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6화 (36/407)

〈 36화 〉 #21 던전에서 꼬리잡기 (2)

"성부와 성자와!"

몽크, 박요한이 도약 개구리의 아래턱에 어퍼컷을 먹였다. 괴성을 지르며 고꾸라진 개구리는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균형을 찾으려 했고.

"성령의 이름으로!"

빡빡머리 몽크는 망설이지 않고 개구리를 짓밟았고, 풍선처럼 부푼 개구리는 물풍선처럼 터졌다.

"Amen―!"

내장과 피가 비산하는 가운데 비장한 모습으로 피 묻은 손이 성호를 그었다. 그 거룩한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진짜 미친놈이다.'

…라고 생각했다.

신전에 잠입했을 땐 정상처럼 보였는데 역시 미친놈밖에 없다. 빡빡머리 몽크는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감성이었다.

'존나 상종하기 싫다.'

어디가 만족스러웠던 걸까? 감지한 기척이 구마준이기를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박요한이었다. 성호를 그으며 몬스터를 때려잡는 미친 짓에는 기함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건 그거였고 이건 이거였다. 왜, 먹을 걸 버리면 천벌 받는다고 하지 않던가?

[푸른 갈기 도약개구리를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상승합니다]

꺼어어어억!

'한 마리만 더 먹으면 레벨 업이겠어.'

대충 3000 정도 경험치가 남았다. 이렇게 돌아다녔는데도 구마준을 발견하지 못한 걸 보면…

'설마 진짜 빠져나갔나?'

운 좋게 외곽으로 전이되어 금방 나갔다거나…? 엄청 운이 좋아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

'아니 그럼 나가리잖아?'

박요한 외에도 몇 명의 기척이 더 느껴진다. 십중팔구 신전의 몽크나 팔라딘이리라.

'답 없네.'

어차피 구마준으로 추정되는 기척 및 냄새는 아직 찾지 못했다. 놈이 무슨 수작질이라도 한 건지 아니면 정말 운이 없어서 그런 건지…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던가?

'놈을 쫓는 동시에 성장할 필요가 있어.'

던전에서 가능한 성장해야 한다. 레벨만이 아니라 스킬을 포함해서.

'…C등급이면 도망칠 수 있을까?'

모르겠다. 확실한 건 D등급으로는 도망칠 수 없다는 거였다.

***

"와~ 숲 단일? 존나 노다지네. 대표 클랜도 어지간히 등신인가 보네. 이걸 거저 줬다고?"

"조용히 해. 애드 내고 싶어?"

팀장의 타박에 홍유리는 입술을 삐죽였다.

"아. 구진하 이 쫌생이같은 새끼."

"놀러 온 거 아니다. 추적은?"

못마땅한 듯 눈을 흘긴 홍유리가 지면을 훑었다.

"아직. 발자국이라도 찾아야 쫓지."

"일단 움직여야 한다는 거군."

"나눠서 움직이지? 어차피 별로 위험해 보이진 않는데?"

엄밀히 말해 던전의 난이도는 나름 높은 편에 속했다. 언뜻 느껴지는 마력 감지에 감지되는 숫자도 숫자였고. 다만, 들어온 사람들이 던전의 수준에 비해 너무 높았을 뿐.

"2팀장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연차로보나 직급으로보나 상급자인 거한의 의사를 물었지만, 거한은 관심없다는 듯 하품했다.

"야. 나 없어도 되냐?"

"왜요? 뭐하시려고요?"

"따로 찾게. 어차피 알파만 찾는 것도 아니잖아?"

던전에 들어오는 조건 중 하나가 휘말린 사람들의 구조였다. 무조건적인 건 아니었고, 그저 발견했을 경우 보호해달라는 너무나 당연한 조건. 어차피 함께 움직이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알파의 기동성을 생각해보면 조를 나눌 필요가 있었으니.

설령 최악의 경우라도 거한이라면 단신으로 던전을 클리어하고도 남을 테니 문제 없을 터.

"알겠습니다. 길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하시고요."

"내가 애냐?"

"......"

"와 이 자식들. 여기서 입을 다무네."

투덜대며 멀어지는 거한을 보던 네 사람이 향후 움직임을 결정했다.

"그럼 저 근육 뇌는 멋대로 하라고 하고. 나머지는? 어쩔래?"

