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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화 〉112화 피조물 (112/318)



〈 112화 〉112화 피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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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바루나는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주 한복판에 떠다녔다.
분명 우리는 인드라에게 아이라바타의 사용을 허가받아 지구를 재침공했다.

아이라바타의 위력은 확실했다. 귀찮게 굴던 소마의 장벽도 사라지고 앞발만 휘둘러도 전격이 일어 지구의 생명체들이 녹아내렸다.


어느 정도 정리됐다 싶어 수르야를 필두로 공격을 시작할 셈이었는데…

“...아파.”


아프다.
머리를 짚으려고 팔을 들어 올렸는데 어깨 아래로 감각이 안 느껴진다.
재생 역시 되지 않는다.
재생이 되지 않는다는 소리는…


“하핫! 아그니를 뭐라할 게 아니었네.”

이미 필두에 있던 아이라바타와 수르야는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아마 거처도 함께 파괴됐겠지.
바루나 역시 얼마 못 살고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아니면 지나가던 우주 생물한테 뜯어먹히거나.

“번개놈. 개자식. 나쁜새끼. 아주  같은 짓만 골라 하네.”


이제야 이해된다.
놈은 우주의 근원이 되려고 하고 있다. 근원이 되면 기존의 법칙들은 전부 무의미해질 것이다.
법칙이 무의미해 진다는건 기존의 신들 역시 예외는 아니겠지.


일...부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언젠가 버려질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지 좋아하는 애까지 이용하냐.”

에휴.
그렇게 생각한 바루나는 우주 공간에 두둥실 몸을 맡겼다.


어차피 지겹도록 오래 살아온 인생.
죽더라도 상관은 없다.

인드라처럼 원대한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럴 거면 나도 애들처럼 후계나 키울 걸 그랬나.”

그랬으면 뭔가 변했을지도…


“...부질없는─”
“부질없지 않다.”
“...! 비, 비비비비슈누????”

허허벌판에 우주공간 속, 녹색의 안광이 바루나를 내려다봤다.
그런 바루나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오래전에 사라진 삼신이라니?
이제 와서? 왜?


“왜?”
“왜냐니. 피조물 앞에 모습을 드러는  이상한가.”
“...피조물. 오랜만에 듣는 소리네.”
“자네들이  하던 말이지.”

피조물.
로카팔라의 신들은 그보다 아래급의 생물들에게 피조물이라 칭하며 천대하지만, 그들 역시 삼신에게 있어 한낱 ‘피조물’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브라흐마는  우주에 없다.”
“하! 그렇지 뭐. 나 차별할 때부터 알아봤어.”
“내가 볼 때는 모든 아이들을 똑같이 대했다만.”
“똑같이 대했으면 내가 지금 이 꼴이 낫겠어?”
“그거야 자네가 벌인 일에 대한 대가라네.”

비슈누는 허허 웃었다.
그런 모습에 바루나는 오만상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됐네요. 노친네. 나 죽을 거니깐 이제 내버려 둬.”
“왜 죽으려 하는가. 가장 위대한 별이라고 칭송받던 자네들이.”
“자칭이지.”

바루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위대한 별이니… 8개의 우주를 떠받치는 기둥이니…  의미없는 짓거리들이야. 예전에는 좋다고 떠벌리고 다녔는데. 지금 이 꼴을 보니… 부질없어.”
“철들었군.”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나이는 상대적이라네.”
“네네~ 노친네. 그래요 댁에 비하면 난 꼬꼬마를 넘어서 거의 한점의 먼지에 불과하겠지.”
“자네를 살릴 방법이 있다면 살아날 텐가?”


잠깐의 침묵.
바루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다.


“싫어.”
“어째서.”
“...살아나봤자 의미 없어. 거처도 다 박살 났고 이젠 ‘위대한’ 로카팔라도 아니잖아.”
“흐음.”
“그냥 피조물한테 처맞는 조금 강한 피조물이지.”
“그런가.”
“당신이 개입한 순간부터 우리는 신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일 뿐이야.”

