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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8화 〉 24. 그녀의 친구, 그녀의 기사 (6) (268/318)

〈 268화 〉 24. 그녀의 친구, 그녀의 기사 (6)

* * *

***

은빛의 물결이 다시 한번 마을에 들어선다.

“왜 또 기사님들이…”

“혹시 뭐 일이라도 터진 게 아닐까요?”

“제가 다른 마을 친구에게 들었는데 이 일대에 사도가 나타났다는…”

3년 전 그때와 비슷한 양상.

하지만 그때와는 다른 명확한 목적을 가진 이들은 자신감 넘치는 발소리를 내며 마을 중앙, 광장에 모였다.

말이 광장이지 소마을 답게 별다른 건 없었다.

그저 의자 몇 개와 오래된 나무 몇 개뿐.

나머지는 텅텅 비어있는 땅이다.

기사는 총 열둘.

3년 전 그때를 제외하면 다들 처음 보는 얼굴들이지만 선두에선 남자는 익숙했다.

“도망치지 않았구나.”

“도망쳐 봤자 의미가 없는걸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미 마을 주변을 전부 포위하고 있었을 텐데.

기사는 그래그래 하고 웃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옆에 대기하고 있던 기사 하나는 촌장에게 달려가 대략적인 상황을 알려주었다.

‘사도? 레아의 아이가?’

‘정말 사도를 찾으러 온 모양이야. 그러면 하페가 성녀가 되는건가?’

‘그런데 윤이는 왜 저기 있는 거야?’

‘위험한 건 아니겠지?’

역시 마을 사람들은 금세 서로 속닥이며 정보를 공유했다.

워낙 좁은 마을이고 오랫동안 믿어온 사람들이라 서로 숨기는 정보라는 건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시선을 돌리니 나의 부모님과 하페의 부모님이 다소 걱정되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는 많이 했니?”

“별로요. 그래도 쉽게 밀릴 생각은 없으니 걱정하지는 마세요.”

“여전히 자신감이 넘치는구나. 그래.”

그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예정되어 있었는지 앞서 나오는 세 명의 기사.

하나는 키가 나와 비슷한 기사였고 다른 둘은 제법 체격이 있는 기사였다.

아마 나와 비슷한 체격의 기사로 패배시켜 나를 완전히 포기시킬 생각이겠지.

“이 아이는 견습 기사다. 기사가 된지는 5년이 되었지.”

“6년입니다. 부단장님.”

“그래. 미스. 6년이지.”

적갈색의 머리칼을 가진 녀석은 갈색의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 역시 그에 굴하지 않고 녀석을 노려보았다.

“보기 좋군. 이 아이는 너와 비슷한 나이다. 하지만 기사 수련을 무려 6년이나 했지. 평범히 살아온 너와 달리 말이야.”

“그렇군요.”

“...그럼 규칙을 알려주마.”

동요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본 기사는 역시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마력 사용은 당연히 금지다. 이건 생사결이 아니기에 사용할 이유가 없지. 더불어 미스와 동일한 장비도 내어줄 거다.”

“......”

“목표는 간단해, 죽이지 않고 상대를 포기시키면 된다. 안전은 걱정하지 마라. 위험해진다면 여기 있는 기사들과 내가 언제든지 빼내줄 테니까.”

“네.”

“네. 부단장님.”

나는 지급받은 반팔 형태의 은빛의 갑주와 검을 들었다.

다소 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저 미스라는 녀석과 동일한 치수인지 나름 잘 맞아떨어졌다.

‘들었어? 대결을 한데.’

‘윤이가 위험한 거 아니야? 아무리 또래라고 해도 기사인데…’

‘견습 기사래잖아. 혹시 또 모르지?’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나는 눈을 감고 마음을 정리했다.

긴장되고 어지러운 마음들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러곤 하페의 눈을 응시했다.

하페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인 뒤 정면을 바라보았다.

미스는 검을 부웅 부웅 휘두르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베는 연습이라도 하는 건가.

“더 기다려줄까?”

“뭐?”

멈칫.

“내가 널 기다린 거지. 너 눈을 감고 있던 것 몰라?”

“내가 준비를 마친 후 너는 계속하고 있었으니 내가 기다린 게 맞는 거지. 바보냐?”

“...시작해.”

가을임에도 공기가 서늘하게 흐른다.

바람 바람이 손가락 사이를 유영하고 작은 광장에는 적막한 침묵이 계속되었다.

시작은 미스였다.

미스는 빠른 속도 달려와 검을 내려친다. 나는 지급받은 은색의 검을 가로로 세워 막아냈다.

크득!

같은 또래임에도 제법 검에 힘이 실려있다.

미스는 힘으로 가볍게 찍어누를 생각이었겠지만 나는 물러서거나 피하지 않고 그대로 검의 무게를 받아냈다.

결국 미스는 포기하고 검을 물린다.

“제법…”

후웅!

“읏…! 너!”

계속해서 힘을 주던 검을 아래로 틀어 미스의 팔을 베어낸다.

피싯!

정확히는 베어 낼 뻔했다.

은색의 검은 미스의 팔에 생채기를 남겼다.

반팔 형태로 되어 있는 갑주 아래로 피가 주르륵 흐른다.

“봐줬더니!”

피를 보더니 잔뜩 흥분한 미스가 검을 횡으로 휘두른다.

카각! 다시 한번 막히는 검.

이번에는 세로로 세워 막았다.

‘할만하다.’

또다시 힘 싸움에 실패한 미스가 물러선다.

