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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00화 (100/407)

〈 100화 〉 #46 이단의 탕아들 (3)

검은 마력은 장벽이 되어 막아섰다. 암담하리만치 커다란 마력의 벽 앞에서도 늑대는 멈추지 않았다.

[Când trage fulgerul, respirația ta se va opri]

―세 번째 영창. 아직도 마법은 구현되지 않았다. 최소한 4절 이상의 주문이라는 뜻. 침묵하는 입이 하나 남은 손을 휘저었을 때, 검은 마력은 밤바다의 파도처럼 변해 출렁였다. 당장 늑대를 덮쳐 쓸어갈 것만 같은 앞에서, 밤바다는 불바다로 변했다.

"……!"

타오르는 불꽃은 꺼지지 않고 마력에 맞섰다. 그것만으로는 닿지 않았지만, 안개는 스멀거리며 틈을 파고들었다.

파고들고, 또 파고들어서. 한계까지 마력을 끌어올려 기어코 머리를 비집어 넣은 늑대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시뻘건 안광과 마주했을 때, 침묵하는 입은 아주 짧은 순간, 자신이 위압당했음을 느꼈다.

순수한 살기가, 타오르는 귀기가 침묵하는 입의 귓가에 속삭이고 있었다. ―죽여버리겠다고.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끔찍한 살의 속에서 침묵하는 입은 조소했다. 그래서, 어쩌라는 말인가? 어차피 꼭두각시. 아무리 죽어봤자 시간이 걸릴 뿐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짜 몸일뿐인데.

따라서, 그에게 살의는 살의로 와닿지 않았다.

마력의 장벽을 뚫고 늑대의 아가리가 들이밀어졌다. 벌어지려는 턱을 마법사의 손이 꽉 붙잡았다.

[너흰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바라보는 우둔한 것들!]

붉은 눈을 보며 마법사의 마력이 울려 퍼지며 시선이 교차한다. 서로의 눈동자에 비치는 건 서로를 죽이고 말겠다는 의지뿐이었다.

[Fulgerul tăcut ia totul]

광신― 미치광이 마법사의 믿음. 4절의 영창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마법은 구현되지 않는다.

'대마법…!'

다만, 암운처럼 형태를 드러내진 않는다. 이제 남은 건 최후의 영창뿐이건만. 침묵하는 입은 늑대의 턱을 붙잡은 손아귀에 힘을 더했다.

[쯧. 괜한 시간 낭비를… 그만 죽어라. 이 같잖은 벌레야]

검은 마력이 손끝에 모여 붙잡은 손에 더해져 간다. 그뿐만이 아니라, 억지로 벽을 비집고 들어온 늑대의 전신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부패하고 소멸하면서도, 늑대의 눈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

―눈빛에 드러나는 여전한 살기는 늑대가 포기하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검은 마력에 만신창이가 되어 이미 빈사 상태에 가깝다. 그러나, 늑대가 비집고 들어온 만큼 공간이 생긴 셈이다.

그 틈으로 안개가 스며들었다.

ㅡ안개가 마력을 뚫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이미 구멍이 뚫려있다면 마력은 흑무를 막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어코 몸을 비집고 넣은 공간― 그 틈으로 침투한 검은 안개는 바람을 두르고서 마법사를 향해 나아간다. 물러나려는 마법사의 발을 뻗은 촉수와 그림자가 붙잡아 움직일 수 없게끔 고정하고 있다. 또한, 타오르는 불길이 발끝에서부터 침묵하는 입을 불살라간다.

[이…!]

한껏 마력을 모은 손에 어느새 늑대의 턱이 소멸해 사라졌다. 뻗은 손은 늑대의 눈구멍을 찔렀고, 기어코 눈알을 헤집었다. 마법사의 검은 손이 늑대의 두개골을 부수고, 뇌까지 도달하려는 순간, 마법사의 손에서 힘이 사라졌다. 눈을 찌른 손가락에서 힘이 빠져, 늑대의 안와에 걸려 맥없이 늘어진다. 침투한 검은 안개가 침묵하는 입의 손목을 집어삼켜 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Acolo, moartea ta a fost destinată, așa că acest tunet va fi ultimul sunet pe care îl auzi―!]

급변한 상황. 다급히 외치는 놈을 검은 안개가 뒤덮어간다. 블링크를 사용하려 하지만, 그렇게 두진 않는다.

'바포메트.'

