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4화 〉 7. 선택의 결과 (5) (164/318)

〈 164화 〉 7. 선택의 결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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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

관객들의 함성 소리가 울려 퍼진다.

대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소리.

그러나 카린은 저것이 허영된 것이라는 걸 안다.

그녀는 왕국이 한눈에 들어오는 높은 허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질적으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움직이는 왕국의 사람들.

그 위로는 알게 모르게 왕국 전체를 덮은 검은 막이 보인다.

지금이라도 온 힘을 쓰면 뚫고 나갈 수 있겠다만 카린은 하지 않았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기에.

그녀는 보랏빛 마력을 몸에 두르며 사건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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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

리나는 눈을 뜬다.

깜깜한 공간.

한치의 빛도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 어둠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선다.

눈을 감아도 이 정도로 어둡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어둠은 너무나도 짙었다.

용찰검은 리나의 손에 들려있지 않았으나 검의 마력이 그녀와 연결되어 있었기에 어둠에 완전히 잡아먹히지 않았다.

그러나 간신히 정신만 차리고 있을 뿐, 그 이상의 행동을 하기란 어려웠다.

“스읍….하아…”

터벅.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살짝 물컹한 느낌이 드는 바닥. 보이진 않지만 아마도 그냥 바닥은 아니리라.

‘사람…? 아니면 몬스터?’

자신을 이곳에 끌고 온 것을 보면 혐오스럽지만 사람일 것이다.

“...”

그녀는 자신을 보호하고 있던 마력을 더욱더 키웠다.

남색의 마력이 그녀를 감싸고 자신을 나락 끝까지 짓누르려던 어둠이 조금 잦아들었다.

‘...지지 않았어.’

진건 절대 아니다.

김윤님과의 전투에서는 확실히 패배했다는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아니었다.

분명 마지막 일격에 감각을 느꼈다.

베이는 느낌.

반드시 ‘한번’은 죽였으리라.

그렇다고 자신이 치명적인 공격을 받았나?

그것도 아니다.

만일 이곳이 저승이고 내가 죽은 것이라면 달게 받아들이겠다만, 용찰검과 이어진 마력이 그녀가 죽지 않았음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아아아악!!! 대체! 뭔데에에에에에에!!!”

“...!”

귀를 찢을 것 같은 소음.

3년 전 왕국을 떠들썩 하게 만든 소음 테러 범죄자보다도 시끄러운 목소리였다.

그러나 듣기 싫은 목소리까지는 아니었다.

‘저렇게 들으면 물론 싫겠지만.’

리나는 빠른 걸음을 걸어 소음의 중심지에 다가갔다.

분명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지만 사람 한 명이 날뛰는 것이 느껴졌다.

“하~ 이것도 아닌데. 암운 새끼들 뭔 제물식을 쓴 거야.”

“저기.”

“...! 무으야. 사람?”

깜짝 놀란 듯 우탕탕 넘어진 정체불명의 사람.

분명 보이진 않지만 엉덩방아를 찍었음에 틀림이 없다고 리나는 확신했다.

눈앞의 여자는 잠시 이쪽을 바라보는 기분이 들더니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리나? 아데르 리나 공주?”

“맞아요.”

“하… 공주님도 잡아먹힌 거야?”

“잡아… 먹혀요?”

여기가?

뭐… 여기 안에 가득 찬 사람들을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의문을 가지던 찰나. 손이 맞닿는 촉감에 자연스레 손을 잡았다.

“난 앨리스야. 보다시피 갇혔지.”

“아데르 리나에요. 대전중에 신성과 어둠을 쓰는 여인을 상대하다 이곳으로 와버렸어요.”

“신성과 어둠?”

“네.”

“자세히 말해봐.”

리나는 방금까지 있었던 내용을 상세히 말했다.

앨리스라는 여인이 적인지 아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나가기 위해선 정보가 필요했다.

죽여도 죽여도 부활하는 남자.

