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4화 〉54화 봉인된 정령 (54/318)



〈 54화 〉54화 봉인된 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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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라…”

엘린시아의 왕, 엘린시아는 하녀들의 손에 옷을 갈아입으며 추억에 잠겼다.

과거 그녀는 용사의 동료였으니깐. 물론 현재의 남편인 이피아가 용사를 포기하고 나와 결혼해 살고 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추억에 잠기곤 한다.


수많은 마물과 마주하고, 노숙을 하기도 하고, 함께 먹고 자고…
좋았던 추억도 있었지만 그만큼 위험하다는  안다.

‘히아트님이 없었다면 둘 다 죽었겠지…’


엘린시아는 과거의 일을 후회하지 않았다. 최상위 악마와 마왕은 너무 강했기에. 이피아의 일은 어쩔  없는 일이었다.


쾅!

“여보?”
“시아…”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이피아는 어쩐지 혼이 나간듯한 표정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악마가 설마...”
“아니, 악마는 아닌데…”


이걸 뭐라 말해야 할까.


이피아는 덜덜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숨을 쉬었다. 침착하자.

‘아직 벌어진 일은 없어.’

새로운 용사는 딱히 무언가를 저지르지 않았다. 최상급 정령과  계약만 이뤄준다면 곱게 돌아갈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되게 해야만 한다.

그렇게 안 된다면…


“최상급 정령이 어딨는지 알 수 있어?”
“최상급 정령이요? 갑자기 그건 왜…”
“요, 용사님이 정령과 계약하고 싶어 해. 기왕이면 좋은 정령과 계약하면 좋은 거니깐...”

이피아는 횡설수설하며 엘린시아에게 말했다. 그런 반응에 그녀는 의문을 가졌다.

정령과의 계약은 누가 주선해 주는 게 아니다. 계약자의 믿음과 신뢰, 그리고 정령의 의지가 동반되어야만 이 계약을 할 수 있다.

만일 계약을 하고 싶다면 직접 정령을 찾아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용사가 그것을 무시한 체 내놓으라고 하는 셈이다.

엘린시아는 용사의 태도에 불편함을 느꼈다.

“정령은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에요. 용사님은 어딨죠? 제가 직접 그분을 설득 시킬게요.”
“아, 안돼! 시아!”

이피아는 시아의 어깨를 강하게 잡았다. 시아의 표정이 고통에 의해 살짝 찢부려지자, 이내 손을 떼었다.


“미안. 용사는 내가 대우해 줄게. 시아는 쉬고 있어.”
“네? 분명 준비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

이걸 뭐라 설명해야 하는 걸까. 이파아의 머릿속에는 최악의 가정이 떠올랐다.


시아가 용사에게 화를 내며 몰아붙이면  괴물 같던 수인이 시아를 죽일지도 모른다. 아니, 더 심한 꼴을 당하게 될지도...

...안 된다. 무슨 수를 써서든 막아야 한다.


“미안. 시아. 여기 있어줘. 부탁할게.”
“이유가 뭔데요. 그리고 정령은 제가 찾아 드릴 수 없어요.”
“알았어. 그건 내가 용사님께 따로 말해볼게. 시아는 여기 있어줘.”
“...”

엘린시아는 혼란스러워하는 남편을 보았다. 그것은 마치 오래전 악마를 마주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


‘뭔가 일이라도 있는 건가… 용사가 남편을 협박한건가?’


이피아와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온 그녀는 그를 믿어주기로 했다.


“알았어요. 대신 정령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해주세요. 계약을 원한다면 직접 찾아야 한다고.”
“그래.”


이피아는 문을 닫고 왕궁을 빠져나갔다. 엘린시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하녀를 불러 명했다.

“용사는 어디 있어?”

남편에게 미안하지만 그들을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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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왜 여기서 둘이 유유자적 살고 있어.”
“...아니.”
“넌 닥치고. 오라버니? 말해보세요.”


이진은 상황을 살폈다. 이미 도망치는 건 불가능 하다.

‘젠장 집안이 깔끔할 때부터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후회해봤자 이미 돌이킬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이랑의 화를 푸는 것뿐.

 꼴도 보기 싫은 엘린시아로 찾아왔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이전에 일은 미안하다. 너도 알다시피 그 열매는 100년에  개 나오는 건데 내가 뭣도 모르고 너 몫까지 먹어…”


꽈앙---!!

허공에서 소환된 거대한 막대기가 이진의 머리를 강하게 후려쳤다. 한순간의 파동이 이루의 집을 타고 이 근처에 울려 퍼졌다.

