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4화 〉 25. 진심 (1)
* * *
***
“...무슨.”
검신의 성녀는 자신의 단짝과도 같은 검을 떨어트리곤 바닥을 기었다.
저 무지막지한 괴물로부터 어떻게든 벗어나야 했으나 강렬한 여파에 노출된 그녀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내 찾아올 재앙을 맞닥뜨리는 것뿐.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았어.”
“......”
성녀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하페가 찾아내거나 만들어낸 것 중 최강자와 가장 가깝게 만들어진 건 ‘월광검사’다.
월광검사는 달빛의 힘을 쓰는 검술이자 다윤이 가진 능력으로 나 역시도 인정 할 만큼의 위력과 성능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 외의 ‘실패작’이라 치부한 것들까지 이 정도 성능을 보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힘 조절을 하긴 했다만, 아무도 죽지 않다니.’
위기의 순간 성녀는 자신의 힘을 극한까지 발휘해 신전의 모든 이들에게 검신의 힘을 심었다.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생명에 지장 없이 전부 살린 셈이다.
“그 상황에서 전부를 살릴 줄이야.”
“...당신은 누구신가요. 어째서 저희를.”
성녀는 바람 앞에 촛불 같았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진짜’보다 색은 짙었지만 진짜는 아닌 힘이 내 손을 타고 스며들어온다.
“아아아…”
「▼▼─ 」
스륵. 힘의 추출이 끝나자 성녀의 육신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실패작’의 힘을 체감했다.
역시 제작자가 제작자이다 보니 나름 준수한 수준의 힘.
힘 자체는 굉장히 뛰어났다.
잘만 성장한다면 초월자가 될 수도 있거니와 하나의 행성의 지배자가 될 수도 있는 정도니까.
하지만 나는 하페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부족해.’
고작 이 정도로는 안된다.
어설픈 초월자나 행성의 지배자 정도로는 관리자를 이길 수 없다.
나는 신전을 돌아봤다.
반파된 신전 사이로 신음 소리를 내뱉는 사제와 기사들이 어지럽게 놓여있다.
이대로 둔다면 필시 문제가 생기리라.
나는 시간 마법을 사용해 신전의 상태를 되돌렸다.
흰색의 기둥 파편이 두둥실 떠올라 제자리를 되찾고 부상당한 사제는 마치 되돌아가듯이 삐걱 거리며 원래의 위치로 이동한다.
방금 사용한 마법은 10서클.
마법의 수준이 마성에 이른, 일종의 현상 조작이었다.
복구된 문이 열리고 기사들 역시 부서진 갑주와 무기들이 수복되며 복도에 나란히 서게 되었다.
“...?”
쿠웅!
마지막으로 사제들이 나가자 기도실 안에는 나와 성녀만이 남았다.
나는 기도실 앞에 놓인 무수히 많은 의자 중 하나에 앉았다.
잠깐의 침묵이 일고 상황 파악이 어느 정도 된 성녀가 감겨있는 눈을 뜨고 나를 노려본다.
“...당신.”
“우선 사과부터 하지.”
방금 일을 기억하는 건 나와 성녀. 단둘뿐이다.
현상 조작으로 기사와 사제의 기억을 모두 조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초월자도, 신의 사도도 아닌 일반인들.
마성에 이른 존재의 마법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성녀는 아니지.’
“원래는 이렇게 단둘이 얘기하려고 했는데, 시험해볼 게 있어서 말이야.”
“......당신의 존재를 쉽사리 파악하기가 어렵군요. 혹시 마왕이라도 되십니까?”
성녀는 공손히 물었지만 그녀의 손과 심장을 벌벌 떨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 일은 어지간한 신조차도 구사하기 힘든 수준이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지?”
“당신이 방금 벌인 일과 힘… 쉽사리 재단하기 어렵군요. 게다가 시간 마법을 비생명이 아닌 생명체에게 사용할 수 있다니.”
성녀의 눈초리가 예리해진다.
“시간의 신이 현신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합니다.”
“시간의 신은 오래전에 죽었다.”
“네. 예언의 신을 제외한 모든 시간 관련 신이 마왕에 의해 죽었으니까요. 만일 시간의 능력을 쓸 수 있다면 그건 마왕 아니면 예언의 신이겠죠.”
당신은 예언의 신처럼 보이지 않으니 말입니다.
제법 날카로운 질문.
나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충 알았으니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겠지. 액땜했다 치거라. 너의 힘은 비슷한 것으로 넣어주었으니.”
“...우리를 그냥 두시는 겁니까?”
“내가 너희를 죽일 이유가 있나?”
나는 물었고 성녀는 진지하게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 정도의 강한 힘을 가지고 있고, 그 목표도 이뤘다면 굳이 죽일 이유까지는 없다.
저만한 힘을 얻기까지 수없이 긴 시간을 보냈을 것이고 이득이나 쾌락을 얻기 위해 살인을 저지를 이유는 없으니까.
개미를 죽이는 것과 같은 단순한 유희를 즐기기 위함이 아니면 말이다.
***
그 뒤로 다른 검신의 신전을 돌며 최강자의 힘을 추출했다.
추출한 힘은 총 8개.
신전을 포함해 용병이나 기사로 뛰는 사도를 포함한 숫자였다.
