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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65화 (65/407)

〈 65화 〉 #33. 마녀의 재앙

"장난합니까?"

구진하가 어이없다는 듯 토로하자 광휘가 끄덕였다.

"이해하네. 하지만 말해줄 수 없네."

폭발하려는 홍유리를 우택이 가까스로 말리는 사이, 구진하는 심호흡과 함께 다시 광휘에게 물었다.

"고원이 탕아들과 손을 잡았었다는 건 사실이라는 겁니까?"

"정확히는 아버님과 내가. 다른 이들은 결백해."

아버님. 즉, 창선을 이름이다. '말할 수 없는 이유'로 탕아들에게 협력했단 건 사실. 하지만 중요한 건 바로 그 이유였다.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말이다.

"그게 지금 변절이란 건 알고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겁니까?"

"그래서 수습하고 있지."

태연하게 답하는 모습에 화가 치밀었다. 한 마디 쏘아붙여 주고 싶은데 상황이 좋지 못하다.

"일단 정리하죠. 여기가 탕아들의 본거지 중 하나라는 것. 그리고 모조 엘릭서의 미완성품이란 걸 마시면 저런 살덩이 키메라가 된다― 여기까지 틀린 게 있습니까?"

"정확하군."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이유로 당신들이 탕아에게 협력했고. 당신은 그 수습을 위해 탕아들을 몰래 처리하고 있었다…?"

"더할 나위 없네."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안 될 건 뭔가?"

뻔뻔하리만치 당당한 모습에 결국 참지 못한 구진하가 테이블을 내리쳤다. 산산이 조각난 테이블이 그의 심정을 대변했다.

"장난합니까!"

"야! 구진하!"

"당신들 고원은 이 나라의, 아니 인류의 정신적 지주입니다! 그 옛날, 창선이 칠영웅을 결집했던 일은 역사에 영원히 남을 겁니다!"

"……."

"그런 당신들이 인류에 등을 돌렸다는 겁니까? 그런 쓰레기들과 손을 잡았다는 겁니까!"

평소의 그와는 달리 격정하는 모습에 홍유리가 아미를 찌푸렸다. 하지만 동감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창선이 변절자와 손을 잡고 있었다는 걸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광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숨 막히는 침묵, 한참 동안 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던 구진하는 이내 힘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신들만은 그래선 안 됐습니다."

추측과 확신은 다르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늘, 막상 시인하자 허탈해졌다. 던전 그리고 몬스터가 나타난 지 어연 50년이 흘렀다. 구진하가 태어나기 전부터 몬스터라는 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이젠 너무 당연해졌지만, 몬스터가 나타나기 이전 사회를 생각해보면.

그 당시 사회에 미친 영향을 생각한다면.

그 혼란한 시기, 인류를 이끌었던 영웅이 변절자들과 손을 잡았단 걸 누가 납득할 수 있을까.

"……."

광휘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표정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그런데도 광휘는 끝까지 그 이유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마치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처럼.

"…됐습니다. 그 이유가 대체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고원과 탕아들은 다른 노선을 걷는다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그렇네."

"그들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알고도 잘도 손을 잡았었군요."

구진하의 냉소. 그것만큼은 할 말이 없는 걸까. 광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이나 이어진 정적. 구진하는 숨을 고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 섬에서 나갈 방법은 있습니까?"

이미 자신들이 여기까지 왔단 건 진작에 들켰을 터. 게다가 대체 얼마나 많은 살덩이들이 있는지 모른다. 그에 광휘가 작게 끄덕였다.

"두 가지 방법이 있네. 하나는 덕적도에서 소야도로 이어지는 다리. 만약을 대비해 소야도에 몰래 배 한 척을 숨겨두었으니, 그 다리만 넘을 수 있다면 괜찮겠지. 하지만…"

"그 다리가 남아있을 것 같지는 않군요."

이미 우택이 배가 파괴되었음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헌데 다른 섬으로 통하는 다리를 남겨놓았을 리 없지 않은가.

"사실, 나 하나라면 상관없지."

광휘가 품에서 스크롤 하나를 꺼내 들었다. 장거리 이동 주문서(Teleport Scroll). 스퀘어에서도 몇 생산되지 않는 부르는 게 값인 귀중품이나, 광휘라면 진품을 들고 있다 해도 이상할 건 없다.

"덕적도에서 수야도까지 가장 가까운 거리는 1km도 되지 않으니까."

"……."

"하지만… 거기, 자네."

광휘의 갑작스런 부름에 우택이 의아해했다.

"저 말입니까?"

"배를 숨겨둔 위치를 알려줄 테니 자네가 가서 배를 가져 오게."

