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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8화 〉 20. 전쟁 (5) (248/318)

〈 248화 〉 20. 전쟁 (5)

* * *

***

월드 비전을 통해 두 번째 초월자의 영역으로 단숨에 이동한 우리는 어둠이 흐르는 땅을 걸었다.

걷기만 해도 어둠에 잠식당하는 기분.

물론 당연히 잠식당하지 않았다.

당해도 상관없고.

‘내 몸속에 마기가 얼마인데.’

최상위 악마부터 마왕의 딸인 하페루아의 마기가 있는 나에게 이 정도 어둠은 귀여운 수준이다.

“베린쪽은?”

“답이 없네.”

이랑은 살짝 걱정되는 듯 나에게 물었다.

이린은 초월자가 아니기에 아까 도깨비 정도의 놈이라도 만난다면 위험할 수 있다.

나는 곧바로 레빗과 연결된 상태를 확인했다.

정상.

어디 다치거나 죽지 않았다.

다만 따로 연락이 없는 게 이상하긴 하다.

“흠… 원래 전투가 시작되면 연락이 안 되긴 하는데.”

반대로 말하면 전투가 이미 벌어지고 있다는 거다.

다윤은 월광의 빛을 뿌리며 앞서 걸었고 이랑도 여우불을 통해 어둠을 떨쳐낸다.

채림은 금세 어둠을 흡수한 듯 흐흐흐 웃으며 펄럭펄럭 날았다.

“우선 한번 가보는 게 어때요? 금방 갔다 오시면 되니까.”

월드 비전을 통하면 아무리 행성 반대편에 있다 한들 금세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다만 쿨타임이 있기에 쓰려면 특이점을 사용해야 해야 했다.

그도 아니면 다른 스킬과 마법으로 넘어가던가.

“...아냐. 맡겨 두자.”

베린과 세피드, 레빗까지 있다.

셋 다 2등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고 레빗에게는 나와 하페루아 조차 모르는 힘이 잠들어 있다.

그게 뭔지 모른다.

아마 레빗조차도 모르겠지.

“세피드는 그렇다 치더라도 다들 강해졌어. 뭐가 됐든 큰 문제는 없을 거야.”

행성 차원에도 없는 관리자가 돌아오지는 않았을 테고 아마 초월자와 싸우는 중이겠지.

게임의 영향으로 초월자들은 압도적인 강함을 얻지 못했다.

아무리 높아봐야 3등위 정도가 전부.

예외가 있다면 마왕과 여신이지만 그들은 어지간해서 나서는 일이 없을 거다.

그리 생각하며 다시 주변을 확인했다.

코끼리보다도 거대한 괴수의 뼈가 바닥에 놓여 있었고 흑색의 짙은 바닥에는 보라색의 흐물흐물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가까이 접근하자 바닥이 꿈틀. 거리는 느낌과 함께 새햐얀 백골의 손이 바닥을 뚫고 올라온다.

“스켈레톤이네요.”

“스까라또!”

뭐?

“기, 기다리는 것입니닷…!”

허둥지둥 대는 님프의 앞으로 새까만 기운을 내뿜은 채림이 해골들을 향해 달려든다.

채림은 정말로 그들을 반기듯 기쁜 마음으로 달려들었지만 해골은 적의를 가지고 무기를 뽑아든다.

뼈로 된 검과 창, 방패 등등.

가지각색의 무기로 채림의 육신을 꿰뚫는다.

“힉!”

아니, 뚫은 것처럼 보였다.

“다중 분신!”

한순간에 수십의 채림으로 나누어진 채림이 가볍게 손짓하자 수십 개의 검은 마법진이 공명한다.

키아악!

크에에엑!

크아아아!!

공명된 마법진은 스까라또. 아니, 스켈레톤을 집어삼켰다.

어느새 채림의 주위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흐엑, 흐엑. 흐엑…”

“괜찮냐?”

“기드자니… 흐엑!”

얜 또 왜 이래.

설산의 사냥꾼에서도 이랬다지만 그거는 아르테이라의 수준이 너무 강했기 때문.

지금 만나는 건 그보다 훨씬 약한 녀석일 텐데도 오히려 들은 것보다 더 심한 상태였다.

나는 채림을 바닥에 눕힌 후 머리에 손을 얹었다.

“...어때요?”

“글쎄. 몸에 이상은 없는데.”

채림의 능력은 육체에 과부하를 주지 않는다.

부하를 받는 건 오로지 정신뿐.

수련을 통한 성장으로 인해 어느 정도 능력의 흡수와 부작용의 피해를 조절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심각했다.

“흐에… 쿠…”

“뭐 하신거에요?”

“재웠어.”

결국 정신이 문제면 재우면 그만이다.

「▼공유 」

그리고 내게는 초월의 힘을 흡수한 채림을 재울만한 힘을 가지고 있고.

나는 새곤 새곤 자고 있는 채림을 소환수들에게 맡겼다.

레드 드래곤은 사람을 태울 수 있을 만큼 몸을 키운 뒤 그 위에 채림을 업었다.

“뭐가 보여?”

“...아니.”

앞서 걸어가던 이랑은 분홍의 빛으로 물든 왼쪽 눈을 찡그리며 눈을 감아버렸다.

이린의 능력인 꿰뚫어보는 눈.

정보 수집 면에 있어서 최상이라 불릴 정도의 능력이지만 그런 이랑도 못 보는 것이 있다.

“대체 뭘 하려는 거야.”

“흠…”

우리는 계속 걸었다.

