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1화 〉 8. 귀환 (4) (171/318)

〈 171화 〉 8. 귀환 (4)

* * *

­

카린은 맑게 돌아온 하늘을 멍하니 바라봤다.

암운과 하늘의 계획을 듣고 이곳에 찾아왔고,

자신의 판단으로 불러온 길드원들이 죽음을 맞이했으며,

그 남자에게 받은 힘으로 암운의 신을 죽였다.

그리고 되살아났다.

“하아…”

더욱더 강대한 모습의 강림.

어둠으로 뒤덮인 하늘과 그 하늘을 메운 수백 개의 눈.

그것을 본 순간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저것은 과거의 봤던 마왕이라도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지 않을까.’

그리 생각했지만…

“...끝나긴 했네.”

쏘아진 번개의 창이 수백 개의 눈을 소멸시키고 다시금 광명을 되찾아 주었다.

반파된 땅과 주민들도 되돌아왔다.

어째서 돌아온 지 모른다.

다만 그리되었다.

그 남자는 나에게 조금의 설명도 해주지 않았으니까.

“카린 언니.”

“...앨리스!”

덥석.

“살아있었어…”

“...뭐야? 리나 공주가 말 안 했어?”

마탑의 흑마법사, 앨리스는 자신을 끌어안은 카린의 눈을 닦아주었다.

아무래도 다들 죽었다고 생각했을 테니 마음고생좀 했으려나.

“다들 살아있지?”

“어. 한번 ‘소모’가 된 터라 정신이상 좀 있긴 한데… 뭐, 그래도 한 달 정도만 쉬면 멀쩡해 질 거야.”

앨리스는 암실에서의 제물식을 파악하고 디스펠을 시도하려 했다.

결과는 실패.

처음에는 성과를 보였으나 오보로스의 ‘반신(半?)강림’이후 제물 의식의 격이 급격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결국 깨뜨릴 수 없음을 인지한 앨리스는 길드원들의 영혼에 속박 마법을 걸었다.

자신에게 속박당한 영혼들은 소모가 되어도 그 형체를 유지했으나 시간 벌기나 마찬가지.

이대로 사라지나 싶던 찰나.

모든 게 허무였다는듯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 한방 못 먹여 준게 좀 아쉽네. 디스펠 해서 아예 폭파 시키려했는데.”

“...그러다 다 죽으면 어쩌려고.”

“어차피 못 깨면 다 죽는 건데 뭘.”

앨리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한쪽 구석에 앉아있는 로즈를 돌아봤다.

다시 작아진 모습.

“뭐야 로즈 언니잖아.”

“...”

“왜 말이 없어. 이 언니도 다쳤어?”

불쑥.

카린의 얼굴 앞으로 앨리스의 얼굴이 다가왔다.

“아니면… 쪽팔린 건 아는 건가?”

암실에서 유일하게 눈을 뜨고 있던 앨리스는 암실과 반쯤 연결되어 있었기에 해당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

로즈가 카인을 불러온 탓에 이 사태가 일어난 것도.

대몰살이라는 허황되고 말도 안 되는 계획에 동참하고 있던 것도.

로즈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미, 미안.”

“헐.”

그녀의 말은 들은 앨리스는 뒤로 넘어질 듯이 뒷걸음질 치다 덥석! 로즈의 양팔을 잡았다.

“이 언니가 ‘사과’를 하다니. 말도 안돼! 누구야! 혹시 카인 그 자식 아니야!”

“...”

탈탈탈!

“12년 전에 210레벨 짜리 필드 보스를 스틸하고 낼름 도망간 사람이!”

“...넌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냐.”

“내가 그때 얼마나 억울했는데! 언니는 그때 장미 술사가 개사기 직업이라 쉽게 잡지만 나는 그거 물약 개 많이 써가면서 3시간 넘게 잡고 있었다고!”

“...”

로즈도 알고 있다.

아니, 겪으면서 알게 됐다.

자신이 얼마나 멍청하고 무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또 그러한 자신 때문에 희생당한 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직접 몸으로 겪기 전까지는 몰랐다.

