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화 〉 17. 설산의 사냥꾼 (1)
* * *
무사히 드레드의 집에 도착한 우리는 자리를 비운 집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윤은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없었다.
그것도 큰 문제지만 다른 문제도 있다.
■조우!아기 예티를 마주했다!
┏내용: 설산에서 길을 잃은 당신! 당신과 그 일행은 우리의 귀여운 아기 예티와 조우했습니다.
┣목적: 예티의 도움을 받아 사냥꾼 ‘드레드’의 집으로 향하세요.
┣보상: 5 Point
┗행동력: 1 소모 / 남은 행동력 (4 / 5)
■ ※불펌 금지!개발 관련 문의는 ‘디드락’의 벤시에게 연락 주세요 >< (투명 모드가 적용 중입니다.)
생전 처음 보는 퀘스트 창.
월드 어드벤처에서 본 형식과 사뭇 다르다.
내용에 자기 주관이 들어간 것은 물론, 행동력이라는 특수한 재화의 제약도 있었다.
게다가 투명 모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잘 보이는 마지막 문구까지.
이건…
“다른 게임으로 넘어왔어.”
“하페루아.”
따듯한 두 잔의 차를 가지고 온 하페루아는 탁자가 놓인 의자에 앉았다.
굳이 유희나 특수한 버프가 아니라면 마실 필요가 없는 음료지만 신체 능력과 기술이 급격히 하락한 우리로서는 이런 따스한 음료가 필요했다.
물론 없다고 위험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미 여우한테 한번 들었잖아.”
“...아. 그렇지.”
이랑은 오래전 시스템과 NPC의 비밀을 파헤치다 시스템의 제약을 받고 무려 52일간 기절해 다른 게임으로 넘어갔다.
듣기로는 원시 종족을 키워 최종적으로 모든 종족을 정복시키는 게임.
아마 장르만 다를 뿐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하페루아는 차를 호록 마셨다.
“...아스트라가 어떻게 차원의 틈을 낸 건 진 모르겠지만, 우리로선 호재야. 아니, 너에게 있어 호재겠네.”
“호재?”
“너는 다른 게임을 해본 적이 없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이미 스스로 초월할 자격과 힘을 얻었지만 그 힘은 대부분 최강자를 통해 얻어낸 힘이야. 최강의 힘은 강하지만 오히려 너 자체의 ‘고유성’은 떨어지는 거지.”
“으음…”
“그런 너에게 필요한 건 인고의 시간이 아니라 다양한 차원의 경험이야. 하나의 고립된 세계에서는 다양한 가능성을 만들어내지 못하니까.”
타악.
차를 다 마신 하페루아는 조용히 턱을 괴었다.
“사실 조만간 너에게 이런 경험을 시켜줄 생각이었는데...”
“아스트라가 그걸 알고 일부로 준비한 건가?”
“...아니, 아닐 거야. 난 그에게 너에 대한 많은 정보를 내어주지 않았어.”
“복잡하구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뭐가 됐든 이번 일도 잘 해내면 된다.
차라리 잘 됐다.
“나 다른 게임도 해보고 싶었거든.”
“...그렇게 쉬운 게 아닐 텐데.”
“언제는 쉬웠나.”
부족한 환경 속에서 최선의 수를 강구하는 것이 내 기본이었다.
과거의 나는 고작 레어 능력과 일반 직업으로 무려 10위 안에 드는 길드를 박살 냈다.
인원도, 레벨도, 장비도. 그 무엇도 밀리는 상황에서 그 압도적인 전력 차를 이겨내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물론 누군가는 그저 신성 보호로 인한 ‘사기’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다.
버그라고도 볼 수 있겠지.
하지만 고작 30초밖에 안되는 시간 가지고 길드성 5개를 점령하고 단 한 번도 죽지 않은 건 누구나 인정할만한 활약이었다.
특히 마지막 길드성은 신성 보호 없이 싸웠었다.
‘하필 그때 쓰던 놈이 엄크 떴다고 나가는 바람에…’
그놈만 아니었어도 훨씬 더 쉽게 점령했을 텐데.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진다.
“...자화자찬은 그만하시고요. 윤 씨.”
“왜 다윤이 말투를 쓰고 그래.”
나의 물음에 하페루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김다윤이 일어났다면 그리 말했을 거 같아서. 어때, 비슷하지 않았어?”
“......”
“흐, 흐흠. 아무튼 내가 방금 전 말한 대로 절대 쉬운 일이 아니야. 왜 투명 모드로 굳이 문구를 가렸는지 자세히 생각해 봐. 그리고 왜 네가 보이는 지도 생각하고.”
의식을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지만 보고자 하면 보인다.
정말 숨기고 싶었다면 문의나 불펌 금지 따위의 말을 써놓지 않았을 거다.
오히려 저 문구는 사람들이 봐주길 바라고 있다.
다른 차원을 들락 날락 할 수 있는 자들에게만 필요한 정보.
“...초월자를 위한 게임이다?”
“그래.”
끼익.
“이 게임은 초월자들이 참여하는 게임이야.”
“자네들이 토잉의 도움을 받은 자들이군. 반갑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냥꾼 드레드는 나에게 악수를 건넸다.
다부진 체격과 설산에 어울리는 갈색의 가죽 옷.
그의 등 뒤로는 어깨만 한 크기의 양날 도끼가 매달려 있었다.
“반갑습니다.”
나는 그의 손을 붙잡았다.
잠시 시선이 마주하고 나는 손을 떼었다.
‘...강한데?’
정말 잠깐이라 제대로 확인은 못했지만 어지간한 반 초월자보다 강한 것 같다.
