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6화 〉 #177 본보기 (2)
* * *
외진 곳에서도 더욱 외진 곳. 깊숙하디 깊숙한 을씨년스러운 곳에 펼쳐진 그지없는 커다란 천막. 누군가 보았다멵잘도 이런 외딴곳을 찾았다하리라.
쿵 쿵 쿵 쾅!
부딪치는 소리. 더 정확히는 무언가가 철창에 머리를 박는 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들려왔다.
"또 시작이냐."
시끄러운 소리에도 여전히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투덜거린 남자는 귀찮음을 무릅쓰고 몸을 일으켰다.
넓게 치긴 했지만 그래봤자 천막. 얼마 가지 않아서 안쪽의 상황이 훤히 들어왔다. 두꺼운 천으로 가려진 우리 너머는 볼 수 없게 가려져있었고 그 소리는 안에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아까보다 쾅쾅거리는 소리가 커지자 눈살을 찌푸린 사내는 조금 천을 걷어보았다.
아니나다를까 엉망이 된 이마에서 주륵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얼마나 박아댔는지 제정신도 아닌 모양. 깊은 한숨을 쉰 남자는 다시 철창에 머리를 박으려는 녀석의 목줄기를 단숨에 휘어잡았다.
컥컥 목이 졸리면서도 앞으로 체중을 싣는 모습이 가엾기 그지 없었기에 남자는 '아까워하며' 혀를 찼다.
"쯔쯔."
엉망이 된 머리에 조심스레 약을 발라주곤 고양잇과 특유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었다. 그러니까… 영물이라고 하던가? 환수와 영물을 가르는 기준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했었다.
"다치면 제값을 못 받는다니까."
상처를 치료해준 남자는 이어서 품 속에서 주사기를 꺼냈다. 바늘을 감싼 덮개를 뽑고 혈관이 있을 곳에 안에 든 내용물을 전부 주사했다.
조금씩 주사기가 비워짐에 따라 영물은 안정을 되찾아갔다. 사실, 안정이라기보단 약기운에 해롱거리는 거였지만. 곧 바닥에 몸을 뉘인 영물이 새근새근 잠들자 남자는 다시 주사기를 집어넣었다.
"수면제나 박아놓을 것이지…"
철창에 머리를 박기 전부터 약에 취해있는 상태였기에 흐리멍덩한 눈은 자신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했지만 남자는 그 사실이 불만이었다.
그냥 재워놓기만 하면 될 일을 굳이 약에 절여놓을 필요가 있단 말인가? 언뜻 눈치로나마 무슨 실험이라도 해보는 듯했지만 남자가 보기엔 말짱도로묵이었다.
어차피 이것들은 이다지도 잡기 쉬우니까. 굳이 실험까지도 필요없다. 저항이라고 하는 저항도 변변치 않은 수준인데다가 먼저 달려들지도 않아서 선공을 취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능력은 있지만 천성이 순해서 싸우려들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도망치는 게 우선이었으니 다칠 위협도 없다. 즉, 몬스터와 사투를 벌이던 시절과 비교하면 환수를 사냥하는 게 훨씬 더 간단하다는 거다.
그러자 문득 어떤 옛날 이야기가 떠올랐다.
스텔라 바다소.경계심없는 북극의 동물. 인간을 두려워하긴커녕 친밀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그 습성 때문에 처음 발견되고 30년도 되지 않아 전부 멸종했다고 하던가? 남자가 보기에 지금이 바로 그러했다.
영물과 환수는 얼마 머지않아 멸종의 길을 걸으리라.
가죽이나 소재뿐만이 아니라 그 특이한 외모로 애완동물로도 각광받고 있는 모양이었으니까. 개체 수가 많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기껏해야 2,30년이리라.
"뭐, 상관없지만."
