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102화 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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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
게이트에서 나오자 다윤이 나를 반겼다.
장비들로 꽁꽁 싸맨 채로 뛰어오는 것이, 꼭 아기 펭귄이 뒤뚱뒤뚱 걸어오는 것 같아 귀여웠다.
“별일 없었지.”
“네. 좀 몰려와서 힘들긴 했는데… 그래도 잘 막았어요.”
나는 주변을 살펴봤다. 전투로 인해 파괴된 땅.
한눈에 봐도 치열한 전투를 했던 게 눈에 보인다.
고생했네.
“수고했어.”
“저야 뭐 별거 안 막았는걸요. 랑이랑 윤 씨가 더 고생했죠.”
“이쪽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는데… 베린은 어딨어?”
“상태가 안 좋아서 사무실로 돌아갔어요.”
“왜?”
다쳤나? 다칠 정도의 장비는 아니었는데.
다윤은 딱히 숨겨야 할 사람은 없지만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그… 환각 때문인지 자기 비하가 도는 모양이에요. 달래주긴 했는데…”
“아.”
역시 그게 문제였나.
나름 적당한 조치를 취해줬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우선 제주도 쪽으로 가자. 레빗이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네!”
“그전에.”
이랑은 허공의 손을 뻗더니 분홍빛의 불이 무언가를 향해 쏘아졌다.
맞은 무언가는 어느새 한 줌의 연기로 변해 허공에 흩어졌다.
“뭐야?”
“누가 우리를 훔쳐보고 있었어.”
“...설마 사람을 죽인 건 아니지?”
아무리 귀찮게 한다고 해도 숨어든 기자 같은 걸 죽인게 아닐까?
이랑은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아니야. 무슨 물방울이었어.”
“물방울?”
“응.”
물방울이라… 그런 탐색 계열 마수가 있었나?
여긴 불이 가득한 게이트가 열린 곳인데 말이다.
“아무튼 가자.”
김윤 일행은 사라진 게이트를 뒤로한 채 자리를 떴다.
“...”
사라진 자리. 정체불명의 무언가는 땅을 한번 짚더니 이내 종적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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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아아앗!!”
쿠당탕!
“흐아얏! 내놓으라냥!”
“...”
레빗은 정체불명의 누군가와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비록 능력이 제법 감소됐다지만, 속도와 무언가를 훔치는 것에 있어서는 최고라 자부하는 레빗이다.
그런 레빗이 고작 꼬치 하나를 회수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쾅! 쾅! 후두둑…
“내놓으…”
레빗이 누군가를 쫓아갈 때마다 폭발이 일어난다. 발을 한번 디디면 땅이 파이고, 주먹을 한번 내지르면 그 일대가 아작이 난다.
콰아아앙!!
애꾿은 마수들은 그 여파에 휘말려 갈기갈기 찢겨 나간다. 레빗은 온 힘을 다해 그를 쫓았다.
그럼에도 눈앞의 존재를 잡을 수 없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레빗은 생각했다.
‘눈앞에 도망가는 도둑을 어떻게든 잡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자 주황빛의 눈에 하늘빛의 색이 침범하기 시작한다. 색이 절반정도 침범하자, 레빗의 주먹에 이질적인 기운이 깃들었다.
“라냥!”
꽈아아아앙!!!
“...!”
무표정으로 도망가던 그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몰려오는 거대한 파동. 이대로 가다간 꼼짝없이 여파에 휘말릴 것이다.
그는 왼손을 허공에 올렸다. 그러자 땅 위로 거대한 대지의 벽이 생겨나 여파를 막아냈다.
쿠득-!
“냐?”
“...이쯤이면 되겠지.”
그렇게 말한 남자는 고개를 돌려 레빗을 바라봤다.
어느새 레빗의 눈은 정상적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 모습에 남자의 눈이 일순 흐려졌지만 이내 표정은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내놓으라냥!”
