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1. 피해자의 시점에서
* * *
시끄러운 경적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소음이 들려오는 진원지가 바로 창문 밖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커튼을 걷어냈다.
자동차 사고가 난 건지, 집 앞의 도로에서 불길과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난장판이 된 도로 옆에 쓰러진 거대한 몸집의 괴한이 보였다.
머리칼 위로 삐죽 솟은 두 귀와 셔츠 바깥으로 튀어나온 털들. 내 생각대로라면, 저 사람은 아마 늑대인간 종족의 캐릭터를 키우던 사람이었으리라. 이리저리 얽혀 있는 차들과 경찰차들을 무심히 감상하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을 열었다.
“...상태창.”
[상태창 로딩에 실패했습니다.
스텟의 보정치를 받을 수 없습니다.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레벨업이 불가능합니다.
신체능력이 레벨 1 상태로 고정됩니다.]
“역시 그대로네.”
그놈의 로딩에 실패했다는 문구. 일 년 전부터 한 글자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나는 씁쓸한 한숨을 내쉬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천천히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거울에는 한 쌍의 거대한 뿔을 가진, 여리여리한 인상의 백발의 미인이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모습이었다. 최대한 내 몸에 신경을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기계적인 손짓으로 건조해진 뿔에 로션을 발랐다.
어렸을 적, 뿔을 가진 만화캐릭터를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간지나는 뿔을 가지고 보니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늘상 관리해줘야 하는 귀찮은 부위가 하나 늘어난 셈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용족 버릴걸...”
용족. 인간과 드래곤의 혼혈이라는 간단한 배경 스토리를 지닌 종족이었다. 혼혈이란 점 때문에 신체능력은 매우 떨어지지만, 대신 마력 관련 스텟의 보정치가 뛰어나 마법사 캐릭터를 키우는 데에 특화된 일장일단이 있는 종족이었으나...
나는 점차 흐릿하게 사라져가는 상태창의 문구를 짜증을 담아 노려봤다.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스텟의 보정치를 받을 수 없습니다.]
마력 보정치가 높아봤자, 스텟 보정치도 적용을 받지 못할뿐더러 스킬도 사용할 수 없다. 스킬과 마력 스텟이 생명인 법사 캐릭터가 그 두 가지를 모두 봉인당했으니, 그냥 매우 근력이 약한 뿔 달린 일반인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일 년 전, 나와 함께 게임 캐릭터로 변이한 사람들은 모두 상태창이 열리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그러한 유저들 중에서도 초반 능력치가 뛰어난 종족을 고른 사람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늑대인간이나 수인, 악마족이나 천족 같은 종족이 된 사람들이 그러한 부류였다.
그들은 흔하디흔한 잔병치레도 전혀 겪지 않았고, 달리기만으로 그 빠르다는 치타를 따라잡을 수 있었으며, 일부는 등 뒤의 날개로 하늘을 날 수도 있었다.
그에 비하면 용족은 평범한 인간 종족을 고른 대부분의 사람들보다도 근력도 딸리고, 뿔도 건조해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며, 스텟의 보정치마저 적용받지 못하니 잔병치레도 심했다. 상태창이 막힌 시점에서 용족의 장점이라곤 뛰어난 시력과 외모뿐이었다. 그래도 꼴에 화이트 드래곤이라고, 브래스를 쏠 수는 있었지만 그것도 겨우 얼음 몇 개를 뱉어내는 데에 그쳤다. 여름이라면 나름 쓸모 있는 능력일진 몰라도, 막상 쓰고 나면 온 몸이 기진맥진해지니 그냥 냉장고에 얼음을 얼려서 먹는 편이 훨씬 가성비가 좋았다.
“후우...”
씁쓸하게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꼬나쥔 채 창문을 열려다가, 사고가 난 차량에서 올라오는 연기가 들어올 것 같아 관뒀다.
일 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담배도 맛이 달라졌다. 사실 용족이 된 이후론 맛보단 습관으로 피우는 느낌이었다. 이 기회에 끊어야 하나.
나는 멍하니 침대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휴대폰에 오늘의 날짜가 떠올랐다. 12월 17일, 날씨는 맑음. 그리고 빨간 날, 일요일이었다. 그와 동시에 유저들의 몸이 이렇게 변한지 딱 일 년째 되는 날이었다.