어느새 자리로 돌아온 남자는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떼지 않고서 말했다. 영물이니 환수니하는 것들이 멸종하건 말건 자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안타까움 정도는 느낄지 몰라도 그 땐 이미 떼부자가 돼 있을 텐데.
애초부터 지구상엔 없었던 생물. 오히려 몬스터 쪽이 더 익숙하다. 돈만 벌 수 있으면 장땡이라고 여긴 남자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교대시간까지 게임을 이어나갔다. 아니, 이어나가려고 했다. 갑작스레 걷힌 천막 너머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지만 않았더라면.
눈이 부셔 손으로 가린 남자의 눈에 어렴풋이 보인 실루엣은, 여성의 것이었다.
"드디어 찾았다."
***
새삼스럽지만, A클래스 헌터는 정말 극소수에 불과하며 초일류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 신체능력뿐만 아니라 모든 방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들은 이미 하나의 병기나 다름없다. 이른바 천외천. 별 밖의 별이라는 뜻. 하나의클랜을 이끄는 자리에 앉은 이들조차 대개는 B클래스. 대표 클랜을 제외하면 그 수는 터무니없이 적다.
자신은 그런 B클래스 헌터. 심지어 그 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던 유망주. 이곳의 경비를 혼자 맡은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남자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자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유를 가지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제 스물이나 되었을까 싶은 앳된 얼굴의 소녀. 자신이 고작 저런 어린애한테 질 리가 없다고.
그래서 봐야만 했던 것을 보지 못했다.
"어떻게 찾아온 거야? 아니, 너 누구야?"
황당해하는 남자의 물음에 소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보이지 않지만…… 느껴진다. 마력을 집중한 눗이 안목 스킬에 더불어 세세한 것 하나하나를 전부 관찰해 머릿속에 정보로 입력하고 있었으니까. 분명 영물과 환수는 아직 이곳에 있다.
"마랑회…… 아니, 아니겠구나."
도리도리 고개를 저어 생각을 부정했다. 팀장님도 아닌 자신이 흔적을 쫓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마랑회라면 고작 자신이 꼬리를 잡진 못했으리라.무엇보다 그가 마랑회를 남겨둘 실수를 할 리 없잖은가. 얼마전에 그런 흉흉한 일이 있었는데.
매캐한 공기에 눈살을 찌푸리는 듯하던 소녀는 곧 눈살을 찌푸렸다.
"전부 풀어주면 아직 넘어가드릴 수도 있어요."
"……넘어가준다? 아, 그쪽?"
남자는 비릿하게 웃었다. 종종 이런 부류들이 있었으니까. 법과 도덕을 준수한답시고 돈벌이를 방해하는 정의감과 사명감넘치는 헌터들이. 이 소녀 또한 마찬가지의 부류이리라.
갑자기 맥이 빠지는 기분에 남자는 훠이훠이 손을 흔들었다.
"그냥 가라. 피곤하니까."
놓아줘도 상관없다. 어차피 여기 있었던 사건을 떠들어봤자 입막음할 수단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어린애라고는 해도 헌터일 터. 환수사냥은 법망을 피할 수 있었지만 이건 얘기가 다르다. 헌터가 헌터를 죽이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들키지 않는다면 모르되 만약에라도 변절자로 몰리기라도 한다면 그들 여명이 찾아오리라. 그랬다가는 전부 끝. 얼마간의 돈을 쥐어주고서라도 입막음하는 쪽이 편하다.그리하여 남자는 수중에 가진 5000달러 상당의 돈을 꺼내놓았으나,
"전부 풀어달라고 말했는데요."
여전히 소녀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흥정인가? 아니, 그럴 리 없다. 그냥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남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이지 가장 귀찮은 부류다. 게다가 이런 곳까지 설마 혼자오진 않았으리라. 마력 감지에는 느껴지지 않지만 제법 떨어진 곳에 동료가 있는 게 당연하겠지. 그러니까 이리도 기세등등한 것이리라.
