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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3화 〉 24. 그녀의 친구, 그녀의 기사 (11) (273/318)

〈 273화 〉 24. 그녀의 친구, 그녀의 기사 (11)

* * *

***

신전은 별일 거리가 없다.

본래라면 준동하는 마왕을 경계하며 신전의 힘을 기르거나 새롭게 탄생한 용사의 동료로 따라가는 일을 하기도 하지만.

“마왕은 봉인되어 있데.”

마왕은 잠들어있다.

수백년 전부터 마왕은 세계 정복을 멈추고 마왕성에 봉인되어 있다.

그에 대적하던 여신이 자신의 존재를 걸어가면서까지 마왕을 봉인시키는 결계를 구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일시적인 효과.

머지않아 마왕이 결계를 깨뜨리고 활동을 시작할 거다.

“그래?”

“응. 그것 때문에 예언의 신전이 여러모로 주목을 받고 있나 봐.”

예언의 성녀.

신들 중 유일하게 ‘미래’를 보는 신으로 높은 위치와 힘을 가지고 있는 성녀.

우리를 끌고 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전쟁이라…”

마왕과의 전쟁.

검신이라는 자에게 받은 이 힘이 있다면 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완전히 확신하는 건 아니다.

지금의 나는 약하니까.

“?”

“아냐.”

나는 고개를 갸웃하는 하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니 더 강해져야 한다.’

***

“어디 갔다 오신 거예요!”

“일이 좀 있었다.”

또다시 밤.

‘내’가 수면 상태에 들자 동조화가 자연스레 풀렸고 다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하루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부서진 가게에 앉아있는 주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만년필을 건네주었다.

“자요.”

“마탑엔 갔다 왔나?”

“갔죠. 갔는데 문전 박대 하던데요?”

으으으─! 기지개를 편 주인은 가볍게 마법을 시전했다.

녹색의 마력은 생명이 자라나듯 서서히 부서진 가게를 복구하기 시작했다.

‘리빌딩이군.’

3서클, 리빌딩(Rebuilding).

가게는 전의 모습을 서서히 찾아가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진 가게를 되찾는 건 조금 무리였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이 멈추었다.

본래의 10%도 채 복구하지 못한 모습.

“끄응.”

벽안의 두 눈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고쳐달라는 거냐?”

“그, 예. 그쪽 잘못은 아니긴 한데… 해주시면 감사─”

파아아앗!

“됐나?”

“합, 네에에엑!?”

주인은 돌아온 가게를 휙휙 둘러봤다.

어느새 전과 똑같은 모습을 한 가게.

벽면에 걸린 마법 도구들과 마력의 선들, 그녀의 작품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녀가 먹고 있던 음식의 고소한 내음까지 복구했다.

그녀는 찢어질 듯이 커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이 정도 복구는 일도 아니다.

물론 플레임 필드에 의해 완전히 소각된 현장을 복구하는 건 아무리 상급 마법사라 해도 불가능하다.

복구 마법은 기존의 정보와 남은 것들을 토대로 기억을 되살리는 형식인데 남은 게 없다면 아무리 복구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되살릴 수 없으니까.

엄밀히 따지면 이건 ‘시간’ 마법에 가깝다.

그리고 시간 마법은 마탑주 정도의 ‘대마법사’들 만이 사용할 수 있다.

“대, 대마법─”

“오해.”

나는 그녀의 입에 손가락을 올렸다.

“오해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아, 으아? 네엑? 예.”

살짝 고장 난 주인.

그녀는 어버버 거리다 이내 고개를 빠르게 위아래로 끄덕였다.

눈앞에 있는 건 하나의 나라를 뒤집을 수 있는 강자.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된다.

나는 주인의 앞에 금화 주머니 몇 개를 놓았다.

“돈은 이걸로 내지.”

“그으아, 너무 많.”

“앞으로 이곳에 자주 찾아올 거다. 그때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가져가지.”

나는 만년필을 만지작거렸다.

묵빛의 황금색 띠를 가진 티없는 만년필이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역시 고장 났다.’

남색 마탑의 마법사의 공격은 아무런 피해 없이 잘 막았으나 유적의 입구 매개체는 개복치처럼 약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물론 어지간한 마력에는 끄떡도 없겠지만 그 마법사 역시 신의 힘을 어느 정도 사용하고 있던 상태였으니 말이다.

‘망할.’

이러면 다음 입구 매개체가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 않은가.

“알겠나?”

“네!”

“그럼.”

“레, 레이나에요!”

“...?”

“아, 알고 계셨나요? 그래도 혹시나 해서…”

레이나.

“레이나?”

“네!”

“그래. 기억하지.”

돌아온 가게 문을 나섰다.

아직 조용한 밤거리.

동조화 상태에는 시간이 갑자기 훅 지나는 경우가 있지만 지금은 내가 특이점을 사용해 따로 움직이기에 시간은 절대적으로 흐른다.

남는 시간엔 무엇을 해야 할까.

‘찾아볼 건 많지.’

나는 로브를 다시 둘렀고 머지않아 그 자리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

대륙에는 수많은 신전이 존재한다.

