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6화 〉 #132 종말을 향해 (2)
* * *
아래에서 위로 휘두르는 올려치기와 체중이 실린 내려치기. 일반적으로 유리한 건 후자이지만 정작 그렇게 막아낸 강훈은 발이 공중에 뜨고 말았다.
검과 대검이라는 패널티조차 무시할 만큼의 힘.
살아있지 않기에 체력의 한계가 없는 강훈과 물약의 영향으로 일시적이나마 끓어오르는 마력을 가진 강태호의 차이였다.
달리 말해 체력과 마력의 대결. 우습게도 여기까지와서 승부는 제법 대등해진 것처럼 보였다. 서로 하나 남은 목숨을 가지고 동등한 무기를 휘두르게 되었으니.
그러나, 외적인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한 마리 짐승처럼 달려드는 강태호의 속내에 들어찬 건 조급함이었다. 더 시간이 걸린다면 쓰러진 자신의 형이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압박. 반면에 강훈은 그 속내를 읽고 유유히 검격을 막아냈다.
대검은 커다랗고 투박하기에 공격이 단조로워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크다는 건 반대로 말하자면 공격을 막긴 더 쉽다는 뜻.
"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공격을 흘리고 빈 틈을 노리고 옆구리에 파고든 주먹에 속에 든 것을 게워냈다. 마력은 여전하지만 고양감에 사라졌던 고통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안 그래도 쉽지 않은데 기량에서마저 우위에 있는 건 강훈이다. 지치지도 않으니 사실상 강태호가 그의 방어를 뚫기엔 무리가 있다.
모르고 있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발버둥치는 수밖에 없는 거다. 아직, 아직 가능성은 있다. 필사적으로 휘두르는 검은 마력을 머금고 능히 그에 걸맞은 위력을 지니고 있다.
"!"
공격을 이어갈 때마다 틈을 노리고 부상이 커져간다.
대검을 방패로, 주먹과 발을 이용힐 체술을 무기로 삼아 반격하고 있다. 침착한 대응. 공격하고 있는 건 분명 자신인데도 압박당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윗턱과 아랫턱이 세차게 맞물려 어금니가 닳아 없어질 것처럼 빠득거린다.
'이젠 시간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불리해지는 건 자신이다.
벽과 같이 세워자 대검. 차가운 냉기. 그 뒤에 숨어있는 그를 보고서 강태호는 결심했다.
팔을 어깨 뒤로 있는 힘껏 당긴 순간, 투구 사이로 그의 눈빛이 변하는 게 보였다. 그래. 똑똑히 보고 있을 터. 이런 큰 예비 동작을 그가 놓칠 리 없으니까.
망설이지 않고 뻗은 주먹은 태산마저 무너뜨릴 기세를 가지고 터무니없는 힘으로 공기를 밀어냈다. 폭풍이 정면에서 다가오는 듯한 충격이었으나.
"……."
고작 그 정도로 그를 쓰러뜨릴 수 있을 리 없다. 오히려 그 굳건한 주먹은 팔꿈치까지 둘로 갈라지고야 말았다.
강훈이 한 거라고는 고작 검면을 비틀었을 뿐. 그런데 뼈를 가르고 거기까지 도달한 거다. 어지간한 검이었다면 산산조각 났을 힘이지만 붉은 대검은 여전히 굳건하다.
중지로부터 깊게 파고들어 뼈와 맞물린다. 아무리 헌터라고 해도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충격에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았다.
"끝이구나."
"……!"
승리를 확신하는 말.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
갑주의 주먹이 다가오는 것에 강태호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안면에 적중당한 주먹이 턱을 부수고 콧대를 누르고 눈알을 깊숙한 곳까지 쳐박히게 만들었다. 그 미소는 피범벅으로 물들었으나, 강태호는 엉망이 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아, 그러치. 끄치오."
안으로 파고들어 비어버린 눈구멍과 전부 부서져 제대로 발음조차 하지 못하게 된. 그러나
강태호는 부서진 턱으로, 이빨마저 부서진 잇몸으로나마 건틀릿을 물었다.
"……!"
대검은 팔꿈치까지 깊게 박혀 붙잡았고 건틀릿은 입으로 물어 붙잡았다. 그의 두 손이 봉쇄된 지금, 강태호는 모든 힘을 쥐어짜내 검을 휘둘렀다.