아니, 외면했다고 보는게 맞았다.

오랜 시간동안 이곳을 살아가며 세워오고 터득한 생각이 정답이라고 확신했으니까.

앨리스는 양팔을 잡은 손을 때어냈다.

“흥, 잘못은 아니깐 쌤쌤하자고.”

“쌤쌤…?”

“나, 언니네 길드원은 다 못 살렸거든.”

“...?!”

벌떡 일어난 로즈의 반응에 살짝 놀란 앨리스가 움찔했다.

“아, 아니. 디스펠식을 억지로 짜내다 마력이 부족했거든. 그렇다고 주위 마력을 더 이상 흡수하면 나 자체가 망가질 거 같아서.”

“......”

“게다가 안면을 제대로 못 익힌 사람이면 속박이 잘 안돼. 그래서 한 10명 정도는 어찌어찌 구하긴 했는데...”

“......”

“나, 그, 그래도 제법 구하긴 했다? 그 흑마법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그만한 마법 펼칠 수 있는건 카린 언니도 못─”

“고마워.”

로즈가 환한 미소를 짓자 앨리스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언니, 근데 나이가 몇인데 자꾸 그런 모습으로…”

“...나쁜 년.”

­

“흠… 여긴 다 정리했고.”

나는 아델리나 왕궁 꼭대기에서 무형의 ‘눈’을 띄운 체 상황을 정리했다.

원한다면 왕국 전체의 상황을 코앞에서 볼 수 있는 관찰 형태의 마법.

오보로스의 ‘시초’를 보고 한번 따라 해 본 건데…

“생각보다 잘 되네.”

불의 거인, 이베르다를 잡은 이후 꽤나 높은 수준의 마법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더불어 리진과 리엔의 마법적 지식까지 배우니, 이제는 거의 대마법사 수준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과거에 이런 마법을 배워뒀으면 그렇게 고생 안 했을 텐데.’

고작 레인저로 어떻게든 아등바등 살아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물론 그때도 나름 재밌긴 했지만.

나는 카린과 로즈. 그리고 흑마법사인 앨리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어째 과거 랭커들은 특성이 거의 안 바뀌었단 말이지…”

과거 이름을 날렸던 대부분의 랭커들은 강한 특성과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특성이 좀 더 강화되거나 조금 변형된 능력들을 새로이 지급받았다.

저기 머쓱하게 웃는 앨리스도 이전에도 꽤나 유명했던 흑마법사였다.

‘그리고 나한테 제일 많이 죽었지.’

그라티아의 ‘신성’ 능력은 흑마법에 굉장히 취약했기 때문에 거의 스치면 죽다시피 했다.

물론 취약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때 당시는 무적이었기 때문에…

지금 내 정체를 눈치챈다면 발작하면서 공격할지도 모른다.

“흐음…”

물론 그때랑 지금이랑 달라질 일은 없겠지만.

“주인님.”

“레빗.”

내 뒤로 주황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메이드복 차림의 레빗이 내려왔다.

왜 굳이 저 복장을 고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옷이 채림의 오해가 깊어지게 만든 원흉이기도 하다.

“일은 다 끝났나 보네.”

“물론! 다했긴 했다냐.”

레빗이 펼친 환묘세계는 다시 레빗의 아공간 속으로 들어갔고 원래의 세계가 다시금 자리잡았다.

반 초월자의 능력으로 만든 세계라 아델리나에 오래 놔둘 시, 기존의 ‘진짜’ 아델리나가 정령도시나 홀리에린처럼 세계로 부터 분리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다시 정상적으로 돌리는데 꽤 많은 힘이 소모되고, 자칫하면 특이점을 이용해야 할지도 모른다.

‘라는게 하페루아의 설명이었지.’

확실히 하페루아를 곁에 둔 뒤로 여러 정보를 자연스레 습득했다.

장점만 있는 좋은 일이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다윤. 다윤이는 어딨어?”

분명 장정 6시간의 대화를 나눈 뒤 내가 정리하는 동안 아델리나를 구경간다고 했다.

아마도 지금쯤 돌아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레빗의 표정이 매우 심각했다.

