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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폐태자비는 살아있다-38화 (38/136)

38화. 진짜와 가짜(1)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온 상대가 오벨리아의 팔을 낚아채려는 것을 에크하르트가 재빠르게 제압했다.

“윽!”

에크하르트의 손에 팔이 꺾여 나무에 몰아 붙여진 남자에게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곧 그 남자의 뒷모습이 익숙한 것을 느낀 오벨리아가 그런 에크하르트를 말렸다.

“에크하르트, 잠깐만.”

그리고 오벨리아는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에드.”

남자는 하나뿐인 오벨리아의 소꿉친구였다.

“이럴 때가 아니야, 비아. 알렉산드로 놈이 나한테 미행을 붙여서….”

에드먼드가 고개만 겨우 돌려 오벨리아를 쳐다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오벨리아가 멈칫했다.

“이프넌트 후작, 그대를 우리가 어떻게 믿고.”

다행히도 오벨리아의 표정 위로 어떤 불신이 드러나기 전에, 에크하르트가 먼저 말문을 열어 주었다.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그를 쳐다봤다.

에크하르트는 항상- 이런 식으로, 지나치게 타이밍이 좋은 사람이었다.

“산 아래에서 일리어스 형이 기다리고 있어, 오벨리아.”

에드워드가 대답했다.

그는 고맙게도 자신을 향한 의심을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다.

마치, 그럴 수밖에 없는 제 소꿉친구의 상황을 이해하듯이.

그러나 오벨리아는 그 배려에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지금 뭐라고 했어?”

에드먼드의 입에서 일리어스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오벨리아가 놀라 물었다.

그녀의 어조에 어쩔 수 없는 기대감과 혹시나 하는 미약한 불안감이 어려 있었다.

“일리어스 형이 살아 있다고, 오벨리아.”

에드먼드가 오벨리아에게 재차 확인시켜 주듯이 말했다.

그녀의 두 눈이 커졌다가 애써 침착하듯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산에 올라오는 동안 함정이 있었다면 에크하르트나 그의 그림자 호위가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밀 장소를 점령한 병사들은 오벨리아를 발견할 경우 그곳에서 잡을 예정이었을 것이다.

산은 누군가를 몰래 잡아들이기에 매우 좋은 장소고, 그녀가 미리 낌새를 눈치채 산을 오르지 않으면 곤란할 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산을 도로 내려가는 길은 큰 위험이 없으리라고 볼 수 있었다.

“…오빠에게, 데려가 주겠어? 에드.”

오벨리아가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으며 말을 꺼냈다.

에드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에크하르트가 에드먼드를 감시하며 세 사람은 산에서 내려왔다.

에드먼드에게는 너무한 처사였으나, 이 역시도 그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비아.”

그리고 오벨리아는 마침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일리어스를 마주했다.

그는 새하얗게 새어 버린 그녀의 머리에 놀란 듯 두 눈이 커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번에 제 여동생을 알아보았다.

“오빠…!”

오벨리아의 두 눈망울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녀는 울음을 겨우 참으며 어린아이라도 된 듯 달려가 제 오빠를 끌어안았다.

일리어스가 두 팔을 벌려 제 동생을 마주 안아주었다.

“오빠…. 오빠….”

울먹임이 담긴 그 목소리는 마치 아이의 칭얼거림 같기도 했다.

일리어스의 앞에서 오벨리아는 언제나 그랬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큰 오빠는 그녀에게 아버지와 비슷한 존재였고, 나이가 비슷한 둘째 오빠는 친구 같았다.

비록 그 친구는 영원히 잃어버렸지만, 다른 하나는 이렇게 남아 있었다.

시간이 어린 시절에서 멈춘 듯, 그녀에게서 눈물도 어리광도 쉬이 끌어낼 수 있는 존재.

오벨리아의 첫째 오빠, 일리어스 카테리안느가 살아 있었다.

***

에드먼드가 마차를 준비해 준 덕에 오벨리아는 일리어스와 그 안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네가 살아 있을 줄 알았어, 비아.”

일리어스가 오벨리아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방금까지 울던 제 여동생이 진정할 수 있도록 그는 아무것도 그녀에게 묻지 않았다.

그간 그 또한 마음고생을 많이 한 모양인지 일리어스는 전보다 훨씬 살이 빠진 채였으나, 생각보다 크게 고생한 티는 나지 않았다.

오벨리아는 그게 아마도 에드먼드의 덕이리라 생각했다.

카테리안느가 실질적으로 풍비박산 난 시점에서 일리어스가 믿고, 일리어스를 돌봐줄 사람은 에드먼드뿐이었으니까.

에드먼드를 믿지 못했던 것이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고마워, 에드. 그리고….”

오벨리아가 에드먼드를 향해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려는 거면 됐어. 나 같아도, 나 말고는 누구도 못 믿었을 테니까.”

“…고마워.”

오벨리아가 한참의 침묵 끝에 겨우 대답했다.

목이 멘 탓이었다.

아, 나는 살아 있구나.

오벨리아는 그 순간 그것을 느꼈다.

살아 있기에 다시 만날 수 있던 사람들이 그녀의 눈앞에 있었다.

그녀가 무의식중에 에크하르트를 돌아봤다.

‘살아.’

에크하르트는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올 줄 알았을까?

어쩌면, 먼저 모든 것을 잃어 보고 또 살아남아 본 그였으니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다, 사실 알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에크하르트가 일리어스의 행적을 좇지 않았더라면 이런 날 자체가 없었을 테니까.

정말로, 정말이지, 에크하르트는 타이밍이 좋은 사람이었다.

