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화 〉 20. 전쟁 (6)
* * *
***
“여신을 적대하다니.”
나는 여신의 검을 어깨에 올리며 혀를 찼다.
누가 저들을 저리 바꿨는지 모르겠지만 본래 여신은 행성의 수호신 같은 존재다.
마족을 제하면 모두가 인정하고, 또 경외하는 존재.
인간은 물론 영물과 신들도 여신을 믿는다.
그런데 가에데 라는 녀석은 여신을 저버렸다.
투욱.
검을 다시 내린 나는 양손으로 백색의 검을 부여잡았다.
‘원한다면.’
“여신의 심판을.”
파아앗!
「▼신성 」
내가 가진 두 가지의 빛처럼 찬란하고 화려한 것이 아닌, 그야말로 티 없는 순백(?白)의 자태.
티 하나 없는 새햐얀 설산을 보는 것 같은 느낌.
무결한 순백의 빛이 해골들을 휩쓴다.
콰아아아아아아!!!
[...!]
“와우.”
“역시.”
가에데가 기겁하고 이랑이 놀라며 다윤이가 감탄한 공격!
간만에 K용사로 돌아온 나는 진짜 여신을 믿는 용사처럼 검을 휘둘렀다.
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순백의 검강이 터져 나와 해골들이 분쇄되어 사방팔방으로 튀어나간다.
수만, 수십만의 스켈레톤들은 무기 한번 휘두르지 못하고 그대로 쓸려나간다.
크에에에에에에에!!!
한 1분 정도 검을 휘두르고 다니던 그때.
천지를 울리던 코끼리 스켈레톤 쿵쿵 남은 스켈레톤들을 짓밟으며 내 쪽으로 다가온다.
난 저 녀석을 안다.
“엘리트론.”
370레벨의 월드 보스이자 시즌 1의 마지막 월드 보스.
체력과 힘 자체는 마왕과도 동일했던 녀석.
뭔 생각으로 저딴 월드 보스를 만들었나 싶었지만 단순히 스펙만 좋은 거라 사람들이 마왕은 못 잡는데 저건 잘 잡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물론 나는 못 잡았지.’
나는 하펠론 근처도 못가본 사람이었으니까.
“...재밌네.”
단순히 월드 보스였던 녀석은 스켈레톤으로 부활 후 2등위의 초월자도 노려볼 만큼 강해졌다.
그러니 나 역시 강해질 차례다.
“신의 축복을.”
「▼신성 」
따스한 순백의 빛이 내 몸을 감싼다.
“신의 권능을.”
「▼신성 」
날카로운 순백의 빛이 검신에 스며든다.
“신의 의지를.”
쩌적.
“아, 이건 무린가.”
기왕 뽕 뽑는 김에 받을 거 다 받으려 했는데.
여신이 자신의 힘이 뜬금없이 빠져나간다는 걸 안 건지 마지막 주문을 걸어주지 않았다.
지금의 여신은 마왕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된 여신이 아니니까.
‘초월자인 이상 역할극이라는 것도 알 테고.’
그래도 여신의 삼위(三? )중 두 가지를 받았으니 지금의 나는 여신의 사도나 다름이 없는 수준이다.
[어, 어떻게 그런...]
“여신을 배신한 대가, 반드시 치르게 만들어주지.”
─...언제 독실한 신자였다고.
조용.
멋대로 사라져 놓고 왜 갑자기 태클을 거는지 모르겠네.
나는 머릿속에 울리는 악마 공주의 말을 무시 한 체 엘리트론을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피잇─
순백의 빛이 정확히 엘리트론의 가운데 들어서고.
파캉!
두 갈래로 쪼개졌다.
세계의 중간 보스라고 불리는 월드 보스의 허무한 최후였다.
[...다. 다 죽여라!]
쓰러지는 엘리트론.
그리고 다가오는 음, 사천왕?
그중 거대한 몸집을 가진 오크 스켈레톤과 작은 인간 스켈레톤은 내 쪽으로.
나머지 둘은 각각 이랑과 다윤을 노렸다.
“둘이라 나쁘지 않은 판단이군. 이 악당.”
「▼신성 」
검에서 쏘아진 여섯 갈래의 순백의 빛이 그들을 노렸다.
오크 스켈레톤은 무식하게 두 갈래의 빛을 맞아가며 버티고 인간 쪽은 피했다?
“그걸 피해? 평범한 놈은 아닌가 보네.”
...주인님의 적에게 죽음을.
「▼부활 」 「▼─ 」
처음 보지만 예상했던 힘과 무언가 익숙한 힘이 나를 덮친다.
인간 스켈레톤은 몸을 팽이처럼 돌린 뒤 수백 개의 단검을 쏘아낸다.
파바박! 터져나가는 단검.
당연한 말이지만 몸에 닿지도 않았다.
크릉!
오크의 둔기에 바닥이 뒤집힌다.
나는 신성을 가볍게 둘러 잔해들을 막은 뒤 곧바로 다음 공격에 나섰다.
“여신의 이름으로.”
─아니, 여신도 안 믿는 게.
아 조용히 하시라니까.
「▼신성 」
크왁!
쏘아진 여신의 빛이 오크의 심장부를 파괴하고 곧이어 온몸을 부순다.
신성은 어둠과 마기에 있어서 치명적인 극독.
당연하게도 신성에 닿으면 그들은 빠르게 녹아내리거나 터져나간다.
...!