어린아이는 말했다.


“그러니 가줘요.  좀 길게 잘거니깐.”
“......알았네.  뜻을 존중하지.”


비슈누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 이내 그 자리를 떠났다.

“...가란다고 진짜 가냐.”


아이는 미뤄왔던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시 그 자리.
아이는 사라졌다.

-




“후우…”

나는 검을 거뒀다.
손이 저릿저릿하지만 쓰러지거나 그럴 정도는 아니었다.

콜트는 하늘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단하긴 하네.”


하늘은 기다란 선을 그리듯 두 쪽이 나있었고, 그 너머로는 코끼리의 거체가 산산조각 나는 것이 눈에 띄었다.
마지막으로…


[두   소멸했어. 아니, 바루나님은 살아있긴 한데…”


소마는 본신의 영혼을 원래의 거처로 돌려보내며 중얼거렸다.

“저걸 살아있다고 봐야 하나?”
“회생 불가인 건 맞지?”
“아, 응. 확실히 둘은 끝났어.”

융합(融合) 기술.

속성의 융화를 이뤄 시전하는 기술로 태초부터 정해진 상성에서 벗어나 극한의 효율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천외천 이었던 인드라를 죽일 수 있던 것도  융합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융합 기술은 반드시 대척점에 있는 두 가지의 속성과, 그들과 연관되지 않은 단 하나의 속성을 섞어야 한다.

당시는 대지 / 어둠 - 바람으로 대적하였지만 지금은 바람이 없으니 대지를 사용할 수 없다.
그렇기에 대지 속성을 가진 레빗은 배제.


물론 대지와 물은 대척점에 있긴 하지만 효과를 더욱더 극대화를 시키려면 그보다 심각한 상성차이가 나는 속성이 필요했다.


그렇게 정한  불 / 어둠 - 물.


불과 물은  상성이고, 어둠은  둘과 연관되어 있지 않다.
그렇게 융합 기술은 성공적으로 통했고.

“...끝내주네.”

효과는 확실했다.
융합 기술로 강화된 이격은 세계를  등분 시키듯 쪼개버렸고, 우주를 유린하던 신들은 침몰했다.

‘이 정도면 거의 삼격 수준인데…?’


심각할 정도로 강화된 공격을 맞고도 환각은 무너져내리지 않았다.
솔직히 여기서 공격으로 환각이 깨지지 않을까 걱정을 하긴 했는데…

하늘이 갈라진 것만 빼면 환각은 멀쩡했다.


“역시…”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물어도 되겠지?”

콜트는 소환수들을 전부 해제 시킨 뒤 내쪽으로 다가왔다.


“그래.”
“너는 소설 밖에서 온 인물이다. 그렇지?”
“그래.”
“나는 주인공의 기연을 가로채 이 자리를 차지했다. 너 역시 다른 무언가를 얻어 그 자리에 올랐을 테지.”
“그래.
“너는 어떤 것을 얻어 그 자리까지 오른 것이냐.”
“그래.”
“.......”
“아, 미안. 통화 좀 하느라. 레빗 일단 거기 대기하고 있어.”
─알았다냐!

뚝.


“이제 말해.”
“...됐다. 말하기 싫으면.”


콜트는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흠. 말해주려 했는데.”

물론 대충 말해줄 생각이었지만.
어차피 이해도 할 수 없을 테고 환각을 지금 끝낼것도 아니기에 진실을 말해줄 생각은 없었다.


“근데… 넌 진짜 뭐냐.”
“뭐가?”
“인간 맞아? 아무리 비슈누님의 힘을 빌렸다고 해도 너무 강해.”

소마는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사실 삼신께서 숨겨둔 최종 병기…  그런 거 아니야?”
“상상이 과하네.”
“평범한 인간이라기보단 그게 더 현실성 있는 걸.”
“흠…”


 소마 시점에서는 그렇게 보이겠지.
애초에 특이점이 없었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술은 사용할 수 없었을 테니깐.


