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92화 〉 27. 가치있는 선택 (2) (292/318)

〈 292화 〉 27. 가치있는 선택 (2)

* * *

***

“먹혔다!”

“그럴 시간 없어! 마무리해야 돼!”

두 개의 몸과 두 개의 검.

그리고 두 개의 힘.

이 모든 걸 한 몸처럼 움직여 적을 유린하는 검술.

같은 피가 흐르는 가족이나 하늘이 내린 인연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검술로, 상대에 대한 힘의 이해와 결속이 끈끈해야 한다.

어설프게 사용한다면 두 명이 따로 싸우는 것보다 못한 검술.

하지만 제대로만 사용한다면 두 배. 어쩌면 그 이상의 효율을 낼 수 있다.

쌍둥이는 하나의 몸처럼 목표를 노렸다.

“흐음…”

다음 목표는 어깻죽지보다 조금 아래.

심장을.

“재밌군요. 인간 중에 이런 자가 있다니.”

재밌어.

“...!”

“상처에서 불이…?”

어깨에 흘러나오던 피는 순식간에 불로 변환되어 다가오는 그들을 집어삼켰다.

집어삼킨 불을 마치 이빨처럼 그들의 육신을 강하게 짓눌렀다.

마왕성을 가득 채운 마기로 급격히 강화된 레베카의 혈화(血火).

제아무리 소드 마스터라도 진작에 터져나갔을 정도의 위력이었지만.

“정신 차려라 로데!”

“끄으으으…!”

그들은 강하게 결속된 상태였고 결속된 힘은 소드 마스터 다섯 이상의 효율을 뿜어내고 있었다.

레베카는 고개를 까닥이더니 둘을 붙잡고 있던 오른손 대신 왼손을 들어 올렸다.

드드득! 마왕의 탑을 구성하던 층의 바닥 타일들이 들석거린다.

타일들은 잠시 누군가의 허락을 받듯이 공중에 멈칫거리더니 이내 그대로 산화해 하나의 불로 변화했다.

검붉은 색의 힘이 담긴 염혼의 불.

마왕의 권능을 일부 이용해 육신을 넘어 영혼까지 불태우는 불이 두 형제에게 작렬했고.

“으흠!”

콰아아앙!!!

같은 불에 의해 막혔다.

레베카의 시선에 노인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기다란 넓이의 붉은색 로브와 마법사 모자를 쓴 노인.

노인은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대마법사이자 불에 관해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인간.

‘적색 마탑주.’

“어린아이들을 괴롭히는군. 악마.”

***

같은 시각.

“뭔가 이상한데.”

나는 탑의 벽면에 손을 대었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마기들이 격렬히 내 손을 태우려 날뛰었지만 그 어떤 마기도 내 몸에 흠집 하나 낼 수 없었다.

하페 역시 탑을 두리번 탑의 구조를 살폈다.

탑은 색이 불균형한 어두운 공간에 가끔가다 불규칙한 구조물이 몇 개 세워져 있는 게 전부였다.

깔끔히 조형되어 있다기보다는 마구잡이로 만든 것 같은 형태.

“공간 자체가 이상해. 마력의 흐름도 이상하고.”

하페는 뿌린 별빛을 회수하며 내부에 대한 파악을 마쳤다.

“레이나님이 사라진 것도 그 때문인가?”

“아마도. 마왕의 권능으로 공간 자체에 규칙이 새겨진 거겠지. 세 명 이상 뭉칠 수 없다는 제약을.”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권능이 새겨지고 탑의 규칙이 바뀌었다면 상위의 악마가 이곳까지 내려올 수다 있다는 셈 아닌가.

물론 지금에 와서 악마 간부를 이기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뿔뿔이 흩어진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최종적으로는 모두 힘을 합쳐 마왕을 상대해야 하니까.

“모일 방법은 없는 거야?”

“글쎄… 그래도 마왕은 꼭대기에서 내려올 수 없다는 규칙은 유지되고 있는 것 같으니 아래에 보조하고 있는 간부를 죽이면 어찌 될지도.”

“간부? 누구?”

하페는 별빛으로 마수를 후려치며 답했다.

“이 공간 자체를 뒤틀고 있는 악마가 있어. 권능은 마왕의 것이지만 공간을 다루는 건 마왕이 아니야.”

“? 마왕이 수하들에게 힘을 내려줬으니 그 힘도 마왕이 쓸 수 있는 것 아니야?”

별빛의 선을 둥글게 말아 마족이 빨려 들어간다.

나 역시 검강을 휘두른다.

그대로 잘려나가는 상급 마족.

하페는 고개를 저었다.

“예언의 성녀에게 들었는데 과거 마왕이 신을 죽이고 그들의 능력을 수하들에게 나눠주었데. 그래서 나눠준 능력은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모양이야.”

“으음… 그럼 지금 간부들의 능력은 신의 능력이라는 소리네.”

“그렇지.”

나는 악마 소녀를 떠올렸다.

거대한 대마법을 그대로 돌려주고 기이할 정도로 강한 곰인형을 소환하는 모습.

하지만 그에 비해 육체의 강도는 굉장히 약해 의문이 들었었다.

‘그 힘들이 신의 힘들이라면 이해가 되지.’

결국 그 힘들을 잘만 파훼한다면 악마 자체는 크게 문제없다는 소리다.

“60층…?”

“벌써 이렇게 온 건가?”

