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1화 〉0. 현실에서 (2) (121/318)



〈 121화 〉0. 현실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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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화까지 1시간 11분 37초 남았습니다. ]

다윤은 지친 몸을 이끌고 식사를 했다.
어젯밤의 기억이 생생히 드러나자 얼굴이 화끈거리고 온몸이 부끄러웠다.

‘진짜, 진짜 좋아해요. 좋아해도 되죠? 네? 좋아해도 되는 거죠?’
‘윤 씨는 너무해요. 왜 자꾸 모른 척, 아닌척하는 거예요.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줄 수 있잖아요.’
‘그 악마 여자랑은 무슨 관계에요. 멋대로 바람피우면 안돼요. 어디까지나 비즈니스! 관계여야 한다고요. 알겠죠!’

“...으아아악!!”

쿵쿵!

미쳤어 김다윤!
어쩌자고 그런 오그라드는 말을!!

나는 탁자에 머리를 마구 박았다.

“으으으… 죽을 거 같아...”

환각의 감정이 가라앉으니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그러자 당시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던 말들이 화두처럼 떠올랐다.
그동안 환각 속의 감정은 언젠가 얻게 되는 감정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냥 미친 것 같다.

내가 내가 아닌 느낌.
고삐가 풀린 김다윤은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으으… 이제 윤 씨를 어떻게 봐아…”
“뭘 어떻게 봐?”
“그야 제정신으로는  볼…!!!”

다윤은 귀신이라도 본 마냥 탁자를 치며 쿠당탕 뒤로 넘어졌다.
흩날리는 음식과 그릇들.
방에서 나온 최아연은 이게 뭔 상황인가 싶어 자신의 사촌 언니를 보았다.

“뭐 이리 놀래?”
“아, 어… 너 언제부터 일어났어?”
“방금? 근데 왜?”
“아, 아냐.”

못 봤다면 됐다.
사실 여기서  것도 미친 짓이었다. 아무리 일어날 확률이 적다고 해도 옆방에 아연이가 있었는데.
나도 나지만 윤 씨도  대담했다.

“근데… 누구 왔어?”
“어, 어어어??”
“아니, 집안이 엄청 난리 났잖아. 설거지도 안 하고. 방은 왜 닫아놔…”

쾅!
나는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려던 아연이를 막아냈다.

“아, 안돼!”
“...?  뭐 있어?”
“아니, 그… 토! 토해놨어. 치워야 돼.”
“술 먹었어? 술 냄새는 안 나는데.”
“술 먹은지는 좀 됐고, 그… 아무튼! 앉아있어. 밥만 후딱 먹고 치워놓을게.”
“흐음~? 알았어.”

나는 간신히 아연이를 돌려보냈다.
지금 방안은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 가득하니깐.
윤 씨가 어느 정도 치워주고 가시긴 했는데 아직 전부 치우지는 못했다.

아연이는 대충 알 거 같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근데 언니는 뭐하고 지냈어?”
“뭐 사냥하고 그랬지.”
“윤 오빠랑?”
“어.”

나는 휘날린 그릇과 음식을 정리하다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근데 왜 윤 씨보고 오빠라고 해?”
“오빠니깐.”

아연이는  그런  묻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언니야말로 이상한 거 아니야?  오빠랑 거기 시간으로 몇 개월은 붙어 다녔을 텐데 왜 아직도 ~씨야.”
“어…”
“언니도 오빠라고 해봐. 그러면 좋아할걸?”

오, 오빠?
내가?
나는 잠시 윤 씨에게 오빠라 하는  상상하다, 잊혀둔 불쾌한 기억이 떠올랐다.

‘...오빠라고 해줄래?  나이 차이 별거 아니야. 호칭 정도야…’

“...아니.”
“흐응~ 이상해. 둘이  있지? 그러고 보니 언니가 혼자서 술 먹은 거 같진 않고...  오빠랑 같이 먹은 거지?”
“아냐.”
“아니긴? 밤에 엄청 시끄럽던데.”
“뭐, 뭐?”