그 뒤로 각종 해골 병사들이 튀어나왔지만 칼끝에, 불에, 월광에 찢겨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어서 와.]

이곳의 주인을 만났다.

흑색의 로브를 두른 여인.

해골을 다루다 보니 자신도 해골 같아졌는지 로브 바깥으로 보이는 손이 상당히 야위어 보였다.

손에는 머리 부분이 해골인 지팡이가 있었는데 여타 주인들의 무기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좋아 보이는 무기였다.

참고로 지팡이와 손 외에 로브 안쪽은 새까맣게 칠한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랑. 이린의 자식.]

“가에데. 뭘 하고 있는 거야?”

[뭘 하다니 꼬마야. 평소대로 잘 살고 있다만?]

로브 속 가에데라는 녀석은 간드러지는 미성으로 말했다.

주인의 소리에 근처 해골 병사들이 바들바들 떨었다.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던데, 이렇게 밖에 나와 있어도 되니?]

“...뭔 개소리야. 엄마는 무사해. 누구한테 당할 정도로 약하지도 않으시고.”

이랑이 눈을 부릅뜨며 여우불을 터트리자 신성을 담은 불꽃이 주위의 어둠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새까만 어둠속에서 큭. 웃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렇지. ‘그랬었지.’]

“뭐?”

[아냐.]

손을 저은 가에데는 큭큭 웃으며 해골로 된 의자에 풀석 앉았다.

그녀의 주변으로 특이한 형태를 가진 네 구의 해골 병사들이 서 있었다.

한눈에 봐도 평범한 해골들은 아니었다.

[그래서 왜 찾아온 거지?]

쿵! 해골 지팡이가 땅 내리치자 주위의 기운이 더 음산해졌다.

[바쁜 몸인데.]

“나대지 말라고 전하러 왔다.”

내가 말했다.

로브 속 어둠이 움찔거린다.

[...뭐?]

“얌전히 있으라고. 마왕을 잡기 전까지.”

하페루아와의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선 최대한 이곳은 평범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뭐 하나 특별한 상황 없이 무난히.

물론 관리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신의 분신만 놔둔 체 다른 차원에 가 있다.

때문에 어지간한 일들은 아무래도 신경을 안 쓰지만...

그것이 영원히 유지된다.라고는 생각 안 한다.

‘반드시 돌아온다.’

분명 관리자가 안배해둔 무언가가 있다.

반드시 돌아올거다.

안배해둔 무언가를 실행시키고 우리를 막기 위해.

“엘레노아 여신의 용사로서 말한다. 쓸데없는 짓거리는 하지 마라.”

내 뜻이 곧 엘레노아의 뜻이니.

‘물론 여신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지만.’

기왕 용사인김에 여신의 이름좀 팔기로 했다.

가에데는 나를 노려본다.

나 역시 그녀를 노려본다.

[......]

초월자가 되었지만 원래는 고위신이던 녀석.

여신과 고위신은 같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대관계는 더욱 아니다.

여신과 마왕은 적.

고위신과 마왕은 적.

적의 적은 친구니 여신과 고위신은 친분 관계라고도 할 수 있다.

‘게다가 여신은 강하지.’

고위신 전부가 덤벼도 마왕 혼자 이길 수 있고 시즌이 지나 더 강해진 이후로 초월자 몇이 덤벼도 마왕이 이기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마왕은 여신과 동급이다.

[...헛소리를...]

“헛소리가 아니든 말든 내가 용사라는 건 변하지 않지.”

나는 새로운 검을 꺼냈다.

찬란한 빛, 메티아스의 장검과는 다른 평범한 검.

앞선 두 검처럼 특별한 힘이 담기진 않았지만 받아놓고 쓰지 않는 ‘여신’의 신성이 담겨 있다.

게임 특성상 오로지 ‘사제’ 직종만이 쓸 수 있는 검.

하지만 용사도 넓게 보면 사제에 속하니 조건만 맞춘다면 사제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검을 사용할 수 있다.

‘설정상 여신의 가호 아래 싸우는 자들이니까.’

「▼신성 」

여신의 자태를 드러내듯 검신에서 순백의 빛을 내뿜는다.

로브 사이로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에, 엘레노아는 나서지 않아. 아무리 네가 용사라도─]

“평범한 용사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의 나만큼 마왕과 가깝게 다가선 용사는 없다.”

이건 확신한다.

고유 능력을 완전히 깨우치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정말 완연한 초월자에 가깝고 힘도 4등위를 간신히 턱걸이할 정도로 성장했다.

지금 당장 마왕의 성인 하펠론에 진격해도 내가 가진 전력으로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사리진 ‘무명’ 정도.

다른 이들은 없다.

[...헛소리. 헛소리다.]

지팡이가 한번 더 바닥을 내리치고 음산한 기운들이 전부 얖 옆에선 네 마리의 해골 병사들에게 스며든다.

검고 보랏빛이 도는 해골들.

“호?”

나는 고개를 까딱였다.

녀석은 방금 반 초월자를 만들었다.

그것도 넷이나.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네.”

[이게 끝이 아니지. 그분께 받은 능력은 이게 다가 아니거든.]

“그분?”

[궁금해?]

쿠구궁! 천지가 개벽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뒤에 있었던 코끼리 형태의 해골도 일어나고 있었다.

더불어 아까 부시고 가르고 태웠던 해골들까지.

주위는 전부 해골로 가득 차 있었다.

[그건 네 잘난 여신에게 물어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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