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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8화 (18/407)

〈 18화 〉 #10. vs 괴물 늑대 (3)

그물이 늑대를 덮치자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워그는 그 한 수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한 번 당해줬던 걸 또 당해줄 만큼 멍청하진 않다. 입술을 씹은 이은하는 이어서 마력을 구현했다.

"Distort!"

공간 왜곡. 그 영향을 받으면서도 워그는 멈추지 않았다.

"……!"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 저번에도 왜곡으로 쓰러뜨릴 순 없었다지만 시간은 끌 수 있었는데…!

단번에 손아귀를 찢고 튀어나올 것만 같은 아득한 힘. 억지로 버티던 이은하는 결국 반동을 견디지 못하고 손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아윽!"

그러자 마치 자유를 찾았다는 듯 눈에 띄게 움직임이 빨라졌다. 순식간에 코앞까지 닥친 워그의 턱이 벌려졌고, 이은하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

하지만, 그 이상으로 다가오진 못했다. 워그의 턱 앞을 거미줄이 가로막고 있었으니까. 공간 왜곡으로 놈을 막는 건 실패했지만, 왜곡된 공간이 거미줄을 끌어와 워그를 붙잡는 데는 성공했다.

뒷걸음질 친 이은하는 안도의 숨을 뱉었다. 뒤늦게 찾아온 현기증에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제 끝났으니까…… 그렇게 생각했을 때,

"―――!"

놈이 성난 듯, 몸부림치고 있었다. 발악하는 놈― 이전과는 달리 너무나 쉽게 거미줄이 뚝뚝 끊어지고 있다.

"……!"

그 사이에 워그는 더 강해져있었다. 특수종― 아무리 그렇다지만 성장 속도가 이상하다. 아연해진 이은하가 뒷걸음질쳤고, 거미줄을 찢고 뛰쳐나온 워그는 단번에 그녀를 집어삼켰다.

'……!'

―아슬아슬하게 그녀가 두르고 있는 마력 갑옷만을. 그에 워그는 혀로 입술을 쓸었다. 그 붉고 기다란 혀가, 자신의 피와 살을 탐하는 것 같아 이은하의 등골을 타고 소름이 돋는 걸 느껴야했다.

'이제 어떻게…?'

그 생각은 아주 잠시. 다음 순간, 워그의 커다란 턱이 또 한번 이은하의 시야를 덮었다. 신체 능력이 일반인과 다름 없는 그녀로서는 워그의 움직임을 제대로 보기엔 무리였다.

'큰일…!'

***

손을 들고 있는 이은하와 턱을 벌리고 있는 괴물 늑대― 드디어 따라잡았다.

[뱀사골의 공포(워그{부정형}) Lv.7] [EXP 6132 / 8932]

[체장 89cm] [체고 48.5cm] [체중 13.2kg]

[힘 91] [민첩 99] [체력 167] [마력 30]

자신의 능력치를 확인하고 반대로 놈에게 염탐을 사용했다.

[산의 폭군(하이 워그)]

[체장 4.56m] [체고 1.96m] [체중 872kg]

[힘 231] [민첩 313] [체력 233] [마력 56]

이미 비견할 동물이 떠오르지 않는다. 높은 체고와 기다란 신장. 놈의 덩치는 이미 육식 동물의 영역을 넘어서있다. 차라리 황소나 코뿔소와 비교하는 게 더 어울릴 정도로.

심지어 그냥 워그도 아니라 하이 워그. 열등종(Lesser)이었던 나와는 달리 우월종(High). 모든 능력치가 아득하게, 심지어 마력조차 놈에게 뒤떨어져있다.

생각보다 훨씬 더 괴물이었다. 이은하는 대체 어떻게 놈을 쓰러뜨렸던 걸까? 이를 갈며 곧바로 점찍어뒀던 스킬을 획득했다.

[경화(D) Lv.1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약한 경화(E) Lv.5가 경화(D) Lv.1에 통합되었습니다]

[경화(D) Lv.1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경화(D) Lv.1 → 경화(D) Lv.3]

거기에 더해.

