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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3화 〉 17. 설산의 사냥꾼 (2) (223/318)

〈 223화 〉 17. 설산의 사냥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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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의 격이 존재하지 않는 유저들은 유저가 아니다.

그들은 언제든 관리자의 말 한마디, 행동 한마디에 수십 번은 죽고 살아날 수 있는 생명체들.

게임의 진행을 위해 게임 속에 살아가는 자들.

즉, 흔히 말하는 ‘NPC’와도 비슷한 존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초월자들은 다르다.

그들은 관리자와 비슷한 경지에 서있다.

물론 게임 내에서 관리자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애초에 관리자와 유저는 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공생관계다.

관리자는 게임을 관리하며 이득과 게임의 발전을 얻고,

초월자인 유저는 게임을 진행하며 유희와 창조석과 같은 특수한 재화를 손에 넣는다.

때문에 게임은 대충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소위 말하는 ‘필멸자’들의 발버둥을 통해 이득을 챙기는 ‘관리자’만을 위한 게임과,

오로지 초월자의 이득을 위해 진행되는 ‘유저’만을 위한 게임이 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의 특수한 방식이 세상에 많지만 대부분이 이러한 형식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들어와 있는 ‘설산의 사냥꾼’ 이라는 게임은 후자에 속했다.

“뭔데 그래.”

포인트: 15 Point + (?? = 1000 Point)

나는 포인트를 보았다.

저 ??가 뭔지 모르겠지만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페루아에게 확답을 듣는 것이 더 정확하기에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초월.”

그녀는 허공의 뜬 시스템 창을 밀어 넣고 내 손을 잡았다.

「▲맹약 」

「─」

“아직 개화한 건 아닌데...”

“내 고유 능력과 관련된 건가?”

“아마도.”

투욱.

손을 땐 그녀는 시스템 창 대신 새로운 창을 열어 이리저리 자료를 뒤졌다.

예상은 했는데 생각보다 빠른걸…

하페루아는 중얼거리며 정보의 바다를 누볐다.

그사이 나는 상점창을 열었다.

사냥용 로프, 그물, 덫…

누구나 생각할 만한 사냥용 장비들.

대부분 10포인트에서 많게는 100포인트 정도의 값어치.

고작 저런 장비들로 산이나 바다를 뒤집을 수 있는 초월자들을 잡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 사냥꾼 / 사냥꾼의 강철 덫

┏ 효과: 설치한 덫은 ‘은신!’ 효과가 적용됩니다. 덫을 밟은 도망자는 행동력이 2 감소합니다.

┣ 행동력: 덫을 설치하거나 잡힌 사냥감을 수거할 시 1 소모.

┗ 구매가: 20 Point

■ ※ 불펌 금지!

장비의 설명을 대충 보니 강제적인 제압 효과가 있을 거 같다.

내로라하는 초월자조차 제압할 수 있는 시스템이겠지.

도망자 물품도 살펴봤다.

시야를 가리는 연막탄부터 짧은 순간 이동권, 덫 탈출 가위 등등…

도주용과 사냥꾼의 장비를 카운터 칠 수 있는 아이템들.

토잉에 말대로 도망용 아이템을 구매할까 하다 다른 상품에 눈이 갔다.

■ 도망자 / 이속 스텟

┏ 효과: 사냥꾼 전용 아이템을 ‘회피’ 할 3% 확률이 올라갑니다. (최대 90%까지 적용 가능.)

┗ 구매가: 100 Point

■ ※ 불펌 금지!

■ 전체 / 방어 스텟

┏ 효과: 방어력을 1단계 상승시킵니다. (최대 30단계까지 가능)

┗ 구매가: 300 Point

■ ※ 불펌 금지!

이속과 방어.

둘을 모두 올릴 수 있다면 아마 이곳에서 나를 잡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다만 하나를 모두 마스터하는데 9000 포인트가 들기에 지금의 나조차도 쉽사리 구매할 수가 없었다.

‘적당히 섞어 찍을까? 아니면 공격 스텟을 찍는 게 나으려나.’

하지만 토잉과 하페루아의 반응대로라면 여기서의 1000포인트는 꽤나 높은 값어치를 할 것이 분명했다.

근데 사냥꾼도 아니고 도망자인 내가 공격 스텟을 찍는 건 너무 낭비였다.

“...”

어느새 모든 창을 지운 하페루아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거 말고.”

“어?”

“이거 사. 김윤.”

그녀가 내게 하나의 아이템을 보여주었다.

■ 전체 / 능력 개방 포션

┏ 효과: 마실 시 5분간 약화된 능력을 ‘전부’ 개방합니다. (초월 능력이 없는 유저에겐 적용되지 않습니다.)

┗ 구매가: 1000 Point

■ ※ 불펌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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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박. 자박.

한 무리의 사냥꾼 집단이 설산을 맴돌았다.

사냥꾼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행성을 뒤집을 정도의 강자들이었지만 여기서는 제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씁.”

그들 스스로가 스스로의 날개를 꺾고 지상으로 내려왔기에.

검은 두건을 두른 남자는 새햐얀 눈밭에 손을 대었다.

그의 손에서 뻗어나간 적색의 마나가 흘러들어갔다.

츠츳…

이윽고 새햐얀 도화지 같은 눈 위로 여러 개의 발자국이 드러났다.

대략 인간형 소형족 두 개체와 새끼 예티로 추정되는 발자국.

“둘인데 대장. 어떻게, 바로잡으러 갈까?”

“...’러너’ 놈들은 아니겠지.”

