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0화 〉0. 현실에서 (1) (120/318)



〈 120화 〉0. 현실에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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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파란만장했네요.”

나와 다윤은 카페에 앉아 창 너머를 살펴봤다.
여전히 잠든 사람들.
카페 알바도 잠들어 커피는 직접 계산해 내려 먹었다.

물 양이 안 맞는 것 같지만 감수해야지.

“앞으로 끝나지 않겠죠?”
“이제 시작이지.”

이 모든 것이 한여름 밤의 꿈처럼 느껴질때가 있지만, 저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보면 도저히 그 감상이 들지 않는다.

1년 동안 성장하라는 하페루아의 말에도 우리가 현실로 돌아와 있는 이유는…

[ 현재 통합 서버 안정화를 진행 중입니다. ]

안정화까지 27시간 12분 14초...]

월드 어드벤처는 서버의 겹쳐짐과 시간이 흐름을 겪고 있는 중.
대충 요약하면 서버 점검 중이란 소리다.

호록.

다윤은 커피를 마시다 탁자에 내려놓았다.

“...옛날 일이 떠오르네요.  씨가 처음 저한테 제안한 그때.”
“아.”

‘안녕, 택시 기사님.’

살짝 건방지기도 했던 과거.
제안은 다소 거칠었지만 결코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나 다윤이나 효과적인 성과를 낳았으니까.

“… 근데 구름을 별로 타지도 않았네요.”
“언제까지 택시만 탈 수 없잖아?”

다윤의 구름은 초창기에는 필수적이었다만 어느 순간부터 필요로 하지 않게 됐다.
애초에 다윤을 영입한 이유도 이동 기술의 필요성이었고.

물론 그 이유가 히든 루트를 타기 위함으로 바뀌긴 했지만.

“악마…”
“응?”
“하페루아라는 여자랑 뭔 얘기를 나눴어요?”

다윤은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설마 질투하는 거야?”
“아, 아니요! 그냥 구, 궁금해서요.”

수습하듯 허둥지둥 대는 다윤을 보니 꽤나 귀여웠다.

“도와달래.”
“네?”
“그러니깐…”

「▲맹약 」

지잉─!

이마 위로 보랏빛의 문양이 빛을 발한다. 문양은 나의 행동을 강하게 억제했다.

“큽…”
“윤 씨?!”
“아, 괜찮아.”

...그러고 보니 발설의 제약도 같이 있었지.
하페루아의 배신하지 못하게 걸어 둔 건데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내가 걸릴 줄 몰랐다.

“그 여자가 한 거예요?! 이 미친ㄴ…”
“...”
“흠흠… 나쁜 여자네요…”

다윤은 언제 험한 말을 했냐는 듯 다시 의자에 앉았다.
빛이 가라앉는다. 나는 이마를 문지르며 대충 그 기준을 측정했다.
이 정도는 말해도 되겠지.

“나쁜  아니야. 그녀를 도와주고 나도 합당한 대가를 받기로 했어. 이건 증표고.”
“...진짜죠?”
“응. 진짜야.”
“......”
“...진짜야. 믿어도 돼.”
“......후하, 모르겠다아아…”

드르륵.

의자를 밀어 넣은 다윤은 어느새 내 옆자리에 앉아 머리를 기댔다.

“모르겠으니까, 나 여기 있어도 되죠?”
“응.”

나는 다윤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멈칫했다.
머리는 싫어하니…

말캉.

“...므에여.”
“볼이  말랑말랑하네.”
“으에… 유씨는 저마 이사해요…”

한참을 만지작거리던 나는 손을잡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

카페에만 앉아있기도 뭐 해서 영화관에 왔다.
역시 사람들은 자고 있다.
영화는...

“영화는 역시 안 하네요…”
“음.”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이곳의 시간도 거의 한 달 가까이 지났다.

“뭐하지.”
“그러게요.”

사실 그동안 아무것도 안한 것도 아니다.
원래 안정화의 필요했던 시간이 35시간이었으니까.

[ 안정화 까지 24시간 9분 11초...]

