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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28화 (328/407)

〈 328화 〉 #153 구세마랑회

* * *

돌아온 홍유리는 가장 먼저 늑대를 추궁했다.

왜 해안가로 몬스터를 불러들였는지. 왜 그만한 몬스터가 나타났는데도 움직이지 않았는지를.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는 말에 늑대는 숨기지 않았다.

숨길 일도 아니었으니까. 미리 말하지 않았던 건 무조건 성공할 거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괜한 기대를 안겨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왕님을 되살린다고?"

그 말을 들은 홍유리는 눈을 끔뻑였다. 듣고도 믿기 어려운 말이었으니까. 물론, 알파가 죽은 사람도 되살리는 힘이 있단 건 알고 있다.

분명 인류의 지혜나 이해를 한참이나 벗어난 존재.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육신 한 점 남지 않은 여왕을 되살리는 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그래."

반 박자 늦은 대답이었지만 그렇다고 답한다.

왜 그럴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과 앞으로도 그럴 필요가 있다는 말에 홍유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냐하면, 불안했으니까.

알파는 믿고 있지만 돌아온 이후 다소 변했단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혹시라도 이상한 생각이라도 하는 건 아닐지 걱정했다.

그렇게 됐을 때 누가 알파를 막을 수 있을까.

하지만 사실은 역시 그런 게 아니었단 걸 알게 되자 괜스레 알파를 때리고 말았다.

"아 씨, 난 또…"

"그럴 리 없지 않나."

뻣뻣한 검은 털뭉치에 안겨 온기를 건네받자 뒤늦게 안심할 수 있었다.

역시나, 괜한 생각이었구나.

퍽 안심한 홍유리는 뒤에서 안긴 그대로 몸을 뉘어 기대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유는 달랐지만 알파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 정답이었으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에게 홍유리는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

그 날, 모든 인류가 직접 눈으로 보았고 절망했다.

검게 물든 하늘. 태양이 가려져 싸늘하게 식어가는 온도. 그 이상으로 느껴지는 불길함.

사실, 그 모습을 온전히 두 눈으로 본 사람은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나 거대했고 멀리 있었으니까.

그 때문에 유야무야 덮으려던 시도도 있었지만 결국 태양을 가리고 드리워졌던 그림자가 괴물이었단 사실은 여러 폭로와 물증에 뒤늦게 밝혀졌을 뿐.

인류의 뇌리에 종말이란 단어를 아로새겼던 괴물은 어느 순간 갑작스레 사라졌다.

그 이후, 혼란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유도 모른 채 갑작스레 나타났다 사라진 괴물이 다시 온다면 모든 게 끝. 상식적으로 그런 괴물에게 대항할 방법 따위 있을 리 없다.

마법? 헌터? 핵무기? 질병과 역병도 죽이지 못했는데 저런 존재에게 통할 리 없다. 돈을 가진 이들은 지구 밖, 우주로 나가길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좀 더 아는 이들은 달랐다.

종말이 왜 사라졌는지 아는 극소수의 이들. 위성사진의 선명한 화질에는 종말보다 더욱 거대한 늑대의 모습이 찍혀있었으니까.

그들이 알 수 있는 거라고는 거대한 마랑이 종말을 물어뜯어 어딘가로 사라졌다는 것. 분명, 상상도 할 수 없는 싸움이 어딘가에서 이어지고 있으리라.

보고도 믿을 수 없었기에 공표하진 않았다. 알려야 할 인물들에게만 은밀히 보내졌을 뿐. 다만, 영원한 비밀이 없듯 그 사실은 암암리에 퍼져나갔다.

누군가는 더한 괴물이 있다는 사실에 절망했지만 누군가는 희망을 가졌다. 일부 사람들은 희망을 가졌고, 마랑이 세계가 구원(?世)해주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바야흐로, 마랑을 섬기는 이들(??會)이 나타난 순간이었다.

***

"그것뿐이면 말도 안 해."

종교에 관심은 없다. 막말로 남이 누굴 믿던 알 바는 아니지 않은가. 불교건 천주교건 간에. 뭘 숭배하는지는 자유이리라. 설령 그게 알파일지라도.

"근데 변질됐어."

단순히 그것뿐이라면 사이비 종교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었을 거다. 다만, 구세마랑회는 선을 넘어버렸다.

처음에는 알파의 존재를 알리려는 정도였다.

종말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알파의 본신에 대한 경외감. 그런 감정들이 섞이고 만 것이리라. 이런 마랑이 있다고 숭배하라고 소리질렀다. 어차피 공표하지 않은 이상 아무리 떠들어봤자 결국 루머에 그칠 터. 알아서 사그라질 터였다.

"그게 오산이었던 거야."

왜냐하면, 마랑의 소문은 아는 이들 사이에선 널리 퍼져 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환수라는 이름을 빌려 실제로 그 존재를 드러내기도 했었으니까. 그 소문을 알고 있는 이들을 더해 구세마랑회는 조금씩 세를 불려갔다.

문제는 그들 대부분이 헌터라는 점이었다. 힘을 가진 집단은 그 자체로 위협.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던가. 충분한 세력이 모이게 된 구세마랑회는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했다.

마랑의 존재를 알리고 숭배하던 이들이, 마랑을 부르겠다며 설치기 시작했다는 거다. 문제는 사공의 수만큼 방법도 제각각. 조용히 기도하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제멋대로 날뛰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심한 경우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일까지도.

