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84화 세명의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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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신(暗神) 베린님! 최초로 마왕을 단독으로 토벌하셨다니!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마왕을 단독으로 잡으신 겁니까?"
"베린오빠~ 사랑해!"
수많은 인파 속 베린은 웃으면서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답해주고 있었다.
실제와는 다른 185는 넘을 것 같은 키와 다부진 체격.
그리고 무명도 저리가라할 정도의 잘생긴 외모.
베린과 같은 환각 속에 걸려있었다면, 절대 못 알아볼 정도의 수준이었다.
"하하, 고마워! 마왕은 뭐... 별거 없더라고."
...환각에 걸린 이유를 알 것 같긴 하다. 무슨 아이돌 뺨을 칠 정도로 애를 만들어 놓으니깐 뻑가지.
나는 베린을 유심히 보았다.
'암신(暗神)이라…'
확실히 랭킹 1등이라고 믿게끔 만들긴 했다.
전혀 듣도 보도 못한 능력이 베린에게 부여되어 있었으니까.
[ 이름 : 베린 / LV.349
특성 : 흑렬파(레전드리*****)
직업 : 암신(暗神) (히든 / 레전드리******)
스텟 : 암행 510 습격 817 / 체력 170, 근력 131, 민첩 998
무기 연마 : LV.9 / 72% ]
히든 레전드리 6성에, 특성은 레전드리 5성. 스텟은 이미 레벨을 한참 뛰어넘을 정도로 괴랄하고, 심지어 무기 연마는 무려 9레벨이다.
과거 무명의 능력치는 따로 알려진 게 없기에 확인할 수 없지만, 랭킹 2등의 마지막 무기 연마의 레벨은 5레벨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우물만 판 나는 고작 3레벨 정도.
그만큼 9레벨은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전 시즌 랭킹 2등의 말에 따르면 5레벨에서 6레벨로 올라가려면, 그동안 쌓아온 경험치량의 50배를 쏟아부어도 안될 것이라는 말이 화재가 됬으니깐.
'저 정도면 거의 전직관과 똑같은 무기를 들고 있는 셈이겠지.'
베린은 수많은 인파들 사이에서 신나게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저 상태로 보면 죽었다 깨어나도 환각이 안 풀릴 것 같은데...
'제가 공격을 해볼까요?'
"네가? 죽으려고? 쟤 조금이라도 건들면 그대로 백갈래로 갈기갈기 찢어질걸?"
과장이 아니다. 저만한 능력은 이 전 시즌을 통 들어, 최강자를 제외하고 보지 못했으니깐.
괜히 공격했다가 더더욱 환각에 틀어박히면 곤란하겠지.
'그러면 어떡하시겠습니까. 저자를 깨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데.'
"굳이 싸움으로 녀석을 깨울 필요는 없지."
어차피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말로 녀석을 깨우는 수밖에.
나는 인파를 뚫고 광장 맨 앞까지 갔다. 여전히 기자회견 중인 베린. 나는 손을 들고 베린이 나를 고를 때까지 기다렸다.
"슬슬 피곤하네~ 딱 2명만 더 받을게! 아! 거기 못생긴 기자! 그래 너! 말이야."
"....."
저 자식이...
환각만 끝나기만 해봐라. 나는 손을 내린 후 말을 시작했다.
"베린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응, 말해."
"혹시 김다윤이라는 용사를 보지 못했나요?"
"...!"
베린은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오래되는 침묵에 주위에 몰린 사람들이 웅성거렸지만, 베린은 당황한 듯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마도 환각 속에 나나 다윤 같은 일행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왜 곁에 없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죠?"
"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그녀를 두고 온 건가요?"
환각 속 시간은 상대적이다.
내가 환각 속 보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것은 내가 환각을 일찍이 깼기에 얼마 지나지 않은 것.
베린이 환각에 깨지 않고 계속해서 여정을 다녔다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시간은 훨씬 더 오래 지났을 것이다.
"여, 여기까지 하고 그만두겠어! 다들 해산!"
"베린님?"
