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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화 〉모녀(2) (71/107)



〈 71화 〉모녀(2)

-똑, 똑.

정신이 들면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근처에서 들리는것이 아닌 울려 퍼져서 들린다고 해야 할까.

마치 동굴에서 나는 소리라고 하면 정확할 것이다.

“으, 으음…”

눈을 뜨면 흐릿한 시야로 보이는 것은 울퉁불퉁하고 모양이 제각각인 바위가 매달려 있는 천장이었다.
종유굴 같은 느낌이다.

“리제 님. 일어나셨군요. 다행입니다.”

“아우리아…? 윽!”

바로 곁에 있었는지 아우리아가 나에게 다가왔고 굉장히 안도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명치를 중심으로  고통이 마치 전신을 태우는 것만 같은 고통을 느끼게 해서 그러지 못했다.

“계속 누워 계세요. 지금은 반드시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후우…후우…이게 도대체 뭐야. 내 몸이 왜 이래…?”

단순히 아픈 것만이 아니고 오러와 마력을 운용할 수가 없다. 마치 회로 자체가 망가진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드래곤 하트도 굉장히 불안정하다.
본래부터 완전하지 못했던 내 드래곤 하트는 지금 당장에깨질 것 같은 그런 불안한 상태다.

“저도 잘은 모르겠는데, 지금 리제 님은오러와 마력을 사용하려고 하면 죽을 수도 있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아…원인은 역시?”

“네…유미네 님께 맞은 것이 원인입니다.”

나도 무식한 것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보다 더하다.
데리고 간다는 것이 시체로 만들어서 데리고 간다는 거였나?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을 보면  끌려온 것일 테고…”

단순한 동굴이 아니고 이곳은 감옥이었다.
가둔 자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위험한 마력이 잔뜩 담겨 있는 철창이  증거였다.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종유굴 감옥에 지금 갇혀 있는 것이다.

“아우리아. 넌  여기에 있어?”

“리제 님과 세라 님을 돌  사람이있어야 하니까요.”

“엄마…”

시야를 반대로 돌리면 나에게 최대한 부담 주지 않겠다는 듯이 살짝 옆에붙어서 잠들어 있는 세라의 모습이 보였다.
퉁퉁 부은 눈가와 눈물 자국을 보면 계속 울었던 모양이다.
쓰다듬고 싶은데 아까 일어나려고 했던  때문에 무리가 갔는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세피리아 언니도 오고 싶어 하셨습니다만, 벌어진 일에 대해 수습도 해야 하고, 한 명만 따라오라고 해서 제가 오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유미네 님과는 이래저래 인연도 있고 말이죠.”

“그래…”

본래 유미네, 어머니의 노예로 있던 아우리아다.
지금 아우리아의 소유권은 어째서인지 내가 쥐고 있지만 말이다.

“…뭐 좀 들었어?”

“아니요. 리제 님이쓰러지신 뒤 아무 말도 없이 먼저 가버리셨습니다. 그 뒤는 레드 드래곤의 지휘에 따라 이곳에 끌려오게 되었습니다.”

“후우…”

그 사람은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것일까.
뭘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난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하고 싶길래 이렇게 짜증이 나는 것일까.

그냥 신경 끄면 그만인 것을.

“…유미네 님은 많이 바뀌셨습니다.”

그렇게 내가 속이 다양한 이유로 부글부글 끓고 있으면 갑자기 아우리아가 그런 말을 해왔다.

“바뀌었다고?”

“네. 제가 알던 유미네 님은 그런 차가운 얼굴을 하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전신 갑옷을 입고 다니셔서 두려움을 사기도 했지만, 그분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미소가 얼마나 많은 분인지, 주변 사람에게 활기를 주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완전 정반대인데…”

“네. 그러네요.”

 말에 아우리아는 씁쓸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찾던 사람이 다르게 변모해 있다는 사실로 인해 굉장히 복잡한 마음인 것 같다.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못하면 죽는 것이 아닌지 난리를 떨기도 했고, 자주 상식에서 벗어난 짓을 해서 주변을 깜짝 놀라게하고, 남의 약점을 잡아 그것으로 철저하게 놀리거나 괴롭힌다든지…아, 여기서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사람은 황제였습니다. 당시는 황태자였었지요."

"아, 응…"

욕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내용이 내용인지라 욕으로 들린다.
그나저나 황제. 고생이 많았구나…

그렇게 아우리아는 계속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좋은 점과 나쁜 점. 자신과의 훈훈한 에피소드.
그리고 당시에 자신이 그녀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그 이야기를 하는 아우리아는 담담해 보였지만, 내 눈에는 나를 필사적으로 설득하려고 하는 듯이 보였다.

당신의 어머니는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분명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야기만이라도 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아우리아는 당사자가 아니니 그런 말을 직접 하기에는 꺼려졌겠지. 그리고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자기 생각만을 나에게 강요하게 되는 것이니까.

그렇기에 돌려서, 어떤 사람이었는지 필사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아우리아가 보고 싶은 것은, 원하는 것은 사이좋은 모녀의 모습이니까.

