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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213화 (213/407)

〈 213화 〉 #89 기싸움

환영의 나비의 방문.

스퀘어가 추락했다고 해도 스퀘어 마스터의 이름에 빛이 바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마랑의 존재가 세간에 공표되지 않은 만큼 질병과 역병을 쓰러뜨린 것은 그들이라 알고 있었으니까.

스퀘어의 마법사들과 소수의 인원만이 그 진실을 알고 있을 뿐. 따라서, 스퀘어 마스터의 방문에는 소란이 일 수밖에 없다.

다만, 소란이 일더라도 딱 거기까지. 사람들이 뭉친 곳에 환영의 나비가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자색 나비가 하나둘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더니, 한데 뭉쳐 사람의 형상으로 화했으니까.

"……이러면 기다리게 할 필요도 없었군."

환영의 나비가 모습을 드러내자 강태준은 가볍게 묵례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환영의 주인."

잠깐 둘러본 환영의 나비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됐지? 오 년? 십 년?"

"이십 년은 더 지났겠죠."

강태준은 잠깐 곱씹었다. 그때는 아버지께서 살아있으셨으니. 아니, 지금도 살아있다면 살아있는 것이겠지만…

"시간이 많이 지났기는 했군. 그 어린 것이 검성이 됐으니."

비꼬는 말은 아니었다. 단지 정말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 그리고 환영의 나비가 곧잘 이리로 왔음을 알아챈 홍유리가 뒤늦게 찾아와 문을 열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여 보이자, 잠깐 훑어보던 환영의 나비는 머리를 주억였다.

"아스터의 후계자는 네가 되는 게 좋았을지도 모르겠어."

"칭찬의 말씀, 감사합니다."

평소의 건방진 태도를 버린 듯, 겸손하게 일관하는 홍유리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환영의 나비는 다시 강태준을 보았다.

"……두 사람 더 상관없겠지?"

"편할 대로 하시죠."

강태준이 가볍게 끄덕이자 홍유리는 그녀를 안내해나갔다.

***

"이제 곧 도착이네요. 그렇게 좋아요?"

아넬라의 물음에 백소율은 어렴풋이 보이는 여명의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네. 이제 선생님에게서 되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누가 보면 물건인 줄 알겠네요. 소율 양. 그렇게 자신 있어요?"

턱을 괴고 시큰둥하게 묻는 말에 백소율은 웃어 보였다.

"아뇨. 그렇게 될 거예요."

"……?"

"제가 포기하지 않을 거니까요."

그 눈빛에 아넬라는 가벼운 비음을 흘리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런 아넬라 씨도 기분 좋아 보이시는데요?"

"응? 그래요?"

묘하게 목소리 톤이 올라가 있다. 백소율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넬라는 피식 웃어 보였다.

"서울에 잘생긴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봐요."

백소율은 전혀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어깨에 붙였고 아넬라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세검사가 다쳤다는 소식은 물론 들었지만, 얼마 전에 서울에 올라왔을 땐 만나지도 못했으니까. 오랜만에 다시 보겠구나 싶어 웃음이 새어 나왔다.

***

환영의 나비에게 객실을 내어준 홍유리는 기지개를 켜며 방 밖으로 나왔다. 방을 알려주니 곧바로 무덤으로 가겠다며 떠났는데 길은 아시냐고 물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기야 스퀘어 마스터 정도 되는 사람인데 어련히 알아서 찾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으리라.

투덜거리며 옥상으로 올라온 홍유리는 이마를 찌푸렸다. 평소 같았으면 옥상에 있거나 자신을 따라왔을 텐데 어째선지 보이지 않아서.

설마 아직 클랜장실로 갔나 싶었지만, 마력을 퍼뜨려보니 그것도 아닌 모양. 찾으려는 알파의 기척은 온데간데없고 나름대로 익숙한 두 기척을 느끼곤 눈살을 찌푸렸다.

'두 사람 더 상관없겠지?'

뇌리에 남은 환영의 나비의 목소리. 아… 그래. 올 거라고 했었다. 안내하느라 잠깐 잊어버리고 있었을 뿐. 그럼 지금 알파를 백소율 그 당돌한 꼬맹이가 꼬리 치고 있는 거라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뺏어보겠다……?

아, 그래. 할 테면 해보라지. 말을 번복할 생각은 없다. 없는데, 아무리 그래도 눈앞에서 눈꼴시리게 하는 꼴을 가만두고 볼 생각은 없다.

알파는 어디까지나 내 거니까.

아니지. 잘 생각해보니까 직접 보면 존나 개빡칠 것 같은데……?