이번에는 내 쪽에서 검을 휘둘렀다.

미스 역시 나와 같이 공격을 막아내긴 했지만 뒤이어 이어지는 추가타를 막지 못하고 상처를 하나 더 늘렸다.

그 뒤로 공방이 지속된다.

미스는 어떻게든 한방에 찍어누르거나 단숨에 나를 베어버릴 생각이었지만 나는 일부로 얕은 상처를 내어 장기전을 유도했다.

그 결과 나는 가벼운 상처 몇몇을 입은 것에 반해 미스는 온몸이 얕은 상처로 가득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피를 흘렸지만 저 녀석 역시 초인이다.

저 정도로 죽을 리가 없다.

‘기사도 안 움직이기도 하고 말이야.’

마을 사람들은 잔뜩 놀란 모양이지만 기사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오히려 얼른 끝내라는 듯이 미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의 검을 피해 세 걸음 물러난 미스는 피투성이인 손으로 머리를 올리며 나를 노려본다.

“아씨… 병신 만들기 싫은데…”

“뭐?”

“원망 마라. 그래도 아저씨들보단 나한테 당하는 게 더 나을 테니까.”

또다시 반문하기도 전에 내 몸은 어느새 뒤로 날아가고 있었다.

“윤!”

콰아아앙!!!

광장의 나무에 처박히는 나.

반사적으로 막은 검이 웅웅 떨렸다.

“그걸 또 막아? 너 정말 소마을 출신이 맞아?”

은빛의 아우라를 내뿜는 녀석은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자랑했다.

게다가 속도도 더 빨라졌다.

나는 부단장을 향해 외쳤다.

“저거! 마나 아닙니까!”

“아니다.”

“그럼 뭡니까?!”

“별개의 힘이지. 우리 은빛 기사단은 기사의 신의 가호를 받고 있다.”

신의 가호.

신전에는 성녀만을 선전해 여자만이 신의 가호를 받는다 착각하지만, 사실 그 누구나 신의 능력을 얻을 수 있다.

많지는 않지만 성녀가 아닌 성자가 있는 신전도 있으니까.

“성녀님처럼 사도는 아니지만 힘의 일부를 사용할 권한을 얻은 것뿐이다. 문제될 건 없어.”

“말도 안되는…!”

나는 이를 악물었다.

또 한 번 압도적인 일격을 간신히 막아내며 생각했다.

신의 힘은 사용이 허가된다.

아직 두 번의 승부가 더 남은 시점에서 ‘그걸’ 쓰면 나를 잔뜩 경계하고 이길 확률이 줄어들겠지.

그렇다면 나 역시 조건을 맞추면 된다.

“하페!”

“응!”

슈아악.

“...!”

“꺼져!”

검에 깃든 별빛의 힘이 은빛의 힘을 몰아내고 미스를 밀어낸다.

크윽. 거리며 어떻게든 버틸려 하지만 힘의 총량은 이쪽이 훨씬 더 많았다.

결국 미스는 버텨내지 못하고 검이 튕겨나가며 공격을 온몸으로 받았다.

“후우… 뭐 하는 짓입니까.”

미스의 앞에는 곤란한 표정의 부단장이 있었다.

미스는 숨을 헐떡이며 다른 기사에 의해 뒤로 이송됐다.

경기는 내가 이겼다.

“말했을 텐데 사도 님의 힘은 빌리지 말라고.”

“나도 저 녀석이 기사 뭐시기의 힘을 쓰지 않았다면 안 빌렸을 겁니다.”

“그런 걸 감당하는 게 네 녀석의 일이다. 수호기사를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수호기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최고의 성과를 내어야 한다.”

“부정한 상황에까지 순응하는 것이 수호기사의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높낮이가 다른 시선이 다시 한번 마주친다.

결국 이번에도 진 쪽은 부단장이었다.

“.....두번은 없다. 다시는 사도 님의 힘을 빌리지 마라.”

부단장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결국 어떻게든 패배시킬 작정이었다는 것 아닌가.

내가 생각보다 잘 싸워서 어쩔 수 없이 개방한 거겠지.

“윤! 괜찮아?”

“괜찮아.”

하페는 손수건으로 피와 땀을 닦아주며 나를 걱정해 주었다.

그래도 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있으니 마음에 안정이 되었다.

나는 두번 째 기사를 바라보았다.

견습 기사인 미스보다 훨씬 강한 기사.

심지어 신의 힘까지 쓰는 기사.

“괜찮아.”

이제부터 하페의 도움 없이 저 자를 이겨야 한다.

***

짧은 휴식을 마치고 신의 힘에 의해 잔뜩 망가진 장비 대신 새 장비를 지급받았다.

내가 이길 건 생각지도 못했는지 장비는 새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쓸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가졌다.

“나 참. 애들 장난이나 하고. 부단장님도 참 이상하시다니까. 안 그러냐?”

“시작이나 하시죠. 아저씨.”

“야. 아저씨 아니고 형…”

두 번째 상대는 빈 뭐시기 인데 이름은 외우지 않았다.

어차피 쓰러트려야 할 상대.

게다가 위험해지면 신의 힘까지 써서 날 찍어누를 사람이다.

“뭐, 됐다. 잠깐 누워있으면 다 끝나 있을 거다.”

시작부터 터져 나오는 은빛의 아우라.

그는 앞선 견습 기사 미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접근했고.

「...

콰아아아앙─!!!

그대로 내 검에 의해 날아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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