늑대는 이미 그 싸움에서 실마리를 얻었다. 처형자의 회색 마력이 페리의 점멸을 막았던 것처럼. 스킬과 마력의 차이가 있을 뿐. 마찬가지로 뒤덮은 흑무를 뚫지 못하는 이상, 마력은 어디로도 갈 수 없다.

[이, 이 버러지가―!]

또한, 그것은 최후의 영창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법이 구현되기 위해 필요했던 마지막 영창은 흑무를 지나지 못하고 소리째 삼켜지고 말았으니까.

검은 안개는, 정적을 불러일으킨다.

"……!"

위턱과 아래턱이 재생되지 않은 늑대는 대신, 촉수를 변형시키고 변화시켰다. 가시촉수― 그 가시 하나하나가 늑대의 이빨이 되었고.

[―――!]

짐승의 송곳니는 끝내 마법사의 전신을 옥죄고, 꿰뚫고, 물어뜯었다.

[……이, 이!]

마법사에게 남은 선택은 없다. 가능한 거라고는 동귀어진의 수. 자폭 하나뿐. 결국, 침묵하는 입은 자신이 가진 모든 마력을 폭주시켰다. 터지기만 하면 강대한 마력이 모든 것을 휩쓸고 말리라. 허나, 그가 가진 최후의 수단조차 발버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까드드득―

무언가를 씹는 소리에 마법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늑대의 이빨 사이를 바라보았다.

―붉게 빛나는 보석. 그것은 그가 심어둔 매개체였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내린 마법사는 흘러내리는 내장을 보고 노기를 드러냈다.

[이, 이 쓰레기가아아아아아아―――!]

거대한 마력이 당장에라도 터질듯이 소용돌이쳤지만, 마력을 끌어올릴 수 없게 된 마법사는 늑대의 적수가 될 수 없다.

―스으으으으.

어디선가 불어온 거센 바람을 두른 검은 안개는, 기어코 침묵하는 입을 뒤덮고야 말았다.

[――――――!]

벼랑 끝에 몰린 마법사는 영혼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쳤고, 폭주시킨 마력은 자기 자신을 폭발시켰으나―

[절대… 절대, 이걸로 끝이라 생각지 마라―――!]

―이미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중이었다.

단말마와 함께 마법사가 폭발하고, 피와 살점이 비산했다. 결국 밀림 곳곳을 물들이고,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던 늑대는 이내 조용히 읊조렸다.

"너야말로, 고작 이걸로 끝이라 생각하지 마."

―늑대의 살의는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

마법사가 절벽 아래로 떨어진 지금이 기회였다. 승리를 쟁취한 건 분명 늑대였으나, 몸 상태가 온전치 않다. 전신이 만신창이였고 위턱과 아래턱은 날아가 있다.

본래라면 죽었겠지만, 지켜보고 있던 김주섭은 늑대에게 놀랄 정도로 뛰어난 재생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전에 처치해야 한다. 힘에 부친 것인지 그 묘한 안개도 줄어들었다.

'지금이야말로…!'

유일한 기회라고 직감했다. 당긴 활시위가 팽팽해지고 김주섭은 한쪽 눈을 감아 조준선을 정렬했다. 시야에 늑대를 담은 그가 시위를 놓기 직전,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 웬 요정용 한 마리가 날아오고 있었다.

"……?"

은자림을 비롯한 몇몇은 늑대를 돕는 요정용의 존재를 알았지만, 김주섭은 듣지 못했다. 본래 몬스터라면 곧바로 죽였겠지만, 요정용은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고 생태계를 파괴하지도 않는 몬스터. 왜 던전에 있느냐는 의문이었지만, 슬라임을 굳이 죽이지 않는 것처럼 요정용을 죽일 필요는 없다. 그 때문에 마력으로 쳐내는 정도로 그쳤지만, 순식간에 코앞까지 이동한 요정용을 보고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귀찮음이 묻어나는 파리를 쫓는 듯한 손짓. 마력조차 담기지 않고 대충 쳐낸 손짓에 요정용이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

―그리고, 김주섭은 움직이지 못했다.

"―――."

낮은 으르렁거림이 귓가에 울려 퍼지자, 그는 마른 침을 삼켰다. 등골이 오싹해지며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본능적으로, 아니 이성과 본능이 모두 소리쳤다.

'지금 고개를 돌리면…'

아니,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이면 '반드시' 죽는다고. 심판을 기다리는 죄수의 심정으로 김주섭은 질끈 눈을 감았다. 도대체 언제…? 기척 하나 없이 순식간에 배후를 점한 늑대. 곧, 스산한 무언가가 목덜미를 한 차례 쓸었고, 늑대의 숨소리가 수십 수백 배로 크게 들려왔다.