나와 하페는 새로운 문을 올려다보았다.

이전보다 3배는 커지고 마기 역시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짙어졌다.

“...분명 전에 49층이지 않았어?”

“공간이 뒤틀림 때문이겠지.”

하페는 별빛을 하나 날렸다.

별빛은 문을 넘어 주위를 살핀다.

먼저 가서 상황을 파악하고 하페에게 알려주는 것.

별빛과 동조하고 있던 하페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우선 마수 자체는 크게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긴장은 하고 들어가자.”

“응.”

나는 연푸른 강기를 몸에 둘렀다.

과거에는 검에 두르거나 공격받는 범위에 두르기만 해도 온몸에 무리가 갔지만 지금은 다르다.

화아아악!

오히려 더 가뿐히 힘을 받아들이는 육체.

힘이 넘친다.

“들어가자.”

우리는 문을 넘었다.

***

신이여 목소리를 들어라.마(?)의 존재를 경계하라.어둠으로 물든 자를 멀리하고 빛을 따라라.빛을 숭상하라. 그는 곧 위대한 존재가 될지니.신은 위대하며, 나는 신이다.그러므로 나는 위대하다.

‘비록 그것이 거짓된 위대함 일지라도.’

***

“쓸데없이 조용하군.”

회색빛의 검강을 뿌리는 아론디 왕국의 후계자. 리퍼 아론디는 혀를 찼다.

본래라면 그는 마왕성에 오르는 것이 아닌, 주위 정리를 돕다 마왕이 처치되면 그제야 마왕성에 발을 들여야 했다.

허나 바다 쪽 인원의 부재와 대마법사 수준의 전력만이 성에 올라야 한다는 제약이 터지면서 어쩔 수 없이 마왕성에 오르게 되었다.

물론 그의 위치는 여전히 드높고 인간 군에서의 발언권도 크기에 마음만 먹으면 오르지 않을 수 있었다.

여전히 마족과 마수들은 마왕성 주변에 산적해 있고 그들의 처리도 필요하니까.

‘...이대로 있으면 내 입지가 위험하겠지.’

하지만 보는 눈이 다르다.

비록 자신이 유력한 후계자라지만 인류가 위험해 처했는데,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가 마왕성에 오르지 않는다?

그것도 마왕성 코앞까지 와놓고?

리퍼는 미래를 보았다.

‘지금’의 아론디가 아닌 더 먼 ‘미래’의 아론디.

예언의 성녀 중 가장 뛰어난 에린 론브디아.

마법의 종주라 불리는 별빛의 성녀 하페루아.

마지막으로 최강의 사도라 평가받는 검신의 사도 김윤까지.

이 셋은 전쟁에서 가장 큰 활약을 벌이고 있으며 셋 모두 아론디 출신으로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왕이 토벌당하고 전쟁이 끝이 난다면 그들을 영웅으로 선전하며 인류는 다시 발전하겠지.

그 과정에서 그들의 왕국인 아론디의 발전은 뻔하디 뻔한 얘기였다.

그런데 자신의 목숨이 두려워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마왕성에 오르지 않는다면 발전은커녕 후계도 무조건이라 확신할 수 없었다.

“이쪽인 것 같습니다 황제님.”

“그래.”

리퍼는 성녀의 안내를 받아 탑을 올랐다.

오랫동안 아론디 황실의 소속으로 살아온 전지의 성녀.

녹색의 기다란 머리칼과 녹색의 눈을 가진 그녀는 전지까지는 아니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세상의 대부분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

마탑주들이 마왕성에 대한 정보를 일부 알아낸 것도 그녀와의 협력이 있었기 때문.

가지고 있는 힘 자체도 대마법사에 거의 근접하기에 리퍼의 호위와 안내 목적으로 마왕성에 올랐다.

스아아아….

“여긴…”

마기가 몸을 훑고 그들의 몸을 두른 강기와 마력을 갉아먹는다.

전지의 성녀는 눈을 껌뻑이며 주변을 살폈다.

“60층이군요. 근처에 마족이나 악마가 없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 지나간듯싶습니다.”

“그래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기만책일 수도 있으니.”

“네.”

전지의 성녀의 주위로 녹색의 방패가 돌았다.

전지의 신에게 하사받은 ‘모든 것을 이해하는 방패.’

모든 공격을 이해해 파훼법을 단숨에 알아내 막아내는 장비로 소드 마스터의 검강도 막아낼 수 있는 방패다.

후웅­ 후웅­ 방패가 돌고 리퍼의 몸에도 은은한 회색빛의 강기가 돌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저건.”

우뚝.

둘의 발이 멈추었다.

그들의 시선에는 커다란 몸체가 보였다.

오크가 열 배는 거대해진다면 저 정도쯤 되지 않을까 하는 몸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그 시체 위에 앉아있는 남자의 목소리에 의해.

어두운 공간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질적인 백색의 로브와 빛을 상징하는 십자가 지팡이.

백색의 동공과 머리칼을 가진 남자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론디의 후계자 리퍼 아론디. 그리고 전지의 성녀 에로브 시티아.]

“그대는 성자군.”

리퍼는 눈앞의 남자가 누군지 알았다.

바다의 신이 희생을 위해 신들을 배신했다면 저자의 신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신들을 배신했다.

신들의 배신자.

모든 이들에게 배척받는 신.

거짓된 존재.

위신(?)의 성자.

“베그리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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