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11화 날 돈으로 사려는 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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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딘가 한창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곳.
내 기억상으로는 분명 이곳 테라딘에는 '대장장이' 전직 NPC가 있다. 대장간의 문을 열자 주황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우리를 바라봤다.
...저 출렁출렁한 배랑 기다란 수염은 여전하네.
"물건 보러 오셨수?"
"안녕 헤파이스님."
"얼레? 내 이름을 아네?"
"유명하신 분이니깐요.
"하하, 이 몸이 그 정도 인가?"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될 거지만.
이 대장장이 남자는 전 시즌 상업의 대 혁명을 일으켰던 유명한 NPC다. 이것 때문에 서버에 대장장이 직업이 엄청나게 늘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장비를 만들고 싶은데요."
"주문 제작? 재료는 다 있고?"
"아뇨. 제가 만들고 싶어서요."
"엥? 대장장이를 하고 싶다고?"
"네."
헤파이스는 영 믿음직스럽지 않다는 눈길로 나를 바라봤고, 내 일행은 미친 사람처럼 나를 바라봤다. 지금의 나는 최강자 루트를 타고 있는데, 갑자기 그것을 저버리고 쓰레기 직업을 한다고 하니 미친 것처럼 보이긴 할 것이다.
물론 버릴 생각은 1도 없다.
"저에게 장비 제작을 알려주세요!"
"흐음.... 그런 비리비리한 몸으로 되겠어?"
비리비리한 몸이라니. 강함 스텟 때문에 체격이 올라갔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내 몸을 내려봤더니, 스텟을 찍었을 때보다 체격이 좀 줄어들었다. 아마도 스킬을 사용할 때 온 반동 때문에 몸의 체격까지 줄어든 모양이다.
"한번 맡겨만 주시면 잘 할 자신이 있습니다."
"흐... 그래. 뭐, 포기하지 않나 보자고."
[ 직업, '대장장이'의 전직 퀘스트를 얻었습니다! ]
[ 당신은 이미 다른 직업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
[ 대장장이 퀘스트를 진행 시, 이전 퀘스트는 사라집니다! ]
[ 퀘스트를 수락합니다. ]
- 전직 0-1 / 장비 제작
뛰어난 장비. 그것이 곧 강함이다.
위대한 모험을 했던 선대 모험가는 그리 말했습니다. 당신은 용사의 신분으로 대장장이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기본적인 장비부터 제작해 숙련도를 기르세요.
- 일반 철검 5자루 제작 (0/5)
[ 현제 전직 퀘스트 : 최강의 길 (0-1), 장비 제작 (0-1)]
역시 이 버그는 아직 안 고쳤군.
히든 전직과 전직이 따로 분류되는 버그.
당시 큰 파란을 일으켰지만 사용자들에게 딱히 제제가 가해지지는 않았다. 시스템상 5분만 지나면 자동으로 이전 퀘스트가 사라지고, 전직이 완전히 완료되면 사용할 수도 없으니깐.
나는 퀘스트 내용을 읽지도 않은 체, 그대로 대장장이 제작 상점을 열었다. 대장장이만 이용할 수 있는 상점. 그곳에는 돈만 있다면 상위 제작서가 있다.
고랩 사냥터를 가면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지금은 구할 수 없는.
[ 대장장이 상점
오늘의 특별 상품 : 초월의 목걸이 제작 레시피 : 700,000,000G
*추천 상품
- 일반 철검 제작 레시피 : 500G
- 가죽 갑옷 제작 레시피 : 500G
- 강철 단검 제작 레시피 : 700G
.
.
. [검색하기_]▲/▼]
생각해 둔걸 바로 검색하기 전 특별상품이 눈에 들어왔다.
'초월의 목걸이'라... 200렙제 목걸이로 상급 악마인 데빌 진이 0.01%로 드롭하는 템이다. 나중 가면 쓸모 있긴 할 텐데...
'일단 패스'
어차피 지금 당장 낄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착용 레벨 감소 마법을 걸더라도 스텟 제한 때문에 낄 수도 없다. 나는 고민하지 않고 무기와 장비를 검색했다.
