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4화 〉 6. 선별 (2) (154/318)

〈 154화 〉 6. 선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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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리나 왕국이 만들어낸 탑은 머나먼 옛날, 과거 마왕의 성 시절의 모습을 띄고 있다.

전래동화에나 나올법한 불편한 식의 형태.

“으스스하네요.”

굳이 자신의 전력들을 이렇게 따로 놓을 필요 없이 한방에 모아둔다면 그 누구도 마왕성을 침공하지 못할 텐데.

콰직!

“그러라고 만든 곳이니깐.”

층층마다 이동을 방해하는 마수를 짓이겼다.

나와 채림이 걸어온 자리에는 마수의 시체와 피가 가득했다.

이곳의 마수는 왕국에서 통제가 가능한 마수를 사육해 놓은 형태다.

가뜩이나 강해진 마수를 사육하려면 어지간한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니…

“근데 몬스터는 너무 시시해요.”

“음.”

결국 급이 낮은 고블린이나 오크 따위의 마수들을 놓을 수밖에 없다.

도전자 대부분은 그 정도 마수야 손쉽게 잡을 수 있으니, 어지간해서는 마수로부터 죽는 일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목적지에 도달했습니다.]

58층.

하페루아가 마련해둔 지도의 안내를 받아 보상의 층에 도착했다.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곳이었지만 안내 지도와 시각, 청각 강화를 통해 길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었다.

황금빛의 보물 산으로 가득 찬 방.

“우와아…”

채림이 신난 듯 보물이 가득한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무언가 튀어나왔다.

“크, 큭! 하찮은 인…”

댕겅~

“? 뭔가 있지 않았어요?”

“글쎄? 보상이나 챙기자.”

등장하다 목이 잘린 중간 보스를 뒤로하고 보상을 챙겼다.

­

“후우…”

카린은 자신의 심안(心?)을 밝히며 앞으로 나아갔다.

어둑어둑한 탑 안이였지만 마성에 달한 그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은 없었다.

“어, 언니! 가, 같이 가요!”

신입 정예, 초미는 헐레벌떡 카린의 뒤를 뒤따랐다.

떨어진 건 카린과 초미. 단둘뿐.

다른 마탑의 길드원들은 알 길이 없었다.

‘다들 실력은 있으니 무사하겠다만…’

문제는 하늘과 그들의 계획.

그 계획에 따르면 이번 선별에서 무수히 많은 이들이 죽을 수 있다.

아니 반드시 죽게 되겠지.

“어떻게든 놈들을 막아야 해.”

“네, 네!”

“우선…!”

카강!

날아든 검이 카린과 초미를 둘러싼 보호막을 뚫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뚜벅.

어두운 그림자 속,짙은 로브를 둘러싼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오… 마탑의 길드장! 카린님 아니십니까!”

“당신은 암운 소속이군요.”

“그렇습니다!”

상당히 격양된 모습을 띈 남자는 마치 연기라도 하듯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그 모습에 잔뜩 경계하듯 카린이 자신의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암운은 동쪽을 점령하기 바쁠 텐데요.”

세계의 중추라고 불리는 4대 길드는 이미 치열한 세력전을 벌이는 중이다.

물론 길드 간의 직접적인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견제를 해가며 조금씩 조금씩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남자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들썩거렸다.

“동쪽은! ...우리 신실한 3사도님이 있으니 문제가 없습니다…!”

“...”

“허나 당신은 아니죠. 지금!”

남자는 주위로 검은 안개가 몰아친다.

안개는 가뜩이나 어두운 탑의 공간을 메우고 남자의 광소가 더욱더 커지다 뚝.

정적이 흘렀다.

“동쪽에 남은 마탑 인원은 누가 있죠?”

“...이미 많은 인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카린은 옆에 있던 초미에게 눈짓을 줬다. 초미는 잠시 멈칫하다 이해한 듯 전투태세를 갖췄다.

“당신은 앞으로 두발로 못 걸어 다닐 거야.”

카린의 마법이 안개를 뚫고 남자에게 작렬했다.

­

“로즈 누님.”

“아, 카인.”

17층.