[마력 피해 감소(E) Lv.1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물리 피해 감소(E) Lv.5와 마력 피해 감소(E) Lv.1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물리 피해 감소(E) Lv.5와 마력 피해 감소(E) Lv.1이 합쳐져 모든 피해 감소(D) Lv.1으로 변합니다]

[모든 피해 감소(D) Lv.1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모든 피해 감소(D) Lv.1 → 모든 피해 감소(D) Lv.3]

성공. 곧장 D등급 스킬을 획득하는 대신, E등급 스킬을 획득해 등급을 올렸다.

[남은 스킬 포인트 5]

확신 없는 도박에 성공한 대가― 스킬 포인트를 아끼는 데 성공했다.

[뛰어난 직감(D) Lv.1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남은 스킬 포인트 1]

육감과 간파의 연계로 일시적으로 획득했던 직감― 그 직감보다도 한 단계 위에 있는 스킬. 모자란 스테이터스― 놈과 정면에서 맞붙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스킬. 속도가 느리다면 미리 움직여야만 한다.

하지만 늦어버렸다. 스킬을 획득함과 동시에 괴물 늑대는 이은하의 머리부터 골반까지를 단번에 집어삼켰으니까.

'……!'

선혈이 낭자하고 내장이 튀어나온다. 놈의 이빨이 결국 척추를 끊어내고 상반신과 하반신이 동강 나 단말마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사망하는, 그런 미래였다.

"크룩?!"

직감이 본 미래. 경화. 준족. 돌진. 그리고 탄력까지 더한 기습이 그런 미래를 막았다. 검은 늑대처럼 피한 게 아니다. 분명 적중했다. 그런데도 밀어내는 게 고작. 시원스레 털고 일어나는 놈의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나로서는 놈을 죽일 수 없다고. 역부족이라고.

D등급 스킬 3개로 싸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터무니없다. 얕보고 있던 건 나였다. 분명 데미지는 입힐 수 있다. 하지만 내 공격 따위는 녀석의 재생 속도에 밀리고 말 터.

"아?"

얼빠진 외마디 소리를 뱉는 이은하. 돌아볼 시간이 없다. 한 순간이라도 시선을 떼는 순간 당하고 말 테니까. 나에겐 없는 공격력이 그녀에겐 있다. 그녀에겐 없는 저지력이 나에겐 있다. 그말인즉 협력해야만 한다는 것. 그 순간, 이은하가 중얼거렸다.

"7분…"

7분. 무슨 뜻일까? 생각할 것도 없다. 7분만 견디면 지원이 올 거라는 뜻일 터. 잠깐 견디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끝내야 한다. 7분을 견딘다? 물론 할 수 있을 거다. 나와 그녀가 함께하는 이상, 놈을 쓰러뜨리는 게 아니라 견디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놈을 먹을 수 없을 테니까.

게다가 헌터들에게 붙잡히고 말리라.

구상할 수 있는 최고의 시나리오는 그들이 오기 전에 이은하와 함께 괴물 늑대를 처치하고, 이은하가 정신 고갈 상태에 빠지는 것.

그 미친 조건에 실소하고 말았다.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적을 시간 내에 쓰러뜨리면서 아군을 정신 고갈에 빠뜨린다? 진짜 정신 나간 조건이구나. 게임에서나 볼 법한 도전과제. 그게 현실에 들이밀어지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

날 탐색하듯 지켜보던 괴물 늑대는 심기가 불편한 듯, 끓는 소리를 냈다. 동족을 죽이고, 동족의 탈을 쓴 슬라임. 슬라임에겐 냄새도 뭣도 없지만, 녀석은 분명 날 알아보리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있었다. 놈은 더 시간을 끌지 않겠다는 듯, 곧바로 달려들었다.

그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직감과 간파의 시너지가 상상 이상. 내가 피하자 놈은 곧바로 양 앞발로 찢어발기려 했다. 그것도 미리 읽어 피했다. 그러나 예측은 예측일 뿐이지 현실이 아니다. 미리 보고 내가 움직인다면, 놈 또한 그에 따라 움직일 뿐.