"……어떻게 됐을 것 같아?"

"탄압했겠지."

홍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회 시스템에 혼란을 줄 게 분명한 조직이다. 각국이 놔둘 리 없었고 탄압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상당수가 헌터라고 해도 각국의 협력 아래 구세마랑회의 세력은 빠르게 줄어갔다. 하지만 격렬한 저항 끝에 결국 수뇌부는 잡지 못한 채 놓치고 말았다.

그게 지난 10개월간 있었던 일.

비록 구세마랑회를 뿌리뽑지는 못했지만 상당수가 탄압됐기에 문제는 없을터였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점차 잊혀가리라. 언젠가는 그 남은 뿌리마저 일망타진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문제는 정말로 마랑이 나타났다는 점.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뉴스에까지 송출되고 있는데 알파가 모습을 드러냈다면 그들이 모를 리 없으니까. 사이비 종교가 또 한번 크게 세력을 불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까 가능하면 모습 드러내지 마."

그나마 티나지 않게 강아지인 채로 있는다면 괜찮으리라. 검은 털을 가진 강아지야 셀 수도 없이 많으니까.

홍유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미 늦어버렸지만.

***

깊은 새벽. 도시를 분주하게 달리며 눈에 띄지 않는 은밀한 기척이 여명의 클랜. 그 지척까지 도착해 바닥을 쓸었다.

로브를 쓰고 있는 괴한은 바닥을 쓸어보고는 무언가에 확신하듯 손을 떨었다.

두려움일까 아니면 다른 감정에서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곳에 오래 있을 순 없다는 거였다. 뭐니뭐니해도 이곳은 여명의 건물이었으니까. 건물을 지키고 있는 헌터가 있을 테니 은신 스킬만 믿고 있을 수도 없다. 만약 그게 팀장급이라면 언제 들키더라도 이상할 게 없을 터.

"……."

잠깐 건물을 올려다보던 괴한은 아무 말 없이 어둠 속에 녹아들어 사라져갔다.

***

아침이 돼 알파와 함께 클랜으로 온 홍유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야, 올 거라곤 생각했다. 그래도 별로 반갑진 않은 얼굴이었으니까.

"오랜만이에요. 선생님."

인사를 받는둥 마는둥 혀 차는 소리부터 낸 홍유리는 곁눈질로 그녀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안 그래도 길던 머리는 더 자라났고… 후계자가 됐다고 하던가.

전에 봤을 때보다 한층 더 성숙해진 그 모습이 조금은 부럽게 느껴졌다. 이미 자신은 육체적으로 성장할 수 없었으니까.

"어젠 잘 들어가셨어요?"

자신을 보며, 아니 자신에게 안긴 알파를 보며 하는 말. 사뭇 다른 인삿말에는 '어제도 만났다'라는 뜻이 함축돼 있었기에 홍유리는 보이지 않게 알파를 꼬집었다.

왜 말하지 않았냐는 투덜거림과 같은 행동을 무시한 늑대는 그렇다고 간단히 답하며 반대로 물었다.

"네. 기왕 온 김에 근처에서 좀 머무르려고요. 아마 며칠동안은 계속 보게 될 거예요."

"네가 여기서 할 게 있긴 있어? 헌터도 아니면서."

"이래저래요. …궁금하세요?"

날카로운 말을 물 흐르듯 넘긴 백소율은 자연스레 늑대를 받아들었다. 넘겨줄 리 없지만 '검성님이 부르시는 것 같던데요. 어제 있었던 일 때문 아닐까요?'란 말로 가볍게 홍유리를 격침시켰다.

마지막 반항인지 굳이 바닥에 늑대를 내려놓은 홍유리가 계단을 오르면서 뒤돌아 "금방 돌아올 테니까 기다려!"란 말을 남기고 사라지자 망설임없이 그를 들어올렸다.

"귀여우시긴."

못 본 사이에 아주 홍유리 머리 꼭대기에 올라와있는 듯하다. 클랜원도 아닌데 굳이 빨리 와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이를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이제 둘이네요. 페리는 안 왔나요?"

어제 한참동안 요정들과 노는 듯했으니 자게 내버려두기로 했다고 알려주자 끄덕거린 그녀가 깊게 고개를 묻고 숨을 들이키자 괜스레 낯간지러움을 느꼈다.

"그런가요."

분명 전에는 아무렇지 않았을 행동들인데. 떨어져있는 시간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감정에 더 영향을 받게 된 게 문제였을까. 어쩌면 양쪽 다일지도 모른다.

"혹시 선생님이 파견나가거나 집 비우진 않으시나요?"

"……?"

"여기 있는 동안 하루쯤은 괜찮잖아요? 저도 사람인데. 많이 양보했는데. 거의 일 년만인데."

어쩐지 모를 달뜬 열기가 느껴지자 늑대는 눈을 끔뻑였다.

"하루쯤은 저한테 와주셔도 될 텐데."

"……."

"어떠세요?"

그렇게 묻는 말에 늑대는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이제 출근한 모양인지 계단 아래에서 이은하가 입을 떡 벌리며 어버버거리고 있었으니까.

"아, 오랜만이에요. 은하 언니."

그런 그녀에게 백소율은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듯 태연하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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