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9화 최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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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쥐었다.
푸른빛의 검. 전혀 익숙하지 않은 검이다. 손에 쥔다. 그리고 배어낸다.
세계가 갈라지듯 배어진다. 처음부터 갈라져 있던 것처럼.
'그래, 이거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검을 쥐고 세상 밖으로 나섰다. 이윽고 검에 익숙해질 때쯤.
세상에 밸 수 없는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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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어드벤처의 모든 스킬과 직업에는 그것이 만들어진 배경이 적혀있다.
단순히 설정값이라고 하기에는 내용 자체가 너무 자세히 적혀있을뿐더러, 실제로 그 배경 속 인물이 살아서 세계를 돌아다니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일부 유저들은 스킬이나 특수한 배경지식 등을 통해 히든 직업의 루트를 찾아내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나 또한 그중에 하나였고.
그 당시 일반 직업이었던 나는 그렇게까지 높은 위치에 올라가지는 못했다.
오직 한 사람당 하나의 캐릭터만 키울 수 있었던 게임이었기에 직업 재선택 같은 것도 없었고, 지금은 할 수 없지만 직업을 다시 얻으려면 기존 캐릭터를 삭제하고 다시 키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기존의 것을 포기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직업에 대해 탐색하고, 수없이 많은 스킬들의 설정값을 알아보았다.
수천 년 전 존재했던 고수의 기술.
깊은 심연 속 존재하는 고대 악마의 무구.
창공의 구름 속, 그곳에서 피어난 용신의 여의주.
내로라하는 설정을 가진 수많은 장비와 스킬을 찾아봤지만... 대부분 이미 다른 사람이 손에 넣거나, 혹은 전혀 알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 가장 알 수 없었던 것은 '최강자'였다.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인물. 모든 무기를 통달하고 최강의 자리에 올랐지만, 훗날 마왕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뒤 유유히 사라진 인물.
수많은 사람들이 최강자의 일화를 듣고 이 '루트'를 타기 위해 별의 별짓을 다해봤지만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과 함께 했어야 했거든.'
나는 한없이 작아진 멧돼지를 보며, 주섬주섬 떨어진 아이템을 주웠다.
지친 듯이 쓰러진 다윤과 경계하듯 나를 바라보는 베린. 이들이 없었다면 최강자 루트를 못 탔을지도 모른다.
내가 서버가 종료되기 3개월 전. 우연히 고랩 사냥터를 돌던 와중 보부상 하나를 발견 했었다.
필드의 확률적으로 나오는 보부상은 상점가보다 싼 아이템이나, 혹은 다른 데서 구할 수 없는 희귀 아이템을 판매한다. 나는 보부상이 파는 영웅의 이야기 담긴 낡은 책을 구매했었다.
'가격이... 2000만 골드였나..?'
지금 시세로 치면 엄청나게 비싼 금액이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무리가 갈 정도는 아니었다. 뭐, 지금은 더더욱 별 금액 아니지만.
아무튼 거기에는 각종 영웅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는데 대부분이 쓸모없는 내용이라, 사기당했네... 하며 버리려던 찰나.
마지막 장이 눈에 들어왔다.
{ 최강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존재.
그는 마왕을 단신으로 가볍게 이길 정도로 강한 존재이지만, 사실 그는 누구보다도 정이 많았다.
한때는 다른 사람을 이끌어 행동하기도 했다. 너무 강해진 그는 한 손으로 태산을 부수고, 검을 한번 휘두를 때 모든 적들이 수수깡처럼 쓰러졌다. 압도적인 그의 힘에 사람들이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그는 혼자가 되었다.
.... 어쩌면 최강자라는 말은 그에게는 족쇄였을지도 모른다.
-이름 모를 관찰자.}
서버가 종료되기 직전쯤. 한창 최강자 떡밥이 돌고 있을 시점이기에, 이 정보를 팔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한번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창고에 두고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초기화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시 시작한 나는 돈이 생기고 튜토리얼을 깰 때쯤, 우연히 상점창에서 본 스킬에서 무언가 떠올랐다.
'최강자'가 유일하게 남긴 스킬.
이거라면 가능할지도...? 라는 생각.
나는 다윤을 강하게 만들어 함께 슬라임 킹을 사냥하고, 우연치 않게 베린을 영입해 멧돼지 군주를 잡았다.
