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마계(1)
* * *
처음에 리리스가 드레스를 꺼내달라고 할 때는 그냥 또 보고 싶어서 그런 건가 싶었다.
하지만 곧 리리스가 그 드레스를 손에 들고, 그 주변에 마족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잔뜩 등장한 것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정답으로 나는 그 리리스의 드레스를 입고 화장까지 하게 되어서는, 현재의 모습에 다다른다.
이 몸이 되어서 철저하게 꾸며본 적은 꽤 있지만, 지금과 같이 표현하기도 힘든 수치심을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다.
애초에 이거 옷 아니야! 이렇게 기능성이 적은 옷 따위가 있을까 보냐!
“왜 내가 이 옷을 입어야 하는 거야…?”
“그야 이왕 할 거 철저하게 하는 게 좋죠.”
“아니, 그래도….”
그 리리스 본인이 아니더라도 이 드레스는 서큐버스에게는 보물과도 같은 물건.
아무리 현 소유주가 나라고 해도 이렇게 쉽게 입혀도 되는 거야?
“제가 입으면 그냥 서큐버스 퀸이 입었구나. 하는 느낌밖에 없으니까요.”
“뭐야 그게….”
“말하자면 신선함이 없다는 뜻이에요.”
“아니, 영문을 모르겠어…윽!?”
휘잉, 하고 바람이 불어 황급히 치마를 누른다.
너무 짧아서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펄럭여서 다 보인다.
리리스가 너무 능숙해서 입혀질 때는 몰랐는데 속옷도 만만치 않게 파렴치하다고 해야 하나….
노출도에 맞춰서 면적이 너무 작았다. 위나 아래나.
게다가 아래는 고정하는 부분이 끈으로 되어있다. 움직이다 풀리지 않을지 굉장히 조마조마하다.
이딴 걸로 스릴을 느끼고 싶지 않은데….
“역시 귀엽게 꾸미니 반응도 귀엽네요~ 하아…하아…. 츄릅…. 군침이 싹 돕니다.”
처음에 그녀가 서큐버스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이제 진심으로 서큐버스라는 종족이 어떤지 잘 알 것 같다.
진심으로 정조의 위기를 느낀다.
“이모, 리리스 언니 왜 저래?”
“…애는 몰라도 돼.”
그런 리리스를 보며 세라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세아가 짓궂게 웃으며 뭔가 말하려 하지만 내가 노려보니 쑥 들어갔다.
이 둘만 남겨놓고 가는 거 목숨의 위험은 걱정하지 않는데 세라가 이상하게 물들지 않을까 걱정이 된단 말이지.
세아는 어제 잘 타일렀지만, 그게 끝까지 지켜질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내가 앞날을 걱정하며 세아를 바라보고 있으면, 세아 또한 나를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진짜…미드 차이가 왜 이렇게 나는 거야…짜증 나게….”
다만,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세아가 서서히 나를 오빠이지 않을까 하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빠가 이런 꼴을 하고 있다는 것에 생각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장난은 거기까지 하고 슬슬 출발하자.”
“네. 그러죠….”
여러 가지로 태클을 걸고 싶은 부분은 많았지만, 이대로 시간을 지체할 수도 없어서 일단은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그렇지만 이 허전한 느낌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여자 중에서 이런 거 입고 다니는 사람은 불안하지도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 나는 작게 한숨을 쉰다.
그리고 세라에게 다가가 살짝 안아 주고 볼에 살짝 입을 맞췄다.
“엄마 다녀올 테니까 이모랑 같이 잘 있어?”
“응!”
세라는 활기차게 대답했지만, 불안한 마음이 전해져왔다.
이렇게 확실하게 떨어지는 적은 처음이다.
당연히 불안할 것이다.
그리고 나도 불안하고 말이다.
“세아. 세라를 잘 부탁한다.”
“얘가 나보다 강한데 뭘.”
말은 그랬지만 말투는 매우 부드러웠다.
그게 알았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거라고 알아차린 나는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주고 발걸음을 옮긴다.
