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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7화 〉 24. 그녀의 친구, 그녀의 기사 (5) (267/318)

〈 267화 〉 24. 그녀의 친구, 그녀의 기사 (5)

* * *

***

“...왜죠?”

“당연한 거다. 성녀의 위치에 올라서면 그분을 보필하는 건 정예기사 수준의 강자들뿐이다.”

“......”

“그것도 바로 옆이 아닌 시야와 대처가 가능한 주위에서 머무는 거지. 너는 옆에 있을 수 없다.”

단호하게 말하는 기사.

그 말투는 전에 보았던 오만한 기사들과는 달리 정말 설득하려는 말투였다.

하페와 맞잡은 나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기사는 곤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함께 하길 원한다면 신전 소속의 사제로는 넣어줄 수 있다. 정확히는 성녀의 수발을 드는 일이지. 물론 너는 남자이니 수발이라기보다는 보조일에 가깝겠지만…”

점점 기사의 표정은 난처해진다.

“내가 어떻게 잘 설득해 보마.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위치에 있거든. 어떠냐.”

나는 고민했다.

이자들을 기본적으로 믿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도망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과의 끝은 암울할 뿐. 절대 나아지진 않겠지.

좋든 싫든 가긴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제.

그것도 보조 일을 돕는 사제.

한다면 그녀의 곁에 있을 수 있겠지만 실제로 몇 번 만나지도 못할 거다.

아마 필요 없는 인원 취급하고 잡일이나 시킬 게 뻔하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어쩌면 저 기사라는 사람의 신경이 끊어지면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려 들지도 모른다.

나는 하페를 본다.

올곧은 하페의 눈은 나를 가만히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녀는 눈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미 답을 알고 있잖아.’

나는 피식 웃었다.

하페는 나를 너무 잘 안다.

내 표정이 밝아지는 걸 보고 착각한 건지 기사는 성급히 말을 꺼냈다.

“그래. 잘 생각했다. 너를 신전 소속─”

“거절합니다.”

“...뭐?”

***

애초부터 사제를 할 생각이 없었다.

난 그녀의 옆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할 사람이 아니니까.

그녀를 위하지만 나 역시 하페도 나도 스스로 지킬 정도로 강해지길 원했다.

‘누군가에게 의존해서가 아니라.’

하페도 그걸 원하겠지.

나는 잔뜩 날이 상한 검을 꺼내 바닥에 꽂았다.

“안 간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녀의 ‘수호기사’로 갈 거예요.”

수호기사.

서재의 책들 사이에서 본 적이 있다.

신전의 이야기를 어린이 시선에 맞춘 동화책이 있었는데, 아름답고 고귀한 성녀에게는 멋지고 능력이 뛰어난 수호기사가 있다고 한다.

성녀의 옆에 떨어지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보필하고 수호하는 기사.

때문에 이 기사는 무력을 비롯해 감각, 판단력, 사고… 등등 모든 부분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였다.

“난 강해질 거예요. 확신해요. 그러니 나를 수호기사로 임명해 주세요.”

“......”

기사의 노란색 두 동공은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크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어찌나 크게 웃었는지 주위가 쩌렁쩌렁 울리고 낙엽과 흙먼지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귓가도 웅웅 울렸다.

그는 한참을 웃다 간신히 웃음을 멈추었다.

“크… 동화 속 이야기를 너무 재밌게 본 모양이구나.”

“......”

“아쉽지만 그런건 정말 동화 속에서만 나오는 내용이란다. 수호기사라는 건 없다. 다 동화 속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수─”

“제브니아 왕국의 호수의 신전의 성녀, 미론디 아크이나. 그녀에게는 브아타라는 수호기사가 있죠.”

뚝.

기사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는다.

나는 그를 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전속기사라는 명칭이지만요.”

“......”

“그 외에도 많아요. 이브 공작령의 수호기사 칸브, 미라크 왕국의 왕국 소속 수호기사 카일… 이 사람은 성녀가 나타나면 그때마다 옆에 붙는다고 하죠?”

“...어떻게.”

나는 꽂혀있던 검을 들어 햇빛에 비춰보았다.

빛이 조금 가려진다.

“난 말이죠. 아니, 우리는 말이죠. 하페가 신의 힘의 위험성을 자각했을 때부터 방법을 찾았어요. 신전에 관련된 정보나 기사 같은 걸 말이죠.”

“......”

“하지만 역시 소마을의 어린이들이 알 수 있는 정보는 아니었어요. 그 대신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정보를 모았죠.”

신전의 관계도나 기사의 정보는 알만한 것이 못되지만 수호기사만큼은 정보 상인에게 가면 싼값에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정보들은 다른 왕국에 발만 들여도 알 수 있는 정보들이고, 왕국은 무력을 과시하기 위해 정보를 숨기지 않았으니까.

기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수호기사는 있어. 과거 이백 년 전 후작령에도 전속기사라는 이름의 기사가 있었다.

“그럼…!”

“하지만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

철컹.

바닥에 나란히 놓여있던 기사의 무구들이 하나씩 제 자리를 찾는다.

“너도 잘 알겠지. 그 ‘수호기사’가 얼마나 무력적으로 우위에 있어야 하는지.”

