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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08화 (308/407)

〈 308화 〉 #141 절반

* * *

차원 저편으로 보내고 홀로 남은 늑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페리의 의식은 악의 속에 갇혀 데려가지고 말았고 종말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만상의 주인이 종말을 막고 있는 한 우선해야하는 건 당연히 페리. 고려할 가치조차 없다.

늑대는 첫 발을 내딛었다.

그러자 한 걸음에 풍경이 변했다.

고작 그것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의 자신은 초월의 영역에 발을 디뎠노라고.

세계 속에 자아가 합쳐지고 분리되는 과정에서 내면에 자리하고 있던 시스템마저 완전히 사라졌기에 더는 자신의 스테이터스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어차피 그런 영역은 진작에 넘어서 있다.

킁킁­

코로 냄새를 맡자 처음 맡아보는 온갖 냄새가 섞여들었다. 부서진 별. 수소와 암흑 물질. 약간의 불꽃과 마력. 후각으로 느껴진 모든 것은 뇌 속에서 처리돼 하나도 남김 없이 정보로 변해간다.

"……찾았다."

그 모든 것을 덮을 만큼 역겹고 불쾌한 냄새를 느끼고 늑대는 눈을 빛냈다.

전력으로 달리며 늑대는 지금의 자신에게 적응해갔다.

재를 거두는 자와는 다르다. 세계였던 때는 어렴풋하게 밖에 느껴지지 않았기에 다르다. 초월에 이르러 늑대는 자신의 몸을 한껏 부풀렸다.

비록 성운처럼 커다래질 수는 없었지만, 행성만큼 거대해진 늑대는 지금의 자신을 이해했다.

누군가 지금 늑대를 보았다면 그건 잔상이리라.

빛조차 따라오지 못하는 속도는 우주의 머나먼 곳을 비출 때처럼 어디까지나 늑대의 과거를 보여줄 뿐이다.

그건 늑대 자신 또한 마찬가지.

더 이상, 빛을 받아들이는 시각은 무의미하다.

더 완벽하고 결점없는 힘만이 올바른 이정표가 되리라.

그리하여, 늑대의 눈은 그 자신이 바란 대로 한번 더 덧씌워졌다. 받아들이는 건 색이 아닌 존재 그 자체. 시각의 매개체로써 빛이 아닌 마력을 사용하며 상식의 영역을 문자 그대로 초월하고 말았다.

'되찾는다.'

오직 그 일념 하나로 악의를 뒤쫓기를 머지 않아 마침내 그것을 포착했다. 자신이 인지한 순간 마찬가지로 그것 또한 자신을 인지했다.

귓속을 파고드는 비명. 온갖 시끄러운 소리가 어지럽게 만들려하지만 늑대는 그 전부를 무시했다.

이미 눈에 비치는 거라고는 오로지 하나. 악의가 아닌 그 안에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악의는 속도를 더해 도망쳤다. 물리적인 속도로는 도저히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닫고 차원의 틈새를 열어젖히는 등 방법을 궁리했지만, 이미 넓게 퍼진 혼무는 공간 자체를 지배하고 먹어치우며 서로의 거리를 줄여갔다.

따라잡는 건 결국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

커다란 늑대가 따라오자 악의는 이를 악물고 도망쳤다.

저것이 가진 힘은 생전의 자신의 것. 이런 사념이 되기 전에 정말 오래도록 모아왔던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그 모든 정수를 빼앗겨 새로이 빚어낸 육신. 그게 지금의 늑대임을 알 수 있었다.

실체화하기는 했어도 어렴풋한 자신의 형상 따위와는 달리 제대로 된 육신을 갖춘 그. 이대로라면 결국 도망칠 수 없다고 확신했다.

혼돈의 장막. 진리가 있는 곳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저것에 붙들리고 말리라. 시간을 끌면 자신의 안에 깃든 근원의 일부를 쫓아 종말이 오게 될 테고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만다.

역시 아까 거기서 성공했어야 했는데. 고작 어린 용만을 가까스로 가져온 셈이다.

하지만 이거라면 충분히 거래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을 보내주는 조건으로 이 어린 용의 정수라면 충분히 거래할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토록 아끼고 있던 게 뻔히 보일 정도였으니까.

악의는 늑대에게 말을 걸려 했고, 그러기도 전에 물어뜯기고야 말았다.

'이성이 없…!'

곧 그런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본능이나 이성. 그런 것 따위 늑대는 진작에 극복해 있었다. 그저 복잡한 계산 같은 걸 생각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단순하게 자신을 죽이면 되찾을 수 있다. 붉은 눈에 담긴 생각은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어느샌가 퍼져있는 무언가. 형태 없이 존재만 있는 그것. 알고 있다. 늑대가 다다른 등급 외의 이름 모를 힘. 먹어치우고 먹어 치운 것을 자신의 힘으로 만드는 능력.

자신의 불꽃마저 먹어치웠던 경계 바깥의 힘에 대해 악의는 근원의 힘을 끄집어냈다. 영역 바깥의 힘은 마찬가지로 그 영역에 다다른 힘이 아니고서야 대처할 수 없다.

근원. 비록 일부에 불과하지만 그것의 힘은 능히 혼무에 대항할 수 있었다.

'그래도 불리해.'

늑대와 싸웠던 적 있는 흑린의 사념은 분명 그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저것이 무서운 점은 먹어치우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는 것.

하지만 그러기 전에 쓰러뜨리면 된다.

붉은 눈이 번뜩이며 자신을 물어뜯으려 하는 것에 악의는 내재된 모든 힘을 끄집어내어 혼무에 대항하고 밀어냈다.

저 힘 또한 영역 바깥에 있는 것임에는 틀림 없지만 빼앗는다는 본질을 가지고 있었기에 먹어치우는 쪽의 힘은 사실 그리 대단치 않다.