다윤은 벌떡 일어나 아연이를 바라봤다.
설마 들은 건가?

“...진짠가보네? 대충 찍었는데.”
“아, 아냐! 별일 없었…”
“별일? 그럼 오긴 왔다는 소리네?”
“…...”

이래서 눈치 빠른 꼬맹이는 싫다니까.
아연이는 악동 같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요리조리 흔들었다.

“그치? 그런 거지?”
“조용히 해.”
“흐흐… 그럴  알았다니깐. 몇 달을 붙어 다녔는데 안 그럴 리가 없지.”
“......”

빨리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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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루닌 왜 이래? / 작성자: 로즈
2025 / 10 / 16 / 18:15
메인 퀘 깨러 로루닌 간신히 왔는데 의식이 이상한데?
방식도 다르고 영물도 달라. 혹시 로루닌 와본 사람 있으면 좀 댓글 좀 달아 줘.
다른 서버라도 ㄱㅊ

좋아요 1864개 / 싫어요 38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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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키킥이 : 그거 나임 ㅅㄱ.
ㄴ SSS급 헌터 : 너는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슬라임을  벗어났냐.
카린 : 로루닌을 벌써 갔어요? 트롤 지대를 어떻게 뚫으셨지?
ㄴ 로즈 : 누가 보석 부숴놔서 가능했어.
ㄴ 카린 : 네? 저희 쪽은 완전 멀쩡하던데.
ㄴ 선생1 : 고인물들 에반데…
v지존v : 아니, 그새 로루닌을 감? 뭔 짓을 쳐 한 거임?
ㄴ 갱안오면미드달림 : 근데 하늘 길드라 좋은 특성 받았을  같긴 해. 고인물 ㅈ망겜.
ㄴ SSS급 헌터 : 꼬우면 전 시즌에 열심히 하셨어야죠 아 ㅋㅋ.
ㄴ 안나나 : 로즈님이 열심히 하신 건데 음해 하지 마세요.
리얼무명 : 곧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ㄴ SSS급 헌터 : 한결같으니 보기 좋네.
 안나나 : 혹시 통합 서버가 열리는 건가요?
 v지존v : 통ㅋㅋㅋ합ㅋㅋ서벜ㅋㅋㅋㅋㅋ 망령지대도 못 넘은  무슨 ㅋㅋㅋ.
외안데 : **]


“한결같네.”

커뮤니티만 오면 항상 한결같아서 보기 좋다.
글의 리젠도 이전보다 훨씬 빨랐고, 각종 정보들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중 가장 화두로 떠오르는 것은 과거 유명 길드들의 행보다.

대표적인 것이 하늘과 마탑.

하늘 길드는 로즈를 필두로  길드로 나와 같은 서버 내에 있다.
대충 정예 인원은 30명 정도.
개개인의 수준은 악마 지대를 넘어오기 전의 베린과 맞먹는다.
그리고…

‘다윤이랑 연관되어 있기도 하지.’

과거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접촉하게 놔둘 생각은 없다.
필요하다면 무력을 써서라도 박살  놓을 거다.

애초에 대립이라는  성사가 안되긴 하지만.

그다음은 10대 길드이자 환각 속에서 한번 잡아내기도 한 마탑이다.
대마법사들로 이루어진 마법 길드.
길드장인 카린은 현재 마법 특성과 직업을 이용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흠…”

어차피 그들의 성장세가 급격히 오르고 있다고 하지만 딱히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다.
우리에겐 1년의 시간이 있고, 오히려 우리가 1년을 줘도 그들은 절대 우리를 따라잡지 못한다.

1년의 시간은 나의 성장보다 내 동료들에 성장이 더 의미 있다.
적어도 각자 환각 속의 수준까지는 올라갈 정도로.

베린은 암신,
다윤은 달의 여제.

오그라드는 이름들이지만 그정도까지는 올라야, 훗날 길드들과 마주쳐도 가볍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냐!”
“그래.”

레빗과 이랑은… 규격 외의 존재들이라 딱히 논할 건 없다.
아무리 백날 노력해도 이기는 건 불가능.

