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25화 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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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틴베리.
테라딘 삼면에는 3가지의 몬스터들이 살고 있다. 고블린, 오크, 인어. 그중 하단에 위치한 오크 지역을 뚫고 넘어가면 새로운 도시가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마법도시 디틴베리다.
수많은 마법사들을 양성하고 관리하는 곳.
특히 여기서 레전드리 히든 직업인 '파멸술사'를 전직할 수 있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 됬을때만 해도, 이쪽으로 바로 건너오는 사람이 제법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없네."
"그러게요. 분명 한명쯤은 어떻게든 뚫고 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오크 지역을 뚫고 디틴베리에 도착해, 잠깐 하루 정도 쓰러... 휴식을 취한 뒤 도시로 나왔다. 그러나 도시를 돌아다니는 건 NPC뿐.
유저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디틴베리가 오크 지역을 건너와야 한다 해도 이렇게 없나?"
아무리 오크가 잡기 힘들어도 돌파 정도는 할 수 있을 텐데... 다윤은 흐음 거리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다들 오크의 포위망을 빠져나오긴 힘든가 봐요. 생각 못 한 걸 수도 있고."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퀘스트를 진행하다가, 파멸 술사를 얻은 유저를 영입하는 형식으로 갈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전직 퀘스트를 얻은 사람은커녕, 유저조차 없으니깐. 계획이 틀어진 상황이다.
"야, 그러면 뭐 어떡하게? 바로 트롤 잡으러 갈 거야?"
".... 너는 트롤 못 잡아."
"앙? 나 오래 걸려도 잡을 수 있거든?"
베린이 화가 난 듯 말했지만 사실이다. 트롤 마법사는 생명체의 피를 추적하니깐. 아무리 그림자라고 한들 마법사의 공격을 피할 수 없다.
그 말을 들은 베린은 충격적인 듯 얼어붙었다.
"근데 파멸술사는 왜 영입하려는 거예요? 대미지는 충분한 거 같은데."
"... 우리가 원거리가 없으니깐, 그런 거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물론 우리 모두 근거리 전직이긴 하지만 이동 능력도 출중하고, 그런 포지션에 구애받지는 않는다. 정 필요해도 이랑이 오면 다 해결될 일이다.
이랑은 어떤 포지션이든 능히 할 수 있으니깐.
"파멸술사가 있어야, 히든 루트를 탈 수 있어."
"테라딘처럼?"
"응. 물론 그건 내 변수로 생긴 거지만. 여기서는 안 통할 확률이 높아."
테라딘에서는 나로 인해 알려지지 않은 루트가 튀어나왔지만, 이곳은 그런 게 통하지 않는 곳이다. 이곳의 왕은 특별한 존재니깐.
히든 루트를 탈 생각은 딱히 없었지만, 기왕 한번 탄 이상 계속해보기로했다.
"흐음..."
나는 골드를 한두 개를 실체화해 만지작거리다. 문뜩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좋아. 우선 가보자고."
"?"
직업이 안된다면 다른 걸로 부딪혀 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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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틴베리에는 수많은 탑이 존재한다.
탑을 짓는 이유는 디틴베리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신성한 마석'의 기운을 최대한 받기 위해서다.
디틴베리의 가장 위대한 마석, '신성한 마석'
이 위대한 마석은 그저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농도 깊은 마력을 받아들일 수 있다.때문에 디틴베리는 항상 수많은 탑으로 가득 차있다.
그중 가장 낮은 탑에 사는 남자가 마법 실험을 하고 있었다. 일반 건물 보다는 높았으나, 다른 탑들에 비하면 그냥 아기 수준의 건물이다.
'크윽....또...'
남자는 애써 만든 마법진에 마력을 불어넣자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이곳저곳에서 돈을 모으고, 정성을 들여 제작한 마법도구를 팔아, 간신히 모은 수십만 골드를 통해 만든 마법진.
그러나 실험을 시작한지 얼마나 됬다고 마력 연결이 희미해지더니 이내 사라진 것이다.
'젠장!! 나도 탑만 높게 지었다면...'
마석 코앞에서 일하는 왕의 정식 마법사들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탑만 높게 지었다면 충분히 높이 올라갈 실력이었다만 그의 돈이 문제였다.
마법 특성상 한번 마법진이나 마법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필요한데, 이 남자는 매우 가난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마법도구를 만들어 팔아 연구비를 어떻게든 충당 하긴 했었다. 하지만 높은 탑에서 일하는 마법사들이 훨씬 싸고 좋은 마법도구들을 내세우자, 얼마 팔지 못하고 재고만 잔뜩 쌓여갔다.
남자는 허탈한 모습으로 창밖에 도시를 바라봤다.