"휴……"
회유할 수 없다면 결국 방법은 딱 한가지. 얼른 제압하고 그녀의 동료가 있는 곳을 불게 만드는 방법뿐이다. 다행히도 그럴 수 있는 약은 많았기에 남자는 가볍게 어깨를 풀었다.
죽이진 않는다. 대신, 3초. 3초 안에 제압하고 5분 안에 불게 만들리라. 남은 일은 동료들이 알아서 처리해줄테니 자신은 연락만 하면 된다.
생각을 정리한 남자는 쏜살같이 뛰어나갔고 지면이 일어났다. 갑작스레 눈앞을 가득 채운 땅이 자신을 때린 순간, 몇박자 뒤늦게 자신이 바닥에 엎어져있음을 깨달았다.
"……?!"
대체 무슨 조화란 말인가. 혹시 영물에게 주사할 약물을 자신이 들이키기라도 했나? 이럴 리가 없는데하며 일어나려던 남자는 마치 천년의 거암이 짓누르는 듯한 압박을 느꼈다.
조금도 일어설 수가 없다. 마치 부처님 손바닥 안의 돌원숭이가 돼버린 듯하다. 이럴 리가 없다고 아연실색하던 남자는 가까스로 고개만을 들어올렸고 볼 수 있었다.
사회를 모르는 정의감에 불타는 초짜 헌터.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을만큼 어린 그녀의 가슴에 달린 검과 방패가 교차하는. 해가 떠오르는 듯한 뱃지의 문양을.
왜 미리부터 보지 않았을까 뒤늦은 후회가 찾아왔다.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애초부터 이 소녀 혼자서라도 충분하다고 판단해 움직인 걸 테니까.
천년의 거암같은 중압의 정체는 단순한 마력. 그걸 깨달은 순간 남자는 두 눈을 부릅떴다.
'여……명! 새벽의 여명!'
천외천이라 불리우는 A클래스 헌터를 열이 넘게 보유한 명실상부한 최고의 클랜. 검성과 검공이 이끄는 은빛의 새벽. 이 소녀는 바로 그 여명의 일원이라는 뜻.
그렇다면 하다못해 알리기라도 해야한다. 그래야만, 다른 곳에서라도 도망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남자는 가까스로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의 버튼을 눌렀다.
통화가 연결되면 황급히 소리치자. 여명이 왔으니 짐 싸서 도망치라고. 그래야만 훗날이라도 자신의 몫으로 배당받을 돈이 남게 될 테니.
그렇게 통화가 연결된 순간, 남자는 소리치지 못했다.여명 소녀의 방해가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들려온건 비명과 목숨 구걸이었으니까.
"사, 살려……!"
마지막까지 이어지지 못한 비명과 핸드폰이 떨어지는 소리. 헌터로 활동했기에 알 수 있는 비릿한 피냄새가 전파를 타고서 이곳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헌터 특유의 뛰어난 오감, 청각이 제멋대로 수화기 너머의 광경을 그려간다. 아비규환이라고 불러도 모자랄 그 광경에 남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모든 소리가 멎었을 땐 저벅저벅 끈적끈적한 웅덩이 위를 걷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의 주인. 마치 자신이 그 현장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남자는 꼴깍 침을 삼키고야 말았다.
[기다려라]
분명한 언어. 그런데도 도무지 사람의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곧, 남자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 짙은 으르렁거림이 알게 모르게 들려오고 있어서였다.
수화기 너머의 상대는…… 괴물.
[살아남을 거라곤 기대하지 마라]
사형선고보다도 더욱 사형선고같은 말에 더는 숨을 멈추고야 말았다. 마지막으로 콰작 하고서 저편에서 핸드폰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을 때, 창백해진 안색으로 남자는 울고불고 소리쳤다.
제발 살려달라고. 하지만…… 자신을 짓눌렀던 소녀마저도 심각한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알파……"
언젠가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을 읊조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