"아직 추가 일정이 더 남았습니다!"
"베린님! 제 질문을 하나만 더 받아주십쇼! 한 번이 남았지 않았습니까!"
베린은 도망치듯 급하게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슈퍼스타의 다른 태도에 사람들이 혼란이 온듯했다. 가만히 보고 있던 리비엔이 의문이 든 듯 말했다.
'이런 식으로 정말 환각을 깰 수 있겠습니까?'
"충분해. 녀석에 대해선 잘 알거든."
천천히 녀석을 무너트리면 된다.
이 환각이 가짜라는 것.
그리고 이 가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도.
-
내 이름은 베린.
오래전 나는 이곳의 행성으로 왔다. 그리고 동료를 들을 꾸려 세계를 위협하는 마왕을 물리쳤다.
그렇게 세계는 평화로워 졌다.
나를 칭하는 수식어는 많다.
어드벤쳐 행성의 구원자, 영웅, 용사, 랭킹 1등….
그런데 요즘 이상한 놈이 나의 심기를 건드리기 시작한다.
‘베린님 혹시 김윤은 아시나요?’
나의 기자회견에서 나타난 웬 이상한 놈이, 자꾸 누구누구를 아냐고 물어보는 것.
"그게 도대체 누군데 자꾸 그러는 거야..."
이름도 비슷한 게 남매라도 되는 건가? 안 그래도 최근에 신경 쓸 일이 많아서 머리가 아픈데 말이야.
베린의 호화로운 침대 옆, 탁자에는 미리 하인이 걸러둔 수많은 쪽지들이 있었다. 황실이나, 신전, 공작가 등에서 온 러브콜들. 내용은…
자신의 딸을 영웅과 결혼시키려는 수작.
"귀찮아 죽겠네."
베린은 그것들을 읽어보지도 않고 전부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그러고는 푹신한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 김다윤. 김윤..."
별거 아닌 이름들인데.왜 이리 신경쓰일까. 마치 중요한 것을 잊은 것 같은 느낌이다.
분명 랭킹 1등에 오르기 이전에 마주한 것 같은...
'...이번에는 좀 달라질까. 넌 어떻게 생각해?’
"...! 허억...!"
베린은 갑작스러운 기억에 침대를 벌떡 일어났다. 땀에 젖은 손에 종이의 질감이 느껴졌다.
분명 다 치웠는데...
- 그분들을 아신다면 멧돼지 출몰 지대로 와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대체 정체가 뭐야?"
분명 하인들이 중요한 전달사항 아니면 전부 걸러냈을 텐데. 이런 게 왔다는 소리는...
"중요한 얘기라는 건가."
베린은 깜깜한 밤하늘 속. 어둠에 몸을 동화시킨 체 어디론가 향했다.
쪽지 속 주인을 만나기 위해.
-
"오셨군요."
"...네가 이 쪽지의 주인이야?"
깜깜한 밤하늘 속. 푸른빛의 달만이 이곳을 환하게 비쳐주고 있었다.
수많은 별들이 퍼져있는 밤하늘은 참으로 아름다운 정경이었다.
"그렇습니다."
"나는 영웅이지만, 스토커에게까지 착한 편은 아니라."
스릉-
내 몸에 수많은 칼날이 나를 즉시 밸 기세로 날서 있었다. 아니, 검이 아니었다. 마치 공간 자체가 칼날로 가득 찬 것 같았다.
"흑암-공간검(黑暗-空間劍). 어둠으로 가득한 이 공간 내에서는 내가 손가락만 까딱 거려도 넌 바로 죽어."
"...진정하시지요. 저는 싸울 의사가 없습니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안 하면, 그 즉시 너의 육체가 갈기갈기 찢길거야."
"네."
말은 덤덤하게 했지만, 진짜 무섭긴 하네. 무려 공간검(空間劍)이라…
웬만한 일생을 검술에 바쳐도 익히기 어렵다는 비기 중 하나.
사용하려면 어두운 환경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저 정도면 왠만한 상위 랭킹도 손하나 쓰지 못하고 당할것이다.
