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30화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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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오는 거야..."
리엔은 보랏빛 탑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분명 30분 안에 온다고 했는데 거의 1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고 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의문을 가졌지만 본인이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기다리는 것뿐.
"불마법은 쉬운데 다른 건 어렵단 말이지.."
고작 8살의 리엔에게는 수많은 수식어가 붙어있다.
속성을 타고난 천재.
5살이 되기도 전에 마나를 깨달은 마법사.
최연소 중급 마법사.
"끄응...."
어린 나이에 수많은 수식어가 붙은 이례적인 사례였으나, 어쩐지 리엔은 그런 것이 부담스러웠다.
'이런 수식어는 오빠한테 더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오빠의 천재성은 엄마한테 자주 들어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두각을 드러내기가 힘들어졌다고...
리엔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빠는 이제 후원해 주는 사람을 만났으니 최고의 마법사가 될 거야!'
게다가 그 후원자가 용사라지 않은가!
용사. 세계를 구원하고 마왕을 처치할 영웅.
지금도 용사님들과 함께 사악한 트롤들을 무찌르러 갔으니 금방 돌아올 것이다.
덜컹!
"오빠?"
리엔은 문은 벌컥 연 리진을 보고 표정이 굳었다. 피투성이가 된 체 탑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오빠!!"
"...리엔아."
"오빠! 죽지 마!"
"...안 죽으니깐 저기 있는 회복 스크롤 좀...."
"어? 아, 알았어!"
어쩌다 저렇게 다친 걸까. 리엔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의문이 들었으나, 울음을 애써 감춘 체 스크롤 통에 꽂힌 회복 마법서를 집어 들었다.
"오빠...?"
스크롤을 집어 등을 돌렸을 때 리진은 쓰러져있었다. 리엔은 손을 벌벌 떨며 다가갔다.
"오빠... 장난치지 마."
"....."
"오빠!"
리엔은 리진을 마구 흔들었다. 그러나 깨어날 기색 없이 몸에 묻은 피만 잔뜩 흩뿌려질 뿐이었다.
어느새 리엔에 손에는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울음이 멈추지 않는다. 분명 엄마가 혼자 사는 오빠를 잘 봐달라고 했는데...
눈물이 툭툭 떨어져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낼 때쯤. 손에 들린 스크롤이 눈에 띄었다. 오빠가 만든 스크롤.
".... 스크롤.."
상급 마법사 이상만 쓸 수 있다는 회복 스크롤. 중급 마법사 수준인 리엔은 결코 쓸 수 없다.
하지만...
"뭐라도 해야 해."
리엔은 두 눈을 옷으로 대충 닦은 체 스크롤을 펼쳤다.
....
어렵다.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다.
왜 나보고 천재라고 하는 걸까.
'진짜 천재는 눈앞에 있는데.'
우웅!
리엔은 마나를 스크롤에 주입했다.
마법진을 상상하고 마나를 주입한 뒤, 영창하는 기존 마법과 달리. 스크롤은 마나만 있다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
스크롤을 사용하는 이유는 전투 중이거나, 혹은 마법을 시전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에서 바로바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다만 그 스크롤에 적힌 마법진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만이 사용할 수 있다.
"안돼..."
스크롤이 녹색빛을 내더니 리진에게 스며들었다. 스크롤은 그대로 사라졌다.
마법이 성공했다는 의미.
하지만 리엔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스크롤의 기존 효과의 5%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 이정도면 시간만 끈 샘이야.'
리엔은 고개를 돌려 스크롤 통 전부를 끌고 왔다.
와르르르!
"..... 많이도 만들었네."
이런 상황을 대비라도 한 걸까?
리엔은 회복 스크롤만 따로 분류했다. 17개 정도. 이 정도면 100%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될 것이다.
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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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워..."
스크롤 12개째...
머리가 핑핑 돈다. 마나가 몸에 제대로 흐르지 않는 것이 느껴진다. 방금 스크롤은 성공한 건가? 이번에는 2%도 회복이 안된 거 같은데...
"..... 오빠."
"......"
오빠의 상태가 나아질 기미를 안 보인다. 회복 속도가 죽어가는 속도를 못 따라잡는 것이다.
