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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화 〉 마계(2) (95/107)

〈 95화 〉 마계(2)

* * *

도시에 들어서고 나는 각오라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저건 어디의 마족이지? 처음 보는 거 같은데.”

“그런 것보다도 엄청 죽이네…. 서큐버스 자매인가…?”

“특히 저 가운데에 있는 서큐버스 장난 아니다. 잠깐 말 좀 걸어볼까…?”

“아서라. 아무리 서큐버스가 정기에 목말라 있는 종족이라고 해도 너 같은 거 상대라도 해주겠냐.”

우리 쪽으로 쏟아지는 남자 마족들의 시선.

“……나, 지금 같은 여자에게 눈뜰 것 같아.”

“정신 바짝 차려! 매혹에 걸리면 안 된다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 너도 눈을 못 떼고 있으면서!”

“…그냥 보면서 상상하는 건 공짜야!”

“결국, 나랑 똑같은 거잖아!”

그리고 남자 마족보다도 더 위험한 눈길을 보내는 여자 마족까지.

…나는 여태까지 잊고 있던 이 옷의 능력을 떠올렸다.

착용자의 매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옷. 상시 매혹 발동…. 골치 아픈 옵션이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제는 그 설명을 보는 기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갈아입는 게 좋지 않아? 이렇게 눈에 띄어서는 좋을 게 없잖아.”

잠입해온 건데 이렇게 시선을 집중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이러다가 들키면 어쩌려고.

“아니, 괜찮아. 이게 맞아.”

“혹시 이게…작전?”

이곳에 오기 전에 작전에 대해 대략적인 내용은 나눴다.

다만, 자세한 것은 이곳에 오고 나서 하기로 정해져서 구체적인 것은 듣지 못했다.

나는 굉장히 불안한 마음으로 리리스에게 말하면 그녀는 씨익, 굉장히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당장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어졌다.

“낚고 싶은 녀석이 있어. 하지만 나로서는 안 되니까 말이야.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어.”

“…그거 진짜야?”

의심밖에 들지 않아서 그렇게 말한다. 그녀의 현재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리리스가 내 귀에 가까이 입을 가져와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뱀파이어 로드가 차기 마왕으로서 내세우고 있는 꼭두각시가 있어. 그 녀석을 낚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야. 녀석은 미녀를 굉장히 좋아하는 색골이거든.”

“…….”

그래도 이번에는 장난기가 상당히 사라지고 진지한 말투였다.

아마도 이번에는 사실이겠지.

“후….”

필요한 일. 필요한 일이라고 하지만 내가…내가…미인계라니.

이제는 슬슬 지금의 외모에 대해 자각하는 중이었다. 바로 곁에 쌍둥이인 세아도 같이 있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나는 상당히 미인이라 한다. 그게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아직 감이 잡히지 않지만…말이다.

…아무튼, 그러니 미인계라는 건 상당히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일 것이다.

드레스의 효과도 있으니, 말 그대로 최고급 미끼를 이용한 낚시.

…아. 정말. 내가 말해놓고 쪽팔리네.

죽고 싶다….

“다른 방법은…?”

“있기야 있지만, 상당히 어려워.”

“…….”

진위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아쉽게도 그것을 검증할 시간이 없다.

미리 자세하게 물어보지 않은 내 잘못도 있고, 확실히 작전만 보자면 나쁘지 않다. 실행자가 나라는 것이 문제인 거지.

일단은 리리스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없어. 그냥 적당히 관광하고 있으면 돼. 그럼 알아서 퍼질 테니까. 자세한 건 부하들이 알려줄 거야.”

시크리프나 리리스 부하들을 먼저 보낸 건 그걸 위해서였나….

그렇다는 건 시크리프 녀석 다 알고 있었다는 거 아니야?

…나중에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좀 해볼까.

“목표가 온 뒤에는?”

“그때는 일단 적당히 상대하다가 기회를 봐서 잡아야지.”

“…….”

괜찮은 건가. 이거? 어쩐지 굉장히 대충인 거 같은데.

“괜찮다. 리…아니, 첫째 언니는 그런 건 정말 잘하니 말이다. 맡겨 두면 된다.”

헬레나의 말에도 전혀 안심은 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들이 지금 절박한 상황인 것은 맞으니까 분위기에 맞지 않는 행동은 하지 않으리라.

“하아….”

나는 포기했다.

생각해보면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란 말이지.

이게 가장 쉬운 방법이라면 해야 할 것이다.

“마음은 굳혔나 보네. 자, 그럼 출발~”

“출발이다!”

이 녀석들 왜 이렇게 긴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그들의 뒤를 따르는 것이었다.

수도 없는 시선을 받으며….

*

마계의 수도라 할 수 있는 헤르마.

용사파티와 연합군의 마지막 공격을 받아 초토화되는 이 도시를 말끔한 상태로 보게 되니 굉장히 신기한 기분이었다.

수인과는 다른 동물이 인간과 같은 형태를 취한 종족도 있으면, 미묘하게 반반 섞인 종족도 있고, 서큐버스 같은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종족도 있다.

마족의 일반 생활은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시에는 아이들이 웃으며 뛰어놀고 있고, 갖가지 가게가 있으며 부부, 커플, 친구로 보이는 이들이 웃으며 대화하며 길을 걷는다.