우택이 슬쩍 구진하의 눈치를 살폈다.

"차라리 광휘께서 가지 그러십니까?"

그에 광휘는 고개를 저었다.

"날 믿을 순 있나?"

"……."

그럴 수 없음을 서로가 알고 있다. 믿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터. 곧 광휘가 담담히 끄덕였다.

"그렇겠지. 나도 마찬가지니까. 내가 없는 사이 자네들이 당할까 봐 걱정이니."

이 상황에 누가 누굴 걱정한단 말인가. 어이없다는 듯 홍유리가 고개를 꺾고 천장을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비록 소리 내진 않았지만, 씨로 시작해서 병으로 들어가더니 랄로 끝나는 말이었다.

"일단 들어보죠. 두 가지라고 했으니 방법이 하나 더 있겠죠."

"날 도와 덕적도를 정리하는 것."

"……."

"그럼 걱정 없이 본토로 돌아갈 수 있겠지."

딴에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저희 도움이 필요합니까? 애초에 당신이 여기왔다는 건 그럴 자신이 있어서 아닙니까?"

"그래. 하지만 내가 알기로 이 정도는 아니었어. 원래 이 곳에 있는 미완성품은 그리 많지 않았을 텐데."

"……."

구진하는 입술을 씹었다. 최근에 누군가가 미완성품을 가져다 준 것 같은 상황. 그리고 그 '누군가'에 집히는 구석이 있어서.

'그래서 자리를 비웠던 거군.'

불타서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원래 사각지대의 아지트가 만들어진 목적이 엘릭서를 만드는 것이었으리라.

"저 살덩이들은 어지간한 공격으론 죽지 않아. 얼마나 많은지도 장담할 수 없고."

일행이 끄덕였다. 어지간한 공격ㅡ A클래스 헌터 정도가 아니면 한 마리 처치하는 것도 장담할 수 없다. 강하다기보단 순전히 끈질기다는 이유 때문에.

"그러니 먼저 침묵하는 입부터 처리해야겠지."

"침묵하는 입?"

"탕아들의 간부 중 하나일세. 이곳, 덕적도는 침묵하는 입이 다스리고 있지."

"도대체 탕아란 건 뭡니까? 어떻게 이런 규모의 조직이 베일에 쌓여있을 수 있는 겁니까?"

"…글쎄. 나도 모르겠군."

눈동자도 표정도 떨림이 없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거짓임을 알아챘다. 아니, 아는 걸 전부 말하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겠지. 구진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일은 돌아간 뒤, 클랜 차원에서 항의하겠습니다."

"마음대로 하게.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그 말에 두 사람의 시선이 따갑게 교차했다. 누구도 눈을 돌리지 않는 중에, 구진하는 긴 숨을 뱉었다. 지금 당장은 협력해야만 했으니.

"…둘 다 하는 거로 하죠. 우택아. 넌 배부터 확보하고 나중에 합류해. 우린 그 동안 침묵하는 입을 처리할 테니."

우택이 끄덕이자, 광휘가 우택에게 텔레포트 스크롤을 건네주며 지도를 짚었다.

"이곳. 떼부리 해변에 정박시킨 배가 있네. 그걸 타고 여기. 밧지름 해변까지 오게."

떼부리 해변에서 밧지름 해변까지 거의 3~4km는 노를 저어야 하지만, 우택이라면 30분 내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배를 숨겼다면 여기, 북리까지 오게."

"침묵하는 입이 거기에 있습니까?"

"아마도. 하지만 놈도 바보는 아닐 테니 마냥 기다리진 않겠지."

"함정이 있을 수도 있고, 이미 도망쳤을 수도 있다는 거군요."

"그렇지. 하지만."

광휘가 구진하와 홍유리와 시선을 교환했다.

"나 그리고 자네들까지 있네. 무슨 문제가 있겠나?"

그 말에 팀장은 고민했다. 평소라면 고민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얼마 전 아가일을 떠올려보면 일말의 불안이 남는다.

'방심할 수 없다.'

탕아에 속한 건 아니었지만, 스퀘어의 후계자가 동맹이었던 단체. 아니, 여태까지 벌인 일들을 생각해보면 사각지대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으리라.

'모조 엘릭서의 미완성품이라 했었지.'

전설 속 연금술의 극의. 엘릭서.

광휘가 확실히 말한 건 아니었지만, 여기까지 듣고 모를 정도로 아둔하진 않다. 탕아들의 목적은 십중팔구 엘릭서를 만드는 것일 터. 실존하기는 하는 건지 만들 수는 있는지 애초에 그 효능부터 모든 게 의문이었지만.