“큰일이다냐.”

“왜?”

꿀꺽.

레빗의 소리가 작아지더니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다윤 님과 채림이 만나고 있다냐.”

그것은 마치 종말과도 같았다.

­

“흐, 흠.”

“...”

채림은 눈앞에 상황에 이해를 하지 못하고 흰색과 청색. 그리고 검은색으로 꾸며진 아카데미 교복을 만지작거렸다.

분명 님님이와 용용이와 함께 미처 즐기지 못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부길드장 이라는 사람을 만나 한적한 가게로 끌려(?)와 버렸다.

“그쪽이…”

“네, 네?”

“목재인형을 부셨다고.”

“아, 네… 그 제 특성이 좀 신기해서. 헤헤…”

침묵.

어색하다.

아니 살짝 두렵기도 하다.

분명 어제 길드장님 곁에 있을 때 한번 본 적이 있다.

같은 한국 출신의 꽤나 이쁜 얼굴을 가진 여자.

달빛과도 같은 그녀의 아우라는 길드장님을 제외한 그 누구보다도 강했다.

심지어 정신을 잃기 전 잠깐 마주한 이상한 수백 개의 눈 보다도.

“...크흠.”

그런 그녀가 나를 노려본다.

“후우…”

“...?”

굉장한 불만을 가진듯한 표정은 내면의 자아가 쉴 새 없이 싸우는듯하더니, 합의점을 찾은듯 금세 풀어졌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잘… 지내 보자고요. 한채림씨?”

“아… 편하게 하셔도 돼요. 언니 같은데.”

언니 같은데.

언니 같은데.

언니 같은데.

언니 같은데.

‘...’

분명 채림운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이겠지만 다윤에게는 의미가 달랐다.

윤 씨 주위에 있는 여자들은 죄다 초월적인 존재들.

이랑이나 하페루아, 홍린…

이런 여자들은 죄다 나이를 몇 백 살씩 먹은 사람들이다.

때문에 다윤은 그런 이들 사이에서 어리다는 인식과 기쁨에 만족하고 있었다.

물론 그 외에도 평범한 나이 때에 루아나 리나가 있긴 하지만, 애초에 분할된 세계의 사람들이기에 ‘사라진’ 시간을 생각하면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다.

그렇기에 다윤은 김윤의 연인으로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직 그녀만이 김윤과 같은 곳에서 왔고, 김윤과 같이 여정을 헤쳐 나갔으며,

김윤과의 환각 속, 짜릿한 경험은 두고두고 기억할만한 일이었다.

분명 그랬을 텐데…

“?”

자신과 같은 시간 때를 공유하는 이가 나타났다.

심지어! 자신보다 어리고 같은 한국에서 건너온 여자.

한채림.

검은 단발머리에 고양이 상...이지만 조금 강아지 같기도 한 얼굴.

자신과 비슷하지만 조금 작은 키.

꽤나 이쁜 디자인의 아카데미 교복은 그녀의 나이를 더욱더 어려보이게 만들어주었다.

“...으음.”

얼굴은 언뜻 봐도 제법 이쁘다.

몸매는……내가 좀 더 낫다. 이건 확신할 수 있다.

신체 나이는…

‘완전 비슷하지!‘

다윤은 환각을 포함해 꽤나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살아왔지만 여전히 그녀는 23살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시스템과 몸에 깃든 마력이 그녀의 노화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쳐도 한채림이 자신보다 무려 세살이나 어렸다.

그녀 역시 더 이상 늙지 않을 테니까.

“...그래. 언니라 불러.”

“정말요?”

“응.”

여기서 관용 있게 해줘야겠지.

어차피 윤 씨의 여자친구는 나 하나고 채림까지 신경쓸 여유는 없다.

정말이지 윤 씨가 조금 관대하긴 해도 항상 계획이 있으니 이번 채림 일도 필요에 의한 영입이었을 것이다.

“하핳…”

“?”

그럴 거다.

다윤은 윤 씨가 내내 말 한 해명아닌 해명을 머릿속으로 곱씹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윤씨가 기다리겠다.”

“아, 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