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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59화 (359/407)

〈 359화 〉 #171 뒷일 (2)

* * *

남들이 잠들어있을 시간에 늑대는 바다 위를 전전했다. 달리는 속도에 맞춰 몬스터를 박멸해가고 있었지만, 결국엔 바다. 지난 50년동안 완전히 방치된 대해를 하루아침에 정리하기란 불가능하다. 결국 제법 시간이 소요될 거라는 뜻. 그래서 인류를 선도하려했다.

'이제 와선 힘들게 됐지만.'

마녀와 이런저런 일로 굳이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바닷속 몬스터를 쓰러뜨리려 나서진 않으리라. 박애주의자는 아니지만 죽어갈 목숨을 생각하면 차라리 이쪽이 마음 편할지도 모른다.

즉, 결국에는 직접 할 수밖에 없다.

'사실 죽이는 것만이라면 그나마 편할 테지만.'

그동안 망설인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마구잡이로 죽이기만 해선 안 된다. 이미 지난 50년간 몬스터의 일부는 생태계 먹이사슬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단 말도 있었으니까.

괜히 자신이 나섰다가 어찌어찌 자리잡은 생태계를 망치는 꼴이 되고 말 텐데.이런저런 일들에 골머리가 썩는 듯하다.

그래도 당초의 목적. 여왕을 부활시키기 전에 모든 정리를 끝내놓겠다는 생각만은 변함 없었기에 늑대는 발을 멈추지 않았다.

영원을 사용하기 힘든 것처럼 혼무 또한 사용하기 어려웠지만 그 절반의 힘이라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그말인 즉, 공허의 힘이었다.

터무니없는 영역에 감지를 펼치고 영량을 펼쳐 그림자를 뻗어 혼무로 먹어치우는 것. 단조로운 방식이었지만 그 자체로 완벽한 황금의 패턴. 아니, 너무나도 동떨어진 격의 차이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서로 다른 종류의 힘과 모습조차 다른 무수한 몬스터가 스러지고 죽어가고 있다.결국 한참이나 휩쓸고 동이 터 가기 시작할 때 늑대는 아까의 대화를 떠올렸다.

***

미리 들었던 것처럼 집으로 방문한 환영의 나비는 한참이나 자신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자신을 대신해 홍유리가 그녀를 반겼지만 담담히 끄덕일 뿐이었다.

"그래. 오랜만이군."

동요없는 그 모습. 여전히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적고 더없이 마법사다웠다.또한, 자신이 느낀 것과는 달리.

"……조금 변한 것 같군."

늑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태까지 종종 사용했던 작은 강아지의 모습은 여전한데 그렇게 단정지어 말할 수 있다는 게 조금 신기하게 느껴져서. 또한, 그게 사실이기도 했으니까.

"전과 같은 느낌은 아니니까."

늑대는 가만 끄덕거렸다. 본신이 아니니 그녀의 눈이 어렴풋이 조금이나마 자신을 꿰뚫어보았을지도 모른다. 어렴풋한 그녀의 감상과는 달리 늑대는 작게 감탄했다. 여전히 그 역량과 기량이 떨어지기는커녕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었으니까. 전보다 가일층 강해진 지금의 그녀는 분명 스퀘어 마스터 중에서도 이견 없는 정점에 위치해 있으리라.

만약 마녀로 인해 벌어진 소동에 여명과 그녀가 함께 있었더라면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제자는 어디 있단 거지?"

"방금 마력을 거둬서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

무뚝뚝한 의문에 늑대는 방 한구석을 가리켰다. 잠깐 눈 사이를 좁히던 환영의 나비는 신은 구두를 벗어놓았다.

거리낄 것 없다는 듯이 방 안으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은 역시나 여전했다.

이미 강해질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련을 놓지 않는 모습은 마치 불가의 수행자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 당당하고 결연한 모습에 혀를 내두른 홍유리는 뭐라도 타오겠다며 주방으로 향했다.

…….

대화는 백소율이 잠들 때까지 한참이나 이어졌다. 원하지 않아도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전부 다 들을 수 있었던 늑대는 그녀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이미 밤은 깊었지만, 자신에게 할 얘기가 있을 테니까.

"……쯧. 오래 걸렸군."

말과는 달리 표정은 좋아보인다. 짧게 혀를 찬 그녀가 의자를 빼고 안았을 때 늑대 또한 맞은편에 앉았다.

"직접 처리할 수 있겠나."

가장 먼저 구태여 본론을 꺼냈다. 처리한다는 건 백소율의 현 상태. 주기적으로 마력을 방출할 게 아니라면 누군가 그녀의 곁에서 마력을 받아주어야만 한다.

다만… 불가능하단 걸 알고서 꺼낸 말이었다. 침묵을 긍정이 아닌 자존심에서 발로한 부정으로 받아들인 늑대는 끄덕거렸다.

실력을 갈고닦은 환영의 나비조차도 마정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동급의 스킬인 구현화는 가지고 있지만, 마녀의 동력원이었던 마정의 마력을 해소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차라리 한 두번이라면 모를까, 계속 받아주다가는 그녀의 몸에도 무리가 생길 터. 누구보다도 직접 대면한 환영의 나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으리라.

