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화 〉 #83 본능 (6)
울부짖는 그것이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채 서 있었다.
먹어치우는 자― 어딘가에 비친 상이 아니라 두 눈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건 처음. 발목에 휘감긴 족쇄와 사슬이 찰그락거린다. 뻣뻣이 선 털과 무릎 굽혀 자세를 낮추더니 그것이 별안간 뛰어올랐다.
늑대는 재빨리 몸을 날렸고, 짐승은 애꿎은 바닥만을 씹었다.
……아무것도 없는 바닥인데도 삼켰다. 핏물로 붉게 물든 이빨로 검은 바닥을, 그런 심연을 아무렇지 않게 집어삼켰다.
피로 범벅이 된 입. 군침을 흘릴 때마다 핏물이 같이 떨어진다. 그렇게 자신을 보곤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명백하게 먹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마치 아귀를 보는 듯하다. 굶주리고 굶주려서 뭔가를 먹어야만 한다는 듯이. 짐승이 물러나지 않으리란 걸 깨닫고 저 너머를 향하던 늑대의 시선이 짐승에게 향했다.
그 붉은 눈이 자신에게 무언가 묻고 있는 듯했다.
늑대는 답하지 않았다. 비치던 빛이 사라지고, 그 길목에는 여전히 짐승이 있었다. 서로를 가리는 어둠조차 아무런 장해가 되지 못한다. 옅은 심연속에서 비키지 않는 짐승이 자신에게 울부짖었다.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여기서 놈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걸.
***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거리를 두고 보고 있는 것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이상해질 것만 같은데 그것도 하지 못하면 너무 비참해져 스스로 환멸이 나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부팀장님……"
이은하가 부르는 걸 듣고도 무시했다. 다른 걸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애새끼 같은 치기였지만 그렇게라도 고집 피워야 했다.
따가운 목을 매만졌다. 진작 한참이나 소리 질러 다 쉬어버리고 말았다.
여전히 짐승은 먹고 있을 뿐이다. 처참한 모습으로 질질 끌면서 자신이었던 것들을 억지로 채워 넣는다. 구멍 난 위장으로 핏물이 질질 새어 나오고, 부서진 턱으로 제대로 씹지 못한 고기들에는 어설픈 이빨 자국이 남아있었다.
속이 매스껍다. 보고만 있어도 토할 것 같다.
그래도 눈을 돌리진 않았다. 믿고 있었으니까. 분명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할 수 있는 게 고작 이것밖에 없었으니까.
멀찍이 떨어져 성대를 긁어 소리를 끌어모아 하염없이 외쳤다. 이 목소리가 닿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
달려드는 짐승을 상대로 늑대는 이를 악물었다.
싸움이 성립되지 않았으니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계속 피하는 것뿐이다.
공허를 사용하는 마랑을 상대로 자신은 아무것도 쓸 수 없다. 연결이 끊어져 있었으니까.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늑대가 바랐던 것. 고행 끝에 이성이 약해져 본능이 드러나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그 결과, 깊디깊은 심연속에서 홀로 남아버리고 말았다.
그 무엇도 이 깊은 곳까지는 닿지 못하리라.
늑대가 가지고 있는 거라고는 그 자신의 육신뿐. 공허를 사용하는 짐승과 그러지 못하는 늑대의 차이는 분명했다. 쓰러뜨리기는커녕 접근조차 할 수 없다.
마치, 벽이 가로막는 것 같다.
그냥 커다란 벽이 아니라 길이 끊어지고 그 아래는 낭떠러지인 그런 세상 끝의 벽. 절대 지나갈 수 없게 완전히 끊어진 길. 그렇게나 암담해 보였다.
어느새 어슴푸레 비치던 빛이 보이지 않게 됐다.
아니, 그게 아니라 놈에게 쫓겨 그만큼 밀려난 거였다. 짐승의 이빨에 물어뜯기지 않게 도망치는 게 고작이었다.
나아가기는커녕 물러날 수밖에 없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늑대는 그렇게 더 깊은 심연속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곧 파국이 오리란 걸 알았다.
결국엔 둘 중 하나. 심연속에 가라앉아버리거나 붙잡혀 먹히게 되거나. 어떻게든 벗어날 길을 찾는 것보다 그 순간이 더 빠르게 찾아왔다.
……후자였다.
거리가 좁혀지고 말았으니까. 여태 달리고 달린 자신과는 달리 놈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체력에서 차이가 나고 말았다. 아지랑이를 계속 피해 달리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뛰어오른 짐승이 자신을 덮쳐왔다. 그 순간, 늑대는 맹렬한 기세로 달려드는 짐승의 머리를 가까스로 피해냈다. 그리곤 되려 물어뜯었다. 초감각을 비롯한 스킬들은 사라졌다지만 여태 쌓아온 경험마저 잃어버린 건 아니니까.
