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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멸망을 굳이 막아야 하나요 (89)화 (89/90)

<제89화>

뭘 그렇게 꽁꽁 숨겼는지 두 헌터 다 알려진 게 거의 없었으나, 이하늘은 다른 점에 주목했다.

두 헌터가 세계에 나타난 시점이 쌍둥이들이 게이트에서 나왔을 때와 비슷하단 것.

알아내면 알아낼수록 이공과 이활이 무궁과 보우가 맞다는 점만 밝혀졌다.

그럼 역시 오랜 시간 동안 각성 사실을 숨겼다는 건데.

얘네가 그 사실을 숨긴 이유는.

‘나 때문이지, 뭐.’

기분이 많이…… 이상했다.

왤까? 동생들이 내가 싫어하는 헌터가 돼서? 그래서 동생들이 불쾌해졌나?

‘아니, 그건 아니고…….’

세계는 얘네의 존재를 아는데 저만 몰랐던 거였다.

다들 아는데 나만.

하지만 두 사람이 숨긴 이유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납득이 갔다.

나 같아도 가족이 싫어하면 말 못 했을 것 같아.

‘근데 보호 센터에서 말했잖아.’

헌터가 되면 알려달라고…….

따악.

사념에 잠긴 이하늘의 정신을 깨우는 소리가 있었다.

고개를 드니 얼굴 앞에 최가영의 손이 바로 보였다. 멍 때리는 자신을 주목시키려고 손가락을 튕긴 모양이다.

“둘이 각성자로 의심됐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다른 생각?”

“……최가영 헌터님께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요. 저 동생이 무궁이랑 보우 헌터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었다. 모노클은 또 두 사람이 헌터가 아니라고 하고 동생들 눈동자는 까맸다.

그럼 채널 접속 때 잘못 본 건가…….

하지만 의심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아 이하늘은 각성 검사를 선택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건 두 사람이 정말 헌터가 맞을 경우…… 무궁과 보우가 맞을 경우, 몇 년씩이나 받았던 국가 각성 검사가 소용없었다는 뜻.

그래서 이하늘은 아침이 되어도, 시간이 오후로 넘어가도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관리국에서 각성 검사를 받기 위해.

‘결국 못 하게 됐지만.’

관리국 각성 검사를 받으려면 예약을 어디서 해야 할지 고민하는 이하늘 앞에서 최가영은 살짝 감탄했다.

어떻게 딱 맞혔지? 이게 가족의 눈썰미인가.

그러나 더 궁금한 게 있었으니.

“특진과 헌터는 닉네임 잘 안 알려졌는데. ‘보우’를 어떻게 알지?”

“…….”

“어. 대답을 못 하네?”

“……그, 저번에 유성우 헌터님이 보우 씨라고 하는 걸 들어서.”

“유성우 본명도 알고.”

“그건, 유성우 헌터님이 알려준 거예요!”

보우란 닉네임은 시스템 운영자로 일하면서 저절로 알게 된 거지만 유성우란 이름은…….

‘아니, 물론 그것도 모노클 때문에 안 거지만.’

그래도 본인이 소개해 준 건 맞았다! 방독면까지 깐 맨얼굴일 때!

이하늘이 찐으로 억울해서 외치다시피 말하자 최가영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제야 그가 장난치는 걸 안 이하늘은 머리로 장난치는 성신의 언약자답다고 속으로 꿍얼거렸다.

º º º

“그래서 뭐야? 눈동자 색 어떻게 바꾼 거?”

쌍둥이는 이하늘이 사라지고 로비 한구석에 위치한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이활이 물었다.

“…….”

“아이템이야? 외관을 바꿀 수 있는 아이템? 효과는 얼마나 지속되는데?”

일단 꽤 오래가는 것 같았다. 이틀 넘은 지금까지도 눈이 여태 까맸으니.

아니, 근데.

“이 새끼 왜 말이 없.”

이하늘이 올까 복도를 주시하던 이활이 혀를 차며 이공을 돌아봤다가 멈칫했다.

이공의 표정이 안 좋다.

“뭔데, 너.”

“……누나가 어떻게 눈치챘을까.”

“…….”

“그렇게 가리고 다니고 목소리도 거의 노출 안 되게 했는데 어떻게…….”

이공이 무심코 손끝을 깨물다가 고개를 짧게 저었다. 지금 중요한 건 사실 ‘어떻게 알았느냐’가 아니다.

“지금이야 어떻게 잘 넘어가도 누나 왠지 계속 의심할 것 같은데.”

“야.”

“누나가 알게 되면 어떡하지.”

그래. 가장 중요한 건 ‘알게 된 후’다.

배신감을 느낄까? 화내려나?

아니, 그런 것보다.

“우리를 이가을 그 새끼랑 겹쳐 보면…….”

이 새끼, 왜 이래?

이활도 9년 전에 재회한 이하늘이 불안해서 각성 사실을 숨기긴 했다. 지금까지도 웬만하면 들키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공은 약 2년 동안 갇혔던 게이트에서 나왔을 때, 무덤덤하게 등록도 마치고 이활에게 설명을 들었을 때.

이하늘에게 왜 숨겨야 하느냐고, 이해하지 못했다.

‘요즘에도 들키면 들키는 거지 뭐, 이러던 새끼가…….’

마치 자신보다 더 예민해 보인다. 실제로는 절대 발각되고 싶지 않았던 사람처럼.