힘 자체는 1등위를 가볍게 넘는 수준.
다만 힘의 총량만 높을 뿐 특별한 ‘격’자체는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힘만 똑 떼어 준 것처럼’
“토잉이라 하면…”
“아, 자네들은 안내한 예티의 이름이라네. 내 사냥을 도와주는 고마운 친구지.”
드레드의 머리 위로 하얀 털 뭉치 하나가 올라왔다.
밖에서 보던 것과 달리 어두운 내부로 들어오니 녹색의 안광이 제법 뚜렷이 보였다.
=길을 잃는 차원 유랑자들을 돕는 건 당연한 거야.
“...차원 유랑자?”
내가 의문을 갖고 묻자 하페루아가 옆구리를 찌르며 대신 대답했다.
─정식 루트로 들어오지 않고 차원의 틈으로 들어온 불법 참여자를 뜻해. 앞으로 그 단어는 꺼내지 않는 게 좋아.
뒤를 돌아보니 꽤나 진지한 표정의 하페루아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과거 하페루아는 다른 차원으로 추방되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고 들었다.
아마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거겠지.
뭐가 됐든 굳이 불법 참여자라는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게 좋겠다.
쿠웅!
집안이 울릴 정도로 도끼를 내려놓은 드레드는 뚜둑 뚜둑 양팔을 풀었다.
설마 불법 참여자라는 소리를 듣고 우리를 공격하려나 싶었지만 그는 평온하게 부엌으로 걸어갔다.
그러곤 팔뚝만 한 식칼을 들고 콰직!
사슴의 목을 쳤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나는 참여자도, 관리자 소속도 아니니 자네들을 잡아갈 일은 없어.”
“...”
그는 인자한 미소로 말했지만 피가 뚝뚝 흐르는 식칼을 들고 말하니 좀 무서웠다.
=그래도 나름 실력이 있는 거 같은데. 혹시 시스템창은 확인했어?
드레드가 식사를 준비하는 사이 침대 위를 통통 뛰는 토잉이 물었다.
“무슨 포인트랑 행동력? 그런 게 있던데.”
포인트와 행동력.
포인트는 당연히 여기서 쓰는 상점 재화 같고,
행동력은 움직일 수 있는 수치 같은데…
무슨 턴제 게임도 아니고 왜 행동력이 있지?
내가 의문을 갖자 토잉은 한 바퀴 회전하며 탁자에 폴짝 올라왔다.
=주저리주저리 늘리는 말보다 한 번의 정보가 더 낫겠지. 시스템 창을 켜봐.
“시스템 창?”
띠링!
■차원 유랑자/ 김윤
┏소속: 무
┣직업: 도망자
┣포인트: 15 Point + (?? = 1000 Point)
┣남은 행동력: 4 / 5 (다음 충전까지 22시간 12분…)
┗위험 수치: ●●●●●○ (대다수의 사냥꾼들이 당신을 쫓고 있습니다. 정체를 숨기는 걸 추천드립니다.)
■ ※불펌 금지!개발 관련 문의는 ‘디드락’의 벤시에게 연락 주세요 >< (투명 모드가 적용 중입니다.)
“으음…”
월드 어드벤처 보았던 것과 틀은 비슷하지만 뭔가 이쪽이 더 세련되어 보였다.
뭐라 그래야 할까…
2000년대 초반의 게임과 2050년대쯤의 게임을 놓고 비교하는 기분?
확실히 이쪽이 더 높은 수준인 건 알겠다.
옆을 보니 하페루아는 이미 시스템 창을 키고 무언가를 대조하고 있었다.
디드락에 관해 이미 알고 있던 그녀는 아마도 이곳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을 것이다.
“자세한 설명은 없는데?”
=창을 한번 넘겨봐 그럼 자세한 도움말이 나올 거야.
나는 토잉의 말대로 창을 옆으로 밀어 넘겼다.
그러자 가독성이 좋은 설명글들이 주르륵 내 시야에 들어왔다.
행동력은 말 그대로 행동에 대한 제약.
아까 받은 퀘스트나 사냥꾼이 도망자를 잡는 행동.
혹은 중장거리 이동이나 특별히 ‘행동’ 한다고 판단이 되었을 때 행동력이 소모된다.
당연히 행동력을 다 쓰면 그만한 행위를 하지 못한다.
그 외의 밥을 먹는다던가 잠을 자는 행위 정도는 행동력 없이 가능하다.
다음은 포인트인데…
=포인트는 아껴 쓰는 게 좋아. 사냥꾼한테 도망가려면 포인트가 필수거든.
토잉이 말하길 만일 포인트가 없다면 그대로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 경고했다.
“왜?”
=왜긴. 사냥꾼은 기본적으로 도망자보다 포인트가 많아. 그리고 행동력은 포인트로도 구매할 수 있어.
만일 쫓기고 있을시 부족한 행동력을 포인트로 대체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도망과 사냥에 효과적인 아이템.
그리고 이곳만의 특수한 스텟들을 구매할 수도 있다.
=우선 너는 포인트가 기본이 10. 여기로 와서 5를 추가로 받았을 테니 15잖아? 그러니 무작정 스텟을 찍기보단 낮은 가격의 도망 아이템을 구매해서 포인트 벌이를...
“아닌데? 나 1015포인트 있는데?”
=...? 뭐, 뭐라고?!
토잉은 띠용~ 이라는 효과음이 보일 듯이 튀어 올랐다.
어느새 옆을 보니 하페루아 역시 놀란 듯 정보 수집을 멈추고 내 쪽을 바라봤다.
뭔데 그래.
포인트: 15 Point + (?? = 1000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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