추출은 따로 둘만 있는 상황을 유도해 빠르게 추출한 후 자리를 떴다.
첫번째 성녀를 제외한다면 추출 되었다는 사실도 모를거다.
이미 시험은 한 상태고 굳이 난장을 피우면서까지 일을 벌일 이유는 없었으니까.
“흠… 뭔가 이상한걸.”
모조로 만들어진 능력은 모두 같지만은 않았다.
8개 중 5개가 서로 다른 실패작들이었고 그들의 편차 역시 제법 차이가 났다.
아마 이 검신의 사도끼리 붙는다면 명확히 승자가 나올 정도로.
하지만 이 5개의 각기 다른 능력은 지금의 나에겐 그다지 유효하지는 않았다.
“초월의 경지에 오르기 전이라면 유용하게 썼을 텐데.”
다소 아쉬웠지만 여러 방면의 변수를 만들어내는 용도 정도로는 사용할 수 있을 거 같다.
나는 아쉬움을 감추며 본래의 육체로 돌아갔다.
***
시간은 상대적으로 흐른다.
눈을 떠보면 갑자기 수련을 하고 있을 때도 있고 하페와 손장난을 치고 있을 때도 있다.
“윤! 집중해!”
“어, 응.”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별빛의 신전을 선전하는 날까지 하루가 남은 상태였다.
“우선 여기서 내가 나서면 네가 검기를 써서 하늘로 쭉 뻗고 내가 별빛을 뿌리면서…”
신전 의례를 위한 퍼포먼스에 대해 설명을 이어나가는 하페.
본래 이런 건 사제들이 하나하나 알려주지만 하페는 직접 동작을 짜기로 했다.
사제들에게 얘기를 대충 들어보니 마법 수업을 아주 빠르게 이해하고 었어 할 수 있는 능력이 많아졌다고 한다.
할 수 있는 능력이 많아지니 다양하게 능력을 써보고 싶어 하겠지.
다만 이러다 사고라도 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자! 해봐!”
“응.”
‘나’는 지급받은 은빛의 검에 힘을 집중했다.
빈약했던 전과 달리 수련한 효과가 나오는지 몸속에 가득 찬 연푸른 힘이 흐르고 손에 들린 검에 깃든다.
우우웅! 눈이 부실 정도의 강렬한 검기가 선명히 깃든다.
…이건 좀 너무 강한데?
“오오…? 윤아, 원래 이렇게 잘했어? 이 정도 까진 아닌 거 같았는데…?”
고개를 갸우뚱하는 하페.
나 역시 의문이었지만 깨달음을 얻었다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괜찮지?”
“으, 응?! 완전 좋아. 이러면 뒤까지 보이겠어.”
연푸른 검기에 만족한 하페는 자신 역시 별빛을 허공으로 뿌렸다.
화려한 별빛은 유려하게 춤을 추며 주변을 장악했고 그 가운데에 있던 그녀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나도 나지만 하페도 처음과 달리 실력이 엄청 늘었다.
이 정도면 나가서 무시 안 당할 수준은 되겠지.
“성녀님.”
“아! 사제님.”
“주무실 시간입니다. 내일이 의례 날이니 일찍 주무셔야죠.”
“할게 많은데…”
하페는 입술을 삐쭉 내밀으며 투정을 부렸지만 피곤해 보이는 노인의 사제의 완고한 태도에 결국 고집을 꺾었다.
“칫. 어쩔 수 없지. 윤이 잘자.”
“응. 하페도. 내일 보자.”
“그래.”
하페는 보조 사제들의 시중을 받고 잠자리로 돌아갔다.
나 역시 나의 방으로 들어갔다.
“.....”
2주나 되어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한 형태의 깔끔한 방.
나는 복장을 편하게 하고 침대에 풀썩 누웠다.
전등의 빛을 향해 손을 뻗자 연푸른 구슬이 걸린 팔찌가 찰랑인다.
전보다 더욱 밝은 빛을 내뿜는 팔찌.
“묘하게 달라졌는데…”
뭐가 변했는데 뭐가 변한 건지 알 수가 없다.
단순히 강해졌으니 좋다고 하고 넘겨야 할까?
“...에이 그냥 자자.”
나는 이불을 덮었다.
보드란 이불이 안정감 있게 내 몸을 감싸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이제는 기감 펼치는 것도 익숙하니 좀 편하게 자도 되겠지.
나는 하페와 의례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상상을 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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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검붉은 천장이 보이는 바닥에 누워있었다.
익숙한 공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익숙하지는 않은 공간.
여인이 보인다.
아름다운 외모의 검 보랏빛의 여인은 나의 위에 있었다.
자세히 느껴보니 바닥이 아니라 눈앞의 여인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왜 또 왔어.”
“...뭘 또 와요?”
“...아, 젠장. 하필 이때...”
여인은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가 싶더니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그러고는 한숨을 내쉰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니까… 나중에 다 알게 될 건데.”
“네?”
“됐어. 이쪽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잠깐 잊어.”
토옥.
그녀의 가느다란 손이 내 이마를 쓰다듬고 보랏빛 문양이 번뜩인다.
「▲맹약 」
무언가 서서히 잊혀지는 느낌이 들고 눈이 스르륵 감기는 그때.
“진심이야.”
그녀의 마지막 말에 ‘나’는 의문을 가지고 나는 그저 웃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