'나한테 돈이 많았다면, 저기 높이 있는 탑 놈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데...'
그 순간 아래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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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 있나?"
"네네! 손님!"
탑 위쪽에서 우당탕 거리는 소리와 함께 흰 가운에 안경을 쓴 30대 남자가 급하게 내려왔다. 며칠 씻지도 못한 듯 갈색의 머리카락이 엉망이었는데, 아무래도 마법도구를 사러 온 손님이 끊긴지 오래된 모양이다.
나는 거리를 둔체 5만 골드를 건네주었다.
"미안한데 좀 씻고 와줄래? 냄새가 나서."
"네? 네네! 아니 5만 골드나..? 뭘 사시려고요?"
"빨리 유명한 목욕시설에서 깨끗이 씻고 와."
"아! 넵! 감사합니다! 우선 이쪽에서 쉬고 계시면 금방 오겠습니다."
남자는 빠르게 구석에 박아둔 탁자를 꺼내, 급하게 냉동 마법이 걸린 창고를 열어 차와 간식을 꺼냈다. 그리고 90도 인사를 한 뒤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갔다.
아무래도 목욕 값으로 5만 골드나 준 손님이면 엄청난 부자일 거라고 생각했겠지. 남자가 나가자 다윤이 숨을 내쉬었다.
"이런 말 하긴 뭐 하지만 냄새가 좀 심하네요..."
"이러니깐 손님들이 안 오지."
베린도 한마디 거들었다. 나는 둘의 반응에 동의한 체 주변을 둘러봤다. 확실히 예전보다 훨씬 더럽고 정돈이 안 돼있지만 내 기억상 여기가 확실하다.
"근데... 여기가 어디예요?"
"파멸술사 엔피시의 연구소."
"네? 파멸술사는 여자 아니었나요?"
"맞아."
"?"
엄밀히 따지면 방금 나간 냄새 나는 남자는 파멸술사 전직 엔피시가 아니다. 그의 여동생이 파멸술사지.
마법 하나만으로 도시전체를 궤멸시킬수 있는 천재 마법사, 아미아 리엔.
파멸술사한테 오빠가 있는지는 나도 몰랐던 내용이지만, 설정집에서 언급된 내용과 연구실 사진을 보고 유추해 왔다.
내 설명을 들은 다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남자한테 여동생을 만나게 해달라 하면 되겠네요!"
"아니. 난 여동생을 만나러 온 게 아니야."
"네?"
"난 그 남자를 파멸술사 보다 더 뛰어난 마법사로 만들 거거든."
그 남자는 오랫동안 마법에 진전이 없자, 마법에 재능이 있던 여동생에서 자신의 연구실을 넘겨준다. 여동생은 연구실을 자신의 스타일로 꾸미고, 자신만의 마법을 개발해 다른 이들에게 판매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게 대박이 터져서 인기가 폭발하고, 많은 돈을 쥔 여동생은 훗날 계속해서 성장해 파멸술사라는 위대한 마법사로 등극한다.
물론 여동생의 미모가 매출의 절반 이상을 먹고 들어가긴 했지만! 실제로 전직이나 마법을 사러 온 게 아니라, 단순히 미모를 보기 위해 탑에는 항상 유저나 NPC들이 바글바글 거렸다.
"그 남자는 마법 재능이 없는 게 아니야. 오히려 여동생보다 훨씬 뛰어나지. 다만 그 배경이 못 받쳐준 것뿐이야."
실제로 설정집에 언급에 따르면 지원이 있었다면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는 마법사가 될 수도 있었다.' 라는 내용이 있었다.
얼마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말끔해진 남자가 들어왔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씻는 데 오래 걸려서.."
참고로 우리가 기다린 시간은 20분이었다. 여기랑 공중 목욕탕이랑 제법 거리가 될텐데.
....이 남자 제대로 씻고 오긴 한 걸까?
남자는 우리가 다 먹은 차와 간식을 자연스레 정리했다.
"입맛은 맞으셨습니까?"
"그럭저럭."
"다행입니다. 그보다 어떤 걸 사시려고..."
"나는..."
나는 벽면에 있던 마법서 하나를 집어 들었다. 마법의 많은 지식이 없는 내가 봐도 수준 높은 마법서다. 물론 재료가 엄청나게 들어가겠지만. 나는 마법서를 좀 살펴봤다.
...이러니깐. 항상 망하지.
딱 봐도 100만 원은 거뜬히 넘어갈 정도에 마법식 이였다. 나는 한숨을 내쉰 체 마법서를 탁자에 놨다.
"이, 이걸? 사시게요?"
"아니. 난 당신을 후원하러 온 거야."
"네에?!"
나는 마치 직원을 채용하는 사장처럼 의자에 앉은 뒤, 마법서를 펼쳤다.