"둘씩 나누는 게 낫겠지. 나도 추적을 못하는 건 아니니까."

명색이 수색 3팀의 팀장인 만큼 마력 감지는 있었다. 또, 스킬로 발현된 건 아니지만 나름 추종술도 익혔고. 비록 홍유리의 마안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팀은?"

"너랑 우택이. 나랑 성훈 씨로."

"오~케이. 너네도 불만 없지?"

성훈이라 불린 2팀 헌터는 오히려 바랐다는 듯한 표정이었고, 우택은 떨떠름하게 끄덕였다.

"예. 뭐… 알겠습니다."

"어쭈? 표정 관리 안 하지? 3초 준다. 3. 2…"

"여기서 해산하고, 최대한 빨리 알파를 처치하고 합류. 해 지기 전까지는 던전 밖에서 보도록 하지."

그렇게, 새벽의 여명은 셋으로 갈라져 알파의 꼬리를 찾기 시작했다.

***

냄새가 나면 포식자들이 몰려온다는 말이 있다. 왜? 피냄새를 맡고 상어가 몰려온다던가 하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근데 실제로 겪어 보니 상상 이상이었다. 사실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먹이가 제 발로 찾아오네?'

뜻밖의 횡재.

피가 묻은 건 박요한도 마찬가지였는데 놈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그 스테이터스면 어련히 알아서 했을까. 괜히 쓸데없이 빡빡머리 몽크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놈들에게 염탐을 사용했다.

[앵무부리 갑토랑]

[체장 1.66M] [체고 79.4cm] [체중 91kg]

[힘 187] [민첩 141] [체력 265]

갑토랑(甲土狼).

토랑이 하이에나를 뜻하는 거였으니, 갑옷을 두른 하이에나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맛있겠네.'

내 눈에는 이미 녀석들이 조리된 음식처럼 보였다. 4마리. 숫자는 제법 있었지만, 이미 녀석들에게 고전할 수준은 지난 지 오래였다.

'잿불은 못 쓰겠고.'

얻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스킬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건 아쉬웠지만 이런 곳에서 썼다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아쉽지만 여기서 잿불은 봉인이다.

'그냥 하는 수밖에 없네.'

가장 선두의 갑토랑에게 돌진, 들이받았다. 하지만 갑옷이 장식은 아니었는지 단단해서 잘 밀리지 않는다.

'체중이 비슷해서 그런가?'

힘과 체력이 딸리는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

그래도 놈은 비명을 질렀다. 접촉한 부분을 악식이 먹어 치웠기 때문이다. 깜짝 놀란 갑토랑들이 달려들었고, 한 걸음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놈들은 추진력을 이기지 못하고 서로 들이받았다.

"끼이잉!"

머리와 머리가 부딪혀 비틀비틀.

'멍청하긴.'

부딪힌 놈들은 내버려두고 처음 녀석에게 집중했다.

악식에 당한 갑토랑은 어깨 부분의 살점이 드러나 있었는데, 새삼 악식이 얼마나 강력한 스킬인지 알 수 있었다.

'다음이 기대되네.'

포식만으로도 만족스러웠는데, C등급이 되면 과연 어떤 스킬로 변할까?

'멀지 않았어.'

상황이 이리되니 나머지 갑토랑도 함부로 덤벼들지 못했다.

야생에서 등을 보이는 건 '나 잡수쇼!' 하는 소리니 냅다 도망치진 않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음을 뒤늦게 깨달은 것.

"낑! 낑! 끼이이잉!"

항복의 표시로 배를 까뒤집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앵무부리 갑토랑을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상승합니다]

[경험치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Lv.7 -> Lv.8]

레벨업으로 몸집을 불린 날 보고 기겁한 하이에나들이 결국 등을 돌리고 도망쳤다.

'하필 저쪽으로 가네.'

사람들이 있는 방향이었다. 아니, 오히려 잘 됐다.

잠깐 그들의 싸움을 보고 싶었기에 한 번 지켜보기로 했다.

***

"아 씻팔! 존나 도망가네! 진짜!"

"부팀장님."

"어디까지 튀어? 짜증나게."