참아왔던 울음이 다시 터지기 시작한다. 스크롤을 든 손이 벌벌 떨린다.
제발...
"누가 좀 도와주세요!!"
제발...
덜컹!
"용사님!"
리엔의 시선이 문으로 향해진다. 들어오는 붉은빛이 얼굴과 형상을 흐리게 만들었다.
용사... 님 같지 않다. 마치 마법사처럼 생긴..
"쯧. 도움 좀 받으려고 왔는 데 도움을 주게 생겼군."
"그럼 더 좋지 않습니까. 사부님."
"누구... 세요."
리엔은 새빨개진 눈으로 그들을 올려다봤다. 흰 수염을 가진 남자는 턱을 한번 쓰다듬더니, 리엔의 손에 들린 스크롤을 그대로 가져갔다.
"스크롤은 그렇게 마구잡이로 쓰는 게 아니다."
"네..?"
"... 쓰러진 남자보다 네가 죽지 않은게 더 신기하군."
우웅!
스크롤이 화려한 녹색빛을 낸다. 리엔이 사용했던 것과 전혀 다른 회복량.
이윽고 리진의 상태가 급속도로 완화되었다.
'스크롤의 형(形)이 제법이군. 웬만한 대마법사 못지않아.'
"으으..."
"가, 감사..."
툭.
"너는 잠 좀 자라."
"제가 따로 위쪽 침대에 놓겠습니다. 사부님."
"그래. 나는 이 남자와 대화 좀 해야겠다."
디브루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의식을 되찾고 있는 리진을 들고 탑 위로 올라갔다.
'꼬맹이가 마나량이 보통이 아니군. 좀만 늦었다면 둘 다 죽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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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례를... 습니다..."
"나 말고...맹이 한테...해라."
시야가 들어온다. 팔이 따끔하다. 어떻게 된 거지..
오빠는 살은건가?
"리엔!"
"오빠..?"
리진은 리엔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너! 무턱대고 스크롤을 쓰면 어떡해! 마나 역류로 죽을뻔했어!"
"..... 하지만 오빠도 죽을뻔했는걸."
"....."
스크롤은 마구잡이로 사용해도 되는 게 아니다. 오직 마나만 들기 때문에 마법 사용에 어려움이 없지만, 과도하게 사용하면 마나선이 뒤틀려 마나가 역류할 수 있다.
스크롤은 마법의 편법이기에 부작용이 존재한다.
리엔의 팔에는 마나 팩이 걸린 주삿바늘이 꽂혀있었고, 심장 부근에는 마나 조율기가 걸려있었다. 중환자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상태.
"환자는 내버려 두고 이리로 와라 리진."
"네, 넵. 아, 그리고 리엔."
"어?"
".... 고맙다. 나 걱정해 줘서."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난리 쳐서 그런 거야."
"그래. 고맙다."
"....."
리엔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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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브루는 탑 최정상층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고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건...
"그런데 디브루 어르신은 저희를 어떻게 알고 찾아오신 겁니까?"
리진은 공손하게 그를 대했다.
과거에는 높은 탑에 사는 대마법사들을 싫어하긴 했지만, 어쨌든 리엔과 자신을 살려준 은인이니깐.
"확인할게 있어서다."
"확인... 이요?"
"이 탑은 현재 왕성을 제외하곤 디틴베리 내에서 가장 높다. 게다가 티파인의 함유량이 100%에 달하지."
물론 완전히 100%는 아니지만. 거의 그 정도 수준이다.
"말이 나와서 그런데 이만한 티파인은 어디서 구했나?"
".... 지원을 좀 받았습니다."
"지원? 왕국에 말인가?"
"아, 아니요. 용사님께 좀 받았습니다."
디브루는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 뭐, 그보단 이 사태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왔다."
"사태..."
리진은 하늘을 봤다. 소름 끼칠 정도로 붉게 물들은 하늘. 마치 여기가 마왕성 부근인 것 마냥.
리진은 오싹함을 느꼈다. 용사님들을 날려버리고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힌 악마. 그게 악마라고 단언할 순 없지만 리진은 그것을 악마라고 느꼈다.
"나는 이 사태의 원인을 신성한 마석이라고 본다."
"... 네?"
