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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6화 〉 18. 다른 세계의 마왕(5) (236/318)

〈 236화 〉 18. 다른 세계의 마왕(5)

* * *

***

티각. 티각.

뾰, 뾰보보뵹!

투두두두!

“아, 왜 또 죽어!!”

은은한 보랏빛이 감도는 어두운 공간.

색이 밝은 보라색의 긴 장발을 가진 그녀, 벤시는 얼굴에 착용된 VR 기기를 내던지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런 그녀의 비명이 무색하다는 듯이 VR 화면에는 하나의 문구가 떴다.

─GAME OVER─

“끼아아아악!!!”

쾅! 쾅! 그녀의 자그마한 방이 요동치고 방의 주인은 바닥을 굴렀다.

그러자 바닥에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던 과자, 게임기, 책… 등등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그녀가 구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그렇게 한참을 발광하던 그녀는 지칠 리 없는 몸의 숨을 몰아쉬며 VR 기기를 집어 들었다.

“이런 좆망겜 따위가 왜 내 것보다 높은 거지? 이거 인맥 게임이야! 당장 차원 관리국이 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그녀는 홧김에 기기를 벽에 내던졌으나 ‘벽’은 훗날 주인의 후회를 대비하듯 기기를 살포시 받아 바닥에 고이 내려놓았다.

기기는 매우 비쌌기에 부수면 안 되는 물건이었다.

“아오… 그냥 게임 관리나 할걸.”

벤시는 풀석 주저앉았다. 그러자 게이밍 의자가 생성되어 그녀의 몸을 받았다.

어느새 그녀의 손에는 보라색 전자 고양이 문양이 박힌 모자가 들려있었다.

푸욱.

모자를 쓰자 순식간에 어두웠던 방이 뒤바뀌며 새햐얀 설산이 드러났다.

“...거기서 근데 왜 죽은 거야?”

아직도 게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벤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안다.

말만 좆망겜, 좆망겜 해도 이게 자신의 게임인 설산의 사냥꾼보다 훨씬 높은 유저와 인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고작 유저가 300명. 많으면 500명 밖에 안되지만 방금 전 플레이한 그 게임은 유저 수가 무려 1만이 넘었다.

참고로 유저는 초월자를 이상만을 해당한다.

즉, 초월자 1만 명이 게임을 하고 있다는 소리다.

고작 500명과는 비교도 안되는 숫자.

물론 과거 먼지만 날리던 시절과 비교하면 상당히 발전됐지만 정체됬다는 게 문제였다.

흔히 말해 유입은 줄어들고 고인물만 즐기는 게임이 됐다는 소리다.

“근데 거기서 왜 죽은 거지.”

또 상념에 사로잡힌 그녀는 무려 5시간의 생각을 끝마치고 자신의 게임에 눈을 돌렸다.

이럴 시간이 없다.

“재미있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최근 떠오르는 신흥 루키, 김윤과 하페루아는 아르테이라를 만나 동맹을 맺었다.

그들은 바벨을 추방시키고 그의 핵심인 러너와 도망자들을 손에 넣었다.

나름 흥미진진한 상황이었기에 끝나기 전까지 계속 지켜볼 셈이었다.

하지만 최근 너무 떠오르는 게임이 있다길래 시장조사를 해야하는 관리자로서 도저히 안 해볼 수가 없었다.

유행을 따라야 뒤처지지 않으니.

뭐, 결과는 보다시피 만족스럽지 않았다.

“근… 아오! 닥쳐!”

벤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과거를 떠올렸다.

아르테이라는 처음 이곳에 방문해 바벨을 발견했다.

그녀는 바벨을 이곳에 영원히 묶어둔다면 자신 역시 그만큼 이곳에서 계속 있어주겠다며 제안을 걸었다.

설산의 사냥꾼은 바벨 덕에 나름 급상승 중인 상황이었고, 벤시 역시 바벨을 붙잡아두고 싶었기에 그 제안을 수락했다.

물론 바벨과의 계약이 먼저긴 했으나 불완전한 반 초월자 따위의 계약보다는 완전한 초월자가 우선이었다.

그녀로서는 노 리스크 하이 리턴인 셈이다.

‘아르테이라가 대규모 개편을 요청했었지. 뭐, 더 이상 부분 초기화만은 힘드니 적당히 바꾸긴 했어야 했어.’

“그럼 사막으로 할까?”

설산은 이미 오래 했으니 DLC로 사막이나 정글, 협곡 같은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르테이라가 요청한 바벨을 더 구르게 만들자느니, 도망자 혜택을 대폭 줄이자느니 하는 요청은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이미 도망자가 받는 제약은 충분하다.

더 이상 그들을 핍박한다면 도망자 스스로가 포기할 수도 있다.

그리된다면 ‘발악하는 사냥감.’이 아닌, 축 늘어져 ‘사냥할 맛이 없어진 사냥감’이 되어버린다.

그리 생각하며 아르테이라의 위치를 확인한 그녀는 다시 한번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 아, 아르테이라 미친년이!”

그녀의 시야가 비친 화면 속에는 사냥꾼들이 죄다 죽어나가고 있었다.

***

[아르테이라야아아아아아앙!!!]

“어머, 벤시 언니. 무슨 일이십니까?”