"크르르―"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지금 요정용을 건드린 건 실수였다고. 그래서는 안 됐다고. 등 뒤의 괴물에게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을 때, 날갯짓하는 요정용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빛가루를 뿌리며 그것이 눈가를 지나치자, 서늘한 시선이 자신을 훑는 게 느껴졌다.

그 잠깐이 그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졌다.

다만, 늑대는 머잖아 발길을 돌렸다. 멀어지는 발소리를 듣고 혼자 남았음을 깨닫고도, 김주섭은 움직이지 못했다. 얼어붙은 그는 한참이 지나고서야 창백한 안색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살았다는 안도보다 죽을 뻔했다는 두려움이 그를 얼어붙게 했다.

달달 떨리는 손이 그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늑대는 처음부터 방심 따위는 하지도 않았었다. 전부 알아차리고 있었다. 만약, 정말 만약에 시위를 당겼다면?

'틀림없이…'

멍하니 있던 그가 아연히 목덜미를 쓸었고, 진득한 피가 묻어나와 또 한 번 섬뜩한 두려움이 찾아와, 공포에 시달려야만 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굴복해 꺾인 마음.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한동안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

"……."

살아서 다행이라는 듯, 아직 재생되지도 않은 턱에 뺨을 비비는 페리를 보며 쓰게 웃었다. 사실, 페리가 쳐내진 것을 보았을 땐, 정말 눈이 돌아가고 말았다.

―그대로 있었다면 분명 죽였을 거다.

다만, 이번에도 녀석이 나를 말렸다. 홍유리 때와 마찬가지인 걱정으로. 괜찮다고, 그러지 말라고.

깊은 숨을 뱉으며 눈을 감았다. 속을 억누르는 건, 누군가를 용서하는 게 생각보다 힘들다. 날이 갈수록 페리가 내 역린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래도, 그게 썩 나쁜 기분은 아니라 쓰게 웃고 말았다.

"뀨우우~"

꼬리 끝으로 귀를 당긴 페리가 마치 달라는 듯 이빨 사이를 가리켰다. ―매개체. 침묵하는 입이 꼭두각시를 사용할 때 필요한 것. 그걸 만드는 방법은 모르겠지만, 페리는 두 눈을 빛내고 있었다. 마치 그게 최고의 먹이라도 된다는 듯이.

안 그래도 진작 먹이가 떨어졌던 참에 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얼른 그것을 건네주자 페리가 행복하다는 듯 집어 들었다. 단번에 삼키더니, 녀석은 꼬리 끝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느낄 수 있어?"

페리가 자신을 믿으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녀석이 가리킨 곳, 저 아래에는 커다란 핏빛 괴인, 막을 수 없는 힘과 공략대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언뜻 유리해 보이는 공략대였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숨길 수 없는 피곤과 피로가 서서히 드러나 발목을 붙잡고 있다. 반대로 저거노트에게 체력의 한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페리의 말대로라면.

"놈이 저 안에 있다는 거지?"

살덩이 괴인, 저거노트. 그 안에 침묵하는 입이 있다고 페리는 그리 말하고 있었다. 끄덕이는 녀석을 본 순간, 저거노트로부터 검은 마력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이라면. 생명체라면 당연히 저거노트의 몸 안에서 견딜 수 있을 리 없다. 끊임없이 재생과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압력에 뭉개지고 말리라.

하지만 놈은 다르다. 침묵하는 입의 정체는 전 옐로우 스퀘어 마스터'였던 것'. 인간이 아니게 된 마법사, 리치(Lich). 생에 대한 집착으로 육신을 버리고 영생을 살아가는 괴물.

또한, 자신의 마력(精)과 이지(氣)와 생명(身)을 구슬 안에 담은 몰락한 마법사.

놈의 본체란, 자신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생명의 그릇(Life Vessel)을 말하는 것이다.

고작 꼭두각시 하나를 처리했을 뿐,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저거노트 안에서 침묵하는 입은 살아있다. 결국 놈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다시 돌아오고 말리라.

'그렇게 두진 않아.'

여기서, 끝을 보겠다고 정했으니까. 늑대는 절벽 아래를 향해 전력으로 내달렸다.

―공략대와 탕아. 인류와 변절자가 싸우고 있는 전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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