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제국의 수도(5)
누구든 말은 안 하지만, 제국의 황녀는 정략결혼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 존재다.
그것은 엘리나 또한 마찬가지고 이제 나이를 좀 더 먹으면 이미 시집을 간 언니들과 같이 자신도 어디론가 가게 될 것이다.
엘리나는 그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며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요즘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그것은 리제를 만나고 나서.
세상에나. 여자의 몸으로 저렇게나 멋있는 사람이 있다니.
아름다우면서도 멋있다.
여자는 언제나 조신해야만 한다.
그렇게만 듣고 그에 관한 교육만을 받으며 자란 엘리나에게 있어서 리제의 존재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리제가 괴한들로부터 구해준 그날로부터 엘리나에게 리제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자신 같은 게 리제 같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자신도 최대한 강하게 살아가자.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그렇게 살아가자.
그렇게 다짐을 하기는 했지만, 어떻게 해야 강하게 사는 것일까. 그 문제부터 부딪치게 된다.
그래서 요즘에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혼자 하는 것부터 실천해보고 있다.
화장실에 가는 것은 본래 혼자 가는 것이 맞는 것이지만, 여태까지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도 그 행동에 포함된다.
“후우...”
“뀨?”
그렇지만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일까.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쉬면 품에 안고 있던 세라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봤다.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아기용 세라.
보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귀여움을 지니고 있어서 틈만 나면 꼭 붙어 다닌다.
아마 최근에는 리제보다도 자신과 있는 시간이 훨씬 기리라.
물론 꼭 그런 것이 이유인 건 아니다.
분명히 리제가 자신을 호위하는 것은 맞지만, 아마 가장 가까이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의미라고 한다면 세라에게 가장 맞는 말일 것이다.
별로 힘도 없는 아기용으로 보이지만, 세라는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엘리나는 본 적이 없기는 하지만, 그것은 리제가 그렇게 말했으니 믿고 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뀨우...”
“하우, 간지러워.”
세라가 걱정이 된다는 듯이 엘리나의 뺨을 핥는다.
세라 본인은 아마 모를 테지만,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를 것이다.
엘리나는 기운이 나는 것을 느끼면서 화장실에서 나와 다시 파티 회장으로 돌아가려 했다.
“...어?”
거의 모든 사람이 파티 회장에 모여 있는지 주변에는 인적이 없었다.
하지만 엘리나는 파티 회장과는 반대편에서 어떤 사람을 봤다.
그것도 정말로 잘 아는 사람을.
“리제 님...?”
그것은 리제였다.
이번에 아주 아름답게 치장한 모습으로 파티 회장에 있을 리제.
그 특징적인 검은 머리는 리제 밖에 없는 것이다.
“리제 님!”
“뀨, 뀨우?”
엘리나는 곧바로 그 뒤를 쫓았고, 세라는 리제라는 말에 당황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이란 말인가.
자신과 연결된 소중한 사람은 반대편에 있는데.
왜 그런 곳에서 찾는 것이란 말인가?
“뀨...! 뀨웃!”
“세라?”
이상함을 느낀 세라가 먼저 엘리나의 품속에서 날아올랐다.
그에 깜짝 놀란 엘리나는 발걸음을 멈춘다.
“왜 그래?”
“뀨웃! 뀨! 뀨웅!”
“?”
엘리나의 눈앞에서 네가 지금 찾는 사람은 이쪽이 아니고 다른 쪽에 있어. 라는 말을 열심히 전하려고 하지만, 엘리나는 알아듣지 못한다.
가장 소중한 사람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듣는데...
세라는 처음으로 의사소통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신도 이 모습이 아니고 다른 모습이었다면 말을 전달하기 편했을까?
아직 그 답은 잘 모르지만, 지금보다는 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쪽에 분명 리제 님이 오셨었어. 같이 합류해서 돌아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해서...아니, 무슨 일을 하시고 계시는지도 모르니까 방해하면 안 되는 걸까?”
“뀨...”
세라는 그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젓는다.
이쪽에 그 사람은 없어. 그러니까 가지 마. 이쪽은 아니야.
“뀻!”
“세라야...옷 물어뜯으면 안 돼...”
정확히는 돌아가자며 잡아당기는 것이지만, 엘리나가 그 행동에 이유를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하고 약간 승강이를 벌이는 것 같지 되고 있으면,
“어머나. 진짜 걸려들었네?”
“...!?”
갑자기 그런 목소리가 들려오고 주변이 어둠에 물들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그런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뀨우우!?”
엘리나도 당황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세라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세라는 언제나 자신에게 안심감을 주던 소중한 사람과의 연결이 끊어진 것을 느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가슴이 뻥 뚫린 이 감각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뀨으...”
“세라야...?”
세라는 금방 불안감에 휩싸여 눈물을 뚝뚝 흘렸다.
엘리나는 당황하는 것도 잠시, 세라의 갑작스러운 눈물에 그대로 품에 안았다.
갑작스러운 이상 현상에 세라의 눈물. 엘리나는 어쩔 줄 몰랐다.
그러다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고,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얘. 네가 엘리나 황녀니?”
“누구...어?”
갑자기 나타난 그 사람에게 경계하는 엘리나였지만, 그 모습을 보고 난 다음에는 그게 금방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리제...님?”
그 얼굴이 리제와 너무나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닮았다는 수준을 넘어선 정말로 똑같은 인물.
“뀨!?”
울던 세라도 엘리나의 리제라는 말에 정신을 차리고 그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곧바로 날아가려고 했지만, 금방 이상함을 느꼈다.
그것은 엘리나도 바로 알 수 있었다.
리제랑 똑같이 생겼다.