마수를 처리하고 새를 통해 정보를 모으고 있던 남자와 그런 남자에게 정보를 받던 로즈가 카인을 마주했다.

“그쪽이 날 도와준다는 사람들이군.”

정확히는 카인이 깃든 레진이.

“맞아. 당신을 왕위에 오르게 도와줄게.”

“크흠… 그보다 너희들이 말한 보상은 얻지 못했다. 이러면 일이 틀어지는 것 아닌가.”

레진은 지급받은 2등 보상인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같은 입에서 다른 의사가 표출됐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중요한 건 힘의 크기가 아니라 ‘누가’ 만들었는지가 중요하니까요.”

“그런가.”

“...니들 뭐 하냐.”

남이 본다면 자문자답하는 꼴이라 로즈는 그들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보다 잘 되고 있는 건 확실해?”

“물론이야. 누님. 다만 문제 되는 게 좀 있다면...”

“있다면?”

카인은 웃음을 감추듯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마탑이 이곳에 개입했어.”

“어, 아마 그쪽도 여기를 먹으려는 셈일 거야.”

꽈직. 로즈는 열량이 높은 음식 봉투를 구겨 그대로 던졌다.

호텔에서 마주친 카린.

아마도 이곳을 먹으려 드는 것이라.

‘점령한 곳도 많은 놈들이. 암운이랑 싸울 것이지 왜 여기 와서 난리야.’

결전을 각오한 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카인의 표정을 달랐다.

“글쎄, 그렇다고 하기에는 길드장까지 왔던데.”

“내가 오니깐 왔겠지.”

로즈는 자신의 장미를 탑에 꽃피웠다. 장미 줄기는 바닥과 벽면을 뒤덮자 어느새 자신이 위치한 층은 전부 장미 밭이 되었다.

“여긴 없네. 연결된 곳은 24층하고 11층이야. 24층으로 가보자.”

“누님. 내 생각은 달라.”

“뭐가?”

“카린 길드장은 무작정 점령하기 위해 나서는 사람이 아니야. 누님이 제일 잘 알고 있지 않아?”

“...뭘 말하고 싶은 거야.”

카린에 대해서는 로즈도 이미 알고 있다.

그녀는 카린과 짧은 기간 동안 퀘스트 명목으로 아카데미를 잠깐 다녔고, 마법 대전 이후로 서로 다시 마주한 일은 없었다.

다시 마주한 것은 호텔에서 마주친 그때가 처음.

아카데미는 고작 몇 개월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과거에는 십몇 년동안 친분이 있기도 했다.

로즈에게 있어서 카린은 짜증 나는 녀석이긴해도 죽일 정도로 나쁜 녀석은 아니었다.

카인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탑이 이번에 개입한 건 아마도 우리, 즉 하늘을 견제하기 위함 일 거야.”

“너는 하늘 소속이 아니잖아.”

“아씨! 일단 같은 팀이니깐 그렇게 말한 거지.”

“...”

“알아들어? 마탑이 하늘한테 전쟁 선포를 한 거나 다름없다고.”

...카린이?

로즈는 카린의 성정(??)을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지만 카린이 여기를 온 것도 말이 안 된다.

“마탑은 지금쯤 암운이랑 동쪽 점령 때문에 바쁠 텐데 가장 큰 전력을 아델리나로 돌린다? 이것부터가 말이 안 돼.”

“마탑이 하늘을 치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아~ 누님, 답답하네. 마탑이 하늘을 왜 치겠어. 동쪽에서 지금 반년째 대립 중인데 서로 밀릴 생각을 안 하잖아. 그러니깐 차라리 하늘 쪽이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

“.....”

“마탑이 이곳을 먹고 우리 쪽으로 진출해서…”

“잠깐.”

후욱.

꽃 핀 장미가 급격히 시들어간다.

시든 장미 사이로 누군가 푸석푸석 그것들을 밟아가며 이곳으로 당도했다.

“...? 뭐야. 로즈 언니네.”

“앨리스?”

“새 오빠도 안녕?”

“어? 아, 안녕.”

검은 머리가 찰랑거리며 흑안이 어둠을 발했다. 어둠 마법을 사용하는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암운 소속 같지만 사실은 마탑 소속이다.

