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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36화 (336/407)

〈 336화 〉 #156 접촉 (2)

* * *

'쓸어버린다라.'

확실히 구세마랑회를 이대로 내버려둬도 좋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그랬다면 탕아의 잔당을 쓸어버리는 데도 협력하지 않았으리라.

도로시가 하는 말도 이해가 간다. 마찬가지로 놈들이 하는 짓거리를 관망할 생각은 없었으니까.하지만 홍유리는 눈 사이를 좁혔다.

과연 알고는 있을까. 알파가 돌아왔고 구세마랑회를 뒤쫓고 있다는 사실을. 어차피 그것들은 내버려두면 조만간 사라질 거라는 건 의심할 여지도 없다.

따라서, 그것보다는 차라리 앞으로 알파가 불러올 해양 몬스터들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굳이 필요성에 우선 순위를 따지자면 후자쪽이리라.

자신이 가세하건 아니건 알파가 나선 이상 결과는 똑같을 테니까.

"뭘 고민해? 설마 안 하겠다는 건 아니지?"

진심이냐고 묻는 도로시는 한껏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설마 정말로 내버려 둘 셈이냐며 황당해하는 기색까지 묻어나 있었다.

잠깐 사실을 말해줄까 고민하던 홍유리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홍유리!"

크게 자신의 이름을 외치자 삐딱하게 고개를 꺾고 대답했다.

"귀머거리 아니거든?"

"할 거야 말 거야? 아니면 설마… 또 도망칠 거야?"

홍유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새삼 그런 것에 연연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맘에 걸리는 건 있다.

어째서 알파는 자신에게 전부 털어놓지 않았느냐하는. 그 날 아침 돌아온 알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자신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리란 건 분명하지만.

"뭘 물어? 해야지."

아무래도 기다리기만 하는 건 성미에 맞지 않는다.

그 확답을 들었을 때, 도로시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벌써 며칠씩이나 지났지만 마랑회가 백소율에게 접촉해오는 일은 없었다. 어쩌면 이 상황 자체를 의심스럽게 여기거나 혹은 노골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러하리라.

저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갑자기 모든 인원의 연락이 두절됐는데 백소율만이 살아있는 셈이니까. 하물며 온건파, 마랑회의 움직임을 막으려했던 그녀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당연하게도 함정을 의심할 수밖에 없으리라.

'상관없어.'

생각보다 더 신중하지만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접촉을 시도할 거다.설령 최악의 가정으로 백소율이 배신했다는 계산에 이르렀다고 한들 마찬가지.

접촉이건 척살이건 정말로 상관없는 얘기다.

중요한 건 딱 한번이라도 좋으니 놈들의 꼬리를 붙잡는 거였으니까.

"원래라면 내일쯤 돌아갈 생각이었는데……아무래도 힘들겠죠?"

"그래. 가게 두진 않을 거다."

그랬다가는 분명 놈들이 미끼를 물 테니까. 환영의 나비와 함께라면 모르되 그녀 혼자서 마랑회의 전부를 상대할 수 있다곤 생각지 않는다.

따라서, 보내지 않는다.

"……그런가요."

내포된 뜻을 읽고 난 이후엔 조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변했다.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고 어쩐지 슬퍼하는 것 같기도 했다.

"스승님께 연락은."

"이미 했다."

"……."

한참 동안 말이 없던 백소율은 이내 끄덕였다. 마치 전신에 힘이 빠진 것처럼 힘없이 침대 위에 몸을 뉘였고 늑대 또한 마찬가지로 그 옆에 몸을 웅크렸다.

시계 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하다. 보통이라면 금세 잠들었겠지만 이미 잠을 잘 수 없는 몸인 늑대는 머릿속으로 생각의 가지를 뻗어나가고 있었다.

아주 잠깐. 아주 잠깐만 본신으로 돌아가 정보를 가져오는 건 어떨까. 굳이 알아보거나 기다릴 것도 없이 이쪽을 쳐다보기만 해도 모두 알 수 있을 거다.

전지전능. 신역을 넘어섰다는 건 그런거니까.

