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는다(4)
알렉산드로는 여러모로 찜찜한 채로 수도를 떠나게 되었다.
그 사이, 수도의 사교계에는 또 다른 파란이 일었다.
실종되어 죽은 줄로 알았던 카테리안느 부인이 돌연 사교계로 복귀한 것이다.
그것도 라이너스 카테리안느가 아니라 오벨리아 힐켄테데와 함께.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
“그동안 다들 잘 지냈나?”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은 사교계의 대부인 중 하나였다.
그런 그녀가 등장하자마자, 오벨리아의 티룸 내에 있던 모든 귀족이 몰려들었다.
엘라이스트는 오늘도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티룸에는 사교계의 내로라하는 귀족들이 가득했기 때문에 오늘부로 공작 부인의 복귀가 수도 내에 빠르게 퍼질 것은 예고된 일이었다.
그리고 엘라이스트를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의 복귀 무대로 정한 목적은 쉽게 이루어졌다.
라이너스가 티룸 앞에 나타난 것이다.
“어머니……!”
라이너스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에게로 다가왔다.
사라졌던 어머니가 나타났으니 놀라우면서도 감격에 겨울 만도 하건만, 라이너스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얼마나 찾았는데, 왜 곧바로 카테리안느 저택에 돌아오시지 않고요……!”
당황한 라이너스의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커졌다.
“나를 찾았다고?”
그런 제 아들을 보는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의 얼굴은 더없이 냉정했다.
“글쎄…….”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이 노골적으로 라이너스가 반갑지 않은 티를 내자, 주변이 술렁거렸다.
카테리안느 공작 부부가 얼마나 제 자식들을 아꼈는지는 귀족 사회에서도 유명했다.
그런데 그런 공작 부인이 라이너스의 등장에도 오히려 탐탁지 않은 기색을 보이자, 그간 사교계에서 돈 소문에 불이 지펴진 것이다.
“그런 것 치고는, 나를 기다리지도 않고 오히려 잘되었다는 듯이 공작이 되지 않았더냐.”
“어머니, 어떻게 그런 말씀을……!”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의 말에 라이너스가 흙빛이 된 얼굴로 주변의 눈치를 마구 살폈다.
무려 카테리안느 가문의 안주인이 수도 한복판에서 납치당했다.
그런데 그녀는 심지어 납치당하기 전까지 저택에서 두문불출한 상태였다.
정황상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애초에 납치당하기 전에 공작 부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런데 라이너스는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이 사라지자마자, 제 어머니를 찾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기는커녕 곧바로 기다렸다는 듯이 공작 작위를 승계받았다.
사실, 카테리안느 공작이 갑자기 급사하고 일리어스까지 실종된 마당에 라이너스가 승계를 급박하게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이 승계를 반대하지만 않았다면, 언제고 라이너스가 받았을 공작 자리였으니까.
그런데 라이너스의 행동은 사라진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을 오히려 걸림돌 취급하는 것만 같았다.
승계 작업은 아주 복잡한 것이었다.
본래 가주가 맡고 있던 모든 일의 책임자를 그 후계가 가져와야 했기 때문이다.
라이너스가 승계 작업을 하지 않고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의 실종에 집중했더라면, 훨씬 더 수색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 어머니의 실종에 집중하기는커녕 오히려 승계 작업이 끝난 지금까지도,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이 스스로 나타날 때까지 수색이 차일피일 미루어진 셈이었다.
그런 태도와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봤을 때, 귀족들의 머릿속에는 몇 가지 의심이 싹틀 수밖에 없었다.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의 실종에 라이너스의 개입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는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이 라이너스의 승계를 반대했기 때문이리라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의심은 결국 라이너스가 카테리안느 공작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제 아비와 형제를 해쳤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으로 귀결되었다.
왜냐하면 귀족 사회에서 가주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혈육을 해치는 일은, 그들 간의 품위와 명예를 위해 쉬쉬하고는 있으나 사실 아주 드문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극적인 가십과 그 진실 여부는 언제나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였고, 귀족들이라고 하여 다를 바가 없었다.
귀족들은 자신들의 의심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 상대가 무려 카테리안느 가문이었기 때문에 참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가정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도 있게 되었으니 라이너스에게 흥미 어린 시선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어머니께서 무슨 오해를 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으나, 제가 충분히 설명해드릴 수 있습니다. 우선 카테리안느 저택으로 돌아가셔서…….”
라이너스는 식은땀을 훔치며 어쩔 줄 몰랐다.
사실,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이 사라졌을 때부터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걱정은 했다.
그의 어머니를 보호하고 있는 것은 정황상 힐켄테데가 분명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라이너스가 카테리안느 공작 자리를 차지했다고 한들, 힐켄테데에 쳐들어가 공작 부인을 데려올 수도 없었다.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을 그렇게 데려와 봤자, 공작 부인이 자신이 원해서 힐켄테데에 있었던 거라고 한다면 난감해지는 것은 전적으로 라이너스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의 존재가 언젠가 터질 폭탄임을 알면서도 마냥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쩔쩔매는 라이너스의 모습에도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녀는 냉정한 태도로 제 아들의 말을 끊어 버렸다.
“내가 거기에 왜 가니? 거기는 네 저택이지, 카테리안느 저택이 아니지 않아.”
“어머니……!”