리진은 귀에 벌레라도 들어온 듯 디브루를 쳐다봤다. 말도 안되는 소리.
"국, 국왕께서 그러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나의 관찰 마법은 웬만한 마성(魔星)에 못지않다."
마성(魔星).
대마법사를 뛰어넘은, 마법의 신이라 불리는 존재들.
마성은 세계에 몇 존재하지 않는다. 훗날 파멸 술사가 될 리엔. 디틴베리의 왕, 베리 역시 마성(魔星)이다.
"하늘을 뿜어져 나오는 붉은 기운은 저 신성한 마석으로부터 비롯되었다."
".... 사실입니까?"
"이제부터 확인해야지."
디브루는 작은 거울을 들었다.
진실을 비춰주는 거울.
자신의 탑에서는 신성한 마석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었으나, 가장 높은 탑. 그리고 티파인으로 가득 찬 이곳이라면 진실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
".... 허허."
"말도.. 안돼."
리진은 뒷걸음질 치다 이내 바닥에 풀석 주저앉았다. 디브루 역시 거울을 든 손이 벌벌 떨리고 있다.
위쪽에 비친 마석은 희미한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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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날이 왔군."
왕은 왕궁의 가장 꼭대기에서 지상을 내려봤다.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붉은 하늘과 마력의 역류로 혼란에 접어들고 있다.
"폐하! 괜찮으싶-"
피슉-
급하게 최상층으로 들어온 신하 하나가 무형의 공격에 의해 사망했다. 이윽고 그 시체는 허공에서 둥둥 뜨더니, 신성한 마석에 그대로 흡수되었다.
"들어오지 말라니깐... 이래서 신하들을 키워봤자 의미가 없군."
좀 있으면 목표에 도달할 것이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미래.
그 '여자'가 보여주었던 미래는 내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용사들에 대한 소식이 끊어졌다. 설마 분신이 당한 건 아니겠지?'
마석과 수십수백의 트롤들의 힘을 흡수한 분신은, 웬만한 악마를 뛰어넘을 정도로 강하다. 용사들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이건-
"역시 왕이라 그런가 최상층에 사는구만."
"그러게요. 이럴 줄 알았으면 구름으로 올 걸 그랬어요."
"아줌마. 그러다가 공격 맞고 추락할걸?"
...용사?! 어떻게 온거지?
문을 가볍게 뚫고 들어온 무리들. 분명 문을 입장 시, 수많은 함정 마법이 걸려있었는데 가볍게 무시한 체 들어왔다.
무리의 뒤편에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오랜만이네 형. 복수의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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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전.
"그럼 계약은 일단 해뒀고. 방법은 있어? 개인적인 의견이다만 도시를 공격하는 건 반대야. 형만 깔끔히 제압하고 그의 추종자들만 잡아..."
".... 제가 아니더라도 도시는 멸망할 거예요."
"뭐?"
베리는 담담하게 말했다.
"저의 분신이 그러했듯 도시에도 비슷한 마법이 걸려있어요. 아마도 마력을 가진 모두의 힘을 흡수하려 들겠죠. 트롤에게 그러했듯이."
"막는 방법은?"
"형을 먼저 제압해서 마석의 운용을 막거나, 아니면 제어하는 방법이 있죠."
제어라.... 하지만 지금 리진이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죽었다면 시체라도 보일 텐데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렇기에 스킬 레벨도 낮은 내가 제어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몇 분 못하고 쓰러질지도.
"형은 아까 쓰러트린 분신보다 훨씬 강력해요. 절대 이길 수 없을 거예요."
"아까는 최선을 다해 복수한다 하지 않았냐?"
"물론 그럴 거죠. 제가 살아있는 한."
죽음을 각오하고 한다라... 하긴, 퀘스트 내용만 본다면 어떤 선택지를 골라도 '디틴'은 죽는다.
그게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행과 베리는 오랫동안 작전을 세웠다. 입장과 동시에 바로 공격하다느니, 아니면 성을 무너뜨리자 느니, 그것도 아니면 마력을 봉인후에 합공 하자느니 뭐, 그런 거.
딱히 결론이 안 나오자 나는 자리에 일어섰다.
"뭐, 일단 가보자."
"네?"
"만나보면 알겠지.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그리고 누가 '진짜' 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