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82화 환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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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명은 알 거 같은데... 그래서 뭐가 왔는데?"
"우선 처음에 만난 건 로드리아. 감정의 악마."
나의 말에 다윤이 살짝 흠칫했다. 초반에 로드리아에게 호되게 당했으니깐.
뭐, 지금 만나면 당연히 이길 수 있겠지만.
"로드리아는 내가 한번 격퇴시키긴 했는데, 완전한 피해를 준 건 아니라 이곳에 온전히 있을 거야."
"두 번째는?"
"두 번째는 리비엔. 생기의 악마인데… 지금은 내 펜던트에 있지."
공작과의 계약을 통해, 공작을 죽이고 테라딘을 멸망에 길에 넣으려 했던 악마.
내가 잘 봉인했다.
그러고 보니 요새 조용하네.
'.....'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대답을 안 하다니 나중에 성수 샤워라도 한번 해줘야겠다.
"세 번째는 드레투라. 영혼의 악마인데, 내가 치명상을 입혀서 나올 일은 없어."
비호를 죽이고 로루닌을 멸망에 이르게 하려던 악마.
내가 리라와 연결된 계약을 끊어, 완전히 격퇴시켰으니 적어도 500년은 나올 일이 없다.
"이렇게 보니, 너 정말 대단한 여정을 했구나. 내로라하는 악마를 셋이나 만나다니."
"내가 좀 하긴 하지!"
문제는 셋이 아니라 넷이지만.
그건 뭐 여기서 밝힐 일이 아니다.
"마지막은 제라드 일거야. 초월의 악마. 저번 시즌 말고 한 번도 본 적은 없는데, 리비엔과 연결점이 있었기에 반드시 나올 거야."
최상위 중에 최상위.
웬만한 상위 유저가 힘을 합쳐도 힘든 악마였다.
더군다나 더욱 강해졌다면 상대하기 더더욱 힘들겠지.
그외에 하페루아가 있지만 논외니깐 넘어가자. 그녀는 악마라고 보기도 힘들다.
만일 그녀가 마지막문에 등장한다면 우리는 1초만에 목숨이 달아날 것이다.
이랑은 문을 파악하다 붉은 문양이 새겨진 문앞에 몸을 세웠다.
"그러면 둘뿐이겠네. 로드리아와 제라드. 어디부터 갈 거야?"
"....로드리아."
복수의 시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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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도시 속, 늘 겪는 소음이 들려오고 저 멀리서는 새소리도 들려온다.
나는 그 도시를 걷는다.
"안녕?"
그리고 나를 반기는 같은 반 여학생.
그녀의 교복 가슴팍에는 김다윤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어, 안녕."
"오늘도 지각인가 보네?"
"응. 그러는 넌?"
김다윤은 피식 웃으며 빙글 돌아 내 앞에 섰다. 녀석의 검은 머리카락도 함께 빙글 돌았다.
그녀의 향수 냄새가 여기까지 풍기는듯 했다.
"나야 너 기다리다 늦었지!"
"아닌 거 같은데..."
"우씨!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김다윤은 내게 팔짱을 껴 앞으로 계속 전진했다. 나는 반쯤 끌려가듯 내 눈앞에 보이는 평범한 학교로 들어갔다.
학교 내부로 들어가니 이국적인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지만 교복 하나만큼은 통일되게 입고 있었다.
"...우리 학교가 외국인도 다니는 학교였나?"
"응? 당연한 소리를 하네? 김윤, 그러니깐 게임 좀 그만하라니깐~"
"....."
"거기. 스톱."
교실로 들어가던 우리 둘을 누군가 붙잡았다. 회색빛에 검은 눈을 가진 30대 초중반 남자.
어쩐지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들었다.
....익숙한 얼굴 같기도 하고.
"너희들은 맨날 지각하냐? 경고는 저번으로 충분했지?"
"아~ 선생님~ 한 번만 봐주세요..."
김다윤은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눈앞에 선생님에게 말했지만, 남자는 전혀 봐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선생님은 들고 다니는 책에서 종이를 꺼내 뭔가를 적었다.
"됐고. 너희 둘은 벌점이야. 다음부터 지각하면 두 배로 벌점 줄 거다."
"아! 망했네... 김윤! 그러니깐 빨리 나왔어야지!"
"이걸 내 탓을..?"
아무리 생각해도 김다윤이 벌점 먹은 건 내 탓이 아닌 거 같은데. 우리는 선생님을 지나쳐 교실로 들어갔다.