이루는 기겁을 하며 이랑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어, 언니! 잘못했어! 살려줘!”
“안 죽일 거라니까. 그리고 아직도  잘못한지 모르나 보네.”
“그…”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고위신이자, 세계의 최강의 존재 중 하나인 여우신 이린은 생화목(生花木)이라는 나무를 가지고 있었다.
생화목은 이린이 키우는 나무로. 자연의 기운을 받아 100년에 한번 씩 생화라는 열매를 피워낸다.


 열매를 먹으면 자신의 힘과 기력이 증가되고, 수명의 제약이 있는 생명체들은 자신의 수명의 2할만큼의 수명이 늘어나게 된다.


생화목은 이린의 자연에  5개가 있는데, 오래전부터 긴 시간동안 열매를 모아둔 이린은 자신의 4명의 자식들에게 50년에 한 번씩 열매를 주었다.


생화는 인간의 단약이나 영약보다도 뛰어났고, 아무리 깊은 상처를 입어도 그 열매를 먹으면 상태가 빠르게 완화되었다.


다른 신의 자식들과 달리,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50년마다  열매를 먹으면 남들과 똑같이 노력한 만큼의 성장세를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이린의 자식들이 편하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이진은 날이 가면 갈수록 강해진 이랑에게서 이상함을 느꼈다.


‘쟤는 뭔데 저렇게 강하지?’

이진과 이루와 달리 수련에 매달리는 이랑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성장세가 너무 빨랐다.


질투였을까? 아니면 단순한 착각이었을까.

이진은 날이 가면 갈수록 강해지는 이랑에게서 호승심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수련을 시작한 첫날 지겨워서 그만두었다.
애초에 수련의 ㅅ자도 꺼내본 적이 없는 그에게 수련은 너무나도 지겹고 힘든 일 이였다.


그때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던 이루는 오빠의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오빠.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 한번 해볼래?”
“어? 뭘?”

이루는 이진에게 속삭였다. 자신의 어머니인 이린이 보관하고 있는 생화 열매를 가로채 모두 먹자고.

처음에는 거절했다. 들키면 어머니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것보다 이랑이 더욱더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걔는 불의에 타협하지 않으니깐.


분명 아무리 내가 오빠라고 하더라도  죽여놓아서라도 토해내게 만들겠지.

“그럼 몰래 빼돌리는 게 그러면. 어머니는 오빠에게 먼저 열매 4개를 주고, 우리에게 나눠주라고 하잖아.”
“그...그렇지?”
“비슷한 색과 맛에 열매를 준비해서 막내랑 언니만 그걸로 주고, 우리가 2개씩 먹는 거야! 어때?”
“...그거면.”


가능할지도?

이 어리숙하고 멍청한 짓은 실제로 통했다. 열매는 바로 먹는다고 확 강해지지 않는다. 점차 시간이 지나며 성장하는 것.


막내와 이랑은 수련을 꾸준히 하고 있었으니, 열매의 효과가 없었더라도 티가 별로 나지 않았을 것이다.

50년 동안 수련하는 양이, 열매를 먹어 얻는 양보다  많았으니깐.


물론 이린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두었다. 저 어리석고 멍청한 행동도 만년을 넘게 산 이린에게는 그저 귀여운 장난이었다.


어차피 그녀라면  장난이 끝나면 못 챙겨준만큼 이랑과 막내에게  줄 것이다. 당연히 둘에게는 그만큼 덜  것이고.


문제는 300년이 지난 시점에서 터졌다.

“열매 맛이 이상한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열매를 먹는 막내가 이상반응을 보였다. 이루의 실수로 열매를 잘못 준비한 것이다.


열매가 가짜라는 사실에 이랑은 분노했고. 이진과 이루는  분노가 자신에게 닿기 전에, 몰래 이린의 열매 창고에 들어가 열매의 절반을 챙긴뒤 도주했다.


“이진과 이루가 도망쳤구나.”
“...엄마는 화도 안 나?”
“화날게 어디 있니. 단지 일찍 돌아오면 좋겠구나. 너희들 보는게 낙인데 말이야.”


이린은 쿡쿡 웃으며 이랑을 바라봤다.


다른 자식들과 달리 어린 체형을 그대로 유지하는 이랑. 이린은 그 작은 이랑이 머리끝까지 화난 걸 보니 너무 귀여웠다.

이린은 이랑에게 말했다.