손 한번 휘저어 몬스터를 단번에 일소시킨 홍유리가 씩씩거렸다. 불이 붙을 법도 하건만 놀라운 마력 조절이 그 모든 걸 제어하고 있었다.

'여전히 경이롭군.'

마력의 총량도 총량이지만, 다루는 기술의 차원이 달랐다. 과연 스퀘어 출신다운 세련된 기술.

"이 새끼 어차피 눈치 깐 거 같은데 걍 뛰지?"

흔적은 찾았지만, 가까워지긴 커녕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뛰면 잡겠습니까?"

"안 뛰면?"

성난 그녀를 보고 우택은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어째 은하도 그렇고 홍유리도 그렇고 애 달래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헌터가 아니라 베이비 시터나 유치원 선생이 될 걸 그랬나.

그게 천직인 것 같은데…

"애드(Add) 나잖아요."

"다 죽일 거니까 상관없거든?"

"부산물은 저쪽에 넘긴다는 약속이잖습니까? 가능한 안 건드리고요."

"개 씨발! 미친 늑대 새낀 잡히기만 해 봐! 그냥 아주 지지고 볶고 태우고!"

말을 그렇게 하는데 추적은 계속한다. 우택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 내로 잡을 순 있으려나?'

"악! 벌레! 벌레 뭐야아악!"

오늘도 그의 시름은 깊어져만 갔다.

***

"천벌 받을 마물이 어딜 감히!"

하얀 투구를 눌러 쓴 팔라딘이 거대한 배틀 해머를 들었다. 갑토랑 세 마리는 그들을 보자마자 방향을 선회했지만, 성기사는 기어코 쫓아가 무식하리만치 커다란 망치를 내리찍었다.

쿠과광-!

갑토랑은 아슬아슬 피했고, 방금까지 평평한 지면이었던 곳은 폭탄이라도 터뜨린 것처럼 오목해졌다. 풀이 흩날리고 흙이 튀는 가운데 성기사는 노성을 터뜨렸다.

"감히 천벌을 마다하느냐!"

분노한 팔라딘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던졌다. 공중에서 수십 바퀴를 회전하며 길쭉한 막대기가 갑토랑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끼이잉!"

그나마 막대 부분으로 맞아 망정이지 만약 철퇴로 맞았다면 머리가 깨졌을 텐데. 성기사는 도망가는 갑토랑을 보며 아쉬운 눈치로 떨어진 메이스를 회수했다.

"놓쳤군."

"훌륭한 솜씨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음. 알고 있소. 형제들을 구하는 게 먼저지."

몽크와 성기사가 말을 주고 받는 걸 보며 염탐을 사용했다가 소름이 돋았다.

[성대운(인간)]

[신장 184.5cm] [체중 98.8kg]

[힘 365] [민첩 257] [체력 288] [마력 196]

성기사의 무식한 힘은 아라네아와 비견될 만한 수준이었다. 문제는 성기사만이 그런 게 아니라 일행 하나하나가 그와 비슷할 만큼 강했고.

'…나도 깝치지 말자.'

아마 정예만 들어온 게 아닐까? 6명밖에 없었지만, 개개인의 수준이 뛰어나다.

'조만간 박요한도 합류할 테고.'

생존자들을 모두 확보하면 본격적으로 던전을 공략할 터.

'아무리 길어도 하루 이틀이면 다 찾을 텐데.'

아직은 독식이나 다름 없지만, 이후부터는 경쟁. 그때까지 최대한 많이 던전이라는 파이를 독식해야 한다.

'구마준은 여전히 코빼기도 안 뵈고.'

사실 이쯤이면 구조됐다고 보는 게 맞지 않나?

어차피 신전에 구조됐다면 신전 측이 알아서 처리를― 그렇게 생각한 순간, 예의주시하던 박요한의 근처에서 또 다른 기척을 느꼈다.

***

"오오! 신자님. 여기 계셨습니까?"

박요한이 밝은 미소와 함께 구마준을 반겼다. 따로 떨어져서 걱정했는데 잘 살아있었다. 과연 신전의 형제가 될 1급 신자가 아니신가!

"후우욱! 몽… 크님?"

몸을 가누기도 어려워 보이는 것이 정신 고갈의 영향인 듯 하다. 게다가 온몸이 진흙과 풀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음… 몬스터들을 피하시려 꾀를 내신 게로군!'