'설마 고원은 엘릭서가 필요했던 건가?'

그래서 탕아들에게 협력한 게 아닐까. …그 이상 유추하기엔 단서가 부족했다. 추측할 수는 있지만, 근거 없는 억측이 될 뿐. 머리가 복잡했다. 생각을 정리하던 그는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 아직 남아있음을 떠올렸다.

"광휘. 마지막 질문입니다."

"말하게."

"당신들, 고원은 대체 왜 저희 여명에 알파에 대한 정보를 넘긴 겁니까?"

"흠."

"이것만은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알파는 대체 뭡니까? 왜. 그리고 어떻게 탕아들을 쫓고 있는 겁니까?"

그 물음에 광휘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네."

구진하가 따지려는 순간, 광휘는 마치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일이 있었다면 석연치 않은 인물에게 물어야겠지."

석연치 않은 인물. 잠깐 생각하던 구진하는 실소했다. 있지 않았던가. 알파가 모습을 드러낸 장소에 나타날 리 없는 인물이 나타난 적이.

"도대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 겁니까?"

"글쎄…"

광휘는 대답 대신 그저 먼 곳을 바라보았다.

***

"네에. 누구세요~?"

난데없는 새벽 전화에 잠에 취한 은하가 비몽사몽해 전화를 받았다.

[이은하! 지금 당장 클랜으로 와!]

다급한 음성에 잠이 달아났다. 은하는 액정 화면에 뜬 연락처가 클랜원임을 확인하곤 되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니다. 너 송파구였지? 그럼 바로 아카데미로 가서 합류해]

"…아카데미요?"

의아해하는 목소리로 되묻자, 통화 상대는 다급히 말하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상황은 가면서 알게 될 거다. 빨리!]

어안이 벙벙하던 은하는 옷을 챙겨입고 아카데미로 갈 준비를 하다, 베란다에 멍하니 서 있는 동생을 보았다.

"이은아. 너 거기서 뭐해?"

"언니."

동생은 홀린 듯, 베란다 너머 바깥을 보고 있었다. 난간을 붙잡은 두 손이 떨리고 있다. 은하가 눈살을 찌푸리며 다가가자, 동생은 손을 들어 먼 곳을 가리켰다.

"저게… 뭐야?"

그리고 곧 은하 또한 믿기 어려운 광경에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렸다.

***

북리까지 도착하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살덩이들의 지성은 미비했고, 꾸물거릴 뿐이었으니까. 숨고자 한다면 얼마든 숨을 수 있었다.

야음을 틈타 북리에 도달한 셋은 시내를 떠도는 살덩이들을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더 많군."

이 좁은 섬에 어찌 이런 괴물들이 넘쳐난단 말인가? 열화판이라곤 해도 어지간한 헌터들은 상대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괴물인데.

주변을 살핀 구진하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숨어들 수 있겠습니까?"

"글쎄… 쉽진 않겠군."

"차라리 정리하고 가는 건요?"

"그 전에 화살이나 마력이 바닥날 걸세."

언뜻 보니, 광휘가 멘 화살통에 남은 화살은 일곱이었다. 왜 더 챙겨오지 않았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모조 엘릭서의 미완성품이 이리도 많았다는 건 그 또한 몰랐던 사실이니 어쩔 수 없다.

"Ascunde."

홍유리의 말이 떨어짐과 무섭게 그들 셋을 감싸는 투명한 막이 생겨났다.

"뭘 고민해? 마법사가 옆에 있는데."

그에 두 사람이 실소했다. 덕분에 광휘가 말한 장소까지 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 앞까지 도달한 그들은 잠깐 고민하다가, 옆으로 돌았다. 광휘가 끄덕이자 구진하가 창문틀을 자르고 그 안으로 숨어들었다. 헌터이기에 가능한 발상. 소음도 없이 잠입한 그들은 시선을 교환했다.

마력 감지에 확인되는 기척 셋. 동시에 그들 셋이 손가락 둘을 펼쳤다.

"……."

숨소리를 죽이고, 방문을 열자마자 구진하는 좌측으로 달려들었다. 확인할 필요도 없다는 듯, 심장을 꿰뚫자 남은 둘이 기겁하며 소스라쳤다.

"tăcere."

"――?!"

말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홍유리가 발한 마법이 그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다음 순간, 무기를 쥐고 저항하려는 그들의 발목을 꿰뚫고 화살이 틀어박혀 발등과 바닥을 함께 관통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고작 2초였다.

"…이들이 침묵하는 입입니까?"

"그럴 리가. 그냥 잔챙이들일세. 침묵하는 입이 있었다면 이렇게 쉽게는 안 됐겠지."

