과 관계가 있어도 ×나게 있다는 걸 이제 감출 생각이 없는지 이활은 욜로인생 앞에서도 박박 소리를 질러댔다.

하…….

감쪽같이 사라진 헌터 둘을 잠깐 차치하고.

게이트에서 살아 돌아온 이하늘은 본래라면 바로 보호 센터에 이송되어 2주 동안 격리당해야 했지만 예외로 관리국으로 함께 돌아왔다.

이유는.

‘저……. 최가영 헌터님.’

게이트 밖으로 나오자마자 최가영은 이하늘을 찾았다. 그러나 그가 먼저 그녀를 찾기도 전에 이하늘이 훅 다가왔다.

‘……아, 예.’

얼굴을 가리지 않았으니 자신이 최가영이란 걸 알겠지만 마치 그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부름이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건가?

마스크와 두꺼운 안경테로 얼굴을 완벽히 가릴 수 없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이하늘이 눈치챌 줄이야.

떨떠름하게 대답하는데 이하늘이 돌연 두 손을 모았다. 마치 비는 것처럼.

‘제가 며칠 전에 이미 보호 센터에 다녀왔거든요.’

알다마다. 보호 센터에서 이하늘을 보기도 했다. 이 여자는 또 까맣게 잊은 듯하지만.

‘근데 또 2주 격리당하면 회사에 지장이 갈 것 같은데 이번에는…….’

‘보호 센터 입소 확인 증명서 제출하면 될 텐데요.’

‘……으음.’

‘……회사가 인정 안 해줍니까? 그건 불법인데. 노동청이나 관리국에 신고하시면.’

‘그건 아니고요…….’

‘그럼?’

‘그, 아예 안 되나요? 저 진짜 딱 며칠 전에 출소…… 아니, 뭐래. 퇴소했거든요. 제가 각성했을 리가 없어요.’

어디서 났는지 웬 모노클을 쓴 채로 사정하던 이하늘. 자신을 올려다보던 눈이 어찌나 애절하게 반짝이던지 본인은 모르는 눈치였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뭔가요? 저 그걸로 대신하면 안 될까요?’

‘뭔지도 안 듣고?’

‘아니, 들어야겠지만요.’

‘흐음. 방법은…….’

간단하다. 2주 동안 매일 관리국에 와서 검사받으면 된다.

어떻게 보면 2주 격리보다 더 간단하고 효율적인 방법처럼 보이겠으나, 아니다. 관리국에서 검사받고 집에 돌아간 사이에 각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각성자 신고하러 오면 다행이나 그대로 잠수 타버리면…….

추적에 능하신 특진과 미친개 둘이 출동한다.

그리고 이 나라는 힘을 숨기는 것에 극히 로망을 가진 나라.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할 것이고, 그때마다 미친개 둘이 출동하면…….

극히 비효율적이다.

아무튼 그리하여 2주 동안 격리가 아닌 관리국 방문을 선택한 이하늘은 보호 센터가 아니라 이곳으로 왔다.

여기서 문제는…….

예외인 만큼 비밀스레 진행해야 하므로 최가영이 직접 이하늘을 담당하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 2주 동안 최가영이 계속 관리국에 처박혀 있을 한가한 놈이 아니므로 부담당은 욜로인생.

마음 같아선 이활에게 맡기고 싶었으나 들킬 일 있느냐고 또 길길이 날뛰어서 실패했다.

그런데 감쪽같이 사라진 헌터 새끼 둘 때문에 담당과 부담당이 사무실에서 떠드느라 이하늘이 뒷전이 됐다는 거다.

최가영은 시간을 확인했다. 곧 있으면 자정이다.

아, 진짜 오래 혼자 뒀네.

반성한 최가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간다, 가.”

“검사 끝나면 ×발, 더 늦을 텐데 어떻게 혼자 집에 가라고.”

“내가 데려다주면 되잖아, 이 미친 새끼야. 작작 안 해?”

“네가 뭔데 이하늘을……!”

“아니, 근데 이 새끼가 아까부터 말이 반 토막……!”

“두 분 다 그만하세요. 사무실 박살 납니다.”

차분한, 아니 체념한 욜로인생이 제지하고 나섰다. 다행히도 두 사람 중 최가영이 먼저 흥분을 가라앉혔다.