아르테이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녀의 로자리오는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는데 ‘군단’급 집단인 믹스의 부하 사냥꾼들의 피였다.

그녀의 주위로는 ‘불멸’의 군대가 계속해서 부활하며 상대 사냥꾼을 죄다 죽이고 있었다.

사냥꾼은 사냥꾼을 죽이는데 많은 제약이 따른다.

하지만 상대가 스텟의 총합이 30이 넘는 5등위의 사냥꾼이라면?

성인에게 모래주머니를 단다고 해서 어린아이를 못 이기진 않았다.

[이, 이! 무슨 개 짓거리입니까아아아!!!]

“‘세력전’을 하고 있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르테이라의 눈이 기다란 반월을 그렸으나 벤시는 전혀 웃음이 나지 않았다.

다 죽고 있지 않은가.

‘내 소중한 유저들이!’

벤시는 머리끝까지 난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제재를 가하려다 순간 멈칫했다.

‘...근데 왜 다른 놈들은 안 보이지?’

군단급 중에는 아르테이라 쪽이 우세긴 하나 광군왕과 믹스의 힘이 약한 건 아니다.

단순히 정예만 놓고 따지면 변수나 인원수로 인해 언제든 싸움이 뒤집힐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다들 어디 갔단 말인가.

“요즘 도망자는 굉장히 강하더군요. ‘군단’급의 수장의 추격을 받고도 아직까지 살아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아르테이라양. 미쳤습니까?]

“전 제정신입니다.”

그녀는 그리 말하며 로자리오에 묻은 피를 정화했지만 벤시는 여전히 어질어질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바벨을 쫒겨난 것을 깔깔 웃고 게임이나 하러 간 거?

아니면 아르테이라의 ‘사냥꾼 사냥’을 그저 재미난 이벤트로 여기고 그냥 넘어간 거?

‘그것도 아니면 김윤과 하페루아라는 루키를 그냥 놔둔거?’

머리가 복잡해진다.

분명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 내 손을 벗어났어.’

벤시는 사태를 수습할만한 수십, 수백 개의 방안을 떠올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사냥꾼을 잡는 도망자’와 사냥꾼의 조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고 ‘관리’측에서 제재를 가하기에는 걸리는 게 많았다.

이 게임은 디드락과 차원 관리국에 연결이 되어있는 ‘공식’ 게임이다.

제제 사유야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지만 초월자인 유저가 부당한 제제를 고발하면 게임 전체가 수사 대상에 들어간다.

‘그건 안돼!’

뒷골목 출신인 밴시로서는 걸리는 게 너무 많았다.

수사에 들어갔다 해 먹은 게 걸리기라도 하면 ‘영업정지’는 물론이요, 심하면 차원 폐쇄까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신고한다고 다 수사가 되는 건 아니지만 아르테이라는 자신과 계약을 했고 등위도 제법 높았기에 진행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뭘... 원할까요? 우리 ‘성녀’님?]

“글쎄요? 언니가 더 잘 알 거 같은데.”

[...그건 안됩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이대로 게임을 중단시키는 수밖에.

아르테이라의 신성이 빛을 발하자 보랏빛의 통신이 차단되었다.

[이…!]

***

[들켰습니다.]

“뭘? 광군왕?”

광군왕의 7번째 거처.

각자 초월의 힘을 가진 초월자들이 달려든다.

하늘을 가득 메운 거대한 녹색 드래곤이 나를 향해 앞발톱을 내지른다.

나는 찬란한 빛의 백색의 마나를 흩뿌려 충격의 대부분을 흡수한 뒤 기다란 창을 든 여자의 검으로 막는다.

카가각!

파열음이 울려 퍼지고 작은 언덕 뒤에 있던 마법사 복장의 남자는 수많은 운석 덩어리를 나를 향해 떨어트린다.

[행동력 1을 소모합니다.]

[이동속도가 극대화됩니다!]

[남은 행동력 (9 / 13)]

쿠르르르륵...!

설산이 뒤집히고 나는 뒤로 물러서 상황을 지켜본다.

[벤시 언니가 깨어났습니다.]

“게임하고 있을 거라며?”

[변수입니다. 아무래도 일찍 죽으신 거 같습니다.]

관리자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을 일찍이 아르테이라를 통해 들었었다.

성녀가 하려는 짓은 여러 군단급의 사냥꾼과 관리자의 눈을 피하지 않으면 불가능 한 일이었고, 이를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던 그녀는 최대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군단급과 관리자. 둘 모두가 자리를 비우는 상황을.’

그녀는 옅은 웃음을 터트렸으나 이쪽은 그다지 웃음이 나올 상황이 아니었다.

저 멀리 쏘아지는 검푸른 마나를 보면 말이다.

“드디어 만났구나, 김윤!”

쿠웅!

검푸른 마나가 파도처럼 나에게 다가온다.

색으로 보나 힘으로 보나 과거 콜트의 환각 속 제라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흑천▼▼」

“하페루아.”

다른 사냥꾼을 상대하고 있던 하페루아의 힘이 내 쪽으로 흘러들어오고 히아트의 힘이 깃든 찬란한 빛을 더욱더 번뜩인다.

마지막으로 이름 모를 고유한 힘까지.

「맹약▼」 「정령왕▼」 「 ─▼」

‘얼추 맞췄다.’

이격을 사용할 조건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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