그리고 그를 계속해서 살려내는 신성을 띈 여인.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그 남자보다 더욱더 짙은 어둠을 가진 여인.

여태껏 수많은 상대를 치러왔던 리나였지만 능력의 독특함 하나만큼은 김윤과 맞먹을 정도였다.

“흐음…”

설명을 들은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허공에 퍼진 어둠을 쭉 늘려 색이 바랜 종이를 만들어 그 안에 원형을 크게 그렸다.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리나가 물었다.

“무엇을 하고 계시나요?”

“제물식의 디스펠을 위해 변칙 속성을 넣고 있어. 신성과 어둠이 섞인 식은 한정되어 있어 파악이 쉬… 아.”

따악.

앨리스의 두 손가락이 교차하자 리나의 시야가 조금 밝혀졌다.

아까보다 선명해진 시야.

비록 아직도 어둡긴 해도 가까운 사람의 얼굴 정도는 볼 수 있었다.

“이제 잘 보이지?”

“네… 당신, 흑마법사군요.”

“아, 뭐 그렇지.”

흑마법사.

어둠을 숭상하는 마법을 사용하는 이들.

마기를 사용하지 않는 마법사는 악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그러나 암운의 사도들처럼 마기가 아님에도 악한 일을 저지르는 흑마법사가 다수 있기 마련이다.

성질이 달라도 발현되는 마법의 특성은 비슷하기에.

악한 일을 저지를 흑마법사가 그렇지 않을 흑마법사보다 월등히 많았다.

때문에 최근 들어서는 여러 장소에 흑마법사의 출입이나 마법적인 제한이 잦아진 상황이다.

“그렇게 안 봐도 별 짓 안 하니까 걱정 안해도 돼.”

“아뇨. 저는 흑마법사를 차별하지 않습니다.”

리나는 그랬다.

아니, 리나를 비롯한 아델리나 왕국도 그랬다.

애초에 용찰검은 가진 리나는 흑마법을 비롯한 대부분의 마력을 막아낼 수 있었고,

그녀가 흑마법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을 이곳으로 몰아넣은 게 흑마법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네.”

앨리스는 피식 웃으며 마저 마력을 이용해 마법진을 그려낸다.

어느새 종이에는 짙은 어둠이 담긴 마력식이 그려져 있었다.

“됐다! 이제 이거면 가능성이─”

크드득!

공간이 흔틀리고 바닥을 가득 채우던 사람들이 펑펑 허공을 휘날린다.

흑마법과 용의 마력으로 보호하고 있던 두 사람을 제외한 공간 자체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어둠이 어디론가 빨려나가고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는 바깥이 깨진 유리창처럼 보였다.

“...무슨일이죠?”

“집주인이 문제가 생긴 것 같네.”

아마도 제물들을 담고 있는 주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것이라.

다른 이들은 아직 정신을 못 차려 빠져나갈 순 없었지만 마력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는 두 사람이 나가긴 충분했다.

“어찌 됐든 기회에요. 나가서…”

“아니, 난 탈출 안 할거야.”

“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앨리스의 표정은 진지했다.

“난 여기 남아서 이놈들한테 한방 먹일 거야. 그러니 공주님은 나가서 왕국을 지켜.”

“...여긴 위험해요. 자칫하다 영영 못 나올 가능성이 있고 제물의식이 시작될 가능성도...”

상대해 보아서 안다.

이 어둠은 굉장히 위험하다.

힘을 받아서 쓰는 존재들이기에 그 자체는 강하지 않았지만 제물 의식이 시작되고 만일 진짜 ‘신’이라도 불러온다면 왕국은 삽시간에 멸망하리라.

앨리스는 별거 아니라는 말투로 말했다.

“흑마법은 내가 제일 잘 알아.”

어두운 흑안의 눈동자는 곡선을 그렸다.

드드득!

