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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65화 (365/407)

〈 365화 〉 #177 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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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별안간 갑작스레 찾아온 알파. 그것 자체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기에 별다른 감흥은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사뭇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평소의 침착함을 가장하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난 감정에 미미하게나마 마력이 요동치고 있다. 누군가 심기를 건드렸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잠깐 시치미를 떼볼까했지만 그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하는 법. 괜한 객기는 명을 단축시킬 뿐이다. 알파가 종말을 막기 위해 달렸던 이유는 인류만을 위해서가 아니란 건 잘 알고 있다.

최소한, 기만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을 털어놓고 알고있는 전부를 말하는 것. 그것만이 화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리라.

"알고 있었겠지."

그 물음에 역시,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주어도 서두도 없었지만 강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국가의 정점. 아니, 고원이 사라진 지금 모든 클랜의 정점에 위치한 여명의 수장인 자신이 모를 리 없었으니까.암암리에 환수나 영물의 부산물이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을.

"변명이지만 쉽지 않더군."

처음 그 사실을 깨달았던 건 알파가 사라지고 세 달이 지나서였다. 여태까지 알려진 몬스터가 아닌 처음 보는 종의 가죽을 보게 된 것은. 이전이라면 알려지지 않은 몬스터라 생각했겠지만 더는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는 지금 그 확률은 희박하다.

굳이 조사할 것도 없었다. 감정 스킬이 그것을 환수의 것이라 말하고 있었으니까.

"……막아보았다."

처음에는 막아보려 시도했다. 실제로 그 과정에서 몇몇 밀수꾼을 잡기까지 했다. 하지만 갑작스레 제정된 법이었던 만큼 허점이 많은 제도였다.

예를 들어, 환수의 구분은 어떻게 짓는가. 혹은 먼저 위협받았다고 말하고서 자신은 반격했을 뿐이라고 변명하는 것.

환수의 영역 자체를 금지로 하기에는 기존의 숲이나 산의 권리를 전부 포기할 수도 없었으니까. 차라리 국유지라면 형편이 나았지만 사유지라면 주인과 결탁하는 경우도 있었다.

"계속해 구멍을 찾아 빠져나가더군. 그나마 한국만의 문제라면 모를까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한 손으로 막긴 어려웠다."

"……보상은 충분히 했을 텐데."

강태준은 힘빠진 웃음을 뱉었다.

"결국 다 잊기 마련이지. 보상 정도가 아니라 산의 소유권을 사더라도 마찬가지였을거다."

밀렵을 막는다고 전부 근절할 수 없듯이.

"물론, 클랜 차원에서 대놓고 법을 어기지는 않았다. 그에 따라 대표 클랜 정도를 제외하면 많은 수의 클랜이 해체됐지. 2/3… 어쩌면 그 이상."

"……."

"클랜이 해체됐다는 건 헌터들이 무소속이 됐다는 거다. 분명 인류는 네게 헤아릴 수 없는 빚을 졌지. 재앙을 없애주지 않았다면, 종말을 막아주지 않았다면 환수 사냥은커녕 전부 죽고 말았을 테니."

늑대는 계속 얘기해보라며 잠자코 들어주었다.

"몬스터는 인류를 위협하는 동시에 자원이기도 했다. 50년간 이어진 커다란 시장이 고작 1년도 되지 않는 사이에 붕괴한 거다. 바로 너로 인해서."

"……."

"구원임에는 틀림없지만…… 수많은 헌터들이 실직하는 계기가 된 셈이지. B클래스 이상의 헌터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이들은 밥줄이 끊긴 거다."

"고작 그게 변명인가?"

리드미컬하게 튕기는 손가락을 빤히 쳐다보았다.

"환수들에게 눈을 돌리게 된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전에 깨닫지 못한 내 실책이 컸지만… 이미 겉잡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더군."

늑대는 질끈 눈을 감았다. 그 말인즉, 여명조차 어쩔 수 없을 만큼 세를 불렸다는 뜻.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환수 사냥. 도대체 얼마나 많은 환수들이 탐욕에 숨을 거뒀을까 생각하니 이가 악물어졌다.

"……억제하고는 있었다. 특히 태호가. 아마도 이곳이 가장 덜한 정도일 거다."

그 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숨이 멎는 듯한 기분에 일순간이나마 마력을 제어하지 못한 늑대는 이내 숨을 가다듬으며 심호흡했다.

"……."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성의 끈을 놓아버릴 것 같아서. 자신이 새로운 재앙이 될 것만 같아서였다.

상황은 이해했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어버린 헌터들이 눈길을 돌린 곳이 환수와 영물이었다는 것. 일상으로 돌아가 일을 하는 것보다 그쪽이 편하다고 느낀 것이리라.

그렇기에, 자신의 경고를 어겼다.

그래서 환수와 영물이 죽어나갔고…… 백록이 다쳤다.

모두 다 자신이 안일했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제멋대로 믿었기 때문이다. 더는 위협이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말아서였다.

"왜… 알리지 않았지?"