그렇게 오크 쪽은 터져나갔는데 인간 쪽은 한 번 더 회피했다.
‘저거 진짜 뭐지.’
저 정도로 쓸 만하게 움직이던 놈이 있던가?
내 기억상으로 없는데.
......
놈은 고개를 까딱이더니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정정한다.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베린과 유사한 기술이야. 아니, 거의 똑같다고 봐야 해.’
나는 어두운 하늘에 희미한 그림자 사이로 움직이는 녀석을 보며 생각했다.
‘쉐도우군.’
베린이 가진 직업의 스승이자 원조 격의 인물.
쉐도우는 ‘그림자 속에 있으면 맞지 않는다.’ 라는 희대의 사기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 베린을 영입한 결정적인 이유가 그 때문이었지.
스샤샤샥!
자세한 건 알아봐야 하지만 죽어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아마 가에데 라는 녀석이 죽여서 스켈레톤으로 만들었을 확률이 높다.
그림자 위로 수백 개의 단검이 튀어나온다.
입 아프게 말하고 있지만 당연히 맞지 않는다.
“여신의 맹세를.”
파아앗!!
내 몸에서 터져나간 여신의 빛이 구 형태를 띠며 어둠을 잡아먹었다.
그림자는 기겁하듯 빠른 속도로 뒤로 물러났다.
“안와?”
.....
저 멀찍이 떨어진 그림자는 마치 상처 입고 경계하는 고양이처럼 그르릉 소리를 낸다.
나는 피식 웃으며 다른 쪽을 보았다.
다윤쪽은 월광의 빛을 뿜어내며 이미 상대를 제압했고 이랑은 마치 불의 화신처럼 여우불을 잔뜩 흘리고 있었다.
상태가 위험해 보이지만 저건 자해에 가깝기에 적당히 휴식을 취하면 될 거다.
저 멀리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가에데의 손짓이 움직인다.
[돌아와. 쉬아.]
...
“이름 귀엽네.”
[...]
가에데는 돌아오는 쉐도우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분의 뜻대로 고위신의 틀에서 벗어나 초월자가 되었다.
처음 느낀 감정은 환희였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한계는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듯 나아가야 할 길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다음으로 느낀 감정은 당황이었다.
그렇게 끝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어째서 인지 길이 닫혀있었다.
누군가 중간에 벽을 세워 가로막은 듯한 길.
그분께 물었다.
어째서 길이 닫혀있나.
그는 그리 말했다.
‘길은 닫혀있다. 누군가 닫아놓은 벽이지.’
‘그렇다면 어찌해야 됩니까?’
‘간단하지 않나. 벽을 뚫으면 된다.’
‘어찌 뚫습니까? 저건 단순한 벽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쌓아올린 것보다 수백 배는 높아 보입니다.’
‘방법이 있다.’
[...어쩔 수 없지.]
가에데의 손이 움직인다.
‘고위신, 다섯 주인에게는 벽을 만들어낸 누군가의 ‘안배’가 들어있다. 그것을 이용해라.’
우웅.
“저거…”
덜그럭, 지팡이의 해골의 입이 열린다.
보라색의 이질적인 마력을 내뿜는 해골은 가에데를 중심을 거대한 마력의 파도를 일으켰다.
파도는 대지를 가르고 아직 남은 스켈레톤의 생명을 끊어졌다.
하늘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당연한 것들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이질적임에도 파도는 무척이나 익숙했다.
‘단, ‘개방’은 절대 하면 안 된다. 개방을 하는 순간은 네가 죽기 직전, 혹은 벽을 넘은 후뿐이다.’
익숙함과 동시에 오싹함이 드는 공격.
지팡이를 높게 치켜든 그녀는 영혼이 조각 나는 감각을 느끼며 조용히 선언했다.
[위대함을 목도해라.]
보라색 에테르의 파도가 우리를 덮쳤다.
***
머리가 아프다. 팔이 욱신거린다.
단검은 부러졌나?
드문드문 기억이 끊겨있다.
[...일어…]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것 같다.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날 수가 없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지고 아래로 파고드는 느낌이다.
이대로 다시 쓰러질 것 같─
[일어나. 베린.]
“...!”
벌떡.
베린은 어느새 베린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진 세피드에게 기대며 일어났다.
흐릿한 한쪽 눈만으로 주변을 바라본다.
불타버린 숲.
분홍빛이 예뻤던 나무들은 까맣게 타버렸고 이곳저곳은 파이고 뜯겨진 흔적들이 가득했다.
결계는 어느새 완전히 깨져버린 상태였고 그 안쪽 역시 바깥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린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저 하늘.
보라색과 푸른색이 뒤섞여 변한 하늘 위, 거대한 푸른 용과 아주 작은 무언가가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다.
레빗이다.
레빗이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나 왜…”
[먼저 싸우다 당했어.]
토옥.
세피드의 검은색 양산이 베린의 머리 위에 씌워진다.
[난 나서면 안 되고.]
“김윤. 김윤은?”
이 사태를 김윤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어째서 아직도 레빗 혼자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을까.
[몰라, 연락 안 돼. 게다가…]
“게다가?”
세피드는 반짝이는 자안의 눈으로 용을 보았다.
수많은 차원을 돌아다니는 세피드는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을 보았다.
그런 그녀에게 저런 용은 전혀 특별하고 특이한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 수 없는 오싹함을 느꼈다.
‘마치 김윤을 보는 것 처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