“이놈 받아쓰는 힘만 쓸 줄 알지 마법 지식은 완전 꽝이야. 그러니깐 걱정하지 말고 공주님은 자기 왕국이나 지켜.”

“...살으면 왕국에서 보답하죠.”

“왕국을 주는 건 안 되나?”

“절 이기면 드릴게요.”

리나는 싱긋 웃자 앨리스는 혀를 내밀려 웩 거렸다.

“난 남자랑 결혼할 거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공주님은 자기를 이기는 사람하고 결혼한다며? 처음부터 여자는 안되는 거였어?”

“물론 원한다면 못할 거 없지만…”

이미 진 몸이라. 그녀는 그리 중얼거리며 공간을 빠져나갔다.

사라진 공간 속, 앨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의미가 없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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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텔은 잔뜩 구겨진 백의를 꾹 누른 체 눈앞의 남자를 노려봤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 동료이자 신실한 신도인 6사도, 카인.

리나를 성공적으로 ‘암실’에 집어넣고 방심하고 있는 자신을 기습했다.

지난 수년간 그 어떤 이보다도 신실했던 그라기엔 믿기지 않는 태도.

어째서 일까.

“불신자, 카인.”

“...더럽게 쌔네. 역시 성녀인가.”

“난 당신이 이해 가지 않습니다.”

아스텔의 말에 카인은 입에 고인 피를 뱉었다.

비록 사도 순위는 네 번째에 위치하지만 그녀의 강함은 1사도님을 제외한 다음 순서를 논할 정도로 강하다.

끊이지 않는 생명과 신실한 믿음에서 나오는 어둠.

그녀는 가히 불사(死)라고 칭할 정도로 죽음과 연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조금만 있었다면 신세계의 주역이 될 텐데. 하찮은 신도도 아닌 사도인 당신이 어째서.”

“...하찮은. 신실하다 신실하다 말만 해놓고 신도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냐?”

“온전한 믿음을 가지지 않은 자들은 인정해 줄 필요는 없습니다.”

“지랄.”

카인은 피가 잔뜩 흐르는 옆구리를 꾹 누르며 아스텔을 살폈다.

리나와 싸울 때도 멀쩡했던 백의는 군데군데 찢어지고 변색되어 백의라 부르기 힘들정도로 변했고,

확고한 믿음으로 가득 찼던 그녀의 표정은 악귀처럼 분노하고 있었다.

비록 그녀가 ‘두 번째’를 논할 정도로 강하긴 하지만 상대는 ‘용사’ 카인.

그의 특성인 투기장은 1대1에 특화된 능력이다.

버프와 디버프.

수많은 이득을 가지고 전투를 할 수 있는 능력이지만 투기장의 진짜 능력은 ‘기술 봉인’이다.

상대의 가장 까다롭게 느껴지는 기술중 하나를 봉인할 수 있는 것.

마법 대전의 결승전에는 채림의 ‘특성 스킬’을.

앨리스와 전투에서는 ‘흑마법’을 봉인했다.

그리고 불사, 아스텔에게 봉인해야 할 건 당연히…

“신성이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전 아직도 당신이 왜 우리를, 아니 오보로스님을 배신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그가 당신을 홀린 것인가요?”

“그?”

아스텔의 물음에 카인이 피식 웃었다.

물론 그가 시작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이미 등을 돌리기로 마음먹은 이상 계획을 저들의 뜻대로 실행시키게 놔둘 순 없다.

이유라 하면...

모두가 같은 원념을 지닌 값어치 있는 영혼들.

아델리나에 안배된 결계 주문식.

수만, 수십만의 영혼이 더해져 탄생할 ‘대몰살의 시초.’

‘내가 전부 손에 넣고 초월적인 존재가 된다. 위대한 분을 위해.’

기존의 어둠 대신 새롭게 자리 잡은 푸른 기운이 카인의 욕망을 강하게 끌어냈다.

“진짜 신의 재림이다.”

암실을 담은 ‘그릇’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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