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103화 다른 시각
-
대재앙은 지구, 즉 인류의 멸종을 원하는 신들이 마수를 내려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현재 S급 게이트들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여기는 다 잡았다냥.”
지구의 멸망을 바라는 신들은 넷.
중립이 하나.
나머지는 셋은 멸망을 원치 않는 신들이다.
“저~기는 쫓아다니느라 다 죽었고…”
그중 대표적인 신이 죽음의 신 야마.
그는 초반부에는 신들과 대적하지 않지만, 주인공의 추가적 각성 이후에 적극적으로 그들과 대적한다.
로카팔라는 사건이 터지지 않는 한 웬만해서는 서로에게 칼을 들이밀지 않는다.
예외가 있다면 대지의 신인 ‘쿠베라’ 정도인데…
“여기가 보스존이다냐!”
“죽었네.”
“그렇다냐!”
제주도의 S급 게이트.
부산 쪽과 마찬가지로 SS급에 버금가는 수준이었지만 이미 보스는 죽어있었다.
‘정확히는 쿠베라가 회수해갔겠지.’
쿠베라는 지구의 멸망을 바라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레빗은 그의 목적을 도와줄 계약자니깐.
싸울 이유가 없으니 하수인을 철수 시키는 것도 당연하다.
“이러면 대재앙이 빨리 다가오는 거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어.”
다윤의 말대로 원작보다 훨씬 빠르게 게이트들이 공략되었기에 대재앙이 일찍 시작될 수도 있다.
신들의 나태한 성격을 생각해 보면… 그러지 않을 확률이 높지만.
“우선 돌아가자.”
-
서울로 돌아온 우리는 영웅이 되었다.
세계는 두개의 S급 게이트 공략에 찬사를 보냈고 각종 커뮤니티와 언론에 우리의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나는 틈만 나면 기자 욕을 하는 이랑을 대신해 전면에 나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질문이 수십 개 쏟아졌지만 예고했던 대로 정확히 5개만 받고 나왔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같은 길드원인 김다윤 헌터님과 무슨 사이입니까?”
“예?”
“여기 사진을 보시면 아주 친근하게 계시는데 혹시 연인 관계이십니까?”
다윤과 내가 연인처럼 착 달라붙어 대화를 나누는 모습.
사진은 언제 찍었는지. 나의 사생활은 없는 모양이다.
“같은 길드 출신일 뿐입니다”
“그것뿐입니까?”
“음…”
나는 망부석처럼 서있는 다윤을 돌아봤다. 표정관리를 하지만 뭔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씩 웃어주었다.
“아직은요.”
그 한마디 때문에 인터넷은 들끓다 못해 아주 시끌시끌했다.
화면을 넘어 소리가 들린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커플 죽어…”
“넌 왜 시체가 됐냐.”
베린은 시체처럼 소파에 흐물흐물 거리며 누워있었다. 아니, 걸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정도.
“다 죽어…”
“......”
“그보다.”
이랑은 목도리처럼 두른 하얀 여우를 만지작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여기가 환각인 걸 잊은 건 아니지?”
“그럴 리가.”
“잊고 있는 거 같아서.”
“...조금 즐기고 있는 것 뿐이야.”
환각이라는 것을 잘 이용한다면 어렵지 않게 환각을 깨트릴 수 있다.
로드리아의 능력은 이미 1/5토막이 난 상태.
능력이 많이 약해졌기에 마주하기만 해도 잡아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정석적인 루트로 가고 있는 중이다.
로카팔라를 저지하고 지구의 평화를 되찾는.
“여기서 시간을 오래 끈다고 위험할 건 없어.”
“오래 끌면 다 멸망한다며?”
“그렇긴 한데… 다 방법이 있으니 걱정은 안 해도 돼.”
방법은 많다.
특이점을 이용해 강제로 찾아내는 방법도 있고, 콜트를 찾아가 계약을 발동시키는 방법도 있다.
여긴 환각이지만 녀석과의 계약이 끊어진 건 아니니까.
