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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7화 (17/407)

〈 17화 〉 #10. vs 괴물 늑대 (2)

"…맞는데. 분명히."

마력 감지는 눈 앞의 새끼 곰이 쓰러지기 전, 마지막으로 언뜻 느꼈던 그 기척이 맞는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새끼 곰이 슬라임일 리가 있을까? 옆에 어미 곰까지 있는데?

'컨디션이 나쁜가…?'

하기야 아직 몸이 완치되지 않기는 했다. 뭉게뭉게한 마음에 마지막에 보았던 그 기척을, 거기서 있었던 일을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에 멋대로 지리산을 찾았을 뿐. …지금쯤 선배는 문자를 봤을까? 돌아가 잔뜩 혼날거라 생각하니 조금 눈앞이 컴컴했지만.

……그나저나 이 새끼 곰 되게 귀엽네.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에 이은하는 참지 못하고 새끼 곰의 뺨을 찔렀다. 불쾌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는 게 더 귀여웠다.

"으르르!"

나름 성을 내는 거겠지만, 그게 또 더 귀여워 보인다. 픽 웃은 은하는 다시 끌어안은 새끼 곰을 살폈다.

'신기하네.'

마력 감지는 분명 이 새끼 곰이 마지막에 느꼈던 그 기척의 주인이 맞는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건 초록색이었으니까. 아마 슬라임이 아니었을까. 정말 혹시나 이 새끼 곰이……

"꾸어어어어!"

…그럴 리가 없는 모양. 이런 우연이 있을 리가 있을까 싶었지만 아마 컨디션 문제겠지.

마력 감지를 제대로 쓸 수 없다면 그 기척을 찾는 건 무리일 텐데… 이은하는 작게 한숨쉬었다.

괜히 온 걸까? 아니, 괜히 온 거겠지.

걱정할 사람들을 떠올리니 조금 착잡하기도 했다.

'…….'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이은하는 한숨을 쉬었다. 아까 보낸 문자는 확인했나싶어 핸드폰을 꺼냈더니, 마침 전화가 왔다.

혼날 걸 각오하며 심호흡했다. ……아. 결국 못 찾았네.

"네. 여보세요?"

[이은하. 너 지금 어디야?]

"선배. 그러니까."

[설마 지리산인 건 아니지?]

말 없는 은하를 보고 짐작했다는 듯, 수화기 너머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이은하. 지금 이게 장난같아? 지금 너…]

"……죄송해요."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와야만 했다. 멍청한 짓이라고 알고는 있는데 그래도 확인하고 싶었다. 나름대로 준비도 했고. 아니, 차라리 이럴 바에야 선배에게 말하는 게 나았을까?

[일단 알겠으니까, 당장 내려와. 아니다. 지금 어디 있어?]

"…뱀사골 근처요."

[금방 갈 테니까 거기서 기다려]

저 너머로 선배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물론 워그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 나름의 대비도 하고 왔지만―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다. 끊어진 전화에 이은하가 깊은 숨을 뱉었다.

역시 오지 말걸 그랬나하는 뒤늦은 후회가 들었다. 이미 와버린 이상 어쩔 수 없지만… 결국 찾지도 못했네.

"미안."

어미 곰이 어지간히 성을 내는지라, 얼른 새끼 곰을 내려놓은 은하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뱀사골 근처라고 했으니… 조금 더 내려가 있는 게 낫겠지.

***

"지금 은하가 여기 있다는 거지?"

팀장의 물음에 우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뱀사골 근처라고 하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걔는 왜 여길 와서… 골치 아프네."

팀장이 절레절레 고개저었다. 그에 우택이 힘빠진 듯 웃었다.

"일단 내려 가시…?"

내려가자고 말하려는 순간, 무전기에서 전파음이 들렸다.

[――팀장님! 저희 1조입니다. 방금 워그 놓쳤습니다! 지금 청학동 쪽으로 도망…]

[3조입니다. 놓쳤습니다!]

갑작스럽게 이어지는 보고들에 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우택아."

"설마 지금 지리산 밖으로 가고 있는 겁니까?"

"아니. 나가려면 진작 나갔을 거다. 놈도 알고 있을 거야. 산 밖에서는 얼마 못 가서 죽을 거란 걸."

그동안 워그를 잡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산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이 넓은 곳에서 놈을 쫓아봤자, 잡는 건 요원하다. 만약 산이 아닌 도심이었다면 진작에 잡았을 터.

"분명 뭔가 찾고 있는 거다. 그리고 아마도…"

"설마…"

"생각나는 게 그것밖에 없잖아. 다시 걸어봐."

