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 4. 아델리나 왕국 (3)
* * *
엔더 왓슨은 미국 출신의 유저였다.
그는 나름 준수한 특성과 직업으로 적당한 시기에 통합 서버로 진출해, 자신과 비슷한 이들을 꾸려 길드를 차렸다.
허나 대부분의 용사가 그렇듯 잘 되진 않았다.
세력을 공고히 하고 있는 4대 길드에는 발을 걸치지도 못했고, 대형, 중형 길드들에게 견제와 위협을 받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래서 동아줄을 잡듯이 온 것이 아델리나 왕국이었다.
이곳의 공주를 이기면 그녀와 결혼을 할 수 있게되고 실질적으로 왕국을 가지게 된다.
변화와 자신들을 지키고 싶은 엔더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다.
물론 엔더와 엔더 길드의 전력으로는 택도 없는 싸움이다.
당연히 이기는 건 불가능.
엔더의 목적은 싸움이 아닌 리나의 마음을 사는 것이 목표였다.
그는 꽤나 준수한 외모와 체격을 지니고 있었기에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외모적으로 뛰어난 길드원도 제법 있었으니깐.
괜찮은 길드원들을 큰맘 먹고 예약한 비싼 숙소에 데려와 잘 먹이고 꾸민 후 도전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쪽이 테드리아 호텔을 예약한 사람 맞지?”
“...? 그렇습니다.”
사람이 없는 음식점에서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동양인의 남자.
월드 어드벤처는 모든 언어가 자연스레 통역이 되기에 대화에 어려움은 없었다.
“내가 호텔을 빌릴 일이 좀 있어서. 이 정도면 충분한가?”
남자는 어마어마한 양의 금화를 탁자에 쏟아부었다.
금화가 전 시즌보다 훨씬 가치가 오른 터라 이 정도 양이면 거의 작은 마을쯤은 여유롭게 살 정도의 금액이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어마어마하게 부자인 것은 확실했다.
엔더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고마워.”
남자는 웃으며 그대로 돌아섰다.
“아, 근데 제가 가서 예약 취소를 해야…”
“상관없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깐 호텔만 안 오면 돼.”
“아 네네.”
돌아선 남자의 머리은 자신의 머리처럼 바뀌어있었다.
“...착각인가?”
엔더는 머리를 긁적이며 금화를 챙긴 뒤 그대로 다른 숙소를 예약하러 떠났다.
“그쪽이 예약한 사람인가요?”
“아, 그렇습니다.”
로즈는 엔더를 올려다봤다.
잘생긴 얼굴의 서양 남자.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이다.
아까 느꼈던 묘한 익숙함은 그냥 착각이었던 걸까?
“...저희가 방이 좀 필요해서 그런데 방 좀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 값은 두 배로 치러드리겠습니다.”
“흠... “
엔더라는 남자는 고민하듯 턱을 감쌌다. 그의 청색의 눈은 길드원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다 다시 로즈에게로 향했다.
“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뭐죠?”
그는 웃음을 참듯이 턱을 짚은 손을 올려 입을 가렸다.
“아시다시피 얼마 뒤면 아데르 리나 공주님과의 ‘대전식’이 펼쳐지지 않습니까.”
대전식.
리나 공주의 주체하에 펼쳐지는 결투다.
리나를 얻기 위해, 혹은 한 번이라도 대화하기에 몰려드는 도전자들을 리나가 전부 상대해 줄 수는 없다.
따라서 그중에서 100명.
수많은 도전자들 중 100명만이 리나와 대결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100명도 많긴 하지만 리나는 매해 열리는 대전식마다 항상 100명씩을 아무렇지 않게 상대해 왔다.
“그때가 되면 100명 안에 들 때까지 서로를 공격 안 하는 건 어떻습니까?”
“...동맹을 맺자 이건가요?”
“네!”
로즈는 고민에 잠겼다.
이 엔더라는 사람은 적어도 힘이 없는 사람은 아닐 거다.