"그리고 또 말이죠…"

"아우리아."

"네?"

"이제 됐어."

"아니, 하지만…"

"네 마음은 잘 알았으니까."

"아…"

 말이 어떤 뜻인지 알아차린 아우리아의 곧게  있던 귀가 추욱 접히고 쉴 새 없이 흔들리던 꼬리가 움직임을 멈추고 늘어진다.
아우리아는 표정으로는 자신의 감정을 잘 숨기고 있지만, 수인의 특성상 귀랑 꼬리가 감정을 잘 나타내고 있어서 알기가 쉽다.
저건 본능 같은 거라 제어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뭐, 그게 수인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말이야.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게…"

"아니야. 너도 다 생각해서  일인데.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리제 님…"

치맛자락을 쥔 손에 힘이 꾸욱 들어가는 것이보인다.
 상황을 가장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아우리아다.
 누구도 소중한 사람들이 으르렁거리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나도 내 동료가, 소중한 사람이 서로 싸운다고 하면 괴로울 테니까.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아무것도 모르고 화를 내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들어보고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듣고 나서 화를 내도 늦지 않다.

"이제야 일어났나. 이렇게 나약한 것을 보면 굳이 끌고 올 필요도 없었던 것 같군."

다만, 문제는 그 사람이 나와 대화를 할 의지가 있느냐와,

"그래요. 차라리 끌고 오지 말지 그랬어요? 가뜩이나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죄인 취급 받아서 짜증  죽겠는데."

이 사람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분노조절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아우리아와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린 것 같은 아주 딱 맞는 타이밍에 나타났다.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은 여전히 굉장히 차가워서 오랜만에 재회한 자식을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았다.

"너는 존재 자체가 죄다."

"…그걸 당신이 말합니까?"

 몸을 낳고 버린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아, 그래요. 어지간히 숨기고 싶으신 모양입니다. 저 같은 건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죠."

"….."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내 비아냥에도 그저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을 뿐.

"유미네 님. 리제 님…"

아우리아가 불안에 찬 표정으로 우리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다.
아우리아의 설득도 있어서 어떻게든 대화라도 해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다.

나도 자꾸 어른스럽게 행동하지 못하는 것도 못하는 거지만, 저쪽은 아예 나랑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생각 같은 것이 없는 모양이다.

"으, 으응…어?"

그렇게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세라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그리고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나와 유미네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 내  위를 덮듯이 올라탄다.

"엄마 때리면 안대! 아야 반대! 하모니 나빠!"

양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째릿, 하고 유미네를 노려보는 세라. 굉장히 화가  것이 전해져 오기는 하는데  이렇게 훈훈하게 보이지?

그리고 세라야. 걱정해주는 건 좋은데 엄마가 지금 절찬리 아야야 중이거든…?
분명 매일 하는 자세인데 죽을 것 같아…

"누, 누가 할머니냐! 난 너 같은 손녀를 둔 적이 없다!"

세라의 말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그렇게 말한다.
나를 상대할 때는 표정 변화 하나 없던 사람이 세라를 상대할때는 데굴데굴 바뀐다.
신기한 일이로군.

"세라 엄마. 엄마 엄마. 그러니까 하모니!"

자신과 나. 나와 유미네를 차례대로 가리키더니 맞잖아요! 라는 듯 흐흥! 하고 의기양양하게 바라본다.
아악, 귀여워! 방금 그건 사진 감이었는데!
이 세계에 사진이 없다는 것이 굉장히 아쉽다.

"그러니까 난 딸 같은 건 없고 그러니 너 같은 손녀도 없다."

"하모니 맛눈데…"

"아니래도."

"하모니…맞아…맛눈데…"

"!?"

계속 부정하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맞는 것을 아니라고 하니 화가 나는데 이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서러워서 나오는 울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유미네는 이번에는 표정만이 아니고 손짓도 어쩔 줄 몰라 허둥거린다.

"아, 울렸다.  큰 어른이 애기를 울렸어."

"드래곤 로드나 되시는 분이 애기를 울리다니…"

"윽…"

"흑…흐윽…"

내 진단으로는 앞으로 눈물이 쏟아지기 10초 전.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을 보고 유미네는 식은땀마저 흘리고 있었다.

'음, 아무리우리 세라가 세계 최강이라고해도 저 반응은 좀 심상치 않은  같아.'

아니면 그냥 내가  깊게 생각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유미네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알았다. 할머니든 뭐든 부르고 싶은 데로 불러라. 난 상관하지 않을 테니."

"하모니!"

결국 유미네가 백기를 들었다.
그 말에 세라의 얼굴에는 금방 활짝 꽃이 피어난다.

세라가 코를훌쩍이고는 눈물을 소매로 슥슥 닦아내는 모습을 보면안도하는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모니!"

"그만 불러라. 그리고 이왕 부를 거면 제대로 발음해라. 할. 머. 니. 라고."

"하…무….니….?"

"할. 머. 니."

"할…..무니!"

"…조금은 나아졌군."