애당초 마랑회는 자신을 숭배하는 조직. 책임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고작 그 정도라면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본신으로 잠깐 돌아가겠다고 맘 먹은 순간,

"만약에."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등을 돌린 채로 중얼거리듯 묻고 있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그건 오래도록 고민한 말이었으리라. 그리고 분명 알고도 묻는 말일 테고.

"죽였을 테지."

그렇기에 고민 없이 답했다.

어쩌면 살려놨을 거란 대답을 바랐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거짓말이란 걸 서로가 잘 알고 있다. 실수로라도 변절자를 살려둔 적은 단 한번도 없단 것 또한.그 어떤 사정이 있었든 간에.

등 돌린 그녀가 강하게 팔을 움켜쥐는 게 보였다.

"……죄송해요. 저 때문이예요."

"제가 괜한 짓만 하지 않았더라도 이럴 일은 없었을 텐데. 죽은 사람들도……"

이미 몇 번이나 들었던 말. 숨이 막힌단 것처럼 목으로 가져가는 손. 하지만 정작 그 손이야말로 목을 죄고 있었다.죄책감이란 무게에 짓눌리는 건 날이 갈수록 심해져가는 듯하다.

그리하여, 늑대는 뒤에서부터 그녀를 끌어안았다.

조금 덩치를 키웠기에 커다란 침대가 단번에 좁아지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품 속에 안은 그녀가 여느 때보다 더 가녀리게 느껴지고 있었다.

목을 조이는 손을 떼어놓고 감정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렸다.머뭇거리던 손가락이 자신을 붙잡는다. 온기를 가져가며 그 손에 힘이 빠져가는 걸 느낀 늑대는 조용히 말했다.

"내가 선택한 거다."

"……."

"설령 네가 정말로 배신했더라도 널 죽일 리는 없었을 거다."

다른 사람이라면 죽였을 거다. 그 말이 진심이었던 것처럼 이 또한 진실이었다.

"절대로."

단언하는 목소리에 등 돌린 그녀의 눈동자가 자신을 올려다보았다. 슬픔에 젖어 당장에라도 떨어질 것만 같았지만그러기 전에 눈물을 훔쳐주었다.

***

"야. 영감탱이는?"

"그 말버릇… 진짜 고치는 게 좋을 거야. 언제까지 천방지축처럼 날뛸 셈이야?"

찌릿한 시선이 닿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중지를 들어올린 홍유리가 코웃음쳤다.

"너 정말!"

"됐고 일이나 하지?"

도끼처럼 잘라먹는 말. 황당하다는 듯 눈만 끔뻑이던 도로시는 이내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이 왈가닥이랑 계속 대화해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

"이쪽이야."

미리 준비했단 것처럼 이어진 길. 그러나 하필이면 그 길이 맨홀 아래로 이어져있자 노골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진심? 여길 들어가자고?"

"어쩔 수 없잖아! 아니면 땅이라도 부술 거야?"

짜증 서린 얼굴이 도로시 또한 본의가 아니란 걸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홍유리의 기억 속 오랜 옛날에 비슷한 기억이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어차피, 어차피 남아있을 리 없다.알파가 움직인 이상 아직 마랑회가 남아있을 리 없지 않은가. 설령 이딴 땅 밑 하수구라고 할지라도.

"그만, 그만!"

"징징거리지 마. 할 수밖에 없잖아!"

"그게 아니라!"

도로시가 뚜껑을 잡은 순간 홍유리의 안색이 조금씩 창백해져가기 시작했다.그리고 기어이 문을 연 순간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속을 게워내야만 했다.

"이 씻팔!"

***

이은하가 퇴원할 수 있었던 건 그로부터 이틀이 더 지난 날의 저녁이었다.아직 옆구리가 조금 쑤시는 기분이 없지않아 있긴 했지만, 이미 뼈가 붙었다는 놀라운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안정을 취한다면 굳이 입원해있을 필요가 없단 말에 퇴원을 결정한 그녀가 가장 먼저 들은 말은.

"언니, 무슨 도마뱀이야?"

도마뱀이냐는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주일도 되지 않아 나았다는 뜻이니까. 스스로도 이상하게 느껴져 옷 위로 더듬어보았지만 별로 아무렇지도 않다.