이정도의 호텔의 절반을 예약한 사람이면 그만한 돈과 능력은 있겠지.
그래서 동맹을… 동맹?
“당신쪽은 몇 명이 있는데요?”
“둘입니다.”
“...둘이요?!”
귀를 의심했다. 아니, 고작 둘로 뭔 동맹을…
애초에 둘이라면 그리 많은 방들을 왜 예약했단 말인가.
남자는 하하 웃으며 말했다.
“원래는 올 사람이 많았는데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다들 오지 않았더군요. 많이 슬프지만 여러분들이 오니 그나마 낫네요. 하하하!”
“...”
어째 들으면 들을수록 수상하긴 하지만 나쁜 제안은 아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커버칠 수 있는 변수고 어디까지나 ‘카인’의 계획안에서만 움직이면 되는 거니깐.
무엇보다도 안마기가 너무 필요했다.
“알겠습니다.”
“그놈 뭔가 수상하지 않습니까?”
트리비아 호텔의 복도.
로즈와 하늘 길드 일행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던 중 쌍도끼의 길드원, 두드가 물었다.
“니들이 쉬자며.”
“아! 그렇긴 한데요. 길드장님. 둘밖에 없는 놈들이 50개가 넘는 이 비싼 방을 예약했다는 게 말이…”
“말이 안 되면 니가 3배나 낸 방값 낼래?”
로즈는 신경질적으로 두드를 올려다봤다.
2배로 제안한 방값을 3배로 불어나게 된 데는 오롯이 두드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까 저분이 3배로 주신다고 한거 같은데…’
“...크흠! 어, 어차피 왕국만 먹으면…”
“그래, 먹으면 되긴 하겠지.”
계획대로 리나를 이기고 왕국을 집어삼키면 그딴 푼돈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다들 쉬고 내일 보자고.”
앞으로의 계획과 카인과 함께 돌아올 ‘그자’에 대한 얘기를 더 나눠야겠지만 로즈의 머리는 이미 과부하가 온 지 오래였다.
“다들 쉬세요~”
“오케이~”
“깔끔하네.”
하늘 길드의 대부분이 잠든 트리비아 호텔.
그곳에서 가장 높고 좋은 방에 위치한 나는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늘 느끼는 거지만 역시 좋은 방은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었다.
“...다 죽이면 편하겠지만.”
나는 하늘 길드를 비롯한 4대 길드 중 일부가 대몰살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이들이 리나에게 행하려는 계획도 전부 알고 있다.
하지만 죽이는 건 좀 다른 문제다.
과거 부활이 가능했던 시즌이었다면 거리낌 없이 죽여 치워버렸겠지만 갇히게 된 지금은 달랐다.
죽는다면 누군가 부활시켜주지 않기 전까지 영원히 죽는다.
언뜻 보면 완전한 죽음은 아니기에 별거 아니라 생각할 수 있지만 부활 능력은 어지간한 고위신급이 아니라면 불가능했다.
나 역시 ‘부활의 편린’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
그 외에 히든 직업중 하나인 ‘성녀’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다만 성녀는 무려 레전드리 5성급 직업이라…
아직 홀리 에린과 오르바틴이 나오지 않은 시점이기에 한참 뒤에나 등장할 것이다.
“흐음…”
내가 나서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간 나와 일행들이 정보를 숨기고 길드를 드러내지 않고 살아왔는데 지금 와서 망칠 순 없다.
하늘 길드의 앞길을 막는 건 ‘누군가’가 아닌 특정한 세력이 되어야 한다.
나와 관련 있지 않는 제3의 세력이.
똑똑.
“들어와.”
그리고 지금, 나의 뜻대로 움직여줄 그런 세력이 있다.
벌컥.
검은색의 광택을 눈에 띄는 육중한 문이 마법에 의해 열리더니 한 여자가 들어왔다.
보랏빛의 웨이브 진 머리카락과 녹색의 눈.