“녀석들은 엘린시아라는 땅으로 도망쳤단다. 네가 둘을 잘 데려오면 녀석들이 가져간 열매의 절반을 줄게.”
“...필요없어. 내 것만 받을 거니깐. 그 두 새끼들은 내가  때려도 되지?”
“너무 아프게 때리지는 마렴.”
“어.”

이랑은 그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죽여 놓으려 했다. 그곳의 정령신이 자신을 막지만 않았다면.

-이곳에서 살해는 금지된단다. 어린 여우야.
“놔.  가족인데 좀 때리면 어때.”
-생명의 위협이 되지 않을 정도만 된다면 내 허락하마.
“...”


정령 신은 강했다. 이랑은 결국 그 둘에게서 손을 땠다. 열매를 회수하려 했지만. 이 미친 새끼들은 열매를 모두 홀라당 먹은 상태였다.

단기간에 먹으면 효과가 반감된다는 사실을 모른 체.




-




이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도 제약이 조금씩 느껴진다. 나름 힘 조절을 하고는 있는데 쉽지가 않다.


“언니…”
“내가 뭣 때문에 이러고 있을 거 같냐.”
“열매를 먹대로 낭비해…”
“아니야! 니들이 집에 안 돌아가서 엄마가 속상해하잖아!”

열매 따위는 이미 신경 안 쓴지 오래다. 그깟 열매 따위 이랑에게 크게 중요치 않으니까..


이랑은 어느 순간 부터 수련을 멈추고 인간 세상으로 내려갔다. 물론 그곳에 가서도 수련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막내는 200년 전부터 다른 곳으로 떠났으니. 이린은 자식들 없이 혼자 그곳에 있는 것이다.


“나야 가끔씩 엄마 보러 가는데, 니들은  잘한 게 있다고 한 번을 안 찾아가냐.”
“...가면 엄마가 뭐라 할…”
“아 좀!”

답답하다. 그렇게 생각한 이랑은 이루의 집을 그냥 날려버렸다.

휭~


“내 집!”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집. 그곳에 남은 건 기절한 이진과 이루. 그리고 이랑뿐이었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찾아가. 알겠어?”
“아, 알았어…”


이랑은 그곳에서 발걸음을 돌려 왕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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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최상급 정령이라고?”
“그, 그렇습니다.”


일행들과 같이 최상급 정령이 있는 곳으로 안내받았다. 이피아가 소개한 정령은 물의 정령으로 최상급은커녕, 상급에도 미치지 못할 거 같다.


물의 정령은 마치 각오라도 한 듯,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이딴 게 최상급 정령이라고?”
“지금은 아니지만 조금만 성장한다면 반드시…”

이파아가 소개한 정령은 중급 정령이지만 상급에 가까운 정령이었다.  역시 가능하면 최상급 정령을 소개해 주고 싶었지만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조금이 얼만데.”
“곧 될 겁니다.”
“그니깐 얼마.”
“그게…”
-흠. 내가 보기엔 100년은 걸린다. 인간!


주황이가 이피아를 대신해 말했다. 100년. 일주일이어도 모자랄 마당에 뭐 하자는 걸까.

“나랑 장난치자는 거지? 그치?”
“아, 아닙니다! 최상급 정령은 찾을 수 없어서…”
“그건 니가 알아와야지. 자꾸 나를 화나게 하면 손이 멋대로 나갈 수 있어.”
“...”

이피아는 식은땀을 흘렸다. 지금이라도 신께 물어봐야 하나? 하지만 신은 대답을 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분은 이곳의 법칙을 어기지 않는 한 인간사에 관여를 안 하시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을…


“근데 저건 뭔가요?”
“...네?”


한참 동안 숲의 한편을 쳐다보던 다윤은 손가락으로 얇은 검신을 만들었다. 그 검신은 화려하게 타오르더니 무언가를 가리고 있던 덩쿨을 배었다.


-두근.


그곳에는 푸른빛의 결정으로 된 보석이 덩쿨에 엮여져 있었다. 마치, 봉인이라도  것 같은 결정. 자세히 보니 보석 가장 중심부에는 팔뚝만한 정령이 잠들어 있었다.

“그, 그건!”
“마음에 드네.”
“...! 아, 안됩니다! ‘아리아’님은…!”
“안되면 네가 구해왔어야지.”

레빗이 이피아의 앞을 가로막게 하고, 나는 천천히 보석에 다가갔다. 푸른빛으로 가득 찬 보석. 이 정체는 알고 있다.

위대한 다섯 정령왕의 파편.

물의 정령왕, 아리아.


그녀가 이곳에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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