씨발, 뺏는 게 자유면 안 뺏기는 것도 자유잖아?

홍유리는 성큼성큼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

1층에 도착했을 때, 홍유리는 백소율과 아넬라를 발견했지만, 알파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일단 내려왔으니까. 의외인 건 백소율도 알파를 찾고 있는 것처럼 두리번거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백소율이 와서 인사라도 하러 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 마침 저쪽도 자신을 발견했는지 눈 사이를 좁힌다. 그리고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오랜만이네요. 선생님."

홍유리는 대충 고개를 주억이며 마력을 퍼뜨렸으나, 그 어디에도 알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페리와 환계에 가 있기라도 한 걸까?

"홍유리 씨?"

끄덕인 홍유리가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말없이 층을 오르며 홍유리는 환영의 나비의 옆 방을 둘 마련해주었다.

"아, 역시 여명이 방이 더 좋네요. 아, 이건 자림씨한테 비밀이에요?"

찡긋이는 아넬라가 만족했다는 듯이 방으로 들어가자 둘만 남은 사제 간은 서로를 묘하게 바라보았다.

"……이제 같은 방 쓰자곤 안 하시네요."

"지랄 마.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럼 그때도 객실로 내주셨으면 된 거 아닌가요?"

"나도 싫었거든?"

질색이라는 듯한 표정의 홍유리를 보며 백소율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유감이네요. 저는 좋았는데."

"우리 소율이 못 본 사이에 지랄병이 많이 늘었네?"

홍유리의 눈가가 경련하자 백소율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정말이에요. 그땐 좋았어요. 그때는."

마주 보는 까만 눈동자에 서늘한 감정이 담겨 있어 홍유리는 잠깐 말을 잃었다.

"그래서 알파는 어디 있나요?"

가볍게 던진 물음에 홍유리는 코웃음 쳤다.

"고양이한테 생선 맡길까?"

너 같음 알려주겠냐는 말에 백소율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자신… 없으세요?"

"뭐?"

"기회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도발하는 말에 홍유리는 어이없다는 듯 실소했다.

"너 그걸 자기 입으로 말하는 거야? 자존심도 없어?"

구걸하는 거냐는 비꼬는 말에 백소율은 환하게 웃었다.

"네. 그런 거 필요 없거든요."

실내에서 외투를 벗기는커녕 감싸듯 끌어안는다. 마치 이것만 있으면 된다는 듯이. 그 모습을 홍유리는 이마를 찌푸린 채로 지켜보았다.

……아무래도 이 년, 맛이 간 것 같다고.

기어이 외투의 냄새를 맡는 꼴을 보고 홍유리는 몸을 돌렸다.

그나저나 여기 없으면 대체 알파는 어디 있길래? 연락이 안 된다는 게 새삼 답답하게 느껴져 핸드폰이라도 만들어 줘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

밖에서 기다리던 늑대는 드디어 이은하가 나오자 찌뿌둥한 몸을 풀듯이 기지개를 켰다. 육신에 제한받지 않게 된 이상 이럴 필요는 없지만, 그냥 습관 같은 거였다.

자신과 페리를 발견하고 반갑다는 듯이 팔을 휘젓는 밝은 모습에 늑대는 결과를 알면서도 물었다.

"어땠나?"

그 물음만 기다렸다는 듯 이은하가 보란 듯한 미소와 함께 손으로 브이를 그렸다.

자격증은 아직 발급되지 않았지만, 곧 발급될 거라며 묻지 않은 말까지 떠벌리며 좋아하고 있었다.

B클래스가 됐다는 게 자신도 믿기지 않는 모양. 따지고 보면 저번에 그녀가 팀원들과 쓰러뜨린 라이혼만 생각해봐도 B클래스 단독으로 쓰러뜨리기 힘든 몬스터였는데. 이제 그 때보다 훨씬 성장했으니, B클래스 헌터가 되지 못하는 게 이상한 거였다.

본인도 언뜻 느끼고 있을 텐데 실감나지 않는 모양. 물론 그뿐만 아니라 잿밥도 좋은 듯 했다.

"감봉이었는데… 감봉이었는데…!"

예전 지리산에서 멋대로 일로 6개월간 감봉됐었다는 게 마침 끝났다는 듯하다. 급여도 오를 테니 B등급 헌터가 된 이상 돈에 쪼들릴 일은 이제 어지간해서 없지 않을까.

그 기쁨에 벅찬 감정으로 페리를 끌어안으려다 꼬리에 얻어맞고, 머리를 감싸 쥐면서도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모양.