*
“이모. 엄마랑 더 이야기하지 않아도 돼?”
“……지금은 됐어.”
세라가 하고 싶은 말은 이해했지만, 세아는 그저 떠나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믿음은 현재 금이 가 있는 상태다.
본래 오빠라 생각했던 존재에 대한 믿음에 금이 간 상태.
그리고 그것은 점점 커지고 있다.
분명 언젠가는 깨지리라.
어이없게도 그 금을 낸 것은 정말로 사소한 계기였다.
하지만 본래 사소한 계기로도 크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게다가 워낙 기억에 강렬하게 남은 것이어서 더 그렇고 말이지.
물론 아직 완전히 깨진 것이 아니기에 완벽하지는 않다.
지금은 그저 이쪽으로 마음이 크게 기운 상태.
점점 리제라는 이 세계의 쌍둥이 언니에게서 오빠의 그림자도 보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뭔가 인정하기 힘든 것이 있었다.
만약, 정말로 리제가 자신의 전생의 오빠라고 한다면….
여러 가지 면에서 여자로서 지고 있다는 것이다.
쌍둥이이기에 더 비교하기가 쉽다는 점도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
리제라는 여성은 자신이 봐도 정말 매력적이니까. 정말 짜증이 날 정도로 말이다.
“이모! 난 다 알고 있어! 하지만 괜찮아! 엄마에게 못 이기는 건 자연스러운 거니까!”
“지금은 네가 더 짜증 난다.”
진심이었다.
이 건방진 꼬맹이는 어쩐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이 정확하게 말할 때가 많아서 소름이 돋으면서도 열 받을 때가 많다.
그냥 확 쥐어박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다.
전투 능력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나 서러울 줄이야.
거기에 묘하게 이 꼬맹이에게는 잘 거역을 할 수가 없다고 해야 하나.
지금은 기묘한 연결 같은 것이 있는 느낌도 든다.
아무튼, 리제의 충고대로 이 이상 더 버릇이 없어지기 전에 말을 좀 골라가며 해야겠다.
세아는 하나의 의무감 같은 것을 느끼며 조금 반성하는 것이었다.
*
마음 같아서는 바로 숨겨진 곳에 가고 싶었지만, 지금 거기에 가봤자 그다지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다.
현혹의 숲에 있는 것과 아마 상성이 맞아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일 테니까.
지체할 시간이 없어 나중을 기약하고 일단 마계로 발걸음을 옮긴다.
리리스의 부하들과 시크리프와 그 부하들은 각자의 임무를 맡아 흩어졌고, 유미네는 주변에 은신하며 우리를 호위하는 역할을 맡았다.
듣기로 마족을 상대하는 건 좀 서투르다고 하지만, 그냥 세라가 없으니 조용히 지내고 싶다는 것 같은데 말이지.
사람을 대하는 거 그리 잘하지 못하니까.
“오. 마계다~”
게임에서는 최종 지역으로 나오는 마계.
게임 진행 동안에 아주 잠깐밖에 볼 수 없는 곳으로, 자유 맵으로도 풀리지 않아서 굉장히 아쉬웠던 곳이다.
그런 곳을 지금 현실로 보고 있다.
하늘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이지만, 인간계와 그리 다를 건 없다.
지상도 비슷하긴 하지만, 역시 뭔가 좀 변형되어 있다.
게임에서 본 그대로다.
생각해보면 다크엘프가 사는 저주받은 땅도 비슷한 느낌이긴 하구나.
“리제여. 마계에 와본 적이 있었나?”
“응? 아니. 그냥 좀 신기해서 말이야.”
“음. 뭔가 오랜만에 와 봤다는 듯한 느낌이었다만.”
헬레나의 말에 조금 뜨끔 한다. 이 녀석 감이 좋다고 해야 할까.
그러고 보면 시스티아도 그러던데, 성녀라는 건 다 그런 건가?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겠지….”
“그것보다 헬레나 님. 이제 곧 헤르마에 도착하는데 리제가 아니고 엄마라 불러야죠.”