붉은 검에 일렁이는 마력이 전류처럼 흐른다. 시각화된 마력이 얼마만한 힘을 담고 있는지를 알린다. 강훈은 발을 들어 강태호를 차내려 했지만 이미 그 발등이 밟혀 있어 실소하고 말았다.
머리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타입은 아니었을 텐데… 이렇게 될 거라고 판을 짜고 움직인 걸까.
눈에 담긴 격정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비할 데 없는 힘으로 검이 휘둘러진 순간, 강훈은 투구 안에서 보일 리 없는, 들릴 리 없는 말을 속삭였다.
"……."
마침내 투구의 이음매에 부딪친 검은 가볍게 경추를 부수고 절단했으며.
"……!"
그대로 잘려나간 목이 떨어져 데구루루 굴러 벽의 한 편에 쳐박혔다. 목 잃은 몸은 아직 굳건히 서 있으나 그마저도 뻗은 주먹을 이마로 밀어내자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강태호는 피가 흥건한 입가를 닦아내렸다.
"절대 조흔 고스론 못 갈 거요."
지옥이란 게 있다면 그 죗값을 치러야하리라. 팔에 깊숙이 박힌 대검을 뽑아낸 강태호는 두 개의 붉은 검을 아공간에 던져놓고는 죽어가는 강태준을 들어올려 어깨 위에 둘렀다.
……돌아갈 시간이 됐다. 이제 더는 여기에 미련이 없으니까. 던전의 입구를 향해 걸으며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아주 잠깐 뒤돌아보았다.
"……그래도 이름은 남겠지."
인류는 앞으로도 그의 변절을 깨닫지 못한 채, 실망이나 절망하는 대신 평화가 이어지리라. 그리고 미래영겁 그의 이름은 영웅으로서 남을 터…
그건 장송곡과 장례 대신에 아버지였던 이에게 바칠 수 있는 마지막 예의. 강태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
강태호가 강태준을 업고 던전 밖으로 나왔을 땐 이미 바깥 상황도 정리돼 있었다. 마침 던전으로 진입하려던 홍유리를 비롯한 몇몇이 급하게 그를 부축했다.
걸어오는 길에 다소 재생했지만 여전히 처참한 몰골이었다.
"뭔… 이게 송장이지 사람 몰골이에요?"
눈썹을 꿈틀거리는 홍유리가 푸념하듯 말하자 강태호는 실소했다. 그야 그렇게 보여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였다.
"암튼 난 됐으니까 형님부터 어떻게 해 봐라. 포션 남은 거 없냐?"
"어련히 알아서 할까. 안 죽으니 걱정마요."
"거, 사람이 죽다 살아왔더니…"
강태호가 투덜거렸지만 홍유리는 가볍게 대꾸했다.
"누가 뭐래?"
입맛을 다시는 강태호는 양 옆으로 헌터들에게 업힌 채로 부축받았고 강태준에 이르러서는 남은 포션으로 샤워라도 하듯 들이부어야만 했다.
사실, 그에 비하자면 강태호의 상태는 별 거 아니었다.
복부를 깊게 뚫리고 하반신과 상반신이 끊어져있다. 원래 죽었어야 할 그의 생명을 간신히 잇고 있는 건 질기디 질긴 마력과 스킬이었다.
"……진짜 안 죽는 거 맞냐?"
"그렇게 할 거니까 그냥 닥쳐요."
신경질적으로 말한 홍유리는 뒤를 가리켰고 강태호의 안색이 조금이나마 편해졌다. 거기에 있는 건 민 머리의 두 형제. 부산의 대표 클랜인 광명회의 로드. 이회광, 이회명. 일류 헌터임과 동시에 이 한국 땅에서 가장 높은 등급의 회복 스킬을 가지고 있는 형제이기도 했다.
***
부상을 입은 헌터와 군인들은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됐다. 인근 도시의 병원이 발 디딜 틈 없이 붐빌 정도로 상황은 좋지 않았으나 이 정도로 막은 게 기적이다.
"…후환도 없을 테니까."
네버랜드의 보스와 몬스터를 쓰러뜨렸으니 앞으로 거창한 공략대를 꾸릴 필요도 없다.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오히려 잘 됐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무도 그 사실을 입밖에 꺼내진 않겠지만.
이제 알파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아마 기뻐하리라. 그도 그럴 것이…
"……뀨?"