마탑의 유일한 정예 흑마법사.

“다들 왜 그래? 긴장해가지고.”

“물러나라.”

“물러나있는데… 그쪽은 처음 보는데. 새로 온 하늘 길드원?”

앨리스는 흑빛으로 가득 찬 보석이 엮인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그녀의 수준은 로즈를 넘을 정도는 아니지만 흑마법은 다른 마법들과 상당히 이질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콰르륵!

카칵!

앨리스의 흑마법과 카인의 검이 맞붙는다.

검강과 마력이 충돌하고 잔뜩 시들은 장미가 사방팔방으로 흩날린다.

“카인!”

“누님! 먼저 올라가!”

“뭔 개소리야! 같이 싸워야지.”

카앙!

마법이 의해 튕겨나간 검을 급하게 회수한 카인은 몸을 빠르게 회전시켜 뒤로 날라오는 검은 사슬을 쳐냈다.

“...누님이랑 상성이 안 좋아.”

흑마법은 마기(??)와 다르지만 비슷한 성능을 가진만큼 자연과의 상성이 좋지 않다.

악마가 신과의 상성에서 우위에 있듯,

흑마법 역시 자연 능력인 장미를 사용하는 로즈에게 있어 치명적인 상성이다.

“어차피 대충 싸우다 나도 튈 거야. 그러니깐 다른 하늘 길드원부터 찾아.”

“어딜 갈려고 자꾸 그래. 3대1인데.”

우웅!

지팡이에 엮인 흑빛보석이 어둠을 발하고 이질적인 어둠이 로즈와 새를 이고 있는 남자를 몰아쳤다.

마법은 남자의 손이 가운데로 모이더니 작은 빛을 발하며 무효화됐다.

“...? 새 오빠 신성력은 언제 익혔데.”

“전직했어.”

“아? 그게 벌써 돼?”

“뭐 하는 거야 다들!”

카인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로즈와 남자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듯 머리를 긁적이며 24층 문으로 다가갔다.

“죽지 말고 적당히 빠져.”

“물론이지.”

“흠.”

콰강!

한발 늦은 마법.

이미 사라진 문에는 파괴된 마법 흔적 외에 남은 것이 없었다.

앨리스는 주위의 마력을 회수하며 중얼거렸다.

“간만에 아는 사람 인사 좀 하려니깐.”

쯧.

그녀가 혀를 차자 카인은 잔뜩 긴장한 듯이 칼에 기력을 담았다.

“덤벼라. 마탑 중에서도 꽤나 강한 편인 것 같지만 나 역시─”

“왜 연기해.”

“...뭐?”

뚜벅.

그녀가 다가선다.

“흑마법사 눈에는 보여.”

"..."

“네가 흑마법을 익힌 게.”

뚜벅.

“애초에 한 몸에 영혼이 2개…”

뚜벅.

“아니, 대체 이게 몇 개야?”

앨리스는 천천히 다가서면서도 어지럽게 육신에 놓인 영혼 무리들을 보고 오싹함을 감추지 못했다.

흑마법사인 본인조차 두려울 정도로 기이한 형태.

그만큼 카인은. 아니, 암운 소속의 사도는 괴이(?) 했다.

어느새 앨리스의 발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걸음을 멈췄다.

“암운은 정예를 사도로 구분한다던데. 넌 몇 번째 사도야?”

“...흐흐흐.”

실실 웃던 카인의 표정이 급속도로 싸해진다.

자수정 같던 그의 눈은 어느새 암흑으로 물들었다.

“안타깝네. 너 같은 인재가 사도였으면 좋았으려만.”

“난 카린 언니가 더 좋아. 별 거지 같은 신을 믿는 것보다.”

앨리스는 자신의 마력을 최대로 발휘했다.

상대는 암운 소속의 정예.

같은 흑마법을 사용하기에 상성으로서의 우위를 점할 수 없다.

전력으로 맞부딪혀야…

“그래? 그럼 죽어.”

“...!”

어두운 칼날이 몰아치고 사그라진 장미 위에는 붉은 혈흔이 흩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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