아무리 먼 미래를 보고있다 해도 놈 또한 내가 움직이는 것에 맞춰 다른 움직임을 보인다면 아무 의미도 없다. 읽고 피하고, 피하고, 피하고를 반복했지만 결국엔 따라잡히고 만다. 스테이터스에서 차이를 보이는 이상, 놈의 공격을 계속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역시 혼자서는 안 된다. 이은하는 대체 뭘 하고 있길래……

안 도와주나? 슬쩍 돌아봤지만, 입을 가리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있다. 왜 그런가 싶었더니 찢긴 곳이 점액질로 변해있었다.

"…설마?"

그녀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악은 날 버리고 그녀 혼자 도망치는 거였지만, 그럴 일은 없어보인다.

사실, 제법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었다. 도망친다해도 그녀에겐 아쉬울 게 없으니까. 그래서 다행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은하는 나와 함께 싸우기로 마음 먹은 모양. 순식간에 도약하는 놈을 촉수 다발로 붙잡았지만 역시 힘이 부족하다. 순식간에 끌려 올라갔지만― 시간을 벌었다. 마력을 구현한 그녀가 크게 외쳤다.

"Distort!"

왜곡된 공간. 그 영향을 받은 놈이 힘겹게 물러난다.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최대한 놈을 붙잡고 늘어졌다. 움직임이 느려진만큼 놈의 공격을 피하는 건 어렵지 않다.

"아?"

왜곡과 연계해 놈을 붙잡을 주문을 준비한 모양이지만, 그 역할을 내가 해냈다. 발이 묶여있는 괴물 늑대. 곧 이은하는 다른 주문을 읊었다.

"Thorns!"

지면을 꿰뚫고 바닥 아래로부터 치솟아오르는 가시. 정신 고갈이 다가오는지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솟아오른 가시에 괴물 늑대의 발이 꿰뚫린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발을 묶느라 미처 피하지 못했다. 녀석의 반응속도라면 아무리 왜곡에 걸려있다 하더라도 이런 가시쯤은 어렵잖게 피했을 테니까. 어쩔 수 없는 손실이었지만 뼈아프다.

솟아오른 가시에 절반에 가까운 체면적을 잃고 말았다. D등급에 이른 경화가 아니었다면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Embiggen!"

다음 주문이 들리는 순간, 간파와 직감이 미래를 읽었다. 이미 가시에 꿰뚫린 놈. 더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 꿰뚫린 몸을 포기하고, 탄력을 사용해 뛰어오른 순간, 이은하가 쓰러졌다.

***

"―――!"

무언가가 날아와, 뒤통수를 가격했다. 눈을 부릅 뜬 이은하는 견디려했지만, 밀려오는 정신 고갈에 더해 가격당한 충격까지 견디는 건 무리였다.

'…어떻게?'

분명 괴물 늑대는 가만히 있었다. 발이 꿰뚫려 움직일 수도 없었고 새끼 곰, 아니 슬라임이 막아주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마…력.'

지면이 서서히 가까워져온다. 마법도 아니고, 마력을 구현한 것도 아니다. 그저 투박하게 마력으로 바위를 들어올렸을 뿐. 평소의 그녀라면. 마력 갑옷이 유지되는 상태의 그녀였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겠지만, 그 마력 갑옷은 이미 놈이 먹어치운 뒤였다. 워그는 어리석은 그녀를 조소하듯,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설마 노리고……?'

울혈을 토해도 숨 쉬는 게 편해지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해져가는 와중,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이번에도 워그와 정면으로 맞서는 녹색 덩어리였다.

'아……'

역시 그거, 꿈이 아니었구나… 이은하의 정신이 서서히 멀어져갔다.

***

커다란 바위에 뒷통수를 가격당한 이은하가 쓰러지자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내 잘못이다. 놓치면 안 됐다. 더 악착같이 물고 늘어져야만 했다.