판타지와 현대를 적당히 섞어놓은 마법사의 옷차림새.
그리고 160이 안 되는 키.
“당신인가요. 나에게 이 편지를 보낸 게.”
“카린.”
마탑의 길드장 카린은 베이지색의 편지를 든 채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나는 그렇게 가볍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니 진실만을 말하는 게 좋을 거예요.”
“넌 가볍잖아.”
“...몸무게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카린은 헛소리를 하는 나를 보고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그러나 경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흠… 다윤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카린.
마법 길드 마탑의 수장이자 내가 아는 ‘최강’이자 ‘최고’의 마법사다.
과거 뛰어난 마법 실력과 좋은 특성을 지녔던 그녀는 월드 어드벤처의 최강의 마법사라 불렸고, ‘파멸 술사’를 전직했던 유저를 제외하면 마법으로 그녀와 합을 나누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과거에도 강했던 그녀는 이미 터득한 지식을 토대로 더욱더 강해졌다.
[ 이름 : 카린 / LV.248
특성 : 마력 친화(레전드리*****)
직업 : 마성(일반 / 레전드리*****)
스텟 : 권능 203, 마법 767 / 체력 50, 마력 520, 민첩 20
무기 연마 : Lv.2 82%...]
특성은 이전의 카린보다 훨씬 좋은 능력을 지급받았다.
직업은 여전히 일반 등급이지만 ‘마성(??)’ 이라는 대마법사를 초월한 수준에 도달해 직업 자체가 마성으로 변했다.
현재 유저 중에 마성에 도달한 사람이 그녀밖에 없으니 히든 직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괴랄한 스텟은 특성과 직업의 콜라보의 영향.
솔직히 카린을 통합 서버에서 다시금 보았을 때 꽤나 놀랐다.
그녀의 재능과 능력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나 빨리,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성장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읽어보면 알 수 있잖아?”
“...”
내가 카린에게 건넨 편지.
그 안에는 하늘 길드의 계획이 적혀있다.
이곳의 ‘왕자’를 이용해 벌이려는 일.
그 계획은 카린이 추구하는 ‘이상’에 맞지 않는 일이다.
“...당신의 정체부터 공개하세요.”
“이게 진짜야.”
“거짓말.”
카린의 녹안이 빛을 발했다. 고위 마법 중 하나인 ‘심안(心?)’.
상대의 정보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면 그 사람의 행적이나 숨겨진 정보까지 파악할 수 있다.
“읏!”
물론 자신보다 마법 수준이 아래라는 전제하에.
“...말도 안 돼. 당신… 마성이에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쉽게도 마성까지는 아니다.
다만 초월자의 힘과 특이점이 본래의 마법 수준보다 그 이상의 효과를 가져다주는 것뿐.
실제로는 대마법사보다 조금 아래 정도의 수준이었다.
“나중에 알게 될 거니깐, 판단은 너 가해.”
“...하늘 길드의 행보. 견제는 하고 있지만 완전히 적으로 돌아서기에는 일러요. 다른 4대 길드들도 가만있지 않을 거고요.”
“...”
“더불어 당신의 정체도 모르는 상황에서 함정일 가능성도─”
“대몰살.”
카린의 입이 닫혔다.
대몰살.
용사의 9할을 죽여버리고 앞으로 들어오는 용사들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거나 죽이겠다는 계획.
여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들이 행하는 일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악(?)했다.
“알고 있잖아, 카린.”
“나, 난. 아니, 우리는 그 계획에 동참하지 않았어요. 만일 실행하려 들면 반드시 막아설 거고요.”
“그래, 알고 있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녀의 오른손에 반쯤 흔들려 떨어질 것 같은 편지를 집어 제대로 쥐여주었다.
“말했잖아. 판단은 네가 하라고.”
쿵!
어느새 방 밖으로 쫓겨난 카린은 손에 쥐여진 편지를 꽈악 쥐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