일리어스에게 궁금한 것이 많을 텐데도 혈육 간의 재회를 위해 입을 다물고 있지 않은가.

저런 사람을 어떻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을까.

오벨리아가 머릿속에 드는 생각을 애써 지우며 다시 일리어스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에드먼드가 아무리 빠르게 론체스터 제국으로 돌아왔다고 해도 때는 이미 알렉산드로가 일을 벌인 뒤였을 터였다.

신성 제국과 론체스터 사이에 거리가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에드먼드가 일리어스를 도울 때까지는 일리어스 혼자 버텼다는 말이다.

남매의 아버지인 카테리안느 공작조차 라이너스의 수작으로 목숨을 잃었다.

대비할 틈도 없었는데, 일리어스가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의문이었다.

“…오벨리아, 그게.”

갑작스럽게 일리어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가 한차례 한숨을 내쉬고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부모님은 라이너스가 알렉산드로와 결탁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어.”

“…뭐라고?”

좀처럼 믿을 수 없는 말에 오벨리아의 두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그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였다.

“1년 전, 라이너스와 알렉산드로가 보육원 사업을 명목으로 귀족들의 재산을 빼돌렸어.”

일리어스의 말은 오벨리아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녀가 그걸 드러내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별도의 설명 없이 결론을 내놓았다.

“어머니는 라이너스가 내게 불만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오래전에 눈치채셨더라.”

일리어스가 쓰게 웃었다.

그러나 오벨리아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아무리 아이들에게 애정이 깊다고 해도, 매번 일로 바쁜 카테리안느 공작 또한 공작 부인이 말해 주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작 부인만큼은 알아차렸다.

그것은 모정보다, 그녀가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인 덕이었다.

공작 부인은 입양한 일리어스와 자신이 낳은 라이너스를 차별하지 않으려고 무수히 노력했다.

그건 아이들을 꼼꼼히 살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모를 수가 없었다.

라이너스가 공작 작위에 욕심이 있다는 사실을.

“실제로 어머니는 라이너스에게 원한다면 나와 경쟁해도 좋다고 하셨어.”

공작 부인은 카테리안느 공작위를 계승하는 데 있어서 첫째와 둘째 중 누구의 편도 들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보다 더 뛰어난 자식에게 공작위를 물려주고자 했다.

실제로 라이너스가 경쟁을 원했더라면, 공작 부인은 카테리안느 공작을 어떻게든 설득하여 두 아들이 정당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도왔을 것이다.

“그렇지만 라이너스는 나를 두고 어떻게 공작 작위를 탐하겠느냐며 거절했대.”

“경쟁하면 큰 오빠가 이길 거라는 사실을 라이너스 오빠도 알고 있었을 테니까.”

오벨리아가 냉정하게 말했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라이너스는 절대로 일리어스를 이길 수 없었다.

카테리안느 공작이 괜히 가타부타 굳이 따지지 않고 일리어스를 자신의 후계로 정한 게 아니었다.

공작은 제 자식들의 능력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차라리 오벨리아가 일리어스와 경쟁하겠다고 했다면 해보라고 했을 것이다.

일리어스가 영지를 운영하고 내실을 다지는 능력이 공작 부인을 닮아 뛰어났다면, 오벨리아는 공작을 닮아 정치적인 감각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작의 막내딸은 그걸 원하지 않았고, 둘째 아들은 저보다 강한 일리어스에게 한 번 덤벼 볼 생각조차 못 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니 능력도 되고 인품도 좋은 일리어스를 후계로 정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 있었겠는가.

사실 공작 부인 또한 라이너스가 일리어스를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 보지도 못하고 꺾이는 것과 원하는 것을 위해 노력해 보는 것은 미래의 자신에게 끼칠 영향 자체가 달랐다.

공작 부인이 라이너스가 경쟁에서 얻길 바란 것은 그것이었을 터였다.

“어머니는 그게 라이너스의 분노를 부추긴 모양이라고 후회하시더라. 그날로부터 며칠 뒤에 라이너스가 돌연 알렉산드로와 사업을 벌이겠다고 했으니까.”

라이너스는 공작 위를 물려받지 않을 것이니 보육원 사업을 기회 삼아 독립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핑계를 댔다.

그러나 공작 부인은 알고 있었다.

자신과 대화했던 날 밤, 제 둘째 아들이 몰래 저택을 나가 술을 진탕 마셨다는 사실을.

애석하게도 그녀의 둘째 아들은 실력에 비해 욕심이 많았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라이너스와 알렉산드로의 사업을 몰래 지켜봐 달라고 하신 거지.”

“그랬더니?”

“빼돌린 돈으로 라이너스와 알렉산드로가 사병을 키우려고 한 모양이야.”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하려 했다고?”

오벨리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황실에는 각 황족을 호위하는 기사단이 있다.

귀족 가문들은 황실에서 할당해 준 수만큼만 기사를 육성할 수 있다.

그 외에 허가받지 않고 사병을 키우는 건 당연하게도 불법이었다.

그것도 단순한 죄가 아니라, 반역죄에 이를 수 있는.

“자칫하면 카테리안느 가문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는 일이니, 당연히 아버지는 그 일을 라이너스와 알렉산드로가 모르게 방해하셨지.”

오벨리아는 일의 결말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라이너스와 알렉산드로는 사병을 기르는 데 실패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카테리안느 공작을 감당할 깜냥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오벨리아가 일리어스의 이야기에서 궁금한 것은 라이너스와 알렉산드로의 수작이 실패했느냐, 성공했느냐가 아니었다.

“부모님은… 대체 왜 라이너스 오빠를 그냥 두신 거야?”

오벨리아가 답답하다는 듯 일리어스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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