“됐고, 바우야. 너 리스트 좀 뒤져봐라.”

“빨리 이하늘한테나 가라고.”

“알았으니까 리스트 좀 뒤져보라고. 시몬은 워낙 꼬리가 기니까 찾기 쉬울 테지만.”

최가영은 게이트에서 보았던 검은 모자를 쓴 남자를 떠올렸다.

“또 다른 놈은 찾기 어려울 것 같은데. 애초에 식당에 지인 없었냐?”

“뭔 소리?”

“시몬 말고 사라진 새끼 있잖아. 검은 모자 쓴 놈. 손님이나 직원 중에 지인 없대?”

사무실에 싸한 정적이 앉는다. 최가영의 붉은 눈에 의아함이 맴돈다.

“뭐야? 이 분위기.”

“과장님. 게이트 터졌을 때 사라진 인원은 총 세 명입니다.”

……뭐?

“이하늘 씨와 과장님, 그리고 사라진 시몬 헌터 말고 휘말린 사람은 없습니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º º º

밤낮이 없는 관리국.

이하늘은 한 시간 가까이 대기했다가 부담당이라고 소개한 특진과 헌터―마찬가지로 방독면을 쓴―의 안내로 각성자 검사를 받았다.

2년에 한 번씩 병원에서 간단하게 받았던 각성자 검사와는 차원이 달랐다.

‘보호 센터에서 받았던 것보다 더 까다로운 것 같기도 하고…….’

결과 나올 때까지 또 기다려야 한다길래 의자에 앉아 기다리던 차.

“피곤합니까?”

불쑥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하늘이 눈을 떴다.

세상에, 언제부터 존 거지.

눈을 비비려는데 캔이 내밀어졌다. 이하늘은 반사적으로 캔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차가운 캔을 쥐니 졸음이 어딘가로 휙 달아나 버렸다. 그제야 이하늘은 눈을 똑바로 뜨며 캔을 준 상대를 보았다.

우뚝, 앞에 서 있는 남자.

어라, 아까 부담당이라고 소개한 헌터가 아니었다.

“최가영 헌터님.”

“결과 나왔습니다. 미각성자.”

주머니에 한 손을 찌르고는 서류를 빠르게 훑어본 최가영이 이하늘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그것 역시 반사적으로 받았다.

뭐가 적힌 게 많은 서류에 단연 돋보이는 글자 ‘미각성자’.

그걸 멍하니 보는데 최가영이 고저 없는 톤으로 물었다.

“내일부터 13일간. 시간은 언제가 좋겠어요.”

어딘가 피곤해 보이네. 하긴, 피곤할 만도 했다.

음, 시스템 센터에서 관리국까지 가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 대강…….

“저녁 8시 반 이후가 좋아요.”

“너무 늦은 시간 아닙니까.”

“아, 제가 8시에 퇴근해서.”

“꽤 늦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최가영이 눈을 깔았다. 얼굴만큼은 대한민국 S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조각상으로 보였다.

“8시 반에 와요. 너무 늦어도 안 좋으니까. 집까지 언제 가.”

또 가족들이 날뛸걸, 하고 그가 또다시 혼잣말하듯 중얼댔다.

또?

의미 모를 한마디였지만 이하늘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저 이제 가도 되나요?”

“데려다줄게요.”

“네? 아니에요. 괜찮은―”

“내가 안 괜찮아.”

무심하게 중얼거린 그가 따라오라 손짓했다. 그렇게 이하늘은 난데없이 그의 개인 차에 타게 됐다.

‘이게 무슨…….’

“저, 감사합니다.”

“오래 기다리게 했잖습니까.”

그러니까 데려다주는 거라고 이유를 설명한 최가영이 바로 출발했다.

자연히 차 안은 침묵에 휩싸였다.

얼마나 달렸을까. 창밖을 보는 이하늘에게 최가영이 아, 하고 뒤늦게 물었다.

“주소가?”

“아, 아, 맞다. 주소가요…….”

이 멍청아. 주소를 말했어야지.

최가영이 이미 제가 사는 곳이 어딘지 알고 있어서 뒤늦게 물어본 거란 걸 꿈에도 모르는 이하늘은 스스로를 꾸짖었다.

다시 차 안에 침묵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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