끄덕인 우택이 다시 전화를 걸었다. 1분… 2분… 결국 시간이 지나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됐다는 소리를 듣고 두 사람이 이를 갈았다.

"늦은 것 같은데."

"일단 뛰어야겠습니다."

"우택아. 여기 천왕봉이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30분은 걸린다! 우택아! 우택아!"

듣지도 않고 뛰쳐나간 우택을 보며 팀장이 이마를 짚었다.

"…미치겠네."

곧 그의 코트 자락도 마찬가지로 휘날리기 시작했다.

***

"계속 따라오네?"

슬라임이라고 착각 했었던 새끼 곰이 따라오는 모양에 이은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나무 뒤로 숨는 게 퍽 귀여웠다. 픽 웃은 은하가 뱀사골 아래로 발걸음을 재촉할 때,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다.

'……!'

그 불길한 기운에 마력 감지를 사용한 그녀는 섬뜩한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그리고 그건 분명 느껴본 적 있는 기척. 전에 미처 죽이지 못했던 바로 그 워그였다.

'도망쳐야…!'

설마하던 상황. 재빨리 탈 것을 구현한 이은하는 가능한 빨리 도망쳐보려 했지만, 거리가 좁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따돌리는 건 무리. 한참을 도망치던 이은하는 쫓기다가 길을 잘못 들었음을 깨달았다.

내려가야 하는데 반대로 올라오고 있었다. 잠깐 절벽을 내려다봤지만, 설마하니 저기로 떨어지는 건 미친 짓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길이 있을 텐데. 방치된 도로가 나올 거다. 거기까지 갈 수 있다면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기 전에, 문득 보이는 일주문의 모습. 잠깐 마력 감지로 거리를 가늠하던 이은하는 작게 끄덕이며 돌계단을 올랐다.

寺界法山異智.

세월이 흘러 흐릿해진 글씨와 굳건히 박힌 돌. 법계사의 일주문을 지난 이은하는 마력 감지로 워그의 위치를 확인하며 한 손으로 핸드폰을 조작해 '법계사'라고 문자를 전송하고, 배낭을 열었다.

설마를 생각해 미리 준비했던 스크롤. 곧 빛무리와 함께 그녀가 사라진다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주문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찢어졌을 뿐.

'가짜… 라고?'

황망한 표정으로 이은하는 입술을 짓씹었다.

***

'뭐가 이렇게 빨라?'

몸이 커지면서 달리기 속도도 제법 빨라졌다. 내리막이면 모르겠는데 하필 오르막이라 쫓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감지가 없었더라면 이미 수십 번은 놓쳤을 터.

무슨 개고생을 해서 살렸는데. 여기서 이은하가 죽으면 나도 억울해서 죽을지도 모른다.

괜히 따라가고 있던 게 아니다. 그녀보다 훨씬 먼저 괴물 늑대가 쫓아오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5km나 확인할 수 있는 감지 스킬이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당연히 알리려 했지만 그럴 방법이 없었다. 곧,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함께 싸운다면 놈을 처치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테니까.

이은하는 놈을 쓰러뜨렸었으니까. 비록 그 이후 마력이 고갈됐었지만. 내가 놈을 앞에서 틀어막아 주기만 해도 이은하가 괴물 늑대를 처치하는 건 손쉬웠으리라. 그런데 하필이면 이은하를 놓치고 말았다.

가능한 한 빨리 따라잡아야 한다. 물론 그녀의 입장에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혼자 싸울 거라 생각하고 있을 테니 도망치는 게 무리는 아니지만…!

***

"Cover!"

이은하는 곧바로 주문을 영창했다. 마력의 베일이 막을 만들었다. 엄폐막. 모습은 숨기지만, 냄새는 숨길 수 없다. 전에도 통하지 않았다. 까먹은 게 아니다. 고작 이런 막으로 워그에게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

스크롤만 믿고 포션을 챙기지 않은 게 실책이었다. 입술을 짓씹은 이은하는 다시 핸드폰을 확인했다.

[10분]

답장이 돌아와 있었다. 앞으로 10분― 10분만 견딘다면 법계사로 사람들이 온다.

……어렵지 않아. 할 수 있어. 저번엔 아예 쓰러뜨렸잖아?

침착하면 못 할 일은 아니다. 이은하는 손바닥으로 눈두덩이를 비비며 정신을 집중했다. 머잖아 엄폐막이 거세게 흔들렸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긴 하지만― 작게 끄덕인 이은하는 엄폐막이 부숴지는 것과 동시에 준비하고 있던 주문을 뱉었다.

"β-Sh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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