놈이 가진 마력. 그 마력으로 이은하를 공격한 것. 탄력으로 뛰어올라 피하는 게 아니라 각오하고 어떻게든 놈을 방해했어야 했다. 끝까지 달라붙지 못한 내 실책이었다.

"……."

남은 선택지는 둘.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이번에는 전과 다르다. 충분히 도망칠 수 있다.

커다란 가시에 꿰뚫려 있으니까. 아직 놈이 움직이는 건 무리였다. 머잖아 회복하겠지만, 이은하를 데리고 도망칠 시간은 충분하다. 하지만 그럴 경우, 녀석을 포식하는 건 불가능해진다.

[나아갈지 혹은 멈춰설지를]

이전에 들었던 시스템의 목소리. 해야할 일은 명확하지 않은가? 넘을 수 없는 사선이 아니다.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변형(F) Lv.1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변형(F) Lv.1이 변형(F) Lv.9에 통합되었습니다]

[변형(F) Lv.1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변형(F) Lv.9 → 변형(F) Lv.10]

[변형(F) Lv.10이 최대 레벨에 도달했습니다. 변형(F) Lv.10 → 변화(E) Lv.1]

[남은 스킬 포인트 0]

***

"――♬"

높은 허밍이 산속에 울려 퍼졌다. 새들의 지저귐보다 아름다운 콧노래. 발소리. 기척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 소녀는 콧노래를 멈추고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늦었구나."

소녀, 이 장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어린 소녀를 보고 팀장, 구진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당신이 왜 여기에?"

"태준이는? 그래. 없는 모양이네."

"비켜주시죠."

"불가."

완고한 대답. 서로 핀트가 맞지 않는 말을 하는데, 우택이 이해할 수 없는 건 존대를 하는 쪽이 소녀가 아닌 팀장이라는 점이었다.

"팀장님?"

"우택아. 내가 막을 테니까 먼저 들어가라."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내 말 들어! 10초. 그 이상은 못 벌어. 알아들어?"

우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무지 상황을 따라가기 어려웠지만, 일단 팀장이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저 소녀가 누구건 간에 팀장이 막아주는 동안 들어가 이은하를 구하면 될 일이다.

'경내로 들어가서 워그를 죽인다.'

아무리 길어도 10초도 걸리지 않는다. 순간, 팀장의 코트 자락이 휘날렸고, 어느새 그의 손에는 기다란 검이 들려져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건지 알 수 없는 레이피어와 같은 세검(細劍). 차가운 힘의 파동이 얇은 검을 타고 흘렀다. 소름 돋는 예기가 흘러나오자 우택은 침을 삼켰다.

'여전하시네.'

그가 직접 검을 뽑은 것은 오랜만의 일. 새삼 느껴지는 그 기량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저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10년? 혹은 20년? 어쩌면 평생 따라잡지 못할 지도 모른다.

'저 소녀가 누구건 간에.'

그가 검을 뽑은 이상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10초?"

이어진 소녀의 조소. 팀장의 신호와 함께 우택은 단숨에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경내로 뛰어올랐다는, 그런 착각.

"……?!"

처음부터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얼어붙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달려 나가는 게 아니라 어느새 지면에 몸을 붙이고 있었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언제? 도대체 언제부터? 힘겹게 돌아본 곳에 팀장이 무릎 꿇고 땀을 쏟아내고 있었다.

"대체 왜 당신이…!"

힘겹게 내뱉는 말. 소녀는 돌계단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기술이나 마법같은 게 아니라 그저 압도적인 마력으로 위에서 아래로 찍어누르고 있을 뿐.

'이게 대체?'

으스러질 것 같은 압박감에 우택은 주먹을 쥐었다. 납작 엎드려 있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이 한심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스스로의 무력함. 그 모든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오연히 돌계단에 앉은 소녀를 올려다 볼 수 밖에 없었다.

"……."

소녀는 의문에 않고 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

쓰러진 두 사람의 앞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허밍이 경내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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