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85화 거짓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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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떻게 된 거야!"
"왜 그래, 베린. 당연한 결과잖아?"
마왕이 토벌되고, 우리는 마왕 토벌을 의뢰한 나라로 돌아왔다.
그리고 김윤은 이렇게 말했다.
"마왕 토벌은 나와 김다윤. 이렇게 두 명의 용사가 처리했습니다."
사람들은 두 명의 용사를 칭송했고, 그들은 나라의 지원을 받아 호화로운 삶을 즐겼다.
단 한 사람만 빼고.
평소 김윤이 자주 찾아간다는 술집에 찾아가 멱살을 부여잡았다. 술집에는 평소와 달리 주인과 김윤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그...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베린. 너 같은 조연에게 비중을 나눠주기에는 명예와 재화가 한정되어 있어서 말이지."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김윤은 피식 웃으며 내 손을 잡아 뗐다. 허무하게 풀리는 손.
그저 잡기만 했을 뿐인데, 내 손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김윤은 큭큭대며 술잔을 집어 들었다.
"그래도 거지꼴로 만든 건 아니잖아? 너 정도면 나라의 중산층쯤 된다고. 허름하지만 집도 주고, 지원금도 주는데. 이 정도면 만족할만한...."
"영웅이었어."
나의 말에 웃고 있던 김윤의 표정이 변했다. 순간 술집의 공기가 한순간에 얼어붙는듯했다.
"영웅이었다고. 그런데 고작 그ㄹ-"
콰직!
내 몸은 한순간에 바닥으로 꺼져, 그대로 벌레처럼 바닥에 찌부 됐다.
어마어마한 압력에 입에서는 피가 솟구쳤다.
"쿨럭.... 미친..."
"어딜 감히. 그런 하찮은 입에서 영웅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미쳤구나?"
자리에서 일어난 김윤은 바닥을 기고 있는 나를 내려다봤다.
"내가 왜 동료를 2명만 대리고 다니는 줄 알아?"
"뭐..?"
"귀찮거든. 여정이라는 거. 숙식이든, 처리 해야 할 일이든, 아니면 돈 관리 등… 처리해야 할 게 너무 많아."
".....!"
"가사나 전반전인 계산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대리고 다니면 좋지만… 그런 걸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한없이 약하거든. 몬스터에게 한 대만 맞아도 죽을 사람들이지."
"설마... 일부로...."
지난 여정을 떠나는 몇 년간, 나는 잡다한 일 을 맞아서 했다.
이유는 녀석들의 부탁.
그리고 내가 약하니깐 이런 거라도 해서, 그나마 조금의 도움이라도 줘야한다는 생각.
김윤은 씩 웃더니, 그대로 술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아무런 표정 없이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술집 주인은 잔에 술을 따랐다.
"원래의 너는 쓸모 있는 녀석이 아니야. 가사도 잘 못하고, 제정 관리도 그다지 하지 못했지. 하지만 쓸모 있는 부분이 하나 있었지."
"......."
김윤은 집게를 집어 술이든 잔에 얼음 하나를 집어넣었다. 그러자 얼음은 형태를 유지한 체, 계속해서 둥둥 떠 그 자리를 유지했다.
"넌 능력에 걸맞게 몬스터에게 잘 죽지도 않았고, 오래 이 일을 하다 보니 실력도 좋아졌지."
김윤은 술을 음미하듯 마셨다.
술의 절반이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얼음은 남아있었다.
"뭐... 능력은 그대로지만. 잡다한 일을 처리하는 데는 아주~ 쓸만한 거지."
"...개... 자식..."
"말이 심하네. 특별히 배려해 줬잖아? 토사구팽 시킬 수도 있는 걸 살려줬는데도 말이지. 뭐, 이렇게 기어오를 줄 알았으면 그때 죽여버릴 걸 그랬나?"
"그... 러면..."
"응?"
"김다윤은 뭐지... 걔도 그냥 이용할 생각… 뿐이었어?"