이미 11시간이나 붙어있었던 셈.
그동안 인터넷을 살펴보거나 여러 군데를 돌아다녀 봤지만 깨어있는 사람은 극소수고, 그마저도 다시 잠들고 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렇다면 지구는 단순히 게임 유저를 끌고 오기 위한 행성일까,
아니면 여기 자체도 게임화되어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쉽사리 답을 내기가 어려웠다.

“여기는 어때요?”

다윤이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내게 화면을 내밀었다.
화면 속에는 귀여운 고양이와 강아지가 보였다.

“애견카페?”

-


“개도 자네.”
“고양이도 자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새삼스럽게 알아차렸다.

“...동물들은 무슨 게임을 하고 있을까요?”
“글쎄, 간식을 많이 얻는 게임을 하고 있으려나.”

동물들의 지식수준에 맞는 게임을 진행하는 건지, 아니면 인간 중심의 게임으로 맞춰서 진행되는 건지.
하페루아와 계약하고 여러 지식을 습득한 나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다윤이는 잠들어있는 고양이를 껴안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레빗하고 비슷하게 생겼네.

“흠…  생각은 다른데.”
“응?”
“여태껏 우리는 게임을 해왔어요. 보상과 능력을 받았어요. 그 대가는 현실에서도 드러나고 있고요.”

다윤의 손이 내 이마를 향했다.
이건 보상이 아니긴 하지만 지금은 말을 끊기 애매한 타이밍이니 넘어가자.

“제가 볼 때는 원하는 것을 이뤄주는  아닐까요?”
“원하는 것?”
“사람은 유희를, 애완동물은 자유와 행복을, 그 외의 동물은 생존…”
“......”
“어쩌면 게임이라는 것도 그런 것에서 파생될 걸지도 몰라요. 그러니… 이런 고양이들은 행복을 찾는 게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아니다.
그건 그런 허황된  아니다.
게임은 관찰자의 단순한 유희를 위해서만 운영되니까.

하지만 나는 말할  없다.
하페루아와 나눈 얘기는 제약이 걸려있으니까.

‘제약을 괜히 걸었나.’

“그럴 수도 있겠네.”
“그죠?”

나는 웃는 다윤의 앞에 풀석 앉았다. 그러고는 무릎위에 주황색의 고양이 하나를 올려놨다.
아니, 그냥 올려졌다.

“...?”
“......”
“......”

적막이 흐르고.

“...들켰냥?”

레빗이 눈을 떴다.


-

“치… 나름 재밌었는데냐.”
“티가 나서 말이지.”

기척은 숨겼지만 레빗과 연결된 나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숨기려 들었기에 그냥 모른척해줬지만.

옆을 바라보니 충격적인 표정에 다윤이 보였다.

“어, 어어떻게 여기에…?”
“...? 다윤님도 이상하다냐. 아까 본인이 한말을 기억하지 못하는 거냥?”
“어? 아…”

‘여태껏 우리는 게임을 해왔어요. 보상과 능력을 받았어요. 그 대가는 현실에서도 드러나고 있고요.’

현실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이마의 문양 따위는 대가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레빗은 다르다.
그녀는 정말 게임에서 비롯된 ‘대가’니깐.

“왜 정체를 숨긴 거야?”
“내가 다른 행성에 들키면  된다고 생각해다냐. 그리고...”

레빗은 음음 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다 우리 둘을 휙휙 돌아봤다.

“주인님이랑 러브러브를 하고 있는데 내가 어찌 나설수 있겠냥.”
“...!! 아, 안 했어!”
“곧 할거 아니었냥? 번식은 인류의 필수 요소라고 알려져 있다냐.”
“으으…”
“주인님도 너무하다냐. 이렇게 원하고 있는데 왜 해주질 않는 거냥?”
“내가 뭘…”
“레빗!”

다윤은 레빗의 입을 틀어막았다.
어드벤처에서라면 이렇게 틀어막는  불가능했지만, 지구에서의 레빗은 그다지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읍읍!”
“우리 레빗이 고양이로 돌아가자? 내가 당근 꼬치 사줄게.”
“읍!”

펑.

레빗은 어느새 고양이로 변했다.
 쉽네.