'항상 외딴곳에 있을수도 없겠지.'

마정의 마력을 방출하려면 제법 넓은 곳이 필요할 테니까.

"없앨 순 없나?"

"아까우니까."

"……."

스킬을 없앤다는 발상 자체도 드문 것이었지만 자신이기에 굳이 물어본 것이리라.

"비록 지금은 애먹고 있어도 언젠가는 분명 다룰 수 있게 될 거다."

그 사실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마녀처럼 폭주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다룰 수 있게 되리라. 그리고 그 날이 악몽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날이 될 터.자신이 구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극복하는 날이.

"……정말 의심하지 않는군."

늑대는 끄덕거렸다. 더 오가는 말 없이 한참이 지났을 때 환영의 나비는 천천히 끄덕였다.

"어차피 가르칠 건 다 가르쳤어. 더 곁에 두고 있을 필요도 없을 만큼."

남은 건 스스로 체득하는 것뿐. 그리고 언젠가는 구현화를 깨달을 수 있을 거라고 환영의 나비는 그렇게 단정지어 말했다.다만, 어쩐지 아쉬워보이는 모습에 늑대는 덧붙여 물었다.

"혹시 적적한가?"

"그럴 리가."

코웃음치는 즉답. 그럼에도… 그녀는 곧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사다운 합리로 자신의 곁에 있는 게 정답이란 걸 알고 있고 납득했음에도.

"……그럼, 잘 부탁한다."

깊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의자를 집어넣는다. 상태를 확인하기만 했으면 됐다고 말한 환영의 나비는 배웅은 필요없다고 말하며 묵묵히 밖으로 멀어져갔다.

또각거리는 구둣굽소리가 완전히 들리지 않을 때까지 늑대와 홍유리는 그녀의 뒤를 가만 바라보았다.

"하여간 저 분은 변하질 않네."

"글쎄."

늑대는 그 말에 공감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았다고 여겼지만 어쩌면 조금은 물러졌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냉혈의 마법사 환영의 나비가 아닌 그 안에 있는 아멜리아 모레스트일 터.

변하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분명 변한 것이다.

"뭐, 아무튼 사정은 알겠는데 혹시라도 집에서 개짓거리하면 가만 안 둬. 알아들어?"

날카로운 눈초리가 경고하자 늑대는 떨떠름하게 끄덕였다. 설마하니 페리도 있는 집안에서 홍유리가 생각하는 일을 할 리는 없을 테니까.……그렇게 생각했다.

***

돌아온 늑대는 이른 아침에 깨어있는 백소율을 보곤 촉수를 흔들었다. 이유가 있다곤 하지만 이 집에서 그녀가 자고 일어나는 모습을 볼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컵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과 어깨에 꼬리를 두르고 콧망울을 터뜨리며 잠들어있는 감마.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한편 묘하게도 느껴진다.

"……오셨어요?"

아침을 여는 새의 지저귐같은, 그런데도 듣기 좋은 고요한 목소리가 자신을 반기는 것에 늑대는 끄덕였다. 일찍 잠든만큼 일찍 일어난 것이리라.

"몸은 괜찮나?"

"네.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요."

밤중에는 노곤했다며 웃어보이는 모습에 늑대는 위아래로 그녀를 훑어보았다.

백소율을 맡기로 한 이상, 트러블에 휘말리게 할 생각은 없다. 가능한 한 외출을 삼가토록 하겠지만 사실 그다지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저 모습을 숨기기만 하면 될 뿐. 후계자씩이나 되는 그녀의 마법을 꿰뚫어 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그렇게 보시니까 부끄럽네요."

다분한 의도를 담아 말하는 것에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곤 얼추 계산을 마쳤다. 이런저런 변수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마정의 마력이 차올라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건 하루 이틀 정도가 소요된다고. 사실 그 정도라면 항상 붙어있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스승님은 가셨나요?"

"네가 잠든 사이에."

뭔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턱 아래에 손가락을 댄 백소율이 핸드폰을 꺼내들자 늑대는 실소했다. 하기야, 요즘 시대에 조금 떨어져있는 게 대수랴.

다만,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몇 번인가 기다려도 받을 수 없다는 말에 아쉽게 핸드폰을 접었다. 십중팔구 이미 공항에서 떠나고 있는 것이리라.

정말 바람같이 왔다가 바람같이 떠나간다. 제자의 얼굴을 보았으니 이제 됐다는 것처럼.

"남은 마법은 직접 체득하라고 말하더군."

"그래야겠죠."

담담한 말투는 스승을 떠올리게 만든다. 자신이 마법을 익힐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자신감에서 발로한 것이리라.

"그래. 언제까지 마력에 계속 휘둘리기 싫다면."

"……?"

잠깐 갸웃거린 그녀의 입가가 미세하게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있는가 없는가했던 미소는 금세 사라졌다. 마치 무언가 딴 생각을 했단 것처럼. 그 이유를 묻자 아무것도 아니라며 얼버무리기는 했지만.

그 날로부터 백소율이 머무르게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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