씩 웃는 김윤의 태도. 저 얼굴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고 분노가 쌓이지만, 어쩐지 위화감이 계속된다.
뭐라 해야 할까, 마치 현실이 아닌 것 같은...
"김다윤은 실력이 쓸만하잖아? 내가 모든 괴물을 다 잡을 수 없으니까. 대신 남은 녀석들을 잡아주는 역할이지."
"고 작... 그것만이 아닐 거야... 넌 미친놈 이니깐.."
"뭐, 그것 말고도 다윤이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역할을 하기도 했지."
"......뭐?"
"아. 우리 꼬꼬마 베린이에게는 너무 이른 얘기인가?"
순간적으로 머리가 멈추었다.
지.. 지금 뭐라 한 거지?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개소리하는 거라 생각해?"
"설마?"
"...끅끅...
미친 사람처럼 웃던 김윤은 한참을 웃다가, 이내 웃음을 멈추었다.
"아…... 역시 너무 순수해 우리 베린이. 그런 걸 믿었어? 재밌어, 재밌어."
"거, 거짓말이라는 거야?"
"글쎄. 마음대로 생각해. 아! 이제 생각할 시간도 없으려나?"
콰직!
순간 거세진 압력에 나는 허전해진 팔을 바라봤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오른쪽 팔.
"끄아아아악!!"
"어우~ 시끄러워라. 나한테 덤빈 대가야. 목숨은 안 가져갔으니, 감사해 하라고?"
"끄으....."
"어이! 얘 잘 대려다가 집에다 던져주고 와!"
테이블을 정리하던 술집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기랄."
욕이라도 한번 뱉어주고 싶었지만, 내 의식은 이미 흐려져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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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 죽을까."
허름한 집의 곳곳에는 거미줄이 잔뜩 쳐져있었고, 삐걱거리는 가구들은 심기를 건드렸다.. 조명조차 제대로 안 들어오는 집의 천장.
손을 뻗으려고 팔을 들었는데 허전해진 팔이 눈에 보였다.
"붕대는 왜 묶어둔 거야."
죽지 말라는 건가?
차라리 그냥 죽이지.
왜....
"내가 비참하게 사는 게 더 재밌을 거라는 거겠지."
그렇다면 죽어주마.
나는 단검을 빼들었다. 오래전 녀석들과 함께 망령지대를 지나가며 얻은 단검.
"...이 단검 주인이 이렇게 죽었다고하던데."
나는 단검을 한 손으로 잡아 높게 치켜올렸다. 그러고는 심장을 거세게 찔렀다.
억센 고통과 함께 수마가 밀려온다. 온몸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
젠장.... 부디 다음 생에는...
.
.
.
.
"허억...!"
여긴....?
푸른빛의 창공과 하얀 빛의 성이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 그곳에 나는 멍하니 서있었다.
분명 나는 죽었는데...
나는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 팔이 돌아왔잖아?'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심지어 10년 전, 처음 모험을 시작했을 때 봤던 가게가 눈앞에 보인다. 나는 가게에 들어갔다. 넋이 나간 나를 보고 가게 주인이 의문스럽게 느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나는 급하게 날짜를 찾아봤다.
"......진짜 10년 전이야."
나는 회귀했다.
모험을 처음 시작한 시기인 10년 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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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을 찾아야 한다.'
10년 전이라면 김윤도 아직 강한 시기가 아니다. 그저 검을 조금 잘 쓰던 정도. 녀석이 여기서 더 성장한다면 답이 없다.
반드시 이 시기에 녀석을 잡아야 하는데...
"내가 잡을 수 있을까?"
녀석이 강하지 않은 만큼 나 또한 강하지 않다. 지금의 나는 검을 쓰기는 커녕 이제 막 모험가에 첫 발을 내딛었으니깐.
무턱대고 찾아갔다가 죽는 건 내가 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 새로운 특성과 직업을 습득했습니다. ]
[ 확인하시겠습니까? ]
"... 어?"