“...누구의 힘을 빌린 거지?”
“냐? 무슨 소리다냥?”
“.....됐다. 이제 그건 의미 없겠지.”
눈앞의 남자는 덮고 있던 로브를 뒤로 넘겼다.
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 모습을 드러내자 그가 밟고 있는 대지가 그를 반기듯 거세게 요동쳤다.
남자는 손을 뻗었다.
“내 이름은 쿠베라. 대지의 신이다. 날 돕는다면 너희 세계의 멸망을 막아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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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했다고…?”
“네.”
S급 게이트 앞.
방금 막 공략을 마친 콜트는 비서의 말을 듣고 의문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분명 그들에게 넘겨준 게이트는 SS급에 준하는 수준의 게이트였다.
자신의 전력이 부딪혀야 공략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
물론 일반 마수들은 어지간한 소환수 한둘이 유린할 정도로 약하지만, 보스 하나만큼은 난공불락의 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야 그들은 하수인들이니까.’
위대한 로카팔라의 하수인.
무려 신의 편린을 가진 그들은 다른 마수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지금 이시기의 주인공조차 그들을 이길 수 없다.
물론 콜트는 그보다 훨씬 강했으나 승리를 확신할 정도는 아니었다.
“...둘 다 성공한 건가?”
“현재 부산 쪽을 공략한 뒤 제주도 쪽으로 건너간 상태입니다. 부상자나 사상자는 없는 모양입니다.”
“......”
일부로 시간도 꼬아서 전해줬건만 사상자 하나 나오지 않았다니.
“.....”
계획이 꼬였다.
원래는 그들이 게이트 공략에 실패해 모두 죽고, 튀어 나오는 몬스터들은 자신의 하수인이 뒤늦게 정리한다.
...라는 계획이었다.
그들을 이용해 여러 군데로 나누어져 있던 전력을 한 군데로 몰아 S급 게이트 공략에 성공했으니깐.
이렇게 되면 추가로 게이트를 공략한 자신의 입지가 더욱 확고해지겠지.
하지만 그들은 죽지 않고 공략에 성공했다.
“그래도 S급 게이트를 추가로 공략했으니 길드장님을 더욱더 칭송할 겁니다.”
“...그 칭송이 여러 명이 받는다는 게 문제지.
이렇게 되면 기연이 줄어든다.
훗날 로카팔라와 대적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기연을 손에 넣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주목이 흐트러진다면…
‘쿠베라가 나를 찾아오지 않았어. 이 시기쯤 나에게 제안을 건네야 하는데…’
위험하다.
이대로 가면 별 저항을 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멸망을 맞이할 것이다.
“...잠깐 물러나 있어라.”
“네.”
비서는 그림자로 자리를 떠났다. 그래도 다른건 몰라도 원작의 히로인인 비서가 있어서 일처리가 훨씬 수월했다.
“아아. 들리십니까.”
[...]
“들리신다면 대답해 주시길 바랍니다.”
콜트는 밤하늘의 별자리를 찾아 헤맸다. 짙은 흑광(黑光)을 내뿜는 별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부름에 응답했다.
[무슨 일이야. 콜트.]
“청할게 있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야마’님.”
죽음의 신, 야마.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죽음의 절대적인 신 중 하나다.
콜트의 소환수를 부리는 능력은 야마의 힘의 일부였다.
원작에서는 야마를 믿지 않아 그와 계약을 맺지 않고 끝까지 대적하지만, 원작을 알고 있는 콜트는 그와 진작에 계약했다.
야마는 인류의 적이 아니다.
그는 죽음을 다룰 뿐 지구의 멸망에 찬성하지도 않았고, 지구를 공격하지도 않았다.
주인공은 마지막 극 후반의 후반부까지 가서야 죽어가는 야마와 계약해 인드라와 대적했다.
만일 처음부터 계약을 했다면 소설 분량의 50화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고구마를 덜먹어도 됐겠지.’