에헤헤, 하고 유미네를 올려다보는 세라와 그런 세라를 진지하게 내려다보는 있는 유미네를 보니 웃음이 튀어나왔고 아우리아도 키득키득 웃었다.

기분 탓인지 그런 우리를 노려보는 것 같은 유미네는 작게 혀를 차고는 아우리아에게 창살 틈으로 작은 병 하나를 던졌다.

"중급 포션이다. 움직일  있을 정도는 회복되겠지."

이게 진정한  주고  준다는 걸까.

근데 중급포션으로도 움직일 수 있을 정도야? 도대체 얼마나 심한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우리아가 내미는 포션을 받아 마신다.

그 즉시 몸의 고통이 아주 조금씩이지만, 완화되어 갔다.

"엄마, 갠차나?"

"그래. 괜찮아."

"다행이다..."

안도한 표정의 세라는 내 품에 볼을 비볐다.

이제야 움직이는 손으로 나는 그런 세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드디어 쓰다듬어  수 있게 되었다.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면 나와라. 갈 곳이 있으니."

"어디로요?"

"가보면 안다."

그렇게 유미네가 손짓하면 철창에 둘려 있던 흉악한 마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문을 밀면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고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우리를 보았다.

얼른 나오라는 거겠지.

"윽..."

"제가 돕겠습니다."

"고마워."

움직일  있게되었어도 아직 제대로 움직이기에는 멀다. 나는 아우리아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다.

세라는 그런 나와 유미네를 번갈아 가며 보더니.

"할~무니!"

"!?"

다다닷, 철창문을 통해 나가더니 유미네의 손을 꼬옥 쥐었다.

도대체 몇 번을 놀라는 걸까.

몸을 움찔거리며 놀라는 모습은 또다시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솔직히 세라가 내가 아닌 유미네에게 갔다는 것이 조금 서운하기는 했지만, 저것도 세라 나름의 생각이 있어서 한 행동이니 어쩔 수 없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조금, 아주 조금 서운한 것뿐이다.

"에헤헤. 할~무니! 가자!"

"후우...따라와라."

그렇게 유미네가 세라의 손을 붙잡고 선두에 섰고, 아우리아의 부축을 받으며 그 뒤를 따랐다.
가는 길은 아마도 이 동굴의  더 안 쪽.

"또끼~ 한 마리~ 또끼~  마리~"

우리들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없었지만, 대신 기분이 좋은 듯이 내가 가르쳐준 동요를 부르는 세라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할머니를 만난 것이 좋은 모양이다.

이전에 나를 때린 것에 대해 화도 나고 놀라기도 했을 텐데 그런 건 사라진 것 같다.

본래 세라는 얼마나 화가 나도 하룻밤 자거나 1시간도  돼서 풀린다.

아니, 나쁜 일은 얼른 잊어버리고 좋은 일만 생각한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지.

...그 아이도, 여동생도 저런 성격이었다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가족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까.

“...토끼가 좋은 건가?”

“응! 귀여어! 그래서 쪼아!”

“그런가...”

유미네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나에게는 아마 보이지 않을 표정.
그리고 마치 세라를 통해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얼굴.
그것에 슬픈 감정을 느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아야...아퍼잉...”

“미, 미안하다...”

이은 손에 힘을 주었는지 세라가 아파하자 화들짝 놀라며 그 손을 놓았다.
하지만 곧바로 세라는 다시 유미네와 손을 이었다.

“쪼끔 아팟으니까 갠차나. 그리고 진짜 사가하며는 용서 해주는 거래써.”

“그런가...”

“응! 그니까 할~무니도 엄마 아야 한 거 사가해야해?”

“사과는 24시간 신청 받아요.”

“음...”

내 말에 미간이 살짝 꿈틀거리지만, 세라가 있어서 그냥 넘어가는 눈치였다.

그 뒤로는 나름 훈훈(?)하게 진행되었다.
물론 대화는 없었지만, 분위기만큼은 세라 덕분에 무겁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진행하기를 얼마 안 가 목적지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내가 갇혀 있던 철창과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마나가 담겨있는 돌문.
거기에는 처음 보는문자나 문양 같은 것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 이건...”

“무서어...”

“......!”

그리고  문의 틈에서는 닿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으며 몸을 침식할 것만 같은 끈적하고 기분 나쁜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곳에서 담담한 것은 유미네 뿐이었다.

“너는 정확히 알아야만 한다. 우리 드래곤의 죄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네가 왜 죄악이라 불려야만 했는지를.”

딱, 하고 그녀가 손가락을 울리면 문에 있던 문자와 문양이 밝게 빛나며 쿠구궁, 하고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다.

열리는 것에 따라 느껴지는 기운이 많아진다.
 안에는 분명...

“따라와라.”

그렇게 유미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끝도 없이 거대한 공동이 있었고, 그 중앙에는 거대한 크리스탈이 있었다.
그리고 그 크리스탈 안에는...

“이게 우리 드래곤의 죄악, 우리들의 신을 먹은 죄인, 용인 아디스만 카르아.”

말도 안 되는 크기의 용이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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