응? 뭐라고?
“아니, 잠깐만요. 엄마라니요?”
“완벽한 변장을 위해서는 그에 맞는 설정이 있어야죠. 아, 참고로 리제 님과 저는 자매이고 헬레나 님은 리제 님의 딸이라는 설정입니다. 어린 딸이 있는 엄마. 딱히 문제는 없으시죠?”
“그건….”
하나 같이 그럴듯한 말이라서 반박을 못 하겠다.
“…그, 그건 좀 부끄럽다.”
헬레나가 나와 비슷하지만, 노출은 줄인 옷의 치맛자락을 잡고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이 아이를 이렇게 입힌 것은 위장 신분으로 이 마계에 있는 동안에 모녀로 지내게 하기 위해서였단 말이야?
“아니, 꼭 모녀가 아닌 자매라도 괜찮지 않나요?”
“아무래도 모녀가 더 자연스럽다는 결과가 나와서요. 뭐든 확실한 게 좋잖아요? 그렇죠? 헬레나 님.”
“으음….”
아무래도 리리스는 끝까지 그 설정으로 밀고 싶은 모양이다.
“하아…알았어요. 헬레나도 연기니까 상관하지 말고 불러.”
“연기라고 해도 엄마라는 말을 써본 적이 없어서 좀 그렇다….”
“엄마라는 말을 써본 적이 없다고?”
그것에 내가 의문을 가지면 리리스가 끼어들었다.
“헬레나 님의 어머님께서는 헬레나 님을 낳고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아기 때부터 헬레나 님을 돌보게 되었던 게 저였고요.”
“아….”
그래서 헬레나가 리리스에게 꼼짝도 못 하는 거구나.
단순히 상성이 좋지 않은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나저나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써보지 못한 말이라….
그렇게 생각하면 세아가 생각난다. 아버지는 정말 일찍 돌아가셔서 나도 기억이 전혀 없고, 어머니는 기억이 있지만, 세아는 없다.
아빠, 엄마라는 단어를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다.
“연기니까 너무 크게 신경 쓰지 마.”
“맞아요. 제가 몇 번이고 말씀드리지만, 부자연스럽게 보이면 금방 들킬 거라고요.”
“으, 음….”
리리스까지 거들어서 그렇게 말하지만, 결심이 서지는 않는지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얼른~ 얼른~ 얼른~”
리듬 있게 망설이는 헬레나를 재촉하는 리리스.
그러면 그 재촉에 못 이겨 나를 올려다보며 머뭇거리며 창피한 듯이 입을 연다.
“어, 어, 엄…마….”
“크흡!”
정말 귀여운 헬레나의 모습. 그것에 내가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으면 갑자기 리리스가 코피를 주르륵 흘렸다.
“허억…허억…. 헬레나 님. 너무 귀여운 거 아니에요?”
“뭐, 뭐냐! 징그럽게!”
“흐읏! 하라고 했다고 진짜 할 줄은 몰랐어요!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닷! 일주일은 흡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너, 장난으로 한 것이냐!”
헬레나가 리리스의 계략이라는 것을 알고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그녀의 다리를 열심히 찼다. 하지만 역시 위력은 없어서 리리스는 그저 계속 코피를 흘리며 기뻐할 뿐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가 났지만, 결국 세 자매라는 것으로 결론이 나며, 마계의 중심인 헤르마에 도착했다.
거대한 도시. 그 중앙에는 마왕의 성이 웅장한 모습을 보인다.
도시 밖에서부터 저 성까지 쭉 싸워야 했던 게 기억이 나네.
“자, 그러면 각오는 됐니? 리아제.”
리리스가 맏언니라는 것으로 예전에 경매장에서 사용했던 가명을 부른다.
각오? 무슨 각오를 말하는 거지?
“흠흠. 리아제 언니는 긴장을 좀 해야 할 거다.”
헬레나도 갑작스럽게 그런 말을 하는데….
아니, 무슨 각오를 말하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