힘빠진 혹은 실망한 듯한 목소리에 강태준은 눈꺼풀을 닫았다. 그럼에도 말없이 재촉하는 시선은 느껴졌기에 입을 떼고 말았다.

"……나도 인간이니까."

즉, 두려웠다는 것. 그건 늑대에게 있어 가장 실망스러운 답이었다. 결국엔 자신을 믿지 못했단 것과 다름없으니까. 그에 실망한 늑대가 말하는 것보다 조금 더 빠르게 강태준은 황급히 말을 이었다.여기서부터는 절대 실수해선 안 된다고 다짐하면서.

"꼬리는 잡았고 몸통까지 옭아 네게 바칠 생각이었다."

그 과정에서 환수와 영물을 구출하고 적어도 이 땅 위에서만큼은 환수 사냥을 없애버리겠다. 그리고 그 뒤에 자신에게 모든 것을 알린다…… 그런 말이었다.

그것이 거짓을 아님 증명하듯, 강태준은 여러장의 서류를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서로가 서로를 뒷받침하는 증거이자 여태까지 해왔던 일의 경과였다.

"그래야만 네 화를 조금이라도 가라앉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알리지 않은 게 아니라 알릴 생각이었으나 시기를 잡고 있었다는 말.

"……."

늑대는 조용히 서류를 읽어내렸다. 숨소리조차 이어지지 않을 만큼 깊게 내려앉은 침묵. 적어도 서류에 적힌 복잡한 숫자와 암호문들은 강태준의 말이 거짓은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환수 사냥을 하는 이들은 범법자일지는 몰라도 변절자는 아니다. 이제까지의 적들처럼 베어 넘길 순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설령 법을 어기는 결과가 되더라도 실행하려고 했다. 이미 결재된 서류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지연된 것. 마녀와의 소동이나 해양 몬스터의 일이 아니었다면 진작 결행됐으리라.앞으로 길어야 하루 이틀안에 소탕 작전이 시작됐으리라.하연이 전두지휘하고 강태호와 함께 팔을 잃어 은퇴했던 구진하. 타 클랜의 장인 은자림까지 포함돼있지만 일부 인원은 철두철미하게 배제되어 있다. 그 어디에도 이름이 올려져있지 않다.

……홍유리와 이은하.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아 늑대는 실소했다.

분명 그 둘이었다면 사전에 자신에게 모든 걸 토해놓았으리라.……그리고 그 쪽이 더 옳다. 그랬다면 하루라도 빨리 자신이 움직였을 테니까. 한 마리라도 더 희생을 줄일 수 있었을 테니까.

"부탁한다. 우리에게 맡기고 기다려다오. 네가 움직이면…… 일이 더 어려워지니까."

제법 오래전의 어느 날처럼 강태준은 무거운 고개를 꺾어 숙였다. 미동도 없는 그 움직임이 얼마나 진심인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아까 '인간이니까'라는 대답은 분명 자신을 믿지 못했던 게 아니라 같은 인간이니 감쌀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리라.

"……."

잠깐 생각을 정리한 늑대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고저없는 담담한 목소리로.

"여태 많이 양보했다고 생각한다."

"……."

"이번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

강태준은 눈을 감은 그대로 질끈 입술을 씹었다.

"고작 탐욕으로 환수들이 희생돼야 한다는 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

그래. 고작 탐욕이다.

헌터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고는 하지만 헌터는 헌터. 초인이나 마찬가지인 그들이라면 어딜 가더라도 쌍수를 반길 인력이리라. 원한다면 새로운 일을 구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으리라.

그러지 않았던 건 더 쉬운 벌이가 있었기 때문에. 늑대로서는 그렇게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고작 탐욕 때문에 그 많은 환수들이 목숨을 잃고야 말았다고 말이다.

그런데, 10개월. 놀고 있던 건 아니라지만 이제 나타난 주제에 자신이 대체 뭐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분노한 환수들의 노여움을 어떻게 가라앉힐 수 있단 말인가.

무고한 이들이 죽을 거라고? 부딪쳐봤자 소용없으니 참고 있으라고? 반대로 환수들이 죽어간 이유는 고작 탐욕에 불과했는데 그들을 막으라고?

"."

그것만큼은, 불가능하다.

인류를 위해 환수들을 멈춘다는 것…… 그건 환수들에 대한 배신이나 다름없는 행위. 무엇보다, 그럴 마음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환수들에 가세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인류와 환수의 전면전만큼은 막아야만 한다는 사실이 늑대의 에캐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랬다가는 여왕의 자식들이 이 세상에서 모조리 사라지고 말 테니까.

"환수들은 내가 막겠다."

"……."

"너흰 아무것도 하지마라."

감았던 눈을 뜨고서 강태준은 늑대와 시선을 마주했다. 붉은 눈동자가 마치 충혈된 것처럼 당장에라도 피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은연중에 들리는 으르렁거림은 늑대의 화가 가라앉지 않았음을 알리고 있었다.

"본보기를 세우겠다."

"……."

"이 일에 관련된 이들의 목으로."

늑대는 씹어뱉듯이 말했다.

"단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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