원작에서도 신들의 희생으로 간신히 사용할 수 있던 기술이었다.
나 역시 그런 게 없었다면 시전한 순간 몸이 터져나갔겠지.

‘의외로 육체의 부하가 적었어.’

저번에 한번 쓰러지고 난뒤로 특이점 사용이 더 수월해졌다.
이마가 살짝 지끈거리는 것만 빼면.

“정비한 다음에 인드라를 잡으러  거야.”
“...할 수 있을까.”
“그럼.”

지금 당장도 잡을 수 있다.




-




북쪽의 대지.

잔뜩 파괴된 거처.
칼날처럼 쏟아진 바람은 대지를 갈랐다. 대지는 그에 반격하듯 수십의 거대한 주먹으로 변해 바람을 잡으려 들었다.
그러나 그런 공격이 무색하게 바람은 유유히 빠져나가 허공에 섰다.

피잇─


날카롭게 변한 기다란 바람 칼날은 주먹을 단숨에 베었다.
무너져 내리는 대지.


바람은 입을 열었다.

[그만 포기해라.]
[...누가 할 소리인지 모르겠군.]
[넌 나를 이기지 못한다 쿠베라.]

바유는 백색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대지를 노려봤다. 파괴된 대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수복되었다.

[그만 포기하고 인간들을 돕지 마라.]
[난 인간들을 돕는 게 아니다.]
[...지구의 멸망을 막는 것이 곧 인간을 돕는 것이다.]
[전제가 잘못되었군.]


쿠베라는 대지의 형상을 벗어나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색과 같은 갈색의 창을 쥐어든 그는 바유를 올려다보았다.


[지구의 멸망이 아닌 우주의 멸망이다.]
[헛소리를─]
[인드라를 거처를 보았나.]
[......]
[봤겠군.]

인드라의 거처, 천뢰의 숲.
그곳에는 수십만 년을 넘게 수련을 하고 있는 인드라외에 다른 생물들이 존재한다.

과거 로카팔라와 맞먹는 힘을 지녔던 괴수와 하위급 신들.
그들은 모두 죽거나 붙잡혀 숲의 일부로 사용되고 있다.

[인드라의 기행은 결코 가벼이 볼 사안이 아니다. 그가 인류를 멸종시키려는 이유도 그러한 기행에 포함되어 있지.]
[...무슨 기행을 말인가.]
[우주의 무게를 줄이는 것.]

쿠베라는 창을 대지에 꽂았다. 그러자 대지를 강하게 압박하듯 중력이 거세졌다.

[기존의 법칙을 뒤틀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을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다. 괴수의 절멸, 하위 신들의 몰락, 인류의 멸망이 그러한 이유지.]
[...]
[우주는 이미 포화 상태다. 삼신이 자리를 비운 이후로 더욱 심화되었지.]

알고 있다.
인드라의 기행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새로운 삼신으로 등극해 격을 올리려던 것. 인드라가 직접 언급해 준 내용이었고 그것에 대해 의문이나 불만을 가지지도 않았다.


힘을 가진 자들은 그에 걸맞은 위치를 가져야 하는게 마땅하다.

[그게 어쨌다는 거지. 우주의 무게를 줄이면 멸망을 더욱더 막아내는 일이 아닌가? 그의 행동은 멸망이 아닌 구원에 있다.]
“구원이 아니라 파멸일세.”


자박.

허공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녹색의 머리카락에 녹안을 지닌 존재. 그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대지를 누르던 중력이 완화되었다.

[비슈누…?]
“오랜만이군 바유. 전에는 바루나를 보았는데… 이것 참. 늙은이가 괜히 끼어든 건가?”
[당신이 어째서...]
“내가 나서는 게 이상한가?”


바유는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쿠베라가 비슈누를 불러온 건가? 오래전에 사라진 삼신을?
나를 설득하기 위해? 아니면 나를…


“나를 죽이러 온 건가?”
“말은 편하게 해도 된다네.”
“...당신은 여전하군.”
“허허… 바루나도 그렇고 다들 철이 들었구나.”

비슈누는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런 비슈누의 모습에 바유는 불길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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