내 특성은 쓸모없었고, 직업은 그저 그림자만 있었는데...
[ 특성 : 흑렬파(레전드리*****)
직업 : 암신(暗神) (히든 / 레전드리******) ]
미친....!
특성은 레전드리 5성에, 직업은 히든 6성...
이 정도면 김윤보다 훨씬 강한 능력이다.
"이거면 할 수 있어."
베린은 자신의 허접한 단검을 꽉 쥐었다. 능력에 대한 이해를 위해 3일간 수련 한 뒤, 김윤을 찾으러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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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이걸로 오늘은 끝!"
김윤은 검을 내팽개친 체, 수련장에 철퍼덕 누웠다. 이런 식으로 얼마나 성장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노력에 대한 보답은 될 것이다.
그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김윤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상한 녀석. 가뜩이나 지친 김윤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뭡니까. 여긴 개인 수련장인데."
"....
"이봐요! 멋대로 들어오-"
스걱-
한순간 검격으로 김윤의 팔이 허공을 날았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김윤은 급하게 잘린 팔을 부여잡으며, 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크악… 뭐야 미친놈이..."
"어때. 네가 한 짓을 똑같이 따라 해봤는데. 난 잘린게 아니라 짓뭉개진 거라 더 아팠지만."
"뭐라는 거야! 미친! 난 그런 적이 없다고!"
"...맞아, 없지. 아직은."
베린은 하하... 웃으며 뚜벅뚜벅 걸어갔다. 어마어마한 기세.
물론 10년 후의 김윤에 비하면 별거 아닌 기세였지만, 이제 막 수련을 시작한 김윤에게는 세포 하나하나가 그를 경계할 정도의 위협이었다.
"왜... 왜 나한테 그러는 거야! 저리 가!"
도망가 봤자. 암신(暗神)의 능력을 지닌 베린에게는 역부족이다. 등을 돌리자마자 그의 발목이 잘려 나갔다.
이제는 김윤이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크억..."
"왜 그랬어."
"뭔 소리야. 미친...!"
"넌..."
순간 베린의 머릿속에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다.
종이를 흔드는 누군가.
'이... 돈을 가지고 싶으면... 계약...'
"큭... 뭐야.."
머리가 혼란스럽다.
분명해야 할 복수. 마땅히 죽여야 할 녀석인데, 사지를 갈갈이 찢어버려도 전혀 이상할게 없는 녀석인데.
왜... 왜 이리 마음이 무겁지.
...손이 벌벌 떨린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게 이게 맞나.
어쩌면 이게 전부 가짜라면.
'죽여라.'
"아..."
푸콰아아악...
어느새 검에서 뿜어져나간 검은 파동이 그의 육신을 흔적도 없이 분쇄했다.
그곳에는 주인을 잃은 칼만 나동그라져있었다.
"방금 누가 목소리를...."
그런데... 방금까지 누구를 상대하고 있었지?
……머리가 복잡하다. 빨리 여정을 떠날 동료들을 모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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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을 떠난 지 5년.
베린은 강해졌다.
마왕을 제외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함. 아니, 마왕조차 그를 상대할 수 없을 거라고 다들 입을 모은다.
그만큼 그는 강해졌다.
"다음 지역은 이리로 가자."
"네! 베린님!"
"역시 베린님이야! 항상 완벽하시다니깐."
"항상 믿고 있습니다."
베린을 따르는 5명 정도의 사람들. 지난 5년간 그는 어떠한 사상자도 내지 않고 왔다. 그는 항상 최선의 루트로 왔으니깐.
그에게는 어려움이 없었다. 이미 한번 걸어온 길. 어느 부분에서 위험한지, 어느 부분에서 조심해야 하는지, 그런 점들을 모두 알고 있는 베린에게는 무엇보다도 더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아,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합류하게 된 김다윤입니다. 검사에요!"
"반가워. 김다윤."
익숙한 누군가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