최강자는 초반에는 다른 이들과 함께 모험을 했다. 그렇기에 혼자서 스킬을 통해서만 잡는것이 정답이 아닐것이다.
이 결론에 도달하자 나는 계획을 세웠다. 동료를 모아 그들이 1인분을 할 수 있게 여건을 만들어준다.
그런 뒤 나의 능력으로 마무리한다.
[ 히든 직업, '최강자'의 흔적을 입수했습니다. ]
결국 내 생각은 맞았고. 계획대로 능력을 얻는데 성공했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이 전 시즌에 아무리 노력해도 도달할 수 없었던 이유다. 최강자는 홀로 모든 걸 부수는 존재라고 다들 생각했기 때문에, 스킬을 통해 혼자서 모든 걸 해결했다.
"좋구만 좋아."
"뭐가 좋아요?"
다윤이 검을 묻은 피를 닦은 뒤그대로 검집에 넣었다. 마을에서 구매한 싼가격의 낡은 검. 직업 전용 무기를 얻기 전까지 대부분의 무기가 다 이런 형식이다. 상점에서 구매하는 방법도 있지만, 쓸만한 무기들은 대부분 3000골드가 넘는게 보통이니깐...
조만간 저것도 바꿔줘야겠군. 어차피 직업 루트를 타기 전까지 딜을 넣을 사람이 필요하다. 이제부터는 3대 때린다고 안 죽으니깐.
'아닌가? 이제는 그냥 잡을수 있으려나?'
"루트를 하나 타가지고."
"네? 히든 직업이요?"
나는 말없이 끄덕였다. 다윤은 놀란 표정이었고, 베린은....
"뭐 하냐 너?"
베린은 바위 뒤에 숨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너 어떻게 저 돼지를 그렇게 쉽게 잡을 수 있지?"
"쉽게 안 잡았는데."
"거짓말하지 마! 저 아줌마가 딜 넣느라, 버틴다고 도망 다닌 거잖아. 넌 진작에도 끝낼 수 있었어."
"아, 아줌마? 나 22살 이거든?"
"아, 몰라 아줌마가 나 꼬맹이라 했으니깐, 나도 아줌마라 할 거야."
"이게!"
나는 둘의 말다툼을 보다가 한마디 거들었다.
"사이좋네."
"안 좋아!" "안 좋아요!"
거의 동시에 말해서 거의 한 몸이 겹쳐 말하는 듯이 들렸다. 나는 킥킥 웃으며 말했다.
"멧돼지 쉽게 잡은 건 스킬 때문이야. 3대만 때리면 잡는 스킬인데, 40렙까지라 이제 무용지물이지만."
"...? 그런 사기 스킬이 있어?"
"전 시즌에 유행했던 건데... 혹시 모르냐?"
"난 전 시즌 때 안 했어."
뭐?
...생각해보니 녀석의 나이가 17살이니, 5년 전이라 치면 12살이네. 따지고 보니 못할 나이긴 한데.
"아니, 그럼 뉴비인데 유니크 특성에 히든 직업까지 얻었단 말이야?"
"그냥 주던데. 직업은 그냥 더워서 나무 밑에서 쉬니깐 생겼어."
"???"
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나 생각하던 찰나, 한 가지의 말이 떠올랐다.
[히든 직업은 강하지만 대부분은 일반 직업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직업은 그것을 남긴 고수에 따라 입수 난이도가 다르므로! 생각보다 쉽게, 혹은 어렵게 얻을 수 있습니다.]
처음 히든 직업이 등장할 때 당시 운영자가 했던 말이다. 당시 일반 직업만 있던 당시에 단 한 명만 얻을 수 있는 직업이 나와 다들 말이 많았다.
아니, 단 한 명만 얻을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나?
짜고 치는 거다, 운영자 끼리만 좋은 거 돌려쓰는 거다.
말이 많았지만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히든 직업의 수가 엄청 많았고. 아무리 히든 직업이라고 해도 무작정 쌔고 그러지도 않앗다. 개중에는 정말 우연히 얻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 해도...
"운빨 좆망겜..."
"?"
"아냐."
요즘 내 주변에 운이 좋은 애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하긴 내가 운의 끝판왕이긴 하지. 시작부터 1000억 가지고 시작하는 건 나밖에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랭킹 1등한테 좀 미안하네...