곧장 머리부터 들이미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짐승을 피하기란 어렵지 않다. 늑대의 턱이 짐승의 주둥이를 씹어 벌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발버둥 치는 놈이 몸부림쳐 자신을 떨쳐낸 순간, 늑대는 그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여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이미 만신창이. 엉망진창으로 물어뜯겨 검은 털이 붉게 물들고 말았다.
마치 수십 마리 늑대가 더 있어서, 그것들이 자신을 물어뜯은 것만 같았다. 차갑게 식은 심연 속에서 부풀어 오른 아지랑이가 넘실거렸다. 짐승은 턱을 물어뜯겼음에도 상관없다는 듯 또 한 번 달려들었고 붉은 눈이 마주한 순간, 늑대는 물러났다.
그러나 한계는 있다. 처음부터 체력에 차이가 있었다. 거기에 공허에 물어뜯긴 이상 늑대가 계속 도망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짐승을 수 싸움에서 한참이나 압도해 웃돌고 있었지만, 거기에 의미는 없다.
진짜 문제는 그 격차를 메우고도 남는 공허의 존재.
자신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난폭한 그 힘. 또 한 번 물어뜯기고 말았다. 자세를 낮추고 순식간에 달려드는 짐승. 시간이 느려진 것 같은 착각 속에서 늑대는 숨을 몰아쉬었지만, 어디가 고장 난 건지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서서히,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쓰러질 수 없다는 오기가, 어렴풋이 들리는 목소리가 가까스로 늑대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래. 목소리.
반드시 나가야 한다. 벗어나야만 한다. 그러기로 했으니까. 여기서 발목 잡힌 채로 있을 수는 없다.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상처는 재생하지 않는다. 이미 압도적으로 벌려진 격차를 좁힐 방법이 대체 어디에 있다고?
어느새 지척까지 달려든 짐승이 한껏 턱을 벌리고 있었다. 멍하니 보던 늑대는 뒤늦게 퍼뜩 정신 차리며 몸을 굴러 피했고, 짐승의 턱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씹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이젠 더 피할 자신이 없다. 짐승의 입가에선 여전히 진득한 침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섬뜩한, 광기에 찬 눈동자가 이제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듯했다.
먹고 싶어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굶주림을 견딜 수 없다는 듯이 그렇게 자신을 갈망하고 있었다. 짐승은 여전히 자신을 먹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도 어째서일까. 그 붉은 광기에 젖은 눈이 여전히 자신에게 무언가를 묻고 있는 듯했다.
……틀렸다.
묻고 있는 건 짐승이 아니라 늑대 자신이었다.
짐승과의 격차는 분명하다. 승산은 보이지 않는다. 버티고 버텨봤자 의미는 없다. 결국 먹혀버리고 말리라.
거기에, 의문을 표하고 있었다.
―――정말 그러하냐고.
다른 누구도 아닌 늑대 자신이.
그러자, 무언가가 일렁였다.
보이지 않는 것. 공허의 아지랑이가 조금씩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
변화는 미약했다. 착각인가 싶었으나 짐승의 움직임이 멈췄다. 움직이지 않는다. 고깃덩이를 눈앞에 두고서도 씹지 않고 있다.
왜? 떠오르는 이유라고는 하나밖에 없다.
알파가 돌아오고 있다. 이성을 되찾고 있는 거야……!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이미 쉬어버린 목을 억지로 다시 쥐어 짜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이렇게라도 해야만 했다. 바라고 바랐다. 돌아왔을 때만큼은 혼자 있게 하지 않을 테니까, 제발 돌아와 달라고.
***
서로에게 피어오른 아지랑이. 시선을 마주했다. 공허는 피어올랐지만, 스킬이 이어진 건 아니다. 여전히 상처는 재생하지 않고 겁화는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상관없다.
이젠 알았으니까.
이번에는 반대로 늑대가 짐승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짐승의 턱이 벌어졌으나, 늑대는 옆으로 물러나며 놈을 물어뜯었다.
몸을 비틀며 저항하는 짐승이 크게 몸을 떨친 순간, 아까처럼 공허가 뻗어왔다.
서로의 아지랑이가 넘실거리며 격렬히 부딪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난폭하고 격렬한 짐승의 공허가 자신의 아지랑이를 물어뜯어 기어이 집어삼키고 말았다.
늑대가 보았던 대로 자신의 것보다 훨씬 강하고 격렬한 그 힘. 같은 공허임에도 불구하고 격이 다르다. 짐승의 것은 보다 원초적이고 강렬하다.