현재 입고 있는 드레스라든지 머리 모양이라든지 하나도 빠짐없이 똑같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너무나도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차이가.
“뭐 착각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난 리제가...”
“당신은 리제 님이 아니시군요!”
“뀨웃!”
“어...?”
여자가 쓴웃음을 지으며 부정하려고 하는 것보다 빠르게 둘에게 부정당했다.
그리고 또 여자가 뭐라고 하려는 것보다도 빠르게 엘리나가 입을 열었다.
“리제 님은 가슴이 엄청 크시다구요! 그야말로 엄청난 기세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뀨우우!”
“으윽...!?”
여자의 얼굴이 수치심에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리고 분노와 열등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엿보인다.
아마도 가장 신경 쓰는 콤플렉스였으리라.
그것을 지적당해 뭐라 할 수 없는 비참함을 맛보는 중이었다.
“어쩔 수 없잖아...크질 않는 걸 어쩌라고...그렇다고 마지막 자존심까지 구겨가며 뽕을 넣을 수도 없잖아...그렇다고 커버할 수 있는 차이도 아니지만...젠장...젠장...!”
눈물만 흘리고 있지 않을 뿐이지 울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흘렸다면 펑펑 흘려 눈물바다가 될 정도일 것이라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아...저기 죄송...”
“사과하지 마! 더 비참해지니까!”
“...”
분명히 진지해져야 할 장면인데 어째서 이런 일이 되어버린 것일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리제와 똑같은 얼굴을 한 여자는 분명히 적일 거라는 판단은 들지만, 그렇게까지 경계심이 들지 않으면서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그것은 비단 리제와 똑같은 얼굴이어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예전 괴한들에게 습격당했을 때는 정말로 죽는 것이 아닌지 싶을 정도로 살기가 부딪쳐 와서 몸을 움직이지도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이 이상 현상에 잠깐 깜짝 놀라 몸이 굳은 것일 뿐.
‘아. 그렇구나...’
엘리나는 곧 어째서 그런 것인지 이해했다.
눈앞에 여자에게서는 무서워할 만한 요소가 있는 살기나 위압감 같은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무서운 존재는 아닌 것 같다.
“당신은 저를 찾으신 건가요? 이곳까지 유인하면서...?”
“으으...그래. 맞아. 리제, 걔랑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면 걸릴 거로 생각해서 말이야.”
“어째서 그런 일을...?”
“어째서? 그야 너를 납치하기 위해서지.”
“나, 납치요? 어째서요...?”
“그거야 알려줄 수 없지. 어쨌든 널 반드시 데리고 가야 해. 오빠를 위해서.”
오빠를 위해서.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엘리나에게 다가온다.
“후우...아마 옛날이었다면 알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여자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엘리나의 앞에 선다.
그리고 엘리나에게 손을 뻗었다.
“아무튼 얌전히 따라와...”
“뀻!!!!”
“아야!!??”
하지만 그 손이 엘리나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닿기 전에 세라가 손가락 하나를 아주 강하게 물어버린 것이다.
아무리 아기용이라지만, 견과류의 단단한 껍질도 부술 수 있는 치악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세라다.
그런 세라가 있는 힘껏 깨물면 과연 어떻게 될까.
보통이라면 손가락이 그냥 잘려버릴 테고, 만약 보통이 아니라고 해도 어느 정도 심각한 대미지는 들어갈 것이다.
“이거 놔! 이거 놔아아!! 아파아아!!!”
“꾸우우우...!”
여자의 경우는 후자로 자신의 손을 물고 버티는 세라를 벗겨 내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반쯤 울고 있는 여자를 보며 엘리나는 생각한다.
‘아...이 사람이 무섭지가 않은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
눈앞의 사람은 악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어설픈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또 착한 사람인가. 그것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지만, 아무튼 재미있는 것을 더해 어설픈 사람이라는 것은 확정이었다.
“흐아아...피...피가...피가 나잖아! 뭐하는 거야 이 망할 도마뱀이!”
“뀻! 뀨우우웃!!”
“꺄악!? 또 물려고 했어!? 이...!”
세상에 저 세라와 진심으로 싸우려 드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 극소수의 사람 중 한 명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에이 씨! 이제 못 참아!”
“뀨!?”
“세라!”
여자가 눈이 돌아갔는지 허벅지에 묶어놓고 있던 단검 두 자루를 뽑아들었다.
은빛 검신에 날이 검은색으로 되어 있는 뭔가 위험해 보이는 단검이었다.
엘리나는 이번에는 진짜 위험을 느꼈고, 그건 세라도 마찬가지였다.
“뀨웃!!”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라는 눈앞 여자의 얼굴을 보며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리고는 정신을 차리고 단순히 무는 것이 아닌 자신의 진짜 공격 수단을 쓰기로 했다.
(세라야. 이번에는 너도 나랑 같이 엘리나를 호위하는 거야.)
(뀨?)
(그래. 호위. 그러니까 혹시 너나 엘리나가 위험하다 싶으면 망설이지 말고 쏴버려.)
(뀨뀻!)
그것은 세라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허락에 가깝다.
누가 봐도 위험한 그것을 제한 없이 쓰라는 것이니까.
세라는 아기용이지만, 용, 드래곤이기에 사용할 수 있는 것.
“뀨우우우우웃!!!”
“어...? 어어....!?”
세라가 입을 벌리고 있으면 엄청나게 방대한 마나가 그 앞에 모인다.
오러나 마력처럼 몸 안에서 변환되는 것이 아닌 드래곤 하트 속의 정말로 순수한 마나를 응축하여 퍼붓는 용에게만 허락된 기술.
“뀨우우우!!!!”
-쿠와앙!!
브레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