카테리안느 공작이 있는 곳이 곧 카테리안느 저택이었다.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의 말은, 라이너스의 승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꼭 저한테 이렇게까지 하셔야겠어요?!”
라이너스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의 태도에 진심으로 서운한 기색이었다.
그리고 찰나에 주변의 온도가 싸늘하게 내려앉았다.
침묵이 감돌았다.
적어도 이 순간, 단 한 가지는 증명된 셈이었다.
라이너스와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 사이의 불화.
그 명확해진 사실에 두 사람의 대치를 바라보던 귀족들이 두 눈을 굴렸다.
그들의 머릿속은 아마 지금,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분주히 굴러가고 있을 터였다.
왜냐하면, 죽은 줄만 알았던 일리어스가 얼마 전 살아 돌아왔기 때문이다.
라이너스가 공작 작위를 승계받은 것은 그의 승계를 인정해 줄 가문의 어른도, 그와 승계를 겨룰 가문의 다른 핏줄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리어스에 이어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까지 돌아왔다.
즉, 라이너스의 공작 작위는 공작 부인과 일리어스가 힘을 합친다면 얼마든지 다시 거두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너야말로.”
그리고 이어지는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의 말은 귀족들의 저울질을 더욱 극대화시켰다.
“왜 꼭 내가 이렇게까지 하게 만들어야 했니?”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의 서늘한 말은 직접적인 뜻을 드러내지 않아도 충분히 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공작 부인은 여전히 일리어스를 카테리안느 공작으로 지지할 셈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 원인은 라이너스에게 있으리라.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일단 저와 함께 돌아가세요.”
이를 악문 라이너스가 억지로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의 팔을 잡아 이끌려 했다.
탁.
그런 라이너스의 손목을 오벨리아의 부채가 강하게 내리쳤다.
“윽……!”
귀부인들의 부채는 보석으로 촘촘히 장식된 것이 많았기 때문에, 그 무게 탓에 라이너스의 손목에 고스란히 부채 자국이 남았다.
“카테리안느 공자, 지금 내 티룸 앞에서 내 손님을 겁박하는 건가?”
카테리안느 공작가가 작위 상으로는 힐켄테데보다 아래이기는 했어도, 지금까지 두 가문의 가주는 서로를 향해 존칭을 써 왔다.
그것은 카테리안느가 언제고 불변하는 귀족들의 수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오벨리아가 라이너스에게 한 말은 두 가지를 의미했다.
첫째는 그를 공자라고 부름으로써, 카테리안느 공작으로 인정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둘째는 그렇기에 귀족의 수장이 될 수 없는 라이너스에게 힐켄테데의 대공비로서 굳이 존칭을 쓸 필요도 없다는 뜻이었다.
이것은 일부러 오벨리아가 의도한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작위에 집착하던 라이너스를 일부러 직위로 내리눌러, 그의 자존심을 밟아 버린 것이다.
“……대공비 전하.”
라이너스가 오벨리아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예법상으로는 힐켄테데의 대공비가 카테리안느 공작에게 존칭을 쓰지 않는다고 하여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게다가 오벨리아와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이 한 편인 듯 보이자, 귀족들은 라이너스의 난감한 모습을 모른 척했다.
여기서 열 받은 티를 냈다가는 라이너스만 더욱 한심한 작자가 될 터였다.
“이것은 저와 어머니 사이, 카테리안느 가문의 일입니다.”
라이너스는 억지로 화를 참으며 말을 이었다.
오벨리아에게 직위로 눌리다니.
이제는 자신이 카테리안느 공작이었는데도 어째서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그는 억울하고 분했다.
그러나 아마도 그 이유를 라이너스만이 모를 터였다.
그가 진짜 카테리안느 공작이었더라면, 아무도 이렇게 대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외부인이신 대공비 전하께서 끼어드실 일이 아니란 말이죠.”
라이너스가 오벨리아를 도발하듯 말을 덧붙였다.
외부인.
오벨리아 카테리안느는 공식적으로 죽은 사람이었고, 그녀는 이제 오벨리아 힐켄테데였으니 그것을 꼬집은 말이었다.
“그래?”
그러나 오벨리아는 라이너스의 도발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대단히 연극적인 어조로 되물으며 의아한 기색을 표했다.
“그것이 카테리안느의 일이 맞기는 한가?”
“무슨…….”
오벨리아의 뜬금없는 말에 라이너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다그닥, 다그닥.
그러나 그의 의문은 곧 강제적으로 풀리게 되었다.
“왔니, 우리 아들.”
오벨리아의 티룸 앞에 도착한 마차에서 일리어스가 내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이 두 팔을 벌려 맞이했다.
“내가 보기에는 이쪽이 아니라, 저쪽이 카테리안느 같은데.”
오벨리아가 정답게 손을 잡은 카테리안느 공작 부인과 일리어스의 쪽에 시선을 두었다.
라이너스는 혼자였고, 그들은 둘이었다.
카테리안느 집안이 어느 쪽인지를 정하라면, 혼자인 쪽보다 둘인 쪽이 맞지 않겠는가.
라이너스는 자신이 모두를 버리고서라도 카테리안느를 차지했다고 여겼을 터였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에 불과했다.
카테리안느가 버린 것은 오직, 라이너스뿐이었으니까.
그 장면에 그대로 굳어 버렸던 라이너스가 돌연, 일리어스에게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