[ '그라티아'를 검색합니다.
▼_그라티아.
- 그라티아 투구 제작 레시피 : 100,000,000G
- 그라티아 갑주 제작 레시피 : 100,000,000G
- 그라티아 각반 제작 레시피 : 100,000,000G
- 그라티아 신발 제작 레시피 : 100,000,000G
- 신성 그라티아 장검 제작 레시피 :1,000,000,000G
- 그라티아 영혼석 : 200,000,000G]
딱 봐도 미친 가격. 장비 값도 아니고, 제작 레시피만 이 정도로 든다. 물론 그만한 값어치를 하는 레시피다.
꺼지지 않는 빛, 신룡 그리티아.
무려 230레벨의 필드 보스이자, 신성력에 있어서는 끝판왕이라고 알려진 용이다. 리젠 시간이 2주나 되고 제작의 핵심인 그리티아의 영혼석은 드롭 확률이 1%이니...
저 정도로 비싼 것도 이해는 된다만... 너무 비싸다. 그것도 엄청. 전 시즌에도 구하기 힘들었는데 이번 시즌은 더더욱 얻을수... 아니, 거의 못 얻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저 세트를 다 맞추려면 영혼석이 20개나 필요하니, 다른 재료들과 레시피를 합치면 대충 제작에만 60억 정도 쓰는 것이다. 천억을 가진 나한테도 제법 나가는 금액 이긴 했다.
무려 전체 금액에 6%의 돈을 쓰는 샘.
[ 5,400,000,000G 가 차감됩니다. ]
벌써 54억이나 썼지만 아직 살게 더 있다.
[ 착용 레벨 제한 -200 감소 주문서: 100,000,000G]
레벨 제한을 줄여주는 주문서. 더럽게 비싸긴 하다. 세트에 전부 적용하려면 5억이나 더 들어가는 아이템. 나는 추가적으로 다른 여러 가지 제작서와 재료들을 산뒤 상점창을 닫았다.
[ 587,026,000G 가 차감됩니다.]
나는 최강자 퀘스트가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대장장이 퀘스트를 취소했다.
[ 대장장이 전직 퀘스트를 취소합니다! ]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돼서 자칫하면 대참사가 일어날뻔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마무리 지었다. 내 기행을 바라보던 일행도 놀란 듯 나를 향해 말했다.
"이 제작서들은 뭐예요? 이거 그라티아?! 이거 완전 비싼거 아니에요?"
"뭐야? 돈이 대체 얼마나 있는 거야?"
나는 별거 아니란 식으로 말했다. 사실 대응해 주고 싶지만 지금은 이 사람에게 부탁해야 하니깐.
화가 난 듯 팔짱을 낀 체, 날 노려보는 헤파이스.
물론 그럴만하다. 자신 있다느니, 맡겨만 달라느니 해놓고 필요한 것만 쏙쏙 빼서 퀘스트를 취소 했으니깐.
"이런 고얀 놈. 이래서 젊은 애들은 노력 없이얻으려 한다니깐."
"하하... 사람은 편한 쪽을 선호하는 편이죠,"
"됐다. 꺼져라. 너 같은 놈, 손님이든 제자든 안 받으니깐."
아무래도 단단히 화난 모양인데, 그럼 안되지.
나는 제작서와 재료들을 헤파이스앞에 놓은 체 말했다.
"장비들을 만들어 주십시오."
"앙? 지금 이 짓거리를 해놓고 말하는 거냐?"
"비용은 넉넉히 챙겨드리겠습니다."
"꺼져라. 너 같은 놈 얼마를 줘도 안 받-"
"1억도요?"
"........ 으, 으흠, 안 받는데도."
아무리 내가 싫어도 무려 1억이다. 지금은 돈의 가치가 매우 올라가 있는 상황이니, 1억이 아니라 만 단위여도 냉큼 받아 일할 사람이 널린 상황이다.
이쯤에서 승부수를 던져야겠지.
"헤파이스님. 생각해보세요. 이런 뛰어난 장비를 입고 제가 활약하면 당신의 위상과 명예가 하늘을 찌를 겁니다. 게다가 1억까지 있으면 어우, 금상첨화죠."