"넌 도대체 누구야?"
-
처음 눈을 떴을 때. 나는 여정을 떠나고 있었다.
"가요. 윤 씨!"
"다음 지역은..."
그리고 나와 함께 떠나는 동료들. 우리는 수많은 지역을 넘어가며 마왕의 수하를 토벌했다.
날씨가 뒤바뀌든, 지형이 험난하든, 무슨 일이 생겨도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갔다.
".... 뭔가 마음에 안 드네."
언제부터 그들과 함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그들과 다니고 있다. 그들은 능력이 뛰어나다.
그것도 매우.
그들은 개개인이 하나의 나라와 싸워도 이길수 있는 수준이다. 그들이 지나가는 곳을 그 누구도 막아 설 수 없다.
몬스터도, 사람도, 자연재해도, 그 누구도 이들을 막을 수 없다.
나랑 비교도 안될 정도로....
"...린..."
왜, 그들은 뛰어나고 난 뛰어나지 않은가.
나 또한 뛰어나도 되는 게 아닐까?
왜, 어째서, 나만?
"베린!"
"어, 어어!"
"뭔 생각해? 악마 성이 코앞이야!"
"아..."
어느새 도착했다. 최종 목적지인 마왕성 앞까지. 김다윤은 나의 이상한 태도에 고개를 갸웃하더니, 금세 김윤의 곁으로 다가갔다.
우리의 대장인 김윤은... 늘 한결같다. 뛰어나고, 똑똑하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풀어낸다.
....저것은 재능일까?
아니면 높은 누군가 준 단순한 능력일까.
김다윤은 뒤처지고 있는 나를 보더니 장난스럽게 놀리는듯이 말했다.
"설마~ 겁먹은 거야?"
"무, 무슨 소리! 마왕은 한주먹 거리도 안되거든?"
"흐흥~ 그래그래, 우리 귀여운 베린이 상대로 껌도 아니지~"
"....."
마음에 안 든다.
마왕도, 이들도.
-
"훌....륭한 싸움이었다..."
파스스스…
마왕성을 지키는 4마리의 최상위 악마. 그들 하나하나는 존재만으로 나라를 멸망시킬 정도의 괴물들 이었으나, 고작 3명에 의해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흐응~ 뭐, 별거 없네요~"
"우리에 비하면 별거 없긴 하지."
...아니, 둘인가.
고작 한합만에 김다윤에 의해 최상위 악마의 팔다리가 날아갔고, 김윤의 마지막 일격에 그의 목숨을 앗아갔다.
괴물.
이들은 괴물보다 더한 괴물들이다.
"이제 마왕만 남은 건가요?"
"그렇긴 한데... 베린."
악마의 시체를 확인하던 김윤은 나를 돌아봤다.
"어?"
"넌, 여기 남아라."
"... 뭐?"
"넌 약하니깐. 고작 그 정도의 능력으로 마왕에게 살아남을 수 없어. 이 악마들 처럼 한합만에 죽지 않을 테니, 너를 지켜줄 수도 없을 태고."
"....."
"혹여나, 공을 얻지 못할까 봐 걱정되는 거라면 걱정 마. 너의 이름은 함께 발표 해줄 테니깐."
마음에 안 든다.
마치, 나를 그저 엑스트라 취급하는 눈빛.
알고 있다. 내가 약하다는 것.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이겠지. 내가 합류하기 이전, 먼저 죽어나갔다던 기존의 동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생각하는 마음도 진심일까?
나는 고민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한번 믿어보기로 하자. 그래도 나를 마왕의 코앞까지 이끌어준 녀석들이니깐.
"아, 알았어. 후딱 마왕을 잡고 오라고."
"그래."
"잘 생각했어! 베린. 그런 실력으로 위험하니깐~"
"...넌 그 입만 다물면 참 좋은데."
"우 씨! 내가 누나거든?"
"네~ 누나~"
...어?
뭔가 심각할 정도로 위화감이...
하지만 녀석들을 붙잡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마왕의 거처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