잠깐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헤실헤실 좋아라하며 다가오는데 어쩐지…… 옛날에 기르던 강아지의 모습이 그 위에 겹쳐 보였다.

기특하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에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 늑대는 이제 가자며 여명을 향해 턱짓했다.

***

다시 여명에 돌아왔을 때, 늑대와 이은하는 현계로 돌아왔다. 그러자마자 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홍유리가 뛰쳐나왔다.

"아 뭐야. 어디 갔나 했더니."

잠깐 불안한 듯 보이던 눈빛은 이은하를 보곤 퍽 안심한 눈치로 변했다. 어쩐지 그 눈빛을 받고 묘한 기분이 된 이은하는 그 이유를 몰라 잠깐 갸웃거렸지만, 자신을 건드는 손길에 끄덕였다.

얼른 말해보라고 재촉하는 손길. B클래스가 됐다고 보고하자 홍유리의 눈에 잠깐 이채가 스치더니 금세 사라졌다.

"당연한 걸 뭘 자랑까지 하고 있어? 하여간."

혀를 차며 다가온 홍유리가 딱밤을 때렸고, 이은하는 이마를 감싸 쥐며 뒷걸음질 치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악!"

그렇게 세게 때리지도 않았는데 왜 엄살떠느냐는 말에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아팠나? 의아해한 홍유리는 딱밤 때린 자기 손가락을 쳐다보았지만, 이유를 알지 못했다.

……마력도 안 썼는데 왜 지랄이지?

그렇게 생각하다 붉은 눈이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에, 정확히는 꼬리를 보는 것에 그제야 아차 싶어 뒷머리를 긁적였다.

변혁. 이은하가 성장한 것 이상으로 용종이 된 홍유리 자신 또한 성장한 것. 특히 육체적인 부분은 훨씬 더. 엄살이 아니라 그냥 딱밤이 세진 거였다.

만약 저게 엄살이면 헌터가 아니라 배우를 했어야지.

물론 아파하든 말든 신경 쓸 바는 아니다. 이제는 바닥을 구르기 시작한 이은하가 그러거나 말거나, 홍유리는 얼른 올라가자고 턱짓했다.

"자, 일단 올라가서…"

결국 이은하를 일으켜 세우려던 홍유리는 이내 혀를 찼다.

"눈치 빠른 년."

늑대를 돌아보았지만, 늑대는 고개를 저었다. 들려오는 발소리가 누구의 것인지는 알고 있었으니까.

비록 졸업식 날 우여곡절이 있었다지만, 직접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여기까지 왔다면 인사는 나눠야 할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 늑대는 가만히 앉아 기다렸고 계단 위에서 내려오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밝게 웃으며 종종걸음으로 내려온 백소율이 자신을 끌어안으려 하자 늑대는 잠깐 고민했지만, 순순히 안겨주기로 했다.

"오랜만이에요. 오자마자 만나려 했는데…"

"야. 왜 다짜고짜 껴안고 지랄이야? 안 내려놔?"

심기 불편한 홍유리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무시한 백소율이 말을 이어갔다.

"혹시 어디 갔다 오셨나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말에 늑대가 촉수를 뻗어 이은하를 가리키자 백소율은 퍽 안심한 얼굴로 안도했다.

"그랬구나…"

홍유리의 성화에 백소율이 자신을 내려놓자 늑대는 속으로 한숨 쉬었다. 짧게 혀 차는 소리가 들린 걸 애써 착각이라 치부하며.

자신을 내려놓은 백소율이 이은하를 반기며 인사를 나누었고, 늑대는 기분이 언짢아 보이는 홍유리를 말리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흔들었다.

둘의 기싸움이 이어지는 와중 페리는 어쩐지 좋다며 까르르 웃었고, 뒤따른 감마도 페리를 뒤따르며 즐겁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

돌아가는 길. 인상을 찌푸린 홍유리를 뒤따르며 늑대는 오늘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사이좋은 자매 같았던 홍유리와 백소율이 싸우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는 않아서. 그나마 몸싸움 같은 게 벌어지지 않은 게 어딘가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물론 홍유리가 정말로 이성 잃고 달려들 거라곤 생각하진 않지 만약이란 게 있으니 안심할 순 없으리라.

오히려, 조금 의문이었다.

백소율이 생각보다 더 순순히 물러났다는 게. 잠깐 끌어안고 말다툼을 했을 뿐이지 홍유리의 요구를 들어준 셈이니까.

아니, 그것만해도 이제까지의 백소율과는 다른 모습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저번에 보인 모습에 비하면 다소 소극적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늑대는 해가 진 하늘을 가만 올려다보았다. 그냥, 고원의 연락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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