오전엔 할 일도 없겠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뒤적이다 보니 뉴스 속보 몇 개가 눈에 띄었다.
[연쇄살인범, 또 늑대인간으로 밝혀져. ]
[공포의 15일 밤, 늑대인간 격리의 필요성]
포털사이트 메인에 걸린 뉴스특보들이었다. 하나를 클릭해 들어가 보니 내용은 예상대로였다. 매달 15일마다, 보름달이 뜰 때마다 본능을 주체할 수 없게 변해버린 늑대인간 유저들이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라에선 그런 유저들을 위해, 신청자들에 한해 보름달이 뜨는 14일 오후부터 16일 낮까지 유저들의 신체에 구속구를 채워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문제는, 늑대인간 대부분이 그런 처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하긴, 나라도 싫겠다. 의식이 없는 상태라지만 그동안의 기억은 남는다. 3일동안 온 몸을 묶인 상태로, 링거에 의존해서 연명하는 짓을 그 누가 좋아하겠는가. 묶이는 쪽에 성도착증이 있는 서큐버스, 인큐버스 유저라면 또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늑대인간 유저들은 평범한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늑대인간들 죄다 잡아서 사회에서 격리해라.
또 피해자 사진은 모자이크 없고 가해자만 모자이크 해주네. 장난하냐?
하여간 유저새끼들 다 목줄 채워서 관리해야돼.
뉴스의 댓글란을 훑어보니, 역시나 늑대인간들에 대한 무분별한 욕설과 비하가 담긴 댓글로 가득했다. 그중 일부는 유저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거나, 유저들을 같은 인간으로 취급해선 안 된다는 극단적인 사상의 글도 보였다.
“...어휴.”
한숨과 함께 뒤로가기를 눌렀다. 유저들 전부가 범죄자도 아니고, 대부분이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데, 여론은 여전히 유저들에게 부정적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구석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던 후드티를 입었다. 널널한 후드의 모자에 뿔이 가려지자, 나름 평범한 인간처럼 보였다.
‘...산책을 하면 기분이 좀 나아지겠지.’
핸드폰을 끄고 집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자마자 상쾌한 새벽의 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시원한 아침 공기를 마음껏 즐기며 산책을 하고 돌아오니,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슬슬 허기가 져서 라면 하나를 끓여 아점을 먹은 뒤, 외출 준비를 했다.
이번엔 산책 때와는 달리 후드티에 롱페딩까지 걸쳐 뿔이 바깥으로 절대 드러나지 않도록 꽁꽁 싸맸다. 유저라는 이유로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요즘들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허약한 신체로는 그런 사람들에게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라도 유저처럼 보이는 부위를 감추는 것이 내 몸을 지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거기에 송곳니를 가려 줄 마스크와 금빛 눈동자를 평범하게 보이게 할 렌즈까지 겸비하니, 내 겉모습은 추위를 잘 타서 옷을 좀 껴 입은 일반인처럼 보였다.
“어우, 더워...”
다만 이러한 방법에는 큰 부작용이 있었다. 바로 더위였다. 비록 겨울이긴 하지만, 오늘따라 날씨가 따스해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갑자기 외출하려는 의지가 뚝 떨어졌지만, 나는 무력함을 이겨내고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거진 한 달 만의, 산책이란 목적이 아닌 제대로 된 외출이었다.
오후의 거리는 한산했다. 근방에 번화가가 없는 변두리 지역이라 그런지,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오는 동안 본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저번 달에 아낀 돈으로 산 에어팟을 귀에 낀 채, 자동으로 재생되던 음악을 흥얼거리고 있으니 버스가 도착했다.
어디서 모임이라도 가졌는지 버스 안에는 중년 아주머니, 아저씨들로 가득했다. 옷차림으로 보아하니 산악회에서 등산을 하고 온 것 같은데,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빨갛고 술냄새가 진동하는 것을 보니 막걸리라도 거하게 한 잔씩 걸치고 온 것 같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버스 맨 뒷자리의 구석으로 가 앉았다. 가장 시비를 많이 걸어오는 사람들이 바로 저런 부류의 중년인들이었다. 늑대인간, 악마족처럼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유저들만 싫어하는 젊은 세대들과 달리, 대부분의 중장년층은 유저라는 존재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어하고 배척했다.