그건 불변(不變)의 법칙이다.

마지막으로 콜트는…

“걔는 뭐 알아서 하겠지.”

사기적인 능력을 둘둘 두르고 있으니 냅둬도 알아서 성장할 거다.

[ 안정화까지 9분 37초 남았습니다. ]

나는 집의 소파에 앉아 앞으로의 여정을 고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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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의 나무가 가득한 곳.
거대한 여우를 바라보는 이랑은 다소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갔다 올게.”
“...다녀오렴. 그쪽 세상의 나랑 잘 지내고.”
“...그런 말 하지 마.”

이랑의 눈은 글썽거렸다.

행성은 수십만 단위로 나눠졌고, 그중 이랑과 이린 같은 생물 역시 수십만 단위로 복사되어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랑은 차원을 넘고 단순한 부속품에서 벗어나면서 더 이상 이린의 자식으로 남을 수 없게 되었다.

정확히는 새로이 등장한 통합 서버를 제외한 모든 세상에서.

이린의 자식인 ‘이랑’은 단 하나의 세상 외에 수십만의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괜찮아. 그쪽의 나도 나잖니. 다 커가지고 마음만 어려 우리 랑이는?”
“...흐끅...”
“어이구 예쁜 것.”

토닥 토닥.

이린은 자신의 아이를 감싸주었다.
초월자는 아니지만 이곳의 터줏대감으로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이린은 사건의 내막을 알았다.
허나 알았다고 해도 본인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곧 자신의 아이가 아니게 될 아이를 달래주는 것뿐.

“랑이는 참 마음이 착해. 오빠, 동생들이 난동 피워서 항상 화내고 때려도 뒤로는  챙겨주잖아?”
“...그 년놈들은 맞아도 싸.”
“푸훗, 이제야 랑이 답네.”

이린은 자신의 아이를 바라봤다.

“랑아.”
“응…”
“때로는 이별해야 할 순간이 오는 거야.”
“...싫어. 엄마만 이별이잖아.”

이별.
사실상 이랑은 이별하지 않는다.
통합 서버는 기존의 가장 먼저 클리어  서버와 새로운 세계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세상이고,  전의 일어난 사건과 기억은 모두 똑같이 복사된다.

이별하는건 이린뿐, 이랑은 이별하지 않는다.
보통이 생물들이라면 이랑이 사라진 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테지만, 이린은 전부 기억할 것이다.

“......괜찮아.”
“안 괜찮아. 오빠랑 동생이라는 놈은 엘린시아에 틀어박혀 코빼기도  비추고, 막내는 수련하느라 모습도 안 보이잖아.”
“걱정 말렴. 최근에 한번 왔다 갔단다.”
“...에? 그 둘이?”

이랑은 귀에 벌레라도 들어간 듯 의문을 가졌다.
아니, 열매를 다 훔쳐 뺀질나게 도망갈땐 언제고 이제와서?

“너가 가라고 해서 왔다고 했는데… 설마 까먹은거니?”
“아.”

뒤지기 싫으면 찾아가라고 하긴 했는데 진짜 찾아갈 줄은 몰랐다.
이제와서? 왜?

“글쎄. 뭔가 바뀌고 싶었을지도 모르지.”
“...”

사륵.
이린의 손이 한번 휘젓자 이랑의 목에는 새햐얀 목도리가 씌워졌다.

“우리는 불멸이지만 늘 한자리에만 머무를 수 없어. 사람이 변화하듯 우리도 변해야 하는 거야.”
“...”
“그러니 너의 길을 가렴.”
“......꼭 다시 돌아올게.”

돌아올 수 없다.

하나로 합쳐진 세계가 생기면 기존의 세계는 힘을 잃는다. 분산된 에너지를 모여 하나로 통합하듯.
기존의 세계는 단순히 껍데기만 남을 것이다.
어쩌면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녀 역시 정확히 아는 건 없으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불확실한 약속이 이루어지길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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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가 통합됩니다. ]

분할된 세계의 축소가 시작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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