부족할 힘을 대체할 인간의 지혜였다. 상처 하나 없는 거로 보아 그 꾀는 잘 통한 듯 하다. 박요한은 구마준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둘러 부축했다.

"걱정 마십시오. 주가 우리를 굽어살피시니. 좀 더 힘을 내시지요!"

박요한의 말이 구마준의 머릿속을 징징 울렸다. 억지로 참은 구마준이 마주 웃었다.

"감사합, 니다."

"모든 것이 주의 이끄심이지요! 그보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버틸…만 합니다."

그 말과는 달리 구마준은 자신이 정상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잊어버린 것처럼. 허나 자신이 무엇을 잊어버렸는가? 그것만은 도저히 떠올릴 수 없었다.

"끄으으으윽!"

"조금만 참으십시오. 신자님! 금방 나갈 수 있을 테니!"

용기를 북돋우며 부축하는 박요한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머리를 감싸 쥐고 고통을 감내하는 것뿐이었다.

―그가 구마준으로서 있을 수 있는 마지막 시간까지.

***

'찾았다.'

박요한의 근처에 포착된 기척. 냄새는 맡기 어려웠지만, 신전 출신의 박요한이 사람도 아닌 몬스터를 곁에 두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크르륵."

높은 확률로 구마준.

'박요한과 구마준… 어쩔 수 없어. 기회가 왔는데 하지 않을 순 없으니까.'

위험부담은 있다. 하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미친놈과 싸우는 건 내키지 않았지만, 해야 할 때는 해야 하는 법.

'박요한을 무력화시키고, 그 사이에 구마준을 죽인다.'

구마준의 재생은 기껏해야 두 번. 아니, 던전에서 당했다면 그만큼 재생하기 어려울 터. 결정했다면 망설여선 안 된다.

"스컬 울프! 신자님! 정신 차리십시오! 싸워야 합니다!"

부축하고 있던 구마준을 흔들어 깨워도 정신차리지 못한다. 박요한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를 나무 밑동에 기대어 눕혔다.

"신자님을 죽이고 싶다면 나부터 뚫어야 할 거다! 더러운 마물아!"

몽크는 비장한 얼굴로 주먹을 쥐었다. 피와 오물이 잔뜩 묻은 채로 결연한 의지를 다졌지만…

'대머리만 아니었음 멋졌을 것 같은데.'

세상은 어쩔 수 없는 외모지상주의였다. 그러나 그런 것과는 별개로 박요한의 주먹은 매서웠다.

'……!'

놈의 능력치는 하나도 빠짐없이 300에 육박한다. 하물며 몽크의 주먹에는 마력이 담겨 있었다. 강화된 신체로 뻗는 주먹은 섬뜩하리만치 빠르다. 뉴튜브나 TV에서나 보던 복서의 주먹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신자님이 당한 이유가 있었군. 우월종? 아니 특수종이겠군!"

특수종― 스킬을 가진 몬스터를 이름이었다. 딱히 눈에 보이는 스킬을 사용한 것도 아니건만, 스킬을 사용했다고 확신하는 듯하다.

'틀린 말은 아니지.'

실제로 간파와 직감으로 피한 거니까.

"그르르―"

박요한의 주먹이 다시 한번 공기를 갈랐고, 마력과 300에 육박하는 힘에 나가떨어져 나무와 부딪혀 부러질 듯 휘청거렸다가, 쓰러졌다.

"크륵!"

통각 무효가 있는데도 숨을 쉬기 어려웠다. 단 일격임에도 그 위력이 초절했다. 기절하지 않았던 건 끝까지 주먹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왜 나는 피하지 못했지? 피할 수 없는 속도였나? 아니다.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녀석이 가지고 있는 스킬!'

떠올려보면 박요한은 도망치려는 나를 마력으로 붙잡았었다.

덕분에 도망치지 못했고 위기를 맞았다. 만약 던전화가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 터. 그래. 분명 마력은 발목을 잡았고 나는 그걸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제아무리 290의 마력이라지만. 그 마력이 발목을 붙잡을 때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그게 가능한가?'

박요한의 민첩은 318. 무척이나 높다. 그러나 438의 아라네아와도 맞섰던 내가 박요한의 주먹을 보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도대체 뭐지?'