혼무를 밀어낸 근원은 단숨에 늑대를 압박해가고 있었다.

시간이 끌리지 않는다면 이대로 늑대를 쓰러뜨릴 수 있다. 그리고 그 힘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건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생전의 힘을. 아니, 그 이상의 힘을 되찾을 수 있다.

다만, 악의는 한 가지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늑대로부터 무언가가 타오르기 시작하더니 근원의 힘을 기어코 불태우고야 말았다. 당황한 악의는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으나 이미 붉은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 너! 그건! 그건……!]

감정을 먹어치우는 검은 도깨비 불. 그 힘이 늑대에게 온전히 깃들어있었다.

뒤늦게 실감했다.

자신을 먹어치웠던 건 바로 그. 자신의 정수로써 새로이 육신을 빚었다면 당연하게도 본래 자신의 힘이었던 흑린마저 그에게 깃들어있음이 당연하다.

분명 영원과 혼무마저 웃돌았던 검은 불꽃이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내놔! 내놔! 그건, 그건 내…!]

다가오는 불꽃 안에서 악의는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흑린이었던 사념은 분명한 비명을 지르며,

[사, 살려…]

죽으면서도 하지 않았던 목숨을 구걸했다.

***

어둡고 까맣다.

오들오들 떨면서 주변을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다.

붉은 머리 용 사람도 까만 늑대도 하얀 사슴도 전부 다. 오로지 혼자 남아 있었다.

마지막에 떠오르는 건 엄청 까만 색의 무언가를 막기 위해 나섰던 것. 따라서 여긴 분명 그 안이리라.

"뀨…"

싫어. 여기는 싫어. 진짜로 싫어.

질척이고 끈적끈적하고 시끄럽고… 무섭다.

먹어치워도 먹어치워도 끝이 없다. 결국 배가 가득 차서 더는 아무것도 못 먹게 되면 먹히는 건 내가 될 거야.

어떻게 해야 돼?

어떻게 하면 나갈 수 있어? 어떻게 하면 도망칠 수 있어?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엉엉 목놓아 울면서 검은 것들을 먹었다. 제발 배가 부르지 말아 달라고 빌었지만 점점 불러오고 있었다.

먹는 게 힘들어질 정도가 되자 검은 것들이 기세를 더해 덮쳐오기 시작했다. 파도처럼 몰려드는 그것들. 열심히 도망쳤지만 사방에서 조여드는 것에 어떻게도 할 수 없게 돼 버렸다.

[끼기긱. 끼기긱. 끼기긱]

[우리랑 함께…]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말이 아닌 감정으로 보다 진득하게 느껴진다. 누군가 제발 도와달라고 소리쳤지만 여긴 어느 누구 하나 들어주는 사람은 없다. 어느새 눈물을 흩뿌리고 있었다. 엉엉 울면서 도망치다가 어떤 빛을 보았다.

반짝이는, 그런데 정말로 희미하고 옅어서 당장에라도 꺼져도 이상할 게 없는 빛. 그게 손을 뻗어오는 것만 같았다.

잡아야만 한다고 강박처럼 생각했다.

엉엉 울면서 달린 페리는 발목을 잡는 검고 진득한 것들을 억지로 떼어내고 어깨를 쥐는 손을 떨쳐내면서 억지로 달렸다.

도중에 몇 번인가 넘어졌지만 겨우겨우 그 빛을 잡았을 때 어렴풋한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다. 은색 빛 속에서 누군가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는 순간, 어느샌가 자신이 밖에 나와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포근한 검은 털. 크기는 한참이나 달랐지만 종종 올라왔던 머리 위. 늘 그랬듯 구하러 와준 거였다. 그래. 분명 여기라면 안심하고 있을 수 있을 거야.

하얀 빛은, 페리의 의식은 늑대의 안에서 조용히 잠을 청했다.

이 소동이 가라앉을 때까지.

***

"……절반."

페리는 되찾았다.

하지만 아직 절반에 불과하다. 악의의 안에서 페리를 되찾는 동안 악의는 도망치고 말았으니까. 근원의 힘을 먹어치우긴 했지만 가만히 둘 수는 없다.

악의가 도망친 곳을 바라보며 늑대는 으르렁거렸다.

그와 함께 검은 불꽃은 더욱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

[오산이었어]

그리고 착각이었다. 지금의 늑대는 생전의 자신마저 넘어서 있는 괴물. 같은 초월의 영역이라 생각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던 거다.

초월의 영역. 그 살짝 너머. 지금의 늑대는 자신이 알 수 없는 곳에 자리해 있었다.

[괴물…]

그 붉은 눈을 떠올린 순간, 오싹함이 타고 올라왔다.

확실한 건 가지고 있던 근원마저 빼앗긴 지금 혼돈의 장막을 넘어설 순 없다는 것. 진리에 다다를 수 없다면 거기까지 도달해봤자 의미는 없다.

애초에 그러기도 전에 물어뜯겨지고 말리라.

따라서, 악의는 생각을 바꾸었다.

빼앗긴 근원의 힘을 되찾는 게 먼저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늑대에게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멸망한 차원 따위가 아니라 늑대가 아끼는 것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만 한다.

[이번엔 당했지만…]

붉은 머리 용인. 하얀 사슴. 인간 여자. 늑대와 인연이 있는 그런 것들의 정수를 모아서 근원을 돌려받아야 한다. 그가 자신을 건드릴 수 없게 해야만 한다. 아니, 그런 정도론 끝나지 않는다.

그 정신에 파고 들어 늑대의 육신을 차지하고 말리라. 아까같은 실수는 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착각하지 않는다.

결국 마지막에 웃는 건 분명 자신이 되리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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