다소 소란스러운 교실. 김다윤과 나는 자리가 붙은 뒷자리로 이동했다.
책상 자리에는 김다윤의 물건과 나의 물건이 서로의 영역을 당연시하게 침범하고 있었다.
우리의 옆자리에는 하얀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여우... 아니, 학생이 보였다.
"어서와! 너희들은 맨날 같이 오네."
"미안~ 미안~ 랑이도 예전에는 맨날 지각했는데. 요즘은 왜 배신했어?"
"지각 안 하는 게 배신이야?"
"그렇지!"
김다윤의 충격적인 논리에 감탄을 금치 못한 듯, 이랑이라는 이름표를 단 여학생이 입을 다물었다.
그것과 별개로 머리와 허리 끝부분에 달린 귀와 꼬리는 계속 살랑거렸다.
"뭐, 좋은 일 있어? 되게 신나 보이네?"
"아. 오늘 선생님이 잠깐 아프다고 자습하라고 했거든. 덕분에 놀고 있지."
"정말 좋은 일이네!"
선생님이 아픈데 좋은 일...?
전혀 이해하지 못할 상황인 것 같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수업을 안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해야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다.
"야! 김윤. 넌 아까부터 왜 말 안 하냐."
"어, 어?"
"나랑 다윤이만 말하면 재미없잖아. 평소에는 잘도 말하더니."
....꺼림칙하네.
기분 탓인가. 요즘 따라 기분이 자꾸 들쑥날쑥 한 거 같다.
"아 어제까지 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니 좀 피곤해서."
"공부는 무슨! 게임이나 밤~새도록 했겠지!"
"아~ 그 전설들의 뭐? 그거 나도 했는데. 재미없더라."
?! 전설들의 전쟁이 재미없다고?
그게 무슨 망발인가!
"그게 얼마나 갓겜인데! 무려 9년째 게임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 유일무이한 게임인데."
"그, 그래..."
"으.... 김윤 완전 오타쿠 같았어."
".....이 자식들이."
녀석들이 뭐라고 하든 이 게임은 역사상 가장 최고의 게임이고, 나는 거기서도 웬만한 랭커 수준이니깐.
게다가 나는 집도 부유하고 인간관계도 좋다. 여자친구도 있고, 친한 친구들도 많으니까.
이거 너무 사기 치는 거 아닌가....
신이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몰아준 게 아닌가 심히 걱정이 드는 부분이다.
"아! 김윤. 베린이는 어딨어?"
"베린? 어...."
나와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인데...
왜 갑자기 기억이 안 나지.
마치 누군가 기억을 통제로 지운 것 마냥.
"글쎄. 아마도 곧 오겠지. 걔도 우리만큼 지각하는 녀석이니깐."
"그래? 다윤이도 연락은 없고?"
"응."
베린.
자연 갈색에 키는 작고 푸른 눈을 띈 녀석.
갑자기 생각났다. 아까는 그냥 머리가 아파서 생각 안 났던 건가?
그순간 문쪽에서 드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긴 빨간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들어왔다.
....저 사람도 익숙하네.
"리비엔 선생님이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셔서 잠시 임시로 이반의 담임을 맡을 거야."
"네? 담임선생님 많이 아프세요?"
남들 다 놀고 있던 와중 맨 앞에서 공부를 하던 남학생이, 눈앞에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붉은빛의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대답했다.
"응. 그래도 일주일 정도면 다 나을 테니깐. 걱정하지 말고. 그러면 담임선생님이 하라고 한 숙제부터 검사할까?"
"아! 그거는..."
"으흠...."
"비엔 선생님 오시면 해요!"
다들 숙제를 안 한 듯 크흠 거리며 최대한 검사를 안 받으려고 노력했지만, 어림도 없다는 듯이 모두 검사하기 시작했다.
이랑은 피식 웃으며 숙제를 당당히 꺼냈다.
"멍청하게 숙제를 안 하다니. 이럴 줄 알고 미리해온 애 꺼를 베꼈지."
"?"
"?"
"뭐."
김다윤과 나는 서로 눈을 맞추었다. 그 시선은 맨 앞줄부터 검사하는 선생님에게 시선이 닿았다.
검사 속도와 여기까지 걸리는 시간.
그리고 숙제의 량.
다행히 많은 걸 쓰는 건 아니다.
우리 둘의 생각을 눈치챈 듯 이랑이 숙제를 보여줬다.