"이름이 뭐야?"
"리진입니다. 아미아 리진."
리엔,리진. 역시 정확히 찾아왔다. 나는 마법서를 한 손으로 탁. 접었다.
"그래 리진. 내가 후원해 주는 대신 원하는 마법을 만들어 줄 수 있겠어?"
"어떤 마법을...?"
"나는 제어 마법을 원해. 어떤 힘도 제어할 수 있는 마법 말이야."
나는 창고에 넣어둔 종이를 한 장 꺼냈다. 그 안에는 수없이 많은 재료와 마법 형(形)으로 얽힌 마법식이 보였다.
"....!"
리진은 종이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기겁하듯 기함을 내질렀다.
"이, 이 정도 마법을 어떻게..?!"
"그건 영업 비밀. 할 수 있어, 없어? 그것만 말해."
"그... 가능하긴 한데... 지금 못하는 부분도 있고... 무엇보다도 재료가.."
리진이 저러는 이유는 지금 내가 내민 마법식은 웬만한 대마법사도 만들기 어려운 식이다.
오늘의 특별 상품에서 구매한 '창조(創造) 마법서.'
가격은 3억이 훌쩍 넘어가는 이 마법서는 뛰어난 마법사와 좋은 재료만 있다면 본인이 원하는 마법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마법까지는 만들 수 없지만, 한번 발현만 하면 스킬처럼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나한테 꼭 필요한 능력이다. 이격을 패널티없이 쓰기 위해서는.
"돈은 걱정하지 말고. 혹시라도 마법 연구를 더 해야 하는 일이면 얼마든지 말해. 지원을 계속 해주지."
"... 네! 해보겠습니다."
"좋아."
나는 우선 탁자에 5천만 골드를 실체화 시켰다. 엄청난 금액에 리진이 놀란 듯 자빠졌다.
하긴, 이만한 금액은 웬만한 대마법사도 구하기 힘든 금액이니깐. 나는 일행과 자리를 뜨면서 말했다.
"그럼 10일 안에 완성해라."
"네? 10일 안에 어떻게..?"
"못하겠으면 돈 도로 내놓던가. 참고로 못 만들면 열심히 일해서 갚아야 하는 거 알지?"
"..... 네에."
나는 중압감에 휩싸인 리진을 둔 체 숙소로 돌아왔다. 테라딘과 다르게 디틴베리의 숙소는 높은 곳에 있어, 도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물론 그마저도 높이 올라간 탑 때문에 조경권이 침해 되긴 하지만.
"그런데 이러면 파멸술사가 제 위치에 못 오르는 거 아니에요?"
"꼭 그런 건 아니야. 오빠의 지원이 첫 시작이긴 했지만, 굳이 지원이 없어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으니깐."
아미아 리엔의 미모와 실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일이다. 오히려 지원을 받아 대성공한 오빠가 동생에게 더 큰 지원을 더 해줄지도 모르고.
"파멸 술사는 예정대로 나올 거야. 애초에 중요한 NPC들의 위치가 쉽게 사라지지도 않고."
이랑은 예외적인 일 이니 제하고.
잘만하면 레전드리 히든 직업이 2명이나 탄생하는 셈이 되겠지. 베린은 단검을 꺼냈다 들었다를 반복하다가 물었다.
"그런데 아까 걔를 키우는 게 히든 루트야?"
"정확히 말하면 키워서 토벌에 데려가는 게 목적이야."
디딘베리 뒤쪽에는 디베르라는 거대한 산이 하나 있다. 그곳에는 신성한 마석과 반대되는 마석이 있다.
디베르산의 짙은 어둠, 검붉은 마석.
산에는 검붉은 마석을 기반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트롤 마법사들이 사는데, 우리가 할 것은 그 트롤 마법사의 토벌이다.
문제는 마석을 이용해 마법을 쓰는 트롤들은 결코 약하지 않다. 이 왕국에 마법사들보다 훨씬 강하고 특수한 마법을 쓰는 몬스터들.
게다가 마왕 때문에 녀석들의 힘은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원래 스토리는 검붉은 마석에 얽힌 마법진의 힘을 약화 시키면서, 트롤 마법사를 하나둘씩 처치한 후 보스까지 잡는 거지만-"
"그 남자를 이용해 마법진을 아예 제어한다는 소리죠?"
"그래."
이전에 히든 루트를 클리어 한 사람은 파멸 술사 직업을 손에넣어 직접 마법진을 파괴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갈 것이다.
파괴가 아닌 제어.
잘만 이용한다면 생각보다 훨씬 쉽게, 원하는 히든 루트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왕을 만나러 가자."
이제 2번째 스토리를 만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