그때 직원이 들어오면서 관리국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이공의 시선이 투명한 문밖으로 향한다. 어렵지 않게 끝없이 솟은 레바브탑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공이 입술을 뗐다.

“누나. 사실 헌터 그렇게 안 싫어하는 거 알아.”

“…….”

“아마 우리가 헌터란 사실을 털어놓으면 예상과 달리 그렇게 안 싫어할 수도 있어. 하지만…….”

이가을과 겹쳐 볼지도 모른다.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지만 적어도 이공에게는, 그리고 묵묵히 듣는 이활에게는 아니었다.

“속으로 얘네도 날 버리는 거 아니냐고 불안해하겠지.”

“…….”

“기억나? 부모님 돌아가시고 누나가 이가을 눈치 봤던 거.”

이활은 침묵했지만 이공은 그의 대답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그들은 가끔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읽은 양 속마음을 알 수 있었으므로.

입양아. 피가 이어지지 않은 가족.

솔직히 말해 이공은 그 점에 대해 아무런 유감이 없었다. 그러나 그게 이하늘에겐 아니었나 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마자 내쫓길 거라 생각했는지 이하늘은 이가을의 눈치를 봤다.

재앙 직전에 좀 나아졌던 것 같으나…….

그 새끼는 결국 누나를 버렸다.

“내가 헌터인 걸 누나가 안 다음에, 이가을한테 했듯이 내 눈치를 본다고 생각하면 난 미칠 것 같거든.”

“…….”

“그건 내가 아무리 안 버린다고 안심시켜 줘도 절대, 아마 절대 안 고쳐질 거야.”

“그래서 뭔데. 하고 싶은 말이.”

이공의 시선은 여전히 레바브탑에 박혀 있었다.

“어떻게 해야 누나의 불안을 없앨 수 있을지 고민해 봤어.”

정확히는 8년 전 엉망이었던 누나를 봤을 때부터 쭉.

스산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가을이 없어져야 해.”

하, 무슨 말하려나 했더니.

“미쳤냐, 너? 찾는 것도 아니고, 뭐? 이하늘이 왜 번호 안 바꾸고 머리 맨날 탈색해 대는지 몰라?”

이하늘은 안 그런 척하지만 이가을을 기다린다.

10년 동안 번호를 바꾸지 않고 이사도 가지 않으며 망할 탈색을 고수하는 이유.

이가을이 본 마지막의 이하늘이기 때문에.

“하지만 찾아도 누나는 또 눈치 볼걸.”

부정하려던 이활이 멈췄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이공이 드물게 이활 앞에서 웃었다. 비소였다.

“사망 신고가 가장 빠른데…… 법이 바뀌었잖아. 게이트가 생긴 이래로 실종된 지 좀 오래됐다고 사망 신고하기도 어려워졌지.”

“…….”

“누나는 이가을의 시체가 나타나야 저 ×같은 기다림을 멈출 거야. 누군가에게 버려질 거란 불안감도 사라질 거고.”

그래서 8년 전 이공은 등반을 선택했다. 최상층에 도착하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 하나로 인해.

인간의 욕구란 단순하다. 레바브탑을 올라 영생이나 부, 명예 따위를 빌지도 모른다.

이공 역시 단순하다. 그는 단 한 가지를 위하여 하늘로 향했다.

죽었다면 시체를.

시체마저 없다면 소식이라도.

만일 죽지 않았다면 그 녀석을 내 눈앞에.

‘바로 죽일 수 있게.’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활은 이공을 따라 레바브탑을 보았다가 평이하게 물었다.

“너 그래서 지금 뭔데. 우리가 헌터인 걸 밝히려면 이가을이 죽어야 한다는 거야?”

“이가을이 죽어야 누나 불안감이 사라지고, 우리가 헌터인 걸 알아도 겹쳐 보지 않을 테니…… 그렇게 되네.”

하하. 이활이 건조하게 웃었다. 그러다 곧 정색하더니 살벌하게 읊조린다.

“이 악마 새끼가 진짜 악마가 됐나. 너 또라이야? 너 진짜 미친 거야, 지금?”

이활이 퍽, 이공의 머리를 쳤다. 맞은 부위에 손바닥을 댄 이공이 이활을 무감한 눈으로 바라봤다. 죽고 싶냐고 묻는 얼굴이었다.

“정신 차려, 미친놈아. 너 지금 극단적인 거 못 느끼겠냐? 결론이 왜 그렇게 돼?”

“너도 이가을 죽이려고 특진과 들어간 거잖아.”

헌터를 합법적으로 죽이기 위해서 특진과에 들어가셨다는 이활. 그의 목에 핏줄이 섰다.

“미친 새끼야. 그렇다고 이가을을 죽이고 싶어서 들어갔겠냐? 난, 썅. 이가을 찾으려고 들어간 거야!”

이하늘이 이가을을 찾으니까! 걔 앞에 이가을 두려고!

특진과의 주된 업무는 불법 헌터를 족치는 거지만, 그전에 헌터를 찾는 게 기본이었다.

9년 전 쏟아진 스카우트 중 특진과가 더할 나위 없이 이활의 마음에 들었던 이유가 그 때문이다.

나도 사람, 아니 헌터 찾아야 해.

이공이 지적했다.

“이가을 찾아도 누나 불안감은 안 없어져. 이미 버림받았으니까.”

“그놈의 버림, 버림. 닥쳐, 좀.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단 하나야.”

이하늘이 관리국 각성자 검사를 분명 예약할 텐데 어떻게 그걸 넘어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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