아무튼, 그날 이후로 2주일이 지났다.
헌터 생활은 별거 없었다.
게이트를 공략한 이후로 길드에 가입하고 싶다는 헌터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졌다.
적게는 최소 F부터 내로하는 S등급까지.
심지어 다른 나라의 S급 헌터까지 우리 ‘다윤’길드에 들어오고 싶다는 얘기까지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그래서 왜 또 제 이름이에요.”
“마음에 드는데 왜.”
“......”
사소한 잡음이 있긴 했으나 그들을 받진 않았다.
나는 길드를 운영하는 게 아닌 이곳의 ‘끝’을 보고 싶은 거니깐.
2주동안 게이트들을 공략하고 레빗과 함께 쿠베라에게 ‘성흔’을 제대로 다루는 법을 배우고있다.
이유는 머지않아 마주할 적들과 대적하기 위해서.
그리고…
과연 내가 잡아넣은 이베르다는 환각을 깨면 사라질까?
아니면 그대로 있을까?
허구의 세상인 환각이라면 사라지는게 맞다. 하지만 내가 가진 특이점의 변수를 생각했다.
테라딘의 공작에게서 얻지 못할 목걸이를 얻은 것,
디틴베리에서 두 개의 보석을 파괴한 것,
로루닌에서 레빗을 탄생시킨 것,
파괴된 망령 지대를 되돌리고 거짓된 진실을 무너뜨린 것도 전부.
전부 특이점이 있었기에 만들 수 있는 일이었다.
어쩌면 이 특이점으로 얻어낸 목걸이가 또 한 번의 변수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집중해라.”
“아, 죄송합니다.”
“로카팔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사람이 안 오는 한적한 공터.
갈색 머리의 남자는 무표정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소설 속 언급대로 연예인 빰치게 잘생기긴 했다.
‘무명이랑 비등비등한 수준이네.’
“성흔이란 로카팔라의 일부다. 그것을 얻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지.”
“이미 말했는데요.”
“아직도 깨우치지 못했으니 내가 여러 번 말하는 거 아닌가.”
쿠베라는 혀를 차며 손을 뻗었다.
그를 중심으로 두 개의 바위에 솟아났다.
“자 봐라. 두개의 차이점이 뭐지?”
“음…”
사람 키만 한 크기의 바위. 언뜻 보기에는 다른 거 하나 없이 똑같다.
복사라도 한 듯이 파여져있는 부분, 묻어있는 흙. 모든게 똑같다.
이미 ‘다르게’ 보는 방법을 터득한 레빗은 꼬치를 양손에 든 채 우물우물 거렸다.
“긍거 팡! 하명 됭는뎅냥.”
“...먹고 말해.”
꿀꺽.
꼬치를 삼킨 레빗은 양손에든 꼬치를 다시 입안에 넣었다.
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양 볼을 보니 묘하게 박탈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게 당연한 결과다. 레빗은 세계관이 다르긴 하지만 신(神)의 능력을 가진 존재다.
자연이 없으면 약해지는 월드 어드벤처의 신들과 달리, 레빗은 시스템을 자연처럼 이용한다.
이 환각 또한 시스템의 영향 아래에 있으니 바라보는 시각 또한 달리 볼 수 있는 것이다.
‘특이점을 사용하면 금방 깨우칠 거 같긴 한데…’
뭔가 자존심이 상해서 그렇게 하기는 싫다.
“바위를 단순히 바위라고 생각하지 마라. 바위 너머에 있는 존재를 보는 거다.”
“......”
그렇게 말해도 모르는데.
지금 내 주위는 불로 가득하다.
어떻게든 다르게 보기 위해 화염 동화를 최대까지 사용해 보았지만 전혀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고작 그 정도 능력을 가지고 아그니님의 능력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
‘괜히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나를 그만 풀어-’
“얘 교육 좀 시켜.”
‘네.’