“후우…”
“슬슬 갈까.”
“네? 어딜…?”
“어디긴 집 가야지.”


-

다윤은 집에 멍하니 앉아있다.
사촌 동생인 아연이는 이전에 침대에 던져둔 곳에서 곤히 자고 있다.

“흠흠…”
“...음.”

그리고 윤 씨와 내가 있다.
어째서 우리 집으로 왔는지 모르겠지만 레빗 떼문에 정신이 없어져서 이렇게 됐다.
...절대 사심이 들어 그런 게 아니다.

그런 거다.

술이라도 먹을까 했지만, 술을 먹으면 나 자신을 통제할  없을 거 같아서 간신히 참아냈다.
...윤 씨도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라, 라면이라도 드실래요?”
“좋아.”
“으으…”

저 웃는 얼굴을 보면 자꾸만 얼굴이 붉어진다.
과거의 환각 속의 기억을 조금씩 피어난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짝!

나는 스스로의 뺨을 후려쳤다.

‘좋아, 침착하게...’

윤 씨도 나에게 관심이 있다. 나는 더더더더 관심이 있다.
그런데 차마 드러내기가 부끄럽다.

차라리 아예 환각처럼 이성이 날아가면 좋겠─

짝!

“......”
“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라면은 완성됐다.
라면은 내가 생각해도 꽤나 잘 만들었다.
라면에 무슨 조예가 있겠냐마는 아연이가 늘 하던 말이 ‘언니는 라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끌인다’ 였다.

“맛있죠.”
“맛있네. 엄청 맛있어.”
“후후! 이 정도는 기본이죠.”

다 먹고 후식으로 차를 마시며 윤 씨의 얼굴을 보았다.
연예인처럼 조각 같은 외모는 아니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얼굴이다.
이런 얼굴을 못생겼다고 하는 베린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외국에서 자라서 미의 기준이  다른가.’

그러지 않고서야 게임 속 여자들이 윤 씨에게 달라붙을 이유가 없으니깐.
특히  악마 년이… 아, 아무튼.

꿀꺽.

커피를 마시는 김윤의 목울대가 넘어간다. 그것을 본 나의 침도 꿀꺽 넘어갔다.

뚜뚝.

그 순간 머리에 자리 잡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아, 그리고 다윤─”

또 쓸데없는 말을 꺼내려던 김윤의 입을 틀어막았다.

두근, 두근.

입을 마주하고, 혀를 마주했을  커피의 씁쓸한 맛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성이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환각 속의 기억이 범람하고, 그와 함께 했던 그때의 감정이 수면 위로 들어섰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꼭꼭 감춰져있던 감정을 내비쳤다.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김윤 역시 그것에 호응하듯 몸을 휘감았다.


-

“우으... “
“...정신 없네.”

정신없다.
방금까지 정신없는 일을 보내다 보니 정신이 없었다.

[ 안정화까지 13시간 9분 11초...]

말로 하긴 그렇고 그냥 그렇다는 소리다.

“윤 씨이… 안아주세요…”

나는 말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다윤이를 끌어안았다.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이렇게 돌발적으로 나올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다윤이 내비친 감정은 결국 환각 속의 감정이니깐.
완전 상관이 없다곤 할 수 없어도 어느 정도 괴리감이 있기 마련이었다.

때문에 적어도 1년, 길면 3년 정도로 생각했지만 내 생각보다도 훨씬 빨리 감정의 변화가 일어났다.

“윤 씨도 나아 좋아하죠요...”

지친 듯, 발음이 꼬인 것을 보니 귀여워서 미칠 노릇이었다.

“아니, 사랑하는데.”
“읏…”

다윤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녀와 맞닿은 몸이 나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이 이상은 좀 힘든데.

아무리 차원 세계의 힘을 얻고 초월의 영역에 들어섰다 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레빗과 마찬가지로 지구에서 별반 힘을  수도 없고.

...레빗?

“...”
“...”

나도 이성이 날아가긴 했구나.
창문 너머로 투명화된 레빗은 흥미롭게 우리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 왜요 윤 씨?”
“아냐.”

지금 상황에서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
말하면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터질 수도 있으니.

나는  상황을 조금  즐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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