그중에는 같은 신의 사도인 성녀, 혹은 성자라 하더라도 하나의 신전에 머물지 않고 다른 신전의 주체로 활동한다.

그중 가장 많은 건 대지의 신전.

대지의 신은 워낙 힘을 많이 뿌리는 탓에 대지의 신전만 스물이 넘는다는 소문이 있다.

가장 적은 건 별빛의 신전.

마법의 종주라 불리는 신은 과거에는 다른 신과 비슷한 정도의 신전 수를 유지했으나 지금에 와서는 아주 소수의 신전만이 남아있다.

하페가 새롭게 별빛의 성녀가 되었으니 신전 수는 셋.

본래는 둘 밖에 없었다는 소리다.

“검신의 성녀를 보러 왔다… 하셨습니까?”

“그래.”

그리고 나는 검신의 신전에 왔다.

별빛의 신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수가 다섯이 넘지 않는 희귀한 신전.

검신의 사도가 적은 건 아니지만 신의 특성상 성자나 성녀로 남는 걸 원하지 않기에 그 수가 적었다.

나 역시도 그렇고.

“성녀님은 야간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만… 무슨 일로…”

검신의 사도는 다소 긴장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보통이라면 한밤중에 무례하게 찾아온 나를 오히려 내쫓아야 마땅했으나 나에게 느껴지는 거대한 마력에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잠깐 확인할게 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신원은 어떻게 되십니까.”

“신의 사도다. 다른 건… 밝힐 수 없군.”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사제는 신전의 안으로 물러갔고 나는 그동안 신전의 외부를 구경했다.

‘별다른 점은 없네.’

검신은 최강자의 또 다른 이명.

사실 최강자는 모든 무기를 능숙하게 다루기에 뭐든 갖다 붙일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잘 쓰는 건 역시 검이다.

신전의 기둥 가운데에는 검신을 상징하는 검의 문양이 박혀있었으나 그것이 딱히 최강자의 문양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단순히 끼워 맞추는 느낌.

내가 착각하는 걸까?

“들어오시랍니다.”

‘확인해 보면 알겠지.’

***

“이걸 착용해 주십시오.”

사제는 나에게 연푸른 팔찌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뭐지?”

“힘을 억제하는 팔찌입니다. 정말 대화만 하실거라면 착용해 주시겠죠.”

“너무 당당하군. 보통 일부로 숨기거나 하지 않나?”

“보통이라면 그렇겠죠.”

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분이 아니시니, 저희도 그에 맞춰 대응하는 것뿐입니다.”

“그래, 끼지.”

나는 피식 웃으며 팔찌를 꼈다.

착용하자마자 연푸른 힘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나의 마나선을 틀어막고 힘의 사용을 억류했다.

“...”

“흠.”

뚜둑.

아주 잠깐만.

제아무리 방파제를 세운다고 해도 건물 높이의 파도를 막을 수 없는 노릇.

애초부터 이 팔찌는 의미가 없었다.

힘의 사용은 가능해졌으나 반응을 한번 보기 위해 일부로 마력의 운용을 막아 아까와 같은 현상을 만들어냈다.

“가지.”

“네.”

신전의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사제의 수가 많아진다.

검신의 신전이라 그런지 사제라도 다들 품속에 검 하나씩은 품고 있었다.

“이쪽입니다.”

위쪽이 동그란 커다란 문.

흰색에 연푸른 물결이 새겨진 문을 열자 대기하고 있던 수십의 기사가 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윈드 아이스.’

6서클, 윈드 아이스(Wind ice).

쩌정! 얼음 깨지는 소리가 모두의 귀를 찌르고 공기 중에 퍼진 물의 입자들이 얼음으로 변한다.

“크읏!”

“어, 어떻게 마력을…!”

얼음조각은 창문이 모두 닫혀 일어날 일 없는 바람을 타고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기사 수십 중 절반 이상이 얼음 파편에 꽂혀 전투 불능 상태가 되었고 그중 또 절반은 생명이 위태했다.

“마, 막아라! 성녀님을 노리러 온 암살자다!”

기사 단장으로 보이는 남자는 검을 치켜세웠다.

검술 실력은 쓸만해 보이나 은빛기사단 처럼 신의 능력을 공유 받지 못한 기사.

다소 실망하던 순간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오호.”

신전 공간의 가장 뒤쪽.

연푸른 머리칼을 가진 성녀가 보석이 얽힌 검을 지팡이처럼 휘두르자 기사에게 연푸른 힘이 깃들기 시작한 것이다.

최강자의 힘까지는 아니지만 묘하게 비슷한 힘.

‘저게 하페가 만들었다는 ‘모조품’인가.’

최강자의 힘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이들을 위해 만들어낸 힘.

나는 씨익 웃었다.

“...! 피, 피하십시오! 저건…!”

마력의 흐름을 느낀 성녀가 기겁하며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과거 인간의 육체로 신에 가까워진 대마법사가 신의 힘을 모방해 만들어낸 마법의 검.

8서클, 소드 미라클(Sword Miracle).

신의 이적(??)이 깃든 검이 내 손에 들어차고 그것에 가볍게 내지른 순간.

트드득!

신전의 절반이 세상에서 지워졌다.

티각.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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