내 주위를 맴돌고 있던 리비엔은 영체상태를 해제해 펜던트 속으로 들어갔다.
‘같은 처지끼리 그러는-’
‘누가 같은 처지라는 거지. 건방진 신입 따위가.’
‘이런 고얀놈이…!’
펜던트 속에서 꽤나 큰 비명이 들렸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그 사이 나는 두 개의 바위를 노려봤다.
보기에는 똑같다.
하지만 다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능 활성화.’
[ 스킬 - 지능 활성화 LV.2를 사용합니다. ]
세계가 느려진다. 시야가 넓어지고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냥?”
“호오…”
그럼에도 레빗과 쿠베라는 느려지지않았다.
아직 이들과의 수준 차이가 난다는 소리겠지.
‘보인다.’
두 개의 바위.
분명 똑같음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다르다.
내 눈을 통해 정보가 들어오고 뇌에서 그것이 정리되어 입력된다.
수많은 정보.
정보의 파도 속, 이질적인 정보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
“오른쪽.”
“이유는?”
“...바위가 아니라 하수인이군요.”
나는 오른쪽 바위를 노려봤다.
바위 아래로 거대한 골렘이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저 골렘은 지금 이 공간에 있는 게 아니다.
저 골렘은 다른 차원에 걸쳐있다. 단지 여기 차원의 바위를 머리에 걸쳐놓은 것뿐.
“드디어 이해하게 됐군.”
“우윽…”
“주인님!”
내가 지쳐 쓰러지는 걸 레빗이 빠르게 튀어와 잡아챘다.
나는 벗어나려다 힘이 하나도 없어 레빗의 몸에 기대 눕듯이 앉았다.
머리가 핑핑 돌고 지금 당장이라도 토 하고 싶을 정도로 어지럽다.
‘너무 과하게 썼어.’
가뜩이나 페널티가 쌘 스킬인데, 다른 차원의 것을 꿰뚫어 보기 위해 꽤나 많은 집중을 행했다.
보통 사람이 이 정도로 사용했다면 뇌가 그대로 터져버렸을 것이다.
나야 최강자의 능력을 가지고 있고 특이점도 있어 이 정도로 끝난 거지.
“으어어억…”
“처음엔 대부분 그런다. 미지(未知)의 것을 목도하면 부하가 오기 마련이니.”
“으에에에엑…”
“...넌 좀 심한 것 같지만.”
정신력은 한 번에 회복할 수 없다.
특이점을 사용해 되돌리지 않는 이상.
나는 어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상태를 되돌리려다 멈칫했다.
만일.
만일 이것을 되돌리면 내가 깨우친 것도 같이 되돌려지는 게 아닐까.
그럴 것 같진 않지만 불안했다.
이게 원래 불안하다고 느끼는 건지, 정신이 나가서 불안하다고 느끼는 건지 모르겠다.
“레빗…”
“냥?”
“좀 쉴게…”
나는 그대로 잠들었다.
「▲차원 」
-
나는 걷고 있다.
여긴 어딜까.
의문을 같지만 물어볼 이는 없었다. 그저 걸을 뿐.
걸으면서 느낀다. 익숙한 곳이다.
마왕의 땅, 드레구아.
모든 악마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곳이자 최상위 악마와 마왕이 존재하는 곳.
그래. 나는 이곳을 제 집 드나들듯이 다녔지.
그런데… 왜 내가 여기 있었지?
나는 발걸음을 멈춘다.
“......”
조용하다.
지나칠 정도로 조용해.
드레구아는 수많은 악마들로 비명소리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런 곳이 소리 라는게 사라진 것 마냥 조용했다.
다시 걷는다.
내가 이곳에 왜 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끝에 가면 알 수 있겠지.
난 항상 이곳에 오면 성에 깊숙이 들어가 최상위 악마를 잡고 돌아갔으니.
그렇게 끝에 도달했을 때.
[벌써 온건가… 생각보다 빠르네.]
“...누구?”
[반가워. 김윤.]
익숙한 누군가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