갸웃거리는 페리. 전처럼 요정용이 아니라 푸른 머릿결의 어린 소녀처럼 변한 새로이 탈피한 모습이었다.
"팀장님. 설마…"
등 뒤에 돋아난 나비처럼 아름다운 날개가 번쩍이는 모습에 짐작한 것처럼 크게 뜬 눈으로 물어오자 홍유리는 대충 끄덕였다.
"와…!"
외마디 감탄과 함께 다가온 이은하는 페리를 껴안으려다 홍유리의 뒤에 숨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원래 낯을 가리긴 했지만 자신에게까지 저러진 않았는데…… 모습이 변하면서 경계심이 강해진 걸까? 아니면 자신이 누군지 까먹은 건 아니겠지?
침울해하는 이은하에게 홍유리는 넌지시 떠보듯 물었다.
"그, 언제 돌아오는지 알아?"
"어… 아뇨."
여전히 일그러진 하늘이나 이은하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회색으로 갈라진 하늘. 그러나 고작 그것뿐만이 아니다. 점점 아물어가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갈라져 있었으니까. 오히려 처음 봤던 그 때보다 더 암울하게 보일 정도였다.
마치 또 한 번 하늘을 가르기라도 했다는 듯이.
"……모르겠어요."
알파였다면 이미 돌아왔으리라. 그러지 않았다는 건 알파가 아니라는 증거.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자신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 그 답을 알고 있는 이는 있으리라.
"가봐야겠네."
여왕을 만나러.
***
별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우주가 술렁이고 차원과 세계가 움직인다. 지친 몸으로나마 여왕은 아직 쉴 때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지금은 안 된다.
이곳의 일은 끝마쳐졌지만 아직 돌아오지 않은 이가 있었으니까. 돌아오지 않은 것만이라면 그나마 안심할 수 있겠지만 하필이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 여왕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별은 비명을 지른다.
정말 가능하다면 말리지 않았을 거다. 설령 그로 인해 늑대가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그러나… 불가능하다.
종말이란, 세계에 끝을 고하는 존재. 창조의 순환을 위해 낡은 세계에 파멸을 안겨다주는 진리의 이면.
그렇기에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지금의 그가 초월의 영역을 넘어선 힘을 가진 의식의 덩어리라 한들 세계의 힘으로 그 포식자를 쓰러뜨릴 순 없다.
말려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설령 이전의 힘을 간직하고 있었더라도 무리이리라. 그런데 지금 와서야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
그는 종말을 물어뜯으리라. 그리고 티끌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겠지. 그 물거품처럼 덧없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려오는 듯하다.
하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리라.
이 세계에서 딱 한 명만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 싸움에서 유일하게 살아돌아온 그녀라면 어쩌면.
***
"……."
쓰러진 갑주. 그 앞에 쪼그려 앉은 소녀는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았다.
멸망한 세계의 숫자만큼이나 보아왔던 죽음이기에 새삼스럽지는 않다. 새삼스레 감상을 품을 리는 없다는 거다.
어차피 죽은 이였기에 되살릴 수 있기도 하지만… 이제는 쉬게 해주고 싶었다.
마지막 세계니까. 어차피 시간은 충분하니까. 설령 촉박하다 하더라도 늑대조차 없는 이곳에서 누가 자신을 막을 수 있을까? 엘릭서를 제조하는 데 보름. 나머지는 시스템을 부활시키면 된다.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다.
"이젠 편하게 쉬어요."
그렇기에, 소녀는 단 한 번도 부르지 않았던 이름으로 그를 불렀다.
"수리공 할아버지."
안쪽의 시체를 불태운 소녀는 그대로 떠나갔다. 갑주를 묻을 필요는 없을 테니까. 망령이 잠든 곳. 아직 열려있는 미궁의 문 틈새로 시뻘건 눈이 번뜩이더니 마귀의 모습이 드러난다.
네버랜드 붕괴 사태로 인해 던전 바깥으로 나간 몬스터는 많았지만 전부는 아니다. 당연히 던전을 터전으로 여기고 나가려하지 않는 별종도 있다.
그 중 하나가 1구획 2구역의 보스. 안개와 지하 속에 숨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괴물은 쓰러진 갑주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먹잇감을 낚아채듯 데려가 미로의 깊은 지하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망령은 영원히 잠들게 됐다.
아무도 찾아오지 못할 깊디 깊은 지하에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