그래도 그 랭킹 1등이니 잘 해나가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벌써 60렙 몬스터를 잡았을지-
[ 누군가 최초로 고를린 킹을 잡았습니다! ]
"어? 벌써?"
다윤이 놀란 듯 반응을 보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진짜 빠르긴 하다.
"대단하네..."
역시 랭킹 1등, 전에보니 직업도 없는 거 같았는데 뭐 저리 빠른 건지 모르겠다. 나는 퀘스트 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일어선 뒤 말했다.
"우리도 가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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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험의 여정 0-5 - 멧돼지 군주 토벌이 클리어 되었습니다! ]
[ 골드 300G, 경험치 32500xp를 획득했습니다. ]
[ 레벨이 40으로 상승했습니다. ]
[ 이제부터 전직이 가능해집니다. ]
- 히든 직업 0-1 / 최강의 길
당신은 최강의 힘의 편린을 이용해 그의 발자취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힘은 강대합니다. 지금 정도의 육체와 정신으로 그의 능력을 소화하지 못할 것입니다. 좀 더 강해진다면 그의 힘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라도 다룰 수 있을 것입니다.
- 레벨 80 달성, 붉은 늑대 500마리 처치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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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없는 건가."
검은색 코트를 입은 남자가 자신의 검을 이용해 사체를 뒤지고 있었다.
초록빛의 거대한 바위만 한 크기의 괴수. 불과 몇 분 전 본인이 잡은 고블린 킹이었다.
그 수준만 놓고 볼 때 이전에 하급 악마와 맞먹는 수준이지만 그는 가볍게 잡아냈다. 죽은 고블린은 놀란듯한 눈을 감지도 못한 체 죽음을 맞이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왜 죽은 지 모른 체.
'시간이 너무 지체됐다.'
이대로 가면 마왕에 도달하지도 못한체 게임이 종료될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인기척이 들려왔다.
"뭐 하고 있어?"
보랏빛 날개가 남자의 뒤쪽에 펄럭였고, 붉은빛의 뿔은 그곳을 환하게 비추었다.
매혹적인 눈빛은 남자의 정신을 흔들었지만, 남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듯 멀쩡히 그녀를 노려봤다.
화르륵!
세상을 모두 태울 듯이 타오르는 보랏빛 에테르. 에테르로 휘감긴 검을 보자, 나타난 그녀는 두 손을 든 체 싸울 의사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싸우자고 온건 아닌데..."
"악마와 대화할 생각 따위는 없다."
"흐응.... 왜? 우리가 '악'이라서?"
"....."
"아니면 우리 아빠가 마음에 안 들어서? 요즘 아무것도 안 하고 성에 박혀있는데 말이지."
저 악마가 말하는 것은 마왕일 것이다. 저 여자는 마왕의 딸, 악마족의 공주니깐. 마왕의 딸은 등에 달린 악마 날개를 퍼덕거린 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보다 들어봐. 요즘 세계가 뒤흔들리고 있어. 너 같은 '특수한' 용사들은 좀 다르게 판단할 거 아니야."
"그 흔들림에 너 같은 존재의 영향도 있겠지."
"그렇긴 하지. 하지만 너도 알잖아. 고작 '그것 '때문일까? 겨우 마왕 때문에 세계가 무너진다고?"
".... 그런 건 상관없다. 너희가 전부 죽으면 해결될 일이다."
"아, 이래서 다른 세계 놈들은 말이 안 통한다니깐...."
마왕의 딸은 손을 공중에 휘젓더니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보라색 포탈이 만들어졌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장난치듯 순식간에 남자에게 다가가 턱을 집었다. 살짝 잡았을 뿐인데 남자의 존재 자체가 흔들렸다.
"우리 아빠 보러 갈래? 아빠도 좋아하실 거 같은데."
"지금은 아니다."
"흐응.... 그건 아직 힘이 없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시간을 맞추려는 걸까?"
"둘 다라고 해두지."
대답이 마음에 든다는 듯 여자는 손을 놓은 체 미소 지으며 포탈 속으로 다가갔다.
"그럼 기대할게. 멋진 오빠. 전처럼 강해져서 오라고."
여자는 포탈 속으로 사라졌고 이윽고 포탈은 그 자리에 없었다는 듯이 홀연히 사라졌다. 남자는 익숙한 듯 고개를 돌려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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