"이 정도면 재생 스킬도 생긴 거 같은데…'

늘 상처를 끌어안는 헌터로서는 바라마지 않는 스킬이지만 발현율은 극도로 낮다고 하는… 하지만 지난 날동안 굴렀던 걸 생각하면 재생을 얻었다 해도 별로 이상하진 않을 것 같다.어쩌면 대마력을 얻은 게 관련돼 있을지도 모르고.

"재생? 와. 언니 진짜 도마뱀 다 됐구나."

"이게 꼭 말을 해도."

볼을 꼬집어 당기자 아파라하는 동생을 보곤 좋게좋게 넘어가자고 생각한 이은하는 휴대폰의 캘린더를 확인했다.회복 스킬의 치료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일반 병원에서 이렇게 빠르게 나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자신도 몰랐는데 클랜이라고 알 턱이 있으랴.

곧 전화해서 사정을 알린 이은하는 몇 번인가 끄덕거리면서 일정을 조정했다.

"출근 언제래?"

"수요일 아님 목요일."

경과를 지켜보고 다시 변할 수도 있단 말에 끄덕거린 동생이 이어 물었다.

"이제 어떡할 거야? 계속 할 건 아니잖아."

계속 할 건 아니다라… 이은하는 곰곰이 생각했다.

물론 헌터를 계속할 거라 생각한 적은 없다. 정말 뛰어나거나 운이 좋은 게 아니라면 절반 이상이 1, 2년차에 재기불능이 되거나 목숨을 잃는 직업. 보수는 높은 편이고 인류의 주적인 몬스터와 맞선다는 점에서 명예롭다는 인식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난 50년간의 일.

헌터라는 직종은 사장되고 있다. 이제 몬스터는 없으니까. 먼 미래에는 마법사와 헌터가 있었다는 사실마저 흐릿해질지 모른다. 그나마 남아있는바닷속 몬스터를 전부 죽이고 나면 싫어도 은퇴해야 하리라.

"아직은 아니지만…"

알파가 돌아온 이상 그 날은 분명 멀지 않다. 앞으로의 장래도 생각해두어야 하리라.고등학교 시절 곧바로 여명에 스카우트된 이은하로서는 걱정해본 적 없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진로나 취업이라니…… 눈앞이 컴컴해서 막막하게 느껴진다.

"……그냥 백수로 살까?"

"돈은?"

"팀장님 정도는 아니라도 평생 쓸 정도는 될 걸?"

갸웃거린 이은하는 자신의 재산이 어느정도였는가를 떠올려보았다. 펑펑 쓰면서 놀고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건물주 행세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헌터로 활동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A급 헌터가 된 이후에는 벌어들이는 돈의 단위가 달라졌으니까.

그 네버랜드 공략대에서조차 A급 이상의 헌터가 서른이 되지 않았을 정도다. 아마 한국 전체를 뒤져보더라도 세 자리수도 되지 않으리라.

뛰어난 헌터는 그 자체로 클랜을 빛내는 법. 존재 자체가 광고판인데다가 치안을 유지하는 셈. 당연하다면 당연한 보수였다.

"팀장님이면 그 작고 빨간 사람?"

작고 빨간 사람. 본인 앞에서 말했다면 좋은 꼴은 못봤으리라. 키득거린 이은하가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 사람은 뭐 얼마나 있길래?"

"글쎄…"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댄 이은하는 동생의 말에 잠깐 떠올려보았다.

자신이 A급 헌터로 활동하게 된 건 1년 남짓한 기간. 그런데도 건물을 통째로 살 만큼 돈이 모였다.

그럼 홍유리는 어떨까. 일개 헌터가 아니라 팀장급. 그 이전에는 스퀘어의 후계자 후보였으며 이후 여명 최고의 마법사라 불리게 된 사람이자 광휘의 뒤를 잇는 추적자. 그것도 1팀과 2팀의 부팀장을 키워낸…

'말도 안 되네.'

심지어 나이를 생각해보면 그걸 십수년은 족히 해왔을 거다. 분명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재산을 축적했으리라.

이제야 팀원들이 곳곳에 저택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 말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게 완전 우스갯소리는 아니었던 거다. 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으리라.

"별로 깊게 파고들지 않는 게 나을지도."

이은하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그리고 마침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호랑이도 부르면 온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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