"...."
모든 대장장이들은 뛰어난 장비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망작보단 수작이, 수작보단 명작이 좋으니깐. 그리고 이 재료들은 반드시 명작이 나올만한 장비들이다. 해파이스는 그걸 만들어낼 실력도 있다.
해파이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 원래 안 받으려 했지만, 재료가 마음에 들어서 받는 거야. 절대 돈에 유혹돼서 그러는 게 아니라고."
"네네. 그렇죠."
"....."
거절하기에는 너무 많은돈 이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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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진짜..."
대장간의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베린이 기가 찬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럴 만도 하지. 몇십억 짜리 제작서와 재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니깐.
하지만 모든 대장장이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대장장이 레벨이 높지 않다면 만들 수 없으니깐. 내가 주문한 그리티아 세트도 '장인 대장장이'까지 올라야만 제작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침대 벽에 기대어 내 설명을 듣던 다윤이 이상한 듯 나에게 물었다.
"근데... 1억이나 줄 필요가 있었나요? 돈의 가치가 높아졌다면 그렇게까지 과소비 안 해도 됐을 거 같은데..."
"과소비는 아니야. 지금 저 그라티아 세트를 만들 수 있는 대장장이가 서버에 몇 명 없으니깐."
대장장이가 널리 퍼진 당시에는 흔히 볼 수 있는 게 장인 대장장이였지만, 지금 시간 때에는 많아봐야 3명? 그 정도 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비싼 재료와 제작서를 맡길 때 신뢰가 되는 사람한테 맡겨야 해."
"윤 씨를 엄청 싫어하시던데."
"돈을 좋아하긴 하지. 그래도 뒤통수치는 사람은 아니야."
헤파이스는 아무리 퉁명스럽게 말하거나 안 좋게 대해도. 절대 남을 뒤통수치거나, 자기가 맡은 일을 대충 하지 하지 않는다.
아마도 빠른 시일안에 일을 마무리할 것이다. 내 일을 오래 잡고 싶어 하진 않을 테니깐.
"우선 저거 다 만드는데도 한 달은 족히 걸려."
"네? 한 달이나 걸리면 어떻게 하죠?"
"난 사냥하고 싶은데."
"우선 다른 대체 무기들을 맞춘 뒤에 사냥할 거야. 이미 다른 대장간에 맡겨뒀어."
나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지만. 전 시즌에는 항상 헤파이스의 주문이 밀려서 몇 달이 지나도 안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주문이 없을 때는 아무리 어려운 장비라도 1주 정도면 마무리된다.
그런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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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 한 달이나 걸려요?"
"뭘 놀라냐 이놈아. 한 달밖에 안 걸리는 거지."
"아니, 분명...."
"?"
아.
내가 헤파이스를 만난 건 이곳 시간으로 30년은 족히 지난 후였다. 설정상 그는 엘프 혼혈이기에 나이를 먹지 않지만, 내가 다시 만난 시점은 30년 전이므로 실력이 30년 전으로 돌아간 셈이다.
사실 대부분의 중요 엔피시들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설정이 있다. 엘프 혼혈이라느니, 불로의 명약을 먹었다느니, 끝없는 수련으로 필멸에서 벗어났다느니 그런 설정들.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고. 아무튼 예상치 못한 요소 때문에 제작이 완료될 때까지 다른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우선 내가 다른 곳에 맞긴 장비는 1주 안에 다 완료될 거야."
"그럼 1주 동안은 뭐 하죠? 로그아웃이라도 할까요?"
로그아웃... 좋은 선택이긴 하다만, 어차피 그곳에서 딱히 할 것도 없다. 지금 우리야 제법 강해서 언제든지 갈수 있지만, 인류의 99% 아직 잠에서도 못 깨어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지금 테라딘에서 보이는 유저는 50명이 체 보이지 않는다.
"사냥 말고 다른 퀘스트를 진행할 거야."
"?"
"뭐?"
따라와 보면 안다.
귀찮은 스토리 퀘스트지만 지금은 필요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