“그놈들이 따로 다닐 리가 없지.”

커다란 검은 대검을 찬 대장의 물음에 남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게다가 이 녀석들 능력치가 현저히 낮아. 많아야 합계가 5 정도.”

게임이 시작된 지 꽤나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살아있는 도망자 놈들이 그 정도 능력치 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소리는...

“차원 유랑자겠군.”

“그럴 확률이 높겠지.”

차원 유랑자.

초월의 격도 가지지 않고 불법으로 게임에 참여해 ‘창조석’을 노리는 벌레 같은 놈들.

게임의 관리자는 오히려 그들을 시스템적인 지위를 주어 게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두었지만 이들의 대장, 믹스 오데르트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감히 미물 따위가 하늘 위 존재들과 맞먹으려 한다는 것이.

유희를 위해 지상에 내려왔다지만 그들과 자신들은 개미와 드래곤만큼의 차이가 났다.

“우선 너희 셋은 이 근방에 ‘덫’을 근처에 깔아둬라. 너희 넷은 지스리의 안내를 받아 발자국의 반대편으로 가고.”

믹스는 손가락으로 무리들을 나눠 가리켰다.

사냥꾼 무리는 명령이 익숙하다는 듯 망설이지 않고 움직였다.

추적자, 지스리가 붙었으니 잡아먹히는 일은 없겠지.

사냥꾼이 해야할 일은 오직 사냥뿐이다.

두건을 풀어 사냥꾼 아이템을 교체하던 지스리는 믹스에게 물었다.

“대장! 혼자 갈 거야?”

“그래. 왜, 혹시 내가 당할까 두려운가?”

미물 따위한테?

믹스는 흉흉한 기운을 내뿜었지만 게임 이전에도 그를 알고 지낸 지스리는 저것이 화가 난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냥 저건 믹스의 악취미였다.

‘자신 보다 약한 이에게 힘을 과시하는.’

지스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최근에 지역 싸움이 좀 심하잖아. 본진은 그렇다 치더라도 혼자 있는 대장을 ‘성녀’나 ’광군왕’쪽이 가만두지 않을 거 같은데.”

“상관없다. 이쪽도 여유분이 제법 있으니까.”

믹스는 녀석이 말한 설산을 삼분하는 두 지배자들을 떠올렸다.

엉덩이 무거운 성녀가 직접 행차할 일은 없고… 온다면 아마 졸들을 몇 명 보낼 텐데, 그 정도는 충분히 이길 수 있다.

광군왕은…

“그 미친놈은 오히려 환영이지.”

입고리가 쭈욱 올라간 믹스를 보고 지스리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는 미소를 감추지 않으며 흔적을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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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해.

하얀 아기 예티, 토잉은 경계심이 가득한 눈으로 도망자 둘을 노려봤다.

분명 데려올 때만 해도 불쌍한 차원 유랑자 1,2로 보였는데 지금 보니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그걸 찍고…’

‘이게 더 나을 거 같은데?’

이제 둘은 자신도 신경 쓰지 않고 포인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이상함을 느낀 토잉이 빠져나온 거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1000 포인트.

이제 막 시작한 도망자에게는 넘칠 정도로 많은 포인트지만 높은 수준의 사냥꾼에게는 그다지 큰 포인트는 아니었다.

하나의 무리를 형성하고 있는 사냥꾼의 수장이라면 일주일 이면 벌어들일 정도의 양.

하지만 도망자가 그만한 포인트를 가지고 시작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저만한 포인트라면 낮은 수준의 사냥꾼 정도는 견줄 수 있을 것이다.

‘방어 스텟을 3단계만 찍어도 공격이 들어오지 않을 텐데...’

“식사하지.”

“아! 감사합니다!”

“...고마워.”

왠지 잔뜩 신이 나 보이는 김윤이라는 유랑자와 하페루아라는 여자는 탁자에 앉았다.

어쩐지 저들이 이곳에 파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큰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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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친 그들은 사냥꾼님께 인사를 건넨 뒤 집을 나섰다.

“제법 괜찮은 젊은이들이군.”

=동감해요.

“나는 사냥에 나설 건데. 혹시 같이 가겠나?”

드레드는 도끼를 등에 단단히 고정시킨 채 말했다.

평소라면 당연히 갔을 테지만…

=죄송해요. 할 일이 생겨서.

토잉은 이미 멀리 사라진 세 사람의 흔적을 바라보았다.

저들을 쫓아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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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박. 사박.

눈밭을 걸으니 참 기분이 묘했다.

초인이 되고 난 뒤로 특별히 힘을 봉인하지 않는 한 이런 ‘걷는다’라는 기분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 탐험! 설산의 미지의 보물을 탐색하자!

┏ 내용: 새하얗게 물든 설산에서 무지무지 신비로운 보물이 숨어있습니다! 보물을 찾고 그 보물의 주인이 되세요!

┣ 목적: ‘얼음 동굴’ 안에 있는 보물을 획득하세요.

┣ 보상: 15 Point, 미지의 보물 상자

┗ 행동력: 2 소모 / 남은 행동력 (2 / 5)

■ ※ 불펌 금지!

새로이 받은 퀘스트.

사실 받았다기보다는 ‘샀다’라는 표현이 더 맞겠지만.

한번 퀘스트에 행동력을 소모하면 성공하든 성공하지 않든 행동력은 돌아오지 않기에 신중히 임해야 한다.

‘이제는 상관없지만.’

그렇게 걷던 도중.

찰칵!

“...!”

“덫이야.”

함정에 걸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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