다시 생각해 봐도 주인공의 의심병이 고구마의 90%를 차지했다.
“부산의 게이트를 공략한 헌터들이 있습니다.”
[그래? 그거 아그니 건데 대단하네. 어떻게 했대?]
“...그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겁니다.”
아무리 이런 성격의 설정이라지만 신이 너무 경박한거 아닌가?
무려 ‘죽음’을 다스리는 신인데 말이다.
[흐음… 생사부에 있으려나. 기다려봐.]
“네.”
콜트는 신의 말을 기다리는 사이 그들의 정체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은 누굴까?
원작에 없던 인물들.
소설에 등장하지 않은 엑스트라들은 많이 봐왔지만 저렇게 강한 녀석들은 처음 본다. 저렇게 강한 인물이 있었다면 소설에 언급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역시 예외가 있다면…
‘아마도 자신처럼 소설 속에 넘어온 사람이겠지.’
원작의 F급 헌터였던 주인공은 이상한 던전에서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 각성한다.
하지만 콜트가 그 기연을 먼저 차지해 주인공 대신 이 위치까지 오르게 되었다.
원작의 주인공은… 기연을 얻지 못해 별다른 일 없이 F급 헌터로 지내다, 콜트의 권유로 길드에 가입해 사무직을 맡고 있다.
안전과 F급 헌터치고는 꽤나 많은 돈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물론 콜트가 기연을 뺏어갔다는 것은 영영 모른 체.
[흐음… 이상한데.]
“?”
[없어.]
“예?”
[생사부에 없어. 마치 너처럼.]
“...!”
[뭔가 있으려나… 좀 조사 좀 해봐야겠네.]
역시.
나처럼 소설 밖에서 온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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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빗?”
“냐! 주인님!”
덥석.
제주도 게이트에 도착하자마자 레빗은 토끼처럼 폴짝 뛰어 나에게 안겼다. 똘망똘망하게 올려다보는 얼굴을 보니…
“너 뭐 했냐.”
“...! 여, 열심히 지켰다냥! 절대 게이트에 들어가거나 그러지 않았다냐!”
“......”
“아니 조, 조금만 들어갔… 그게 이유가 있는…”
“모습은 왜 본모습이야. 이랑으로 바꾸라고 했잖아.”
“으에?”
레빗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을 휙휙 살폈다.
그녀는 이랑의 모습이 아닌 본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레빗은 당황한 표정으로 어버버 거렸다.
“그.. 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냐-”
“다음 달 용돈은 없는걸로?”
“아, 안된다냥!!”
꽈아아악-!
“잘못했다냐! 제발 그러지 말라냥…”
“...알겠으니깐 좀 놔.”
이러다 뼈가 다 으스러지겠네.
뭐 이리 힘이 쌔? 아무리 기존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 정도까지 쌔진 않을 것 같은데.
마치 ‘성흔’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성흔?’
나는 레빗의 양쪽 어깨를 붙잡았다.
“너. 누구를 만난 거야.”
“에? 아, 아무도 안 만났다냥!”
“혼내는 게 아니야.”
“......진짜?”
레빗의 눈동자가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왠지 알게 모르게 뒤쪽에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응. 그러니깐 말해줘.”
“그… 쿠베라? 그런 남자를 만났다냐… 이상한 짓은 안 했다냐! 그냥 당근 꼬치를 준다길래…”
그렇게 말하는 레빗의 아공간에는 수만 개의 꼬치가 들어있었다.
“......”
“...잘못-”
“잘했어.”
“에?”
“잘했다고.”
쿠베라.
대지의 신이자 로카팔라들과 대척점에 있는 존재.
로카팔라와 대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쿠베라의 도움이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원작의 주인공은 이 시기쯤에 쿠베라와 조우해 계약을 하게 된다.
훗날 주인공이, 콜트가 얻어야 할 기연. 그것이 레빗에게 흘러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