모르겠다. 단지 놈에게 어떤 스킬이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단순히 빨라지는 건가?'

구마준의 가속과 같은 종류일까?

"놈!"

박요한의 주먹이 쉴 새 없이 뻗어왔다. 사이사이 섞여 있는 발차기가 골치 아팠다. 쉬지 않고 연격을 이어나가는 놈에게 반격할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민첩이 318이지만 그냥 318이 아니야!'

마력 거기에 기술이 더해지자 상대하는 게 배는 까다롭다. 박요한을 이기는 건 시간이 걸릴 뿐이지 어렵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오산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녀석의 어깨가 움찔거렸고, 왼손이 다가오는데 오른손이 꿈틀거렸다. 그 모든 게 페이크였다. [간파]는 놈의 잔재주를 모조리 읽어냈다. 힘들지만 못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반대로 박요한의 입장에서는.

'내 수가 전부 읽히고 있다.'

허초(虛招)가 하나도 통하지 않는다. 즉, 늑대는 자신의 움직임이 전부 보인다는 뜻이었다.

'동체 시력이…!'

그야말로 짐승이었다.

실상은 간파 스킬이 그의 허초를 모두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었지만, 박요한의 입장에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괴물을 방생해서는 안 된다. 급해진 박요한의 동작이 급하게 그리고 크게 변했다.

"크르르."

차라리 페이크를 쓰지 않는 게 나았을 텐데. 그 작은 동작이 매 공격 사이에 텀을 발생시켰고 덕분에 부족한 민첩으로도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젠 알겠어.'

주먹이 정면에서 다가오는데 나는 고개를 돌려 물어뜯었다. 무엇도 보이지 않았지만, 확실하게 무언가가 있었다.

"……!"

그것은 다름 아닌 마력.

'이런 식으로 쓸 수 있을 줄이야.'

놈이 가진 스킬은 공간을 격하는 대단한 스킬도 아니거니와, 구마준이 가진 가속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도 가지고 있는 스킬이었다.

'은신.'

등급이나 레벨까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놈이 가지고 있는 스킬의 정체였다.

'이걸 전투에 사용할 수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기습에 은신을 사용하는 건 몰라도. 노련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은신으로 마력을 숨기는 게 가능하다니…'

피하지 못했던 게 아니다. 분명 주먹은 피했지만, 마력의 덩어리가 나를 한 번 더 타격한 것이었다. 그걸 난 피하지 못했다고 착각했던 거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크르륵―!"

처음 구마준을 구하러 왔을 때도 놈은 걱정하는 척하면서 마력을 움직이고 있었단 소리니까.

'하. 마술사냐?'

미스디렉션(Misdirection). 멧돼지라고 생각했는데 뱀이었다. 놈은 확인해보겠다는 듯 한 번 더 같은 수법을 사용했고, 통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했다.

"으음!"

은신이라는 것 자체가 경계하고 있는 상대에게는 통하지 않는 법.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면 얼마든지 파훼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좋은 걸 배웠어.'

이건 써먹을 수 있겠다. 그리고 슬슬 싸움에 끝을 볼 때가 됐다. 밑천이 드러난 마술사는 마땅히 무대에서 퇴장해야 하는 법.

"…으음."

그리고, 마침내 구마준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이건 곤란한데.'

놈의 눈빛이 회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력이 벌써 바닥났다고?'

재생이 끝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지 않았나? 아니, 아니다. 놈의 거지꼴을 보고 나는 뒤늦게 이해했다.

'몬스터를 만나지 않은 게 아니라 저 꼴이 되도록 계속 몬스터를 만났던 거야!'

오판이었다.

진작에 마력은 동이 난 상태였다.

구마준이 마신 건 마력을 대가로 재생력을 부여하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 반대. 오히려 마력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견뎌주고 있었다. 그러나 홍수에 둑은 무너지는 법. 결국 끝없이 재생되는 살점은 증식하고 증식해 그 크기를 부풀려간다…!

'이미 늦었어. 변이가 끝났다!'

그 변화를 눈치챈 건 나만이 아니었다. 대치 중임에도 불구하고 몸을 돌린 박요한이 '구마준이었던 것'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부수적인 성과의 미완성품]― 그것은 다름 아닌 존재를 키메라로 변이시키는 물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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