기사의 은빛 창날이 햇빛에 비쳐 반짝인다.

“정예기사 수준이 아니야. 정예기사 셋은 단숨에 쓰러트릴 수 있을 정도. 아니, 그보다 훨씬 이상이어야 한다.”

“...자신 있어요.”

“자신? 너는 지금의 나를 이길 수 있나?”

그의 시선이 높아진다.

나는 위를 부릅뜨고 올려다보았다.

…목이 아프다.

결국 시선을 뗀 쪽은 기사였다.

“왜 왕국들이 수호기사의 정보를 숨기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그 이유는 간단해.”

창날이 소리 없이 움직이더니 어느새 하페의 목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보를 알든 말든 충분히 성녀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너는 어떻지?”

창날은 별빛의 힘에 의해 쳐내졌다.

그는 창을 회수하며 나를 흘겨보았다.

“지키는커녕 지켜질 것 같은데?”

“지금은 그렇죠.”

나 역시 검날을 기사에게 향했다.

“미래를 봐요. 그 잘난 예언의 성녀라면 내 미래가 어떤지 알 거 아니에요.”

“...그분은 쓸데없는 미래를 보지 않으신다.”

“쓸데없든 안 쓸데없든 그건 내가 정해요. 그리고 성녀와 기사 열을 뚫고 나온 것이 나에요. 어때요. 새싹이 보이지 않나요?”

“자신감이 넘치는구나.”

나와 한참을 신경전 벌이던 기사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듯이 무기를 집어넣었다.

“내기 하나 하지.”

“...내기요?”

“그래. 네가 미래의 수호기사라면 이 정도는 해낼 수 있겠지?”

…설마.

“삼일 후에 기사단이 직접 올 거다. 단장님도 오겠지. 그때 기사 셋과의 승부에서 이긴다면 너를 수호기사로 임명해 주마.”

“그건 억지예요! 지금은 이길 수─”

“그럼 우리는 너의 뭐를 믿고 미래를 기다려주지? 성녀님의 예언? 성녀님은 봐야 할 미래가 많으시다. 더불어 사도를 빨리 데려오라고 으름장을 내놓는 상태다. 더 이상 기다려줄 수 없어.”

“크윽…”

“그럼. 기다리고 있어라. 괜히 도망가지 말고.”

기사는 떠났다.

하페의 도움은 기대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윤. 어떡할까.”

“...해야지.”

이겨야 한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남은 선택지는 도망 아니면 이별이니까.

무슨 수를 써서든 무조건 이겨서 하페의 전속기사가 되어야 한다.

‘반드시 그리되어야 한다.’

나는 생각을 정리한 후 하페를 돌아보았다.

“하페. 나를 도와줘.”

“뭘? 승부할 때는 도와주면 안 된다고…?”

“그거 말고. 부모님 설득 좀 도와줘.”

삼일 동안 수련에 들어가야 한다.

***

“어머 둘이 웬 여행? 그것도 삼 일 동안?”

“그럴 줄 알았어. 그래, 그래. 뭐 필요한 건 없고?”

“네. 다 준비했어요.”

“네!”

“그래. 잘 갔다 오렴.”

끼익…

배낭을 메고 삐걱거리는 나무 문을 여니 다시 평화로운 풍경이 들어선다.

옆집 아저씨와 아줌마가 웃으며 갓난아기를 돌보고, 나와 하페가 열심히 조립한 허수아비가 놓인 마을의 논밭은 햇살에 비쳐 황금빛을 자랑했다.

역시 기사의 방문은 마을 사람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마법 같은 거겠지. 시선을 가리는 용도로.”

하페는 마법적인 무언가라고 설명했다.

마을의 사람들은 마력이 없는 민간인들이니 그런 마법적인 무언가를 눈치채기 힘들다고.

“가자.”

지금부터 삼 일 동안 기사를 이길 정도로 성장해야 한다.

***

3일.

어찌 보면 긴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 3일은 정말 짧았다.

승부를 위해 1분 1초가 아깝게 움직였지만 시간은 야속하게도 정시간대로 흘러갔다.

간이식으로 만든 천막을 걷어내자 그동안 먹고 지낸 음식들이 어지럽게 놓여있다.

시간이 촉박해 잘 치우지도 않은 음식들.

나는 마지막으로 정비를 한다.

다 부러져 흔적도 남지 않은 검은 대충 가방에 담고 활동하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힘내.”

“물론이지.”

하페는 내 옷 가짐을 정리하며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난 네가 뭘 하든 너의 뜻을 따를게. 그러니 무리하지는 마.”

“걱정 마 무리 아니니까.”

무리가 아니다.

도망칠 때 느꼈던 묘한 감각.

속도.

그리고 힘.

처음에는 하페의 신의 힘이라 생각했지만 곱씹어 생각해 보니 결코 그것은 하페의 힘이 아니었다.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또 다른 무언가.

그것은 분명 나를 좀 더 위로 성장시켜줄 힘이었다.

3일은 짧지만 내가 그간 익혀온 수련은 결코 짧지 않았다.

‘할 수 있다.’

“왔니 꼬마야.”

“네.”

그러니 절대 물러설 수 없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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