마계에서 먹는 음식은 생긴 건 식욕을 떨어트리는 것뿐이었지만, 맛은 있었고, 괴상한 재료를 팔고 있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게임에서는 마왕과 마족이 먼저 쳐들어왔기에 전쟁이 일어났고, 결국에는 마계까지 전쟁이 벌어지게 된 것이기에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었지만, 실제 이곳을 눈앞에 보고 나서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마족이 이 세계에서 최종적으로 토벌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안 지금, 어떻게든 전쟁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마족의 성녀이며 차기 마왕이 확실시되었던 헬레나가 나에게 진심을 담아 했던 말 중 이런 말이 있었다.

[인간과 마족의 오랜 기간에 걸친 전쟁은 쓸데없는 것이다. 한 번도 제대로였던 적이 없다. 둘 다 쓸데없이 피를 흘리고 있는 거지. 나는 그것을 막고 싶다.]

그녀는 처음에 쓸데없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 성녀의 자격으로 마신과 대화를 나눌 때 그것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쓸데없는 전쟁을 마신이 하는 이유는 분명 무언가 있으리라.

설령 책에서 나온 그 삼각관계가 진짜라는 말이 있다고 해도 직접 듣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이곳 일을 마무리 짓고 헬레나가 무사히 마왕이 되어야만 한다.

반드시.

그러니 지금 하는 일도 어디까지나 필요한 일이다.

평범하게 관광을 즐기는 건 그들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서.

음. 뭐랄까. 아무리 생활이 똑같다고 해서 모든 것이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다른 종족이 있었던 곳에 갔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

그야말로 이종족이 사는 도시라는 느낌.

다른 곳은 도시라기보다는 마을이라는 느낌이었으니 말이야.

“그래도 좀 이외였던 건 좀 더 자신의 욕망에 따르는 존재일 줄 알았어.”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과자 위에 올려진 아이스크림을 이빨로 살짝 갉아 먹으며 말한다.

먹거리도 인간계에는 없는 게 있어 재밌다. 현대에서는 흔히 팔았던 것들도 찾아보면 꽤 보인다.

세라랑 세라도 왔으면 굉장히 좋아했을 텐데.

그게 좀 아쉬웠다.

나중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겠지.

“먼 옛날에는 그랬다는 것 같지만, 점점 마신님이 바꿔나가셨지. 물론, 지금도 인간에 비하면 꽤 욕망이 깊다고 생각해.”

“음. 그런 거치고는 쭉 시선만 보낼 뿐이고 다가오지는 않는데?”

신기했던 것은 시선은 무수히 몰린다. 나뿐만이 아니고 리리스도 아무리 변장했다지만 굉장히 미인이고 헬레나는 귀여우니까.

그런데 정작 다가오는 이들은 없었다는 것이다.

욕망에 따른다고 한다면 분명 무슨 액션을 일으켰어야 했는데 말이지.

“후후, 너도 아직 멀었네.”

“뭐가?”

“절벽의 꽃. 너무 높은 곳에 있는 꽃은 그저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덧붙여 설명하는 헬레나의 말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그러니까 너무 수준이 높으면 오히려 말을 걸기가 힘들다는 그런 이야기인 거지…?

미묘한 기분….

“…그나저나 꽤 돌아다닌 거 같은데 녀석은 오지 않는 거야?”

“부하들에게 아직 신호가 없는 거 보면 아직인 거 같은데. 뭐, 금방 덥썩 물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별로 걱정은 안 하는데….”

그냥 좀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든다.

이번 일이 끝나면 이 옷은 바로 벗어 던져 버릴 거야.

“이런 광경을 보니 전설의 서큐버스 리리스 님의 이야기가 떠오르네.”

“…초대 서큐버스 퀸?”

“그래. 남녀 가리지 않고 홀리고 다니며 갖은 구애를 받았고, 매일 리리스에게 보내진 선물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다고 전해지지.”

드레스의 효과는 어디까지나 본바탕이 좋아야 큰 효과가 있는 것이다.

거기에 어디까지나 지금의 아이템은 아이템이고 그때는 이와 같은 효과는 없었을 것이다.

오로지 그녀의 능력만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 그만큼 서큐버스로서의 힘도 강했고 동시에 엄청난 미인이었다는 거겠지.

“어쩌면 초대 리리스 님의 강림인지도 몰라.”

“음. 확실히!”

…현 서큐버스 퀸은 너이면서 왜 자꾸 나에게 밀고 가려고 하냐.

그렇게 주로 리리스와 헬레나만 키득키득 웃으며 즐겁게 지낸다.

그것을 보며 내가 어느 정도 이 상황에 적응했을 무렵.

“응? 이제야 움직인 모양이네.”

“대상이?”

“어.”

부하들의 보고라도 받고 있는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리리스는 곧 씨익 미소를 지었다.

목적대로 대어를 낚을 수 있게 되어 기분이 좋을 걸까.

미끼인 나로서는 역시나 미묘하지만…일이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지.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거 같으니 우리도 맞이하러 가볼까? 어디까지나 자연스럽게.”

“……”

그렇게 약간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같은 기분으로 리리스를 따라간다.

그러는 도중 생각이 들었는데 아직 입질 상태이지 낚시가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호오…. 소문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그렇게 곧 목표물을 만날 수 있었다.

녀석은 한눈에 나를 보고 눈을 번쩍 빛내며 온몸 구석구석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나는 한기를 느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이 녀석이었냐고!’

그 모습은 내 기억에서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알고 있는 녀석이었다.

게임에서 최종 보스로 나오는 마왕…. 그 본인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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