그렇게 10분여가 지났을 때, 구진하와 광휘는 서로가 들은 정보가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망설임 없이 그들의 목을 쳤다.

"아카데미 습격이라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요. 거기에 누가 있는지 알고 있을 텐데."

아카데미란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헌터 양성소와 같다. 학생 하나하나가 미래의 헌터였고, 당연히 그들을 가르칠 인물이 아카데미에 상주해있다. 스퀘어 출신 마법사를 포함, 최상위 클랜의 헌터들이 교사로 있다는 뜻. 하물며 그 총수는 칠영웅의 일원인 무노(武老)였다. 이미 아카데미 자체가 어지간한 대표 클랜을 깔아보는 전력. 설령 죽은 아가일이 살아 돌아오더라도 쉽지 않으리라. 그런 곳을 습격하겠다는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꼭 그렇게 생각하긴 힘들지."

"……?"

"자네도 탕아들이라는 족속을 겪어봤으면서 그런 말이 나오나? 자신이 없었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걸세."

"그럼 아카데미를 습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서울 한복판에 있는 아카데미를?"

"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주변을 둘러보게."

곧 구진하와 홍유리의 안색이 변했다. 덕적도를 뒤덮고 있는 살덩이가 무엇이던가? [부수적인 성과의 미완성품]― 그걸 만드는 게 절대 쉽지는 않겠지만, 사각지대의 아지트처럼 엘릭서 연구를 위한 시설이 더 없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 있고? 미완성품이 더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런 놈들이 서울 한복판에 나타난다면? 하물며 아카데미 내부라면?"

"진심입니까?"

"어려울 것 같나? 누구라도 좋아. 굳이 탕아들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든 마시게 하면 저런 괴물이 되네. 아카데미 습격. 그게 정말 어려울 것 같나?"

"섬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군요. 최대한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늦었어."

홍유리의 한숨 섞인 말과 함께, 끔찍하리만치 거대한 살덩이들이 밀려들고 있었다.

"애초에 이 새끼들이 미끼였던 거야."

창문 너머, 먼 곳에서 입이 없는 가면을 쓴 누군가가―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새벽, 그것은 서서히 거대해져 갔다. 커진 붉은 살덩이가 피어올랐다. 그 끔찍한 것이 점점 덩치를 부풀리고 있었다.

'미친.'

감지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것들만 여섯이다. 아카데미 단지 내에만 세 마리가 있었고. 심지어 이게 끝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서울 전체로 따지면 어떤 혼란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왜 이렇게 됐지?'

일이 꼬였다. 단순히 소설 속 주인공을 만나러 아카데미로 왔다가 터무니 없는 일에 직면하고 말았다.

'…역사가 변했어.'

미래가 바뀌었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구상섭, 구마준, 이백섬. 탕아들의 말단을 잘라갔고 사각지대를 쳐부쉈다. 더할 나위 없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일까?

'몰아붙여서?'

대전의 밤이 그리 큰 영향을 미쳤나? 아니면 모조 엘릭서 때문인가? 그래서 이런 식으로 일을 벌였나?

'망할.'

일어나지 않을 재앙이라고 생각했다. 하수도의 재앙을 막음으로써 괜찮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Lv.10 달성 조건 : 마녀의 재앙을 저지할 것]

본래라면 지금으로부터 몇 년 후에 일어날 재앙이 앞당겨지고 말았다. 그것도 아카데미 습격이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뀨루룩!"

정신 차리라는 듯, 페어리 드래곤이 꼬리로 코끝을 문질렀다.

"…그래. 그래야지."

안일했다. 하수도의 재앙이 아니더라도, 부산에 혼란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놈들에게 있어 사람 하나 납치하는 건 어렵지 않다. 고작 0.02%일 리가 없다. 정말로 마녀의 재앙을 막은 거라면 훨씬 더 많은 업이 책정되어야 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시스템은 저지하라고 말했다. 즉, 아직 끝나지 않았단 뜻이다.

'이번에야말로.'

마녀의 재앙을 저지하고, 백소율이 마녀가 되는 미래를 막는다.

***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는가?"

"……."

"대체 이렇게까지 해서 무얼 얻을 수 있나? 그냥 조용히 사라지게. 자네를 쫓진 않을 테니."

곧 노인은 깊은 감정이 담긴 한숨을 뱉었다.

"망령 들었구먼."

"그럴지도."

"이 사람아. 어찌 그리됐는가."

탄식하던 노인은 무슨 말을 해도 달라지지 않을 것을 알고 결국 창을 들었다.

"오게. 하다못해 내가 자네를 보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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