다만, 그때만큼은 아니었다.
질병을 먹어 치웠던 그때만큼은.
그 이유는 알고 있다.
애초에 하나였던 공허가 둘일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뜻하는 건―――
"――――――!"
서로가 사선으로 돌며 기회를 노렸다. 원을 그리며 같은 방향으로 돌던 와중에 별안간 고개를 들이미는 짐승의 송곳니는 이번에도 허공을 씹었다.
몸을 낮춘 늑대가 뛰어오르듯 짐승을 밀어내고 서로가 엎치락뒤치락 몸싸움을 시작했다. 날카로운 발톱이 낫지 않을 상처를 새겼다. 짐승의 턱이 늑대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늑대는 피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한껏 벌려 송곳니를 박아넣었다.
고통에 울부짖는 짐승의 턱에서 힘이 빠진 순간, 늑대는 머리를 끌어당겼다. 어깻죽지와 목덜미를 잇는 부분이 크게 뜯겨나갔다. 휘청거리는 짐승은 섣불리 달려들지 않았다.
늑대는 담담히 자신의 본능, 짐승을 보았다.
물어뜯겼다. 짐승이 자신을 물어뜯었다.
……그래서 그게 뭐 어떻다고?
짐승에게서 뜯어낸 살점을 씹으며 그 고기를 삼켰다. 목울대를 넘겨 위장 속에 밀어 넣었다.
아무렇지도 않다. 진작 아픔은 무뎌졌다.
417번―― 그렇게나 자신을 죽였는데 새삼 아픈 게 두려울 리 없다. 이미 극복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늑대 자신의 의지로.
한 발 내딛자 짐승이 움츠러들었다.
처음의 기세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겁먹은 짐승에게 달려든 늑대가 세차게 물어뜯었다. 자신을 쳐내려고 끈질기게 몸부림쳤지만, 늑대는 악착같이 달라붙었다. 한참이 지나 경추가 덜렁거릴 때가 돼서야 짐승은 가까스로 늑대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늑대 또한 정상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물어 뜯겨있었다.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더라도 공허가 뒤처져있었으니까.
여전히 불리한 건 늑대였다.
그러나 도무지 질 것 같지가 않다.
기다란 붉은 혀가 입가의 피를 쓸어 목구멍으로 넘겼다. 지독한 갈증으로 말라붙었던 목이 좀 더 원하고 있었다. 허기가 느껴진다. 물어뜯긴 전신에 아무렇지도 않은 얼얼한 통증이 남아 있다.
―――아지랑이는 더욱 피어오른다.
짐승이 아니라 늑대에게서. 반대로 짐승의 공허는 그 기세가 줄어들어 있었다.
애초부터 공허는 하나. 그것을 서로가 나눠 쓰고 있었을 뿐이다. 늑대의 공허가 피어올랐다면 짐승의 공허가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이치.
무엇이 차이를 좁혔는가. 고행이었다. 본능을 깨닫기 위해 스스로 구렁텅이로 떨어진 그 고행이 늑대에게 알게 했다.
아픔과 굶주림 그리고 목마름을.
자신이 버렸던 욕구가, 본능이 돌아왔을 때 늑대는 알게 됐다. 아니, 알아가는 걸 넘어 극복하고 있었다. 본능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짐승에게 귀속되다시피 해있던 공허가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고행은 의미 없지 않았다. 마침내 대등해진 아지랑이――― 그러나 싸움마저 대등하진 않았다. 날뛰는 짐승은 더 이상 늑대에게 미치지 못했으니까.
공허는 서로 격렬히 부딪혔으나 시종일관 압도하는 건 늑대였다.
처음과는 다른 의미로 싸움은 성립하지 않았다.
짐승은 울부짖었고, 늑대는 물어뜯었다.
한낱 짐승이 여태 수많은 사선을 넘나든 늑대와 싸울 수 있을 리 없다.
물어뜯고 씹어 삼키고 찢어발기고. 그렇게 짐승은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그러면 그럴수록 겁먹어 움츠러들었고 늑대는 망설임 없이 나아갔다.
이미 짐승은 본래의 형상을 하고 있지 못했다. 서로 처참한 꼴이었으나 싸움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다시금 짐승은 울부짖었으나, 텅 비어 있었다.
공허한 울림은 이제 아무도 겁먹게 하지 못한다.
늑대는 담담히 생각했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됐다고. 굶주림이, 허기가 더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그 순간, 짐승은 보고 말았다.
늑대의 두 눈이 자신을 먹이로 치부해버린 것을.
어둡고 깊은 심연속에서 짐승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심연 전체를 집어삼킬 듯 끝을 모르고 부풀어 오른 아지랑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