특히나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길 좋아하는 사람들, 흔히 세간에 '틀딱'이라고 불리우는 부류들은 인간에 비해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유저들에게 시비를 거는 것을 일종의 자랑처럼 여길 정도였다.
물론 모든 중장년층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특히 자신의 자식이나 가족이 유저가 된 사람들은, 사람들의 이해와 배려를 바라며 유저들의 권리 신장 운동에 힘쓰곤 했다.
그렇게 노력해봐야,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래서 말이지, 그때 내가 그 수인년을 확! 패대기쳐 버렸지. 그러니 질질 짜면서 울지 뭔가.”
“역시 장씨야, 그런 놈들은 다 사회에서 추방해야 하는데 말이지. 다 악마의 자손들이라니까? 악마의 게임을 했으니까 악마나 그런 괴생명체로 변한거 아녀!”
“쯧쯔,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려고 그런 미개한 족속들을 시민권자로 인정하는지. 정부도 다 한통속이야!”
약자를 일방적으로 때렸다고 자랑하는, 초등학생만도 못한 수준의 남자와 그를 치켜세워주는 일행들의 언행이 역겨웠다. 비슷한 사건을 겪은 적이 있다 보니, 피해자에게 저도 모르게 감정 이입이 되는 기분이었다. 아마 그 수인도 트라우마에 휩싸여, 나처럼 후드티와 마스크 없이는 외출이 불가능한 반병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유저들은, 그 신체능력에 상관없이 쌍방폭력을 했을 경우 가중처벌을 받는다. 몇 개월 전에 생겨난 새로운 법안이었다. 나라에선 일부 신체능력이 뛰어난 유저들이 쌍방폭력이랍시고 일반인들을 반죽음으로 만들어 놓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법이라고 했지만,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힘없는 일반 유저들이었다. 유저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때리고 있더라도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유저들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제대로 처벌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얼마나 심각한지, 유저들은 종종 자신들은 살아있는 샌드백이라고 자조하곤 했다.
아마 저 틀딱의 썰풀이 속 피해자인 수인도 일방적인 폭력에 반항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잘못했다간 쌍방폭력으로 입건되는데, 유저와 평범한 사람간의 쌍방폭행은 무조건 유저의 잘못으로 판단한다. 문식이법. 미노타우르스 종족에게 폭행당해 죽은 아이의 이름을 따서 제정된 떼법이었다.
헌법에서 명시한 '평등'이란 대한민국의 기본 원칙을 완전히 무시한 떼법이었지만, 막상 피해자인 유저들의 억울한 목소리를 들어주는 곳은 없었다. 오히려 여론은 이러한 법들이 제정되는 것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상술했던 문식이법과 같이 불평등한 법안들이 나타날 때마다, 유저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그러나 전체 인구의 1%조차 안 되는 그들의 목소리는 금방 묻혔다. 기득권층 대부분이 유저를 싫어하니 각 정당들은 유저들을 제재하는 법안을 내놓아 표심을 얻기에 바빴다.
거기에, 범죄자들을 옹호하며 민심을 충분히 잃어가던 인권 단체들이, 이대로는 민심을 회복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유저들은 '인권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당연히 유저들에게 위협을 느낀 적이 있는 사람들은 그에 동조했고, 여론은 인권 단체들에게 우호적으로 돌아갔다.
법적으로도, 여론전에서도 언제나 불리한 것은 유저들이었다.
이러한 분위기가 팽배해지다 보니, 유저들을 얕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잘리거나, 폭행당하거나, 심한 경우는 종교적 이유랍시고 살해당하곤 했다. 법의 제한 탓에 유저들은 이에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들과 신문사은 고통받는 유저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유저에 대한 혐오를 부추키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여론을 어딘가에서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사나 뉴스를 제작하는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유저들을 위해 나서는 사람은 그 중에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나라에 유저들이 설 자리는 그렇게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는 앞좌석에 머리를 박았다. 금속 재질의 차가운 의자 뼈대가 이마에 닿으니 뜨거워졌던 머리가 좀 식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같은 자세를 한 채로 눈을 감고 있다가, 계속해서 들려오던 산악회 회원들의 목소리가 끊겼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뿔이, 후드티 밖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수십 쌍의 시선이 내쪽으로 와 박히는 것이 느껴졌다.
* * *