"원래 안 보여주는데. 이번만 특별히 보여준다."
"...너도 베낀 거 아니야?"
"안 보여줄까?"
"아뇨. 이랑님 한 번만 보여주세요. 흑흑."
결국 다 베끼지 못해서 혼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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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했어?"
"응. 아우... 청소를 시키냐."
김다윤은 피곤한 듯 기지개를 펴며, 바닥을 닦던 대걸레를 벽걸이에 걸었다.
어느새 해도 뉘역뉘역 지고 있었다.
"집 가서 빨리 쉬자! 나 배고프다."
“그래 뭐 먹을까?”
“으음… 윤이는 뭐 먹고 싶은데?”
김다윤은 내게 팔짱을 끼며 정문 밖으로 나섰다.
거리를 걷는데도 이국적인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게다가…
“저거 저거 봐바. 신기하지?”
“신기하네.”
뾰족한 귀를 가진 남녀 두 명이 칼을 맞대며 길거리 연극을 하고 있었다.
그 검은 마치 광선검처럼 화려한 빛을 내었다.
합을 주고받으며 싸우는 모습.
그 광경에 주위로 수십 명의 사람이 그 연극을 지켜보고 있었다.
“좀 보고 갈래?”
“그래!”
나와 김다윤은 연극을 잠시 바라봤다. 마치 엘프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외모들.
사용하는 능력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
“아~함. 이제 지겹다. 가자.”
“벌써?”
김다윤은 기지개를 켜며 방향을 돌렸다.
“차라리 윤이랑 집에서 노는 게 낫겠어.”
“뭐 하고 놀려고?”
“...흐흥~ 아주 응큼해요 김윤씨?”
“너만 하겠어요 다윤씨?”
우리는 김다윤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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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좋네.”
생각했던 것보다 집은 깔끔하고 넓었다. 핑크색의 인테리어로 도배된 방.
그 안쪽에는 적절한 사이즈의 침대가 눈에 띄었다.
“그럼 뭐 먹을래? 저번에 먹던 김치찌개도 남아있고 아니면 치킨이라도 시킬까?”
“글쎄…”
“그것도 아니면… 나부터?”
김다윤은 환희에 가득 찬 미소를 지으며 나를 돌아봤다.
...슬슬 그만할까.
“그것도 좋겠네.”
나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대로 그것을 내질렀다.
[ 무기 스킬 - 창대하여라를 사용합니다. ]
하얀 빛의 섬광은 그대로 앞의 존재를 쓸고, 이윽고 어마어마한 빛기둥이 집을 강타했다.
아니, 무너지기보단 형체를 이루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에 가까웠다.
"너무 티가 나잖아."
"완벽했는데... 어떻게 내 환각을 깼지?"
짙은 붉은 기운을 가득 머금은 하나의 형체.
환각과 감정을 조종하는 면에 있어서는 누구와도 꿀리지 않을 정도의 실력자.
"로드리아. 다윤이는 핑크색을 안좋아해."
“고작 그런거 가지고…?”
“그것도 있고.
사실 처음부터 예상은 하고 있었다. 애초부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니깐.
에덴 공작이 학생주임이고, 홍린이 선생님이고, 이랑이 학생인 세상이라니.
뭐 그런 세상이 다 있지?
"크윽...."
"나를 속이려면 하페루아 정도는 소환했어야지."
필드에서 만나는 로드리아는 상대를 트라우마 속에 가둬, 정신을 붕괴시킨다.
그 사람이 기억하는 가장 큰 고통속에서 계속 상기하게 만드는 것.
하지만 마왕의 성, 로드리아의 본거지로 들어오면 오히려 반대의 상황이 펼쳐진다.
자신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게끔 환각을 꾸며, 그 속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것.
그 환각이 너무나도 강렬해, 환각을 경험한 일부 유저들은 의도적으로 환각에 계속 걸리곤 했다.
당시 많은 논란이 퍼져서 심각할 정도로 뉴스에 많이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결국 문제를 인지한 운영자가 같은 환각에 많이 걸리면 내성이 생기게 바뀌었지만.
"킥... 용사여.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한 거지?"
"뭐가."
"이곳에서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하찮은 인간과 영물들의 존재의 부탁을 받아 가며 마왕님에게 대적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지?"
"....."
"너는 그들의 노예가 아니다. 고작 푼돈을 내주며 너